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찰하기

일본에서는 권력편중이 심하고, 정부끼리 싸우고 국가나 국민이 없다 -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중에서 -

이윤진이카루스 2015. 5. 2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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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일본문명의 유래

 

앞장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서양의 문명은, 그 인간의 교류에 여러 주장을 병립하여 점차 서로 근접하여, 마침내 합쳐서 하나가 되어, 그로써 그 사이에 자유를 존치시킨 것이다. 이것을 비유하면 금은동철 등과 같은 여러 원소를 용해하여 한 덩어리로 하여,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또 동과 철도 아니고, 일종의 혼합물을 만들어 스스로 그 균형을 이루어, 상호 서로 유지하여 전체를 보존하는 것과 같다. 되돌아보아 우리 일본의 형편을 살피면 이것과 크게 다르다. 일본의 문명도 인간의 교류에 있어서 본래 요소가 없을 수 없다. 군주든지 귀족이든지, 종교든지 국민이든지, 모두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하여 각각 한 종족이 되어, 각각 자신의 주장이 없는 것이 아니라도, 그 여러 주장이 병립할 수 없고, 서로 근접할 수 없고, 합쳐서 서로 하나가 될 수 없다. 이것을 비유하면 금은동철이라는 여러 품목이 있더라도, 그것을 용해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같다. 만약 혹은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일이 있다할지라도, 기실 여러 품목의 비율을 평균하여 혼합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한쪽이 무겁고 한쪽이 가벼워, 하나로써 다른 것을 없애고, 다른 것으로써 그 본색을 드러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금은의 화폐를 만드는 데 10분의 1의 구리를 섞는 것도, 구리는 그 본색을 드러낼 수 없고, 그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순수한 금은화폐인 것과 같다. 이것을 사물의 편중이라고 칭한다. 대체로 문명의 자유는 다른 자유를 희생하여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권리를 허락하고 여러 권익을 얻게 하고, 여러 의견을 수용하여 여러 힘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여, 타인과 나의 균형 사이에 존재할 뿐. 그러므로 인간의 교류에 있어서, 혹은 정부, 혹은 국민, 혹은 학자, 혹은 관리, 그 지위가 어떠한지를 묻지 않고, 다만 권력을 지닌 자가 있으면, 설령 지혜의 힘에서도 완력에서도, 그 힘이라고 칭하는 것에 관해서는 반드시 제한이 없을 수 없다. 대체로 인류가 지닌 권력은 결코 순수할 수 없다. 반드시 그 중에 천성적인 악폐를 배태하여, 혹은 비겁하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혹은 과격하기 때문에 사물을 해치는 일, 천하 고금의 실례에 의하여 볼 수 있다. 이것을 편중의 재앙이라고 칭한다. 권력을 쥔 자는 항상 스스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문명을 서양의 문명에 비교하여, 그 의미가 다른 바는 특히 이 권력의 편중에 관해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권력의 편중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인간교류의 한 가운데에 침투하여 도달하지 않은 곳이 없다. 본서의 제2장에서, 한 나라 국민의 기풍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곧 이 권력의 편중도, 저 기풍의 한 가운데 한 가지 항목이다. 지금의 학자, 권력에 관한 일을 논하는 데는, 다만 정부와 국민만을 상대하여, 혹은 정부의 전제에 분노하고 혹은 국민의 발호를 나무라는 자 많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사실을 상세히 하여 세밀히 음미하면, 이 편중은 교류의 지대한 것부터 지극히 작은 것에 미치고, 대소를 묻지 않고 공적인 것과 사사로운 것에 구애되지 않고, 적어도 여기에 교류가 있으면 그 권력은 편중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의미를 묘사하여 말하면, 일본 한 가운데 1100개 저울을 걸어, 그 저울 크고 작든, 전부 모두 한 방향에 치우쳐 균형을 잃은 것 같고, 혹은 34면의 결정체를 부수어, 1000으로 나누고 10000으로 나누어 마침내 가루로 되는 것도, 그 한 분자는 여전히 34면 본색을 잃지 않고, 또 이 가루를 합쳐서 하나의 작은 조각으로 만들고 또 합쳐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도, 그 물체는 여전하여 34면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 같다. 권력편중을 일반적으로 개괄하여 사사건건 미세함과 치밀함의 극에 통달하는 형편은 이와 같다고 할지라도, 학자가 특별히 이것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다만 정부와 국민 사이는 교류가 크고 공적인 것이어서 두드러지게 사람의 이목을 끌기 때문에, 그 논의도 이것을 목적하는 것이 많을 뿐. 이제 실제적으로 편중이 있는 곳을 설명하겠다. 여기에 남녀의 교제가 있으면 남녀 권력의 편중이 있고, 여기에 부모와 아들의 교류가 있으면 부모와 아들 권력의 편중이 있고, 형제의 교류에서도 이것이 있고, 어른과 아이의 교류에도 이것이 있고, 집안에서 나와 세간을 보아도 역시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스승과 제자 주인과 종, 빈부귀천, 신참 고참, 본가와 먼 혈족, 어느 것도 모두 그 사이에 권력의 편중을 존재하게 했다. 더욱 한 걸음을 나아가 인간이 다소 종족을 이룬 바의 것에 관하여 보면, 봉건시대에 큰 번()과 작은 번()이 있고. 절에 본산(本山)과 말사(末寺)가 있고, 신사(神社)에 본사(本社)와 말사(末社)가 있어, 적어도 인간의 교류가 있으면 반드시 그 권력에 편중이 없음이 없다. 혹은 또 정부 가운데서도 관리의 지위와 계급에 따라 이 편중이 존재하는 것 매우 심하다. 정부의 관리가 평민을 대하여 위세를 떨치는 상황을 보면 이 권력이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이 관리가 정부의 가운데 있어서 상급자를 대할 때는, 그 억압을 받는 일이 평민이 관리를 대하는 것보다도 훨씬 심한 것이 있다. 비유건대 지방의 하급관리 등이 촌장을 함께 불러 일을 말할 때는 그 오만이 혐오스러울 것 같아도, 이 하급관리가 장관을 대하는 모양을 보면 역시 불쌍히 여기는 미소를 참고 있다. 촌장이 하급관리를 만나 무리하게 질타를 당하는 모양은 불쌍하더라도 마을에 돌아와 소작농을 무리하게 질타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혐오스러울 것이다. 갑은 을에게 압제당하고 을은 병에게 제재를 받아, 강압과 억제의 순환, 끝이 있을 수 없다. 역시 기이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인간의 귀천과 빈부, 지혜와 어리석음과 강함과 약함의 부류는, 그 상황(컨디션: condition)에서 몇 단계도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이 단계를 존치시키는 것도 교류에 방해가 될 수 없다할지라도, 그 상황이 다른 것에 따라 겸하여 또 그 권리(라이트: right)도 다른 것이 많다. 이것을 권력의 편중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이제 세간의 사물을 피상적으로 보면 권력을 가진 자는 다만 정부만 같아도, 충분히 정부가 어떤 것인지를 음미하여 그런 이유를 구하면, 조금 논의가 세밀한 것에 도달할 수 있다. 원래 정부는 국민이 모여 일을 하는 곳이다. 이 장소에 있는 자는 군주라 칭하고 관리라고 칭할 뿐. 그리고 이 군주와 관리는 태어나면서 요로에 있는 군주와 관리가 아니다. 설령 봉건시대에 관직을 세습하는 풍습이 있어도, 실제적으로 일을 맡은 자란 많게는 우연히 선발된 인물이다. 이 인물, 일단 정부의 지위에 오른다 해서, 갑자기 평소의 마음씨를 고칠 이치가 없다. 그 혹은 정부에 있어 권력을 자행하는 일이 있음은, 곧 평소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 뿐. 그 증거에서는 봉건시대에서도 천민을 천거하여 정부의 요로에 고용한 일이 없지 아니할지라도, 그 인물의 소행을 보면 결코 기이한 것이 없다. 다만 이전의 행태에 따라 조금 일을 교묘하게 하는 것 밖에 없다. 그 교묘함은 곧 전횡의 교묘함이어서, 백성을 사랑하여 어리석게 하는 것이 아니면, 백성을 위협하여 위축되어 물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인물로 하여금 민간에 있도록 하면, 반드시 민간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촌에 있으면 촌에서 행동하고, 도시에 있으면 도시에서 행동하여, 도저히 우리 국민이 일반적으로 피할 수 없는 유행병이기에, 홀로 이 사람에 한하여 그것을 탈각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정부에 소속되면 그 사업이 성대하여 능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으로써,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유독 전횡의 근원이 아니고, 전횡하는 자들을 모이게 하는 중심이다. 전횡하는 자에게 자리를 빌려주어 평소의 본색을 드러내어 성대히 일을 시행하도록 하는 데 흡사 적당한 장소이다. 만약 그렇지 않아서 전횡의 근원이 특히 정부에 있다고 하면, 전국의 국민은 다만 관직에 있을 때만 이 유행병에 감염되어 전과 후는 과연 병이 없거나, 무례하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권력을 자행하는 것은 권력을 지닌 자의 공통적인 폐단이어서, 이미 정부에 있어 권력을 지니면 그 권력 때문에 스스로 현혹되어 더욱 이것을 가지고 노는 폐단도 있을 것이고, 혹은 또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전횡이 아니면 일을 수행할 수 없는 형국도 있을 것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국민에게서 평소의 교육과 습관에서 전혀 없는 바의 것을, 다만 정부의 지위에 알맞다고 해서 마음에 두어 업무에 시행하는 이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 따르면, 권력을 자행하여 그 힘의 편중됨은 결코 정부뿐만 아니라, 이것을 전체 국민의 기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풍은 곧 서양 여러 나라와 우리 일본을 구별함에 두드러진 경계선이기에, 이제 여기에서 그 원인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할지라도, 그 일은 매우 어렵다. 서양인의 저서에 아시아 지역에 전횡이 횡행하는 원인은, 그 기후가 온난하고 토지가 비옥하기 때문에 인구가 과다하고, 지리는 산과 바다가 험악하고 광활한 것으로 인해 망상과 공포심이 심하다는 등에 있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 것도, 이 주장을 받아들여 직접적으로 우리 일본의 상황에 적용하여, 그로써 미심쩍은 점을 단정할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가령 이것에 의해서 미심쩍음을 단정하여도, 그 원인은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사람의 힘으로써 이것을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다만 사건의 과정을 설명하고, 전횡이 이루지는 단계를 밝히고자 할 따름이다. 그 단계가 일단 밝혀지면 역시 이것에 대응하는 조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우리 일본이라는 나라도 개벽의 초기에 있어서는, 세계 중의 다른 여러 나라와 같이, 약간의 백성으로 한 무리를 이루어, 그 한 무리의 안에서 완력이 매우 강하고 지혜의 힘을 최대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가 있어 기배하거나, 혹은 다른 지방에서 와서 정복하여 그 우두머리가 된 일이리라. 역사에 의하면 신무천황(神武天皇)이 서쪽에서 군사를 일으킨 일이 있다. 한 무리의 백성을 지배함은 본래 한 사람의 힘으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그 우두머리에 딸려 사무를 보는 자가 없을 수 없다. 그 인물은, 혹은 우두머리의 친척, 혹은 친구 안에서 뽑아, 함께 힘을 모아, 스스로 정부의 체제를 이룬 것이리라. 일단 정부의 체제를 이루면. 이 정부에 속한 자는 백성을 다스리는 자이고, 백성은 그 다스림을 받는 자이다. 이것 때문인가 처음에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구별이 생겨, 다스리는 자는 위이고 주인이고 또 내부이고, 다스림을 받는 자는 아래이고 객()이고 또 바깥이다. 상하와 주객과 내외의 구별, 명백하게 볼 수 있다. 생각건대 이 양자는 일본의 인간 교류에 있어서 매우 두드러진 경계선 이루어, 흡사 우리 문명의 두 가지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류한 종족이 적지 않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도달한 바는 이 두 가지 요소에 돌아가, 하나도 독립하여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자가 없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서로 나뉘다)

사람을 다스림은 그 일이 본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 다스리는 자의 무리에 가입하는 자는 반드시 완력과 지혜의 힘을 겸비하고 또 다소간의 재산이 없을 수 없다. 일단 몸과 마음이 힘이 있고, 또 이것에 부유함을 겸비할 때는, 반드시 사람을 통제하는 권력을 얻는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권력을 지닌 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왕실은 이 권력자의 위에 서서, 그 힘을 모아서 국내를 다스리고, 전쟁을 해서 이기지 않음이 없고, 정벌하여 항복시키지 않음이 없다. 또 다스림을 당하는 백성도, 왕실의 유래가 유구한 이유로써 더욱 복종하고, 신공(神功)왕후 시대부터 누차 외국으로 출정한 일도 있고, 국내에 위력을 보이고 혜택을 베풀어 국내를 돌아보아 근심이 없었던 것 미루어 알 수 있다. 이후 문화가 점차 열려, 양잠과 조선술, 직조와 바느질 기계 및 농기구, 의학서와 유교서 및 불교서적, 기타 문명의 여러 사항들이, 혹은 조선으로부터 전해지고, 혹은 자국에서 발명하여, 인간의 생생한 모습은 점차 성대함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이 문명의 제반 상항을 시행하는 권력은 모두 정부의 한 손에 달려, 백성은 다만 그 내용에 따를 뿐. 게다가 전국의 토지, 백성의 신체까지도, 왕실의 사유와 다르지 않음이 없다. 이 상황을 보면 다스림을 받는 자는 다스리는 자의 노예와 다르지 않다. 후세에 이르기까지도 어()국가, 어전지(御田地), 어백성(御百姓) 등의 명칭이 있다. 이 어()라는 글자는 정부를 존경한 말이어서, 일본의 논밭도 백성의 신체도 모두 정부가 소유한 물건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닌토구(仁徳) 천황이 민간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짐은 이미 부유하다고 했다는 것도, 분명히 백성을 사랑하는 본심에서 나와, 백성의 부유함은 오히려 내가 부유함 것과 같다는 의미이어서, 정말이지 마음을 비운 침착하고 인자한 군주라고 칭할 수 있을지라도, 천하를 한 가족으로 간주하여 이것을 사유화하는 기상을 살펴서 볼 수 있다. 이 추세에서 천하의 권력은 모두 왕실에 돌아가고, 그 힘, 항상 한편에 편중되어, 그로써 왕조시대의 말기에 다다랐다. 생각건대 권력의 편중은 앞에 언급한 것과 같이 지극히 큰 것에서부터 지극히 세세한 것에 이르러, 인간의 교류를 천만가지로 나누면 천만가지의 단계로 된 편중이 나타나고, 모아서 백으로 만들면 백가지 단계의 편중이 나타나, 이제 왕실과 백성의 두 가지 단계로 나누면, 편중도 역시 이 사이에 생겨나, 왕실의 한 편에 편중되는 것이다. (국력은 왕실에 편중된다)

켄페(源平: 겐지[源氏]와 헤이시[平氏]) 두 가문이 일어나는 데 이르러 천하의 권력은 무사가문에 돌아가고, 이것에 의하여 혹은 왕실과 균형을 이루어, 인간교류의 추세가 일변할 수 있을 것 같다하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 켄페(源平)든지, 왕실이든지, 모두 이 다스리는 자 가운데의 부분이어서, 국권이 무사가문에 돌아감은 다스리는 자 가운데서 이 부분에서 저 부분으로 힘을 옮겼을 뿐.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관계는 여전하여 상하 주객의 추세를 갖추어, 조금도 옛날과 다른 것이 없다. 단지 다른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앞서서 고닌(光仁) 천황은 호키(宝亀)시대에 천하에 명령을 내려 병사와 농부로 나누어, 백성에게서 부유하고 무력이 있는 자를 뽑아 병역에 쓰고, 초췌한 자로 하여금 농업에 종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명령의 취지에 따르면, 백성 중에 부유하고 강한 자는 무력으로써 약소한 자를 보호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는 농사에 힘써 무사에게 공급하는 것이라면, 가난하고 약한 것은 더욱 가난과 약함에 빠지고, 부강은 더욱 부유함과 강함으로 나아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경계선이 더욱 확연하여, 권력의 편중은 더욱 심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서적을 생각건대, 요리토모(頼朝)60여주의 총사령관이 되어, 나라마다 치안관을 두고, 장원(荘園)에는 책임자를 임명하여, 그로써 종전의 지방관과 장원관리관의 권한을 약화시킨 이후, 여러 나라의 무사들 가운데서 혈통도 있고 인품도 지닌 자는 치안관과 장원책임자의 직에 임명하고, 이하의 사람은 고케닌(御家人)이라 칭하여 지방관과 장원책임자의 지배를 받고, 모두 막부의 부하가 되었고, 혹은 백일교대(百日交代: 지방 관리들이 백일마다 교대로 수도에 와서 인질로 근무하는 것)로 가마쿠라(鎌倉)에 숙영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호조(北条)시대에도 대개 동일한 형편이어서, 나라 안 어디에도 무사가 없는 곳이 없다. 조큐(承久)의 난에 야스토키(泰時)18 기병으로 가마쿠라(鎌倉)를 세운 것은 522일의 일인데, 같은 달 25일까지 사흘간에 관동지역의 병사를 모두 모아, 도합 19만 기병이 되었다 한다. 이것에 의하여 생각하면, 여러 나라의 무사인 자는 평소부터 출진하려는 준비에 바빠, 본디 농업에 힘쓸 여가가 있을 수 없고, 분명히 다른 백성의 힘에 의지하여 먹고 산 일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병역과 농업의 경계선이 더욱 명백하게 정해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무사의 수도 점차 증가한 것이리라. 요리토모(頼朝)의 시대에는 대체로 관동의 섬기는 무사가문으로써 여러 나라를 수비하는 데 배치하여, 3, 5년의 교대였는데, 그 후 무기한으로 대대로 세습적으로 봉록을 받는 직책이 되고, 호조(北条)가 망하고 아시카가(足利)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 치안관이라는 자, 번갈아 서로 병탄하고, 혹은 흥하고 혹은 망하고, 혹은 토호에게 쫓기고. 혹은 신하에게 빼앗겨, 점차 봉건적 추세를 이루었던 것이다. 왕조시대 이래의 형편을 개괄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무사, 처음에는 국내의 처소에 분산하여 각자 권력을 휘둘러, 그로써 왕실의 명령에 복종한 것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에 이르기까지 점차 합쳐서 몇 개의 소집단을 이루어, 처음으로 다이묘(大名)과 쇼묘(小名)의 칭호가 생겼다. 아시카가(足利) 시대에 이르러서는 또 합쳐서 몸체가 큰 것을 이루었어도, 그 몸체와 다른 몸체를 합칠 수 없다. 즉 오닌(応仁) 이후 난세여서, 무사가 최고로 번성한 시대이다. 이와 같이, 무사의 세계에는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진퇴영고(進退栄枯)가 있어도, 백성의 세계에서는 하등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한다. 다만 농업에 힘써 무사의 세계에 보낼 뿐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눈으로 보면, 왕실도 무사의 가문도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무사의 세계에 치세와 난세와 흥망이 있는 것은, 백성을 위해서는 흡사 날씨와 기후의 변화가 있음과 다르지 않다. 다만 말없이 그 과정을 볼 따름이다.무사의 가문이 흥해서 신정정치의 미혹을 일소한 소득은 제235쪽에 (이와나미[岩波] 문고 구판 33) 논했다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주장에, 천하의 대세는 아홉 번 변하여 무사가문의 시대가 되고, 무사 가문의 세대 또한 다섯 번 변하여 도쿠가와(徳川)의 시대에 이르렀다고 하여, 그 외에 여러 연구가들의 주장도 대동소이하여도, 이 주장은 다만 일본에서 정권을 잡는 사람의 신진교대(新陳交代)한 모양을 보고 몇 번이라고 할 따름인 것이다. 모두 이때까지 일본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오직 왕실의 계보를 탐구한 것이거나, 혹은 임금과 재상과 벼슬아치의 득실을 논하는 것이거나, 혹은 전쟁과 승패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강역사(講釈師: 이야기꾼 혹은 야담가)의 전쟁이야기와 비슷한 것이거나, 대체로 이런 항목 밖에 없다. 드물게 정부와 관계가 없는 것이 있다면 불교도의 거짓말과 허망한 주장뿐, 역시 볼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역사는 없고 일본정부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학자의 부주의여서 나라의 큰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라이(新井) 선생의 독사여론(読史余論)이라는 것도 곧 이런 부류의 역사여서, 그 책 가운데 천하의 추세가 변한다고 되어있어도, 실은 천하의 대세가 변함이 아니고, 천하의 추세는 일찍이 이미 왕조시대에 정해져,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 두 가지 요소로 구별하고, 군사와 농업으로 나누는 데 이르러 더욱 그 경계선을 분명히 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왕조시대의 말기에 후지와라(藤原) 가문, 권력을 독점하여, 혹은 상황(上皇), 정치를 자문하는 일이 있어도, 다만 왕실 내부의 일이어서 본디 세상의 형편과 관계가 있을 수 없다. 다이라() 가문이 망하고 미나모토() 가문이 일어나서, 새로이 가마쿠라(鎌倉)에 정부를 열어도, 호조(北条)가 신하로 국가의 명령을 집행함도, 아시카가(足利)가 남조(南朝)에 대항하여 역적으로 불리는 것도, 오다(織田)와 도요토미(豊臣)와 도쿠가와(徳川)가 각각 일본을 통솔하여 지배했다 하는 것도, 지배하는 데 다만 유능하고 졸렬함이 있을 뿐. 천하의 형세는 여전하여 옛날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호조(北条)와 아시카가(足利)에서 즐거웠던 것은 도쿠가와(徳川)도 그것을 기뻐했고, ()이 근심했던 것은 을()도 그것을 근심하여, 그 기뻐함과 근심함에 대처하는 방법도 갑과 을에 있어서 조금도 다른 바가 없다. 비유건대 호조(北条)와 아시카가(足利)의 정부에서 오곡이 풍부하게 익어 백성이 유순함을 기뻐하는 심정은, 도쿠가와(徳川)의 정부도 그것에서 같다. 호조(北条)와 아시카가(足利)의 정부에서 두려워하는 바의 모반자의 종류는, 도쿠가와(徳川) 시대에서도 그 종류가 다르지 않다. 회고하여 저 유럽 여러 나라의 형편을 보면 크게 의미가 다른 바가 있다. 그 국민 사이에 종교적 교설에 관한 새로운 주장이 점점 유행하면 정부도 역시 그것에 따라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봉건적 귀족만을 두려워했지만, 세간의 상공업이 점차 번성하여 중산층에서 권력을 지닌 자가 있기에 이르면, 역시 이것을 기뻐하고 혹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유럽의 각 국가에서는 그 국가의 추세가 변하는 데 따라서 정부도 역시 그 취지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오직 일본은 그렇지 않다. 종교적 교설도 학문도 상업도 공업도 모두 정부 안에서 농락당하는 것이어서, 그 변동을 근심할 필요가 없고, 또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만약 정부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그것을 금지할 수 있다. 유일한 걱정은 같은 부류 중에서 일어나는 자가 있어 정부가 신진교대(新陳交代)하는 것을 두려워할 뿐.같은 부류 중에서 일어나는 자라는 것은 다스리는 자 중에서 일어나는 자를 말한다그러므로 건국 2500여 년간, 나라의 정부라는 것은 동일한 모양의 일을 반복하여, 그 모양이 흡사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은 것과 같고, 같은 제목의 연극을 몇 번이고 공연하는 것과 같다. 아라이(新井) 씨가 천하의 대세 아홉 번 변하고 또 다섯 번 변했다고 하는 것은, 곧 이 연극을 아홉 번 공연하고 또 다섯 번 공연했다는 것일 뿐. 혹은 서양인의 저서에, 아시아주의 여러 나라에서도 변혁과 소동이 일어남은 유럽과 다르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변란 때문에 나라의 문명을 진척시키는 일이 없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생각건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신구 교체하여도 국가의 추세는 변하는 일이 없다)

위와 같이 정부는 때때로 변혁을 번갈아 일으키는 일이 있어도, 국가의 형편은 곧 그렇지 않아, 그 권력은 항상 한 편에 편중되어, 흡사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사이에 높고 큰 장벽을 만들어 그 통로를 끊은 것 같다. 형태가 있는 완력도 형태가 없는 지혜와 덕행도, 학문도 종교도, 모두 다스리는 자의 무리에 참여하여, 그 무리들은 번갈아 서로 의지하여 각각 권력을 늘이고, 재산도 여기에 모이고 재능도 여기에 모여, 영욕(榮辱)도 여기에 있고 염치도 여기에 있고, 멀리 상류의 지위를 차지하여 하류 백성을 지배하여, 치세와 난세와 흥망, 문명의 진보, 모두 다스리는 자가 아는 바이고, 다스림을 받는 자는 전혀 마음에 이것을 관여하지 않고, 태연히 길가의 일을 보고 듣는 것 같다. 비유건대 옛날부터 일본에 전쟁이 일어났다. 혹은 고에츠(甲越)의 접전이라 하고, 혹은 죠코쿠(上國: 수도 지역)와 관동(關東)의 전투라고 하고, 그 명칭을 들으면 양국이 서로 적대하여 싸우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전투는 다만 양국의 무사와 무사의 싸움이어서, 백성은 전혀 이것에 관계하는 일이 없다. 원래 적국이라는 것은 전국의 백성이 일반적인 마음으로써 서로 적대하는 것이어서, 설령 스스로 무기를 휴대하고 전장을 향하지 않아도, 자기 나라의 승리를 원하고 적국의 불행을 기원하고, 사사건건 하찮은 일에 이르기까지도 적과 아군의 의미를 잊지 않는 것이야, 진실로 적대적인 두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백성이 지닌 나라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이 부근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쟁에 있어서는 옛날부터 그런 사례를 보지 못한다. 전쟁은 무사와 무사의 싸움이지, 백성과 백성의 싸움이 아니다. 가문과 가문의 싸움이지,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니다. 두 가문의 무사, 전쟁을 시작할 때는, 백성이 그것을 방관하여, 적에게서도 아군에게서도 다만 강한 자를 두려워할 뿐. 그러므로 전쟁에 즈음하여, 쌍방의 깃발의 색깔을 따라서, 어제 아군의 군수품을 운송한 자도 오늘은 적의 군량미를 질 수 있다. 승패가 결정되어 전쟁을 끝내는 때는, 백성은 소동이 진정되어 장원책임자가 바뀌는 것을 볼 따름. 그 승리를 영예로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패배를 모욕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혹은 새로운 장원책임자의 정치적 명령이 관대하여 연공미(年貢米: 매년 세금으로 내는 쌀)가 높은 것을 감액하는 일이라도 있으면 이것을 우러러 기뻐할 따름. 그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말하겠다. 고호조(後北条) 국은 관동 8주이다. 일단 도요토미(豊臣)와 도쿠가와(徳川)가 적대하여 패망이 발생하면, 패망 후 곧바로 8주를 지배한 자는 원수인 도쿠가와(徳川)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어떤 인물이기에 일시에 8주의 많은 적을 복종시킬 수 있는가? 생각건대 8주의 백성은 적도 아니고 아군도 아니고, 호조(北条)와 도요토미(豊臣)의 전쟁을 구경한 사람들이다. 도쿠가와(徳川)가 관동으로 옮겨 후에 적의 잔당을 진압하여 토벌했다는 것은, 다만 호조(北条) 가문의 남은 신하들을 토벌했을 뿐인 일이어서, 농부들과 상인들 등의 처리에 이르러서는 흡사 손으로써 머리를 만지는 즉시 안도하였던 것이다. 이것 등등의 사례를 헤아리면 옛날부터 하나하나 열거할 겨를이 없다. 오늘날에 이르러도 아직 변한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본은 옛날부터 아직 국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만약 이 전체 국가로써 외국을 적대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면, 일본 가운데의 백성에게서 설사 무기를 휴대하고 출진하지 않아도 싸우는 일에 심적으로 관여하는 자를 전사(戰士)라고 칭하고, 이 전사(戰士)의 수와 저 소위 구경꾼의 수를 비교하여 누가 많을 것인지, 미리 헤아려 알 수 있다. 일찍이 내가 주장 바에, 일본에서는 정부가 있되 국민은 (네이션: nation) 없다고 한 것도 이런 의미이다. 본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전쟁에 의하여 타국의 토지를 합병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어도, 이것을 합병하는 일이 매우 쉽지 않고, 비상한 병력으로써 압도하거나, 어쩌면 그 토지의 백성과 약속하여 얼마간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우리 국토에 편입시킬 수 없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의 백성이 그 기풍을 달리하는 것으로써 알 수 있다. (일본의 백성은 국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巻之五

 

第九章 日本文明由来

 

 前章へる西洋文明其人間交際諸説並立して相近づきして其間自由したるものなりへば金銀銅鉄等諸元素鎔解して一塊又銅鉄一種混和物じてから其平均相維持して全体つものゝ我日本有様すればなり日本文明其人間交際より元素なかるらず立君なり貴族なり宗教なり人民なり皆古より我国して各一種族各自家なきにざれども其諸説並立するを相近づくをしてるをへば金銀銅鉄諸品はあれども鎔解して一塊すことはざるがしてりたるがきものありとども其実諸品割合平均してじたるに片重片軽をしてその本色はすをせしめざるものなりかの金銀貨幣るに十分一混合するも其本色はすをずして其造たるものは純然たる金銀貨幣なるが事物偏重文明自由自由してきものに権義利益せしめ意見ふせしめ彼我平均するのみ自由不自由ずとふもなり人間交際政府人民学者官吏其地位如何はず唯権力するあらば仮令智力にても腕力にても其力るものにては制限なかるらず人類する権力して純精なるをべからず其中天然悪弊胚胎して卑怯なるがために過激なるがためにすること天下古今実験偏重有権者常からめざるらず我国文明西洋文明比較して其趣なる此権力偏重

 日本にて権力偏重なるはねく其人間交際浸潤してらざるなし本書第二章一国人民気風へることあり此権力偏重かの気風一箇条なり学者権力ずるには唯政府人民とのみを相対して政府専制人民跋扈者多しとどもよく事実にして吟味すれば此偏重交際至大なるものより至小なるものに大小はず公私はらず交際あれば其権力偏重ならざるはなし其趣形容してへば日本国中千百天秤其天秤大となくとなく皆一方して平均ふが又三角四面結晶物千分万分細粉すも其一分子尚三角四面本色はずこの砕粉して一小片又合して一塊すも其物依然として三角四面つが権力偏重一般ねくして微細緻密にまで通達する有様しとども学者注意せざるはぞや唯政府人民との交際にしてなるものにてしく耳目るゝが其議論目的とするものきのみ今実際偏重かん男女交際あれば男女権力偏重あり親子交際あれば親子権力偏重あり兄弟交際にもあり長幼交際にもあり家内でゝ世間るも亦然らざるはなし師弟主従貧富貴賎新参故参本家末家れも皆其間権力偏重せり尚一歩めて人間種族したるのものにれば封建大藩小藩あり本山末寺あり本社末社あり人間交際あれば其権力偏重あらざるはなし又政府にても官吏地位階級此偏重あること政府吏人平民してればこそあるにたれども此吏人政府中上級するときは其抑圧ること平民吏人するよりも尚甚しきものありへば地方下役等名主共呼出してずるときは其傲慢厭きがくなれども此下役長官する有様れば亦愍笑へたり名主下役ふて無理らるゝ模様なれども小前無理有様れば亦悪せられせられ強圧抑制循環窮極あることなし亦奇観より人間貴賎貧富智愚強弱其有様コンヂションにて幾段際限あるらず此段階するも交際あるらずとども此有様なるに又其権義ライトをもにするもの権力偏重るなり

 今世間事物皮相すれば有権者唯政府のみのくなれどもよく政府何物たるを吟味して其然由縁めなば議論なるものに元来政府国人りてなり此場所君主官吏るのみして此君主官吏れながら当路君主官吏仮令封建時代世位せいゐ世官せいかんあるも実際くは偶然ばれたる人物なり此人物一旦政府地位ればとて平生心事るのなし其或政府にすることあるは平生本色はしたるものゝみ其証拠には封建時代にても賎民政府要路ひたることなきにずとども其人物所業ればしてなるものなし唯従前しくにするよりならず其巧擅権せんけんにてしてにするにざればして退縮せしむるものなり此人物をして民間らしめなば民間此事らばにてらばにて到底我国民一般かるらざるの流行病なれば此人脱却することあるらず唯政府れば其事業盛大にしてよく世間耳目るゝを口吻にもることなり政府擅権擅権者集会せしむるのなり擅権者して平生本色はしはしむるに適当したる場所なりらずして擅権政府りとせば全国人民唯在官のみ此流行病じて前後して無病なる不都合なりとにするは有権者通弊なれば政府すれば其権のためにから眩惑してこれをぶのもあらん又政府一家成行にて擅権ざればらざるのもあらんとども此一般人民にして平生教育習慣てなきのものを唯政府地位ればとてすの々あるらざるなり

 議論へばにして其力偏重なるはして政府のみに全国人民気風はざるを此気風西洋諸国我日本とを区別するにしき分界なれば今爰其源因めざるらずとども其事甚西人著書亜細亜洲擅権はるゝ源因其気候温暖にして土地肥沃なるに人口多きに地理山海険阻洪大なるに妄想恐怖念甚しきりとのもあれども此説我日本有様不審きやらず仮令不審ずるも其源因悉皆天然なれば人力如何ともすらず余輩唯事成行擅権はるゝ次第にせんとするのみ其次第既ならばこれにずるの処置もある我日本国開闢ては世界中諸国若干人民一群其一群より腕力最智力最しきありて支配する地方より征服して其酋長たりしことならん歴史れば神武天皇西よりしたりとあり一群人民支配するはより一人にてよくきことにざれば其酋長附属してなかるらず其人物酋長親戚朋友よりから政府体裁したることならん政府体裁せば此政府人民なり人民其治なりてか治者被治者との区別治者なりなり又内なり被治者なりなり又外なり上下主客内外判然として此二者日本人間交際しき分界我文明二元素きものなり往古より今日るまで交際種族なからずとども結局其至此二元素独立して自家本分つものなし。(治者被治者相分

 るは其事固よりからず此治者腕力智力又多少なかるらず身心ありこれに富有るときはするのべし治者有権者ならざるを王室此有権者其力めて国内たざるはなししてさゞるはなし且被治者なる人民王室由来久しきのこれに服従神后時代より屢外征もあり国内威福はれて内顧なかりしことして爾後人文漸養蚕造船織縫耕作器械医儒仏法其他文明諸件朝鮮より自国にて発明人間生々の有様次第盛大ぶとども此文明諸件施行するの悉皆政府一手人民唯其指揮ふのみ加之全国土地人民身体までも王室私有ざるはなし此有様れば被治物治者奴隷ならず後世るまでも御国御田地御百姓等あり此御政府尊敬したるにて日本国中田地人民身体皆政府私有品なり仁徳天皇民家炊煙るを朕既めりとひしも必竟愛人本心よりむは猶我富むがしとの趣意にて如何にも虚心平気なる仁君しとども天下一家視做して私有するの気象此勢にて天下王室其力一方して王代れり権力偏重へる至大より至細人間交際千万てば千万段偏重ありめてせば百段偏重あり今王室人民との二段てば偏重亦此間じて王室一方したるものなり。(国力王室

 源平るにんで天下武家王室権力平均人間交際勢一変きにたれどもしてらず源平なり王室なり皆是治者中部分にて国権武家したるは治者中此部分より彼部分したるのみ治者被治者との関係依然として上下主客旧時なることなしなることなきのみならずさき光仁天皇宝亀年中天下だしてとを百姓武力ある兵役其羸弱るいじやくなるをしてかしめたりとあり此令趣意へば人民武力小弱保護其貧にしてめて武人することなれば貧弱益貧弱富強益富強治者被治者との分界益判然として権力偏重益甚しからざるを諸書ずるに頼朝六十余州総追捕使りて毎国守護荘園地頭従前国司荘司ぎしより以来諸国健児にて筋目もありをも守護地頭以下御家人して守護地頭支配悉皆幕府りて百日交代にて鎌倉宿衛するのもありと北条時代にも大抵同有様にて国中処として武人あらざるはなし承久泰時十八騎にて鎌倉打立たるは五月二十二日のことなるが同二十五日まで三日東国兵尽りて都合十九万騎とありれにれば諸国武人なる平生より出陣用意はしくより農業るのあるらず小民ひしこと兵農分界愈明りて人口増加するに武人次第したることならん頼朝には関東伺候武家諸国守護五年交代なりしが其後いつとなく譜代世禄北条亡びて足利ては此守護なる相併呑土豪はれ家来はれ封建したるなり王代以来有様してへば日本武人国内処在布散して一人一人王室したるもの鎌倉時代るまでにして幾個小体大小名あり足利りては又合してなるものをしたれども其体するを応仁以後乱世にて武人なるなり武人世界には合離集散あり進退栄枯あれども人民世界には何等運動あるをかず唯農業めて武人世界するのみ人民れば王室武家区別あるらず武人世界治乱興敗あるは人民のためには天気時候変化あるにならず唯黙して其成行るのみ。《武家興神政府惑溺一掃したるの利益第二章三十五葉岩波文庫旧版三三頁じたり

 新井白石天下大勢九変して武家武家世又五変して徳川ぶと其外諸家大同小異なれども此説唯日本にて政権新陳交代せし模様幾変ひしのみのことなりてこれまで日本はるゝ歴史唯王室系図詮索するもの君相有司得失ずるもの戦争勝敗して講釈師軍談するもの大抵是等箇条よりならず政府関係せざるものあれば仏者虚誕妄説のみ亦見るにらずしてへば日本国歴史はなくして日本政府歴史あるのみ学者不注意にして一大欠典新井先生読史余論なども此類歴史にて其書中天下勢変とあれども天下大勢じたるに天下王代まりて治者被治者との二元素区別兵農るゝにこの分界にして今日るまで一度びもじたることなし王代藤原氏にし上皇くことあるも唯王室内にてより形勢関係あるらず平家亡びて源氏起鎌倉政府くも北条陪臣にて国命るも足利南朝してせらるゝも織田豊臣徳川各日本国中押領してしたれどもこれをするに唯巧拙あるのみ天下形勢依然としてならず北条足利にてびしことは徳川ひしことは其喜憂するの甲乙なることなしへば北条足利政府にて五穀豊熟人民柔順ぶの徳川政府北条足利政府にてるゝ謀反人種類徳川時代にても其種類にせず欧洲諸国有様ればなるあり其国民宗旨新説漸はるれば政府これに処置さゞるらず昔日封建貴族をのみれたりしが世間商工次第繁昌して中等人民権力するあるにればこれをれざるらず欧羅巴各国にては其国勢ずるに政府亦其趣ぜざるらずとども我日本らず宗旨学問商売工業悉皆政府籠絡したるものなれば其変動るにらずこれをるゝにらず政府せざるものあればじてなり唯一心配同類よりありて政府新陳交代せんことをるゝのみ。《同類よりとは治者より建国二千五百有余年政府たるものは同一様仕事繰返其状恰一版復読するが外題芝居幾度ふすが新井氏天下大勢九変又五変ひしは此芝居九度ふし又五度ふしたることのみ西人著書亜細亜洲諸国にも変革騒乱あるは欧羅巴ならずとども其変乱のために文明めたることなしとのありれなきにざるなり。(政府新旧交代すれども国勢ずることなし

 政府として変革交代することあれども国勢らず其権力常一方して治者被治者との高大なる隔壁其通路つが有形腕力無形智徳学問宗教皆治者みし其党与互相依頼して各権力ばし栄辱廉恥上流地位めて下民制御治乱興廃文明進退悉皆治者にして被治者せずとして路傍見聞するがへば古来日本戦争あり甲越合戦上国関東との取合其名けば両国互敵対してふがくなれども其実してらず此戦唯両国武士武士とのにして人民することなし元来敵国とは全国人民一般相敵することにて仮令から武器戦場かざるも我国勝利敵国不幸些末のことにるまでも敵味方趣意れざるこそ敵対両国けれ人民報国心此辺るものなりるに我国戦争ては古来未其例戦争武士武士とのにして人民人民とのとのにしてとの両家武士兵端くときは人民之傍観してにても味方にても唯強きものをるゝのみ戦争双方旗色次第にて昨日味方輜重しちよう運送せし今日兵糧勝敗決して戦罷むときは人民唯騒動まりて地頭交代するをるのみ其勝利とするに又其敗北とするに新地頭政令寛にして年貢米ずることもあらばしてばんのみ其一例はん後北条関八州なり一旦豊臣徳川敵対して敗滅滅後直八州したる讐敵なる徳川なり徳川家康如何なる人傑なればとて一時八州衆敵するをんや八州人民にも味方にも北条豊臣との戦争見物したるものなり徳川関東りし残党鎮撫征討したりとは唯北条家遺臣ちしのみのことにて百姓町人等始末ては其頭即時安堵したることなり是等れば古来枚挙あらず今日ても其趣じたるを日本古来未さずとふもなり今若此全国外国敵対するあらば日本国中人民にて仮令兵器へて出陣せざるものことをする戦者此戦者所謂見物人とを比較してれかかるきや其多少日本には政府ありて国民ションなしとひしもなりより欧羅巴諸国にても戦争他国土地兼併することこれありとどもこれをすることからず非常兵力抑圧するしくば其土地人民約束して幾分権利附与するにざれば我版図るゝことはずと東西人民其気風にすること。(日本人民国事せず

 

 

 

일본에서는 권력의 편중이 심하고 정부끼리 싸우고 국가나 국민이 없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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