문동환(94) 목사는 1921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만주의 대통령’으로 불릴만큼 존경 받던 규암 김약연이 함경도에서 130여명을 이끌고 정착해 민족 운동의 산실이 된 곳이다. 규암의 외조카 윤동주, 문 목사의 형 문익환, 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의 설립자 김재준, 향린교회 안병무, 경동교회 강원용 등 기라성 같은 개신교 인물을 낳은 그 땅이다. 스승 김약연처럼 되고 싶어 그도 목사가 됐다.
일제와 민족운동사, 민주화 등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선구자는 살아있었다. 허리는 굽었고 지팡이는 짚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한 기억력을 보였다. 그에게는 조선 유학의 대학자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기독교공동체를 일군 규암의 결기가 살아 있었다. ‘문제 의식’과 ‘시대 정신’이 시퍼랬다.
미 프린스턴신학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 한신대에서 재직중 유신독재정권에 의해 해직당했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한때 정계에도 투신해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서울 당산동의 자택을 찾은 날은 마침 5·18 35돌이었다.
‘만주의 대통령’ 김약연 본받아 목사로
문익환·윤동주·김재준·강원용…
개신교 민족운동 선구자들 기개 이어
72살 은퇴 미국생활 20년 성서 새탐독
“바울 ‘유대인 메시아신학’은 제국주의”
젊은이들과 ‘예수 생명문화’ 대화 제안
그가 이번에 <예수냐 바울이냐>(삼인 펴냄)는 책을 내놓았다. 바울은 예수를 생전에 만나본 적이 없지만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13권이 그의 저서로 이뤄질만큼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인물이다. 로마 바티칸에도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같은 비중으로 바울의 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문 목사는 ‘바울이 바로 예수의 본 정신을 망친 인물’이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어떻게 이런 ‘과격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일까.
“전쟁을 일으켜 이방인들을 죽이고 땅을 빼앗는 게 예수의 삶과 정신인가. 신대륙에 가서 원주민들을 몰살시키는 게 과연 예수의 가르침인가.”
노 목사이자 학자는 형용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유대주의자였던 바울이 가져온 ‘유대인들의 메시아신학’을 ‘첫번째 잘못 끼운 단추’로 꼽았다. 그로 인해 고아와 과부, 이방인 등을 가엾게 여기고 돌본 예수의 생명사랑이 사라지고, 강자의 종교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원 전 1300년 모세가 이집트의 바로왕 아래서 노예로 고통받는 이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300년간 그들의 야훼는 ‘아파하시는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은 무력으로 역사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떠돌이(하비루)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올바른 가치를 향해 나아가 자기들의 역사를 스스로 창조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왕이 없이 민중들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일구며 살았다. 바로 예수가 믿는 하나님 시대였다. 그러나 300년 뒤 절대군주인 다윗왕조가 등장했다. 그 왕조가 망하고 바빌론에 노예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메시아신학을 만든다. 야훼가 다윗을 사랑해 대대로 왕이 되게 하고,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아를 보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만방이 이스라엘을 드높인다는 유대인들의 종교제국주의다. 야훼를 다윗 왕조의 수호신으로 만들고, 이방을 쳐부수는 전투의 신으로 만든 것이다.”
문 목사는 정작 예수는 메시아가 되기는 커녕, 메시아를 완전히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다윗 왕조도 철저히 거부했고, 그 때문에 유대교 대사제에 의해 로마군에 던져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바울 당시 로마는 유럽과 영국까지 장악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스스로를 신이라 했다. 신전을 짓고 이를 뒷받침하는 황제신학을 만들었다. 로마 문화를 잘 알면서도 골수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유대인들의 예수를 메시아로 만들고, 황제신학체계를 이용해 기독교 신학체계를 만들었다. 아우구스투스를 이기기 위해 죽지 않는 부활과 심판론을 만들었다. 그때 ‘속죄’니 ‘중죄’니 하는 황제신학이 기독교에 들어왔는데, ‘대속 제물’이란 예수의 언행과는 맞지 않다. 예수는 제물을 못 바쳐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며 마음을 편케 해주었다.”
그는 “바울신학을 배운 바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서기 325년 기독교를 국교화한데는 하나님이 권위가 있을수록 국가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며 “그 이후로 신학은 ‘힘의 논리’인 권력과 야합해 식민지 쟁탈 전쟁에도 선교사들이 동참하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문 목사는 “지금 한국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런 유대교”라고 한탄했다. ‘메시아와 왕조, 절대권력, 권위주의, 선민의식 등을 거부한 예수와는 정반대의 신학을 정립한 바울의 기독교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한명 한명의 생명력을 살려 역사의 주체로 세우려한 예수운동의 싹을 잘라버린 게 바울로부터 비롯됐고, 메시아만을 기다리며 죄를 고백만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갈 것이라는 ‘대망(기다림)교회’를 만들어, 민중(하비루) 주체 역사와 예수의 정신을 거세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은퇴 뒤 사회복지운동을 한 부인(페이문)의 고국 미국으로 되돌아갔던 그는 72살이던 그때부터 성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신학을 탐구해왔다. 그는 “새 책을 보고 한 신학자가 늘 의문을 가져오면서도 말로 꺼낼 수 없던 것을 얘기해줘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강자의 논리,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산업주의를 넘어선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생명문화의 물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생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젊은이들과 대화모임을 하고 싶다.” 구십청춘의 꿈은 여전히 푸르렀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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