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위정자들이 공유하는 특성은 극단적인 자기애와 그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에 대한 증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력을 이용해 타자를 없애려 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 점에서 자민당은 세계 표준의 자유민주주의로부터 일탈을 시작했다. 이 당은 당의 이름과는 정반대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다원성, 관용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 불관용과 자기정당화는 반지성주의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베 정권은 대학의 교양을 말살하고, 대학을 단순히 이익 추구에 도움이 되는 기술과 인재를 개발하는 장소로 바꾸려 하고 있다.
강압정치가 지식을 증오하는 것은 고금동서의 공통된 현상이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은 <1984년>이라는 소설에서 이를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의 무대는 ‘오세아니아’라는 궁극의 전체주의 국가인데 ‘진리부’라는 관청이 역사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 국민은 지배층이 제창하는 3가지 슬로건,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를 철저히 교육받는다. 전쟁과 평화, 예속과 자유는 반대 개념이지만, 이것을 등치하는 모순을 국민들이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전체주의가 완성된다. 모순을 밀어붙이는 언어의 사용법을 오웰은 ‘신어’(new speak)라고 부른다.
오웰이 그리는 세계는 21세기 일본에서 현실화되는 중이다. 지금 여당이 추진하는 안보법제 논의에선 테러와의 전쟁을 상정해 타국의 전투에 자위대를 파견하기 위한 근거법에 ‘국제평화지원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웰의 ‘신어’를 일본 정부 여당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뿐만이 아니라 고용의 규제 완화, 여성이 빛나는 사회 등 여러 과제에 대해 아베 정권은 ‘신어’를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과 자민당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높다. 4월 <아사히신문>의 조사에선 내각 지지율이 44%를 기록했다. 12일 통일지방선거에서도 자민당은 광역지자체 선거에서 낙승을 거뒀다. 일본 국민이 자민당 이외의 정당에 정권을 맡길 의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번민하던 무렵, 나는 풀브라이트 유학생 일본 동창회 강연회에 참석했다. 강연 뒤 토론회에서 일본 지식인 계층의 현상 인식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유학을 다녀온 뒤 경제계에서 활동하는 신사들은 ‘아베노믹스’를 통해 경기회복을 하는 게 일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중국의 위협이 강해지는 지금 방위정책을 강화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경제 정책을 추진해 중국에 대항하는 정권이 좋은 정권이라고 여기고, 그 밖의 정치적 가치는 중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이런 반지성주의 정치를 용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학 뒤 일본의 조직에 상존하는 성차별과 싸워온 여성은 자유민주주의로부터의 일탈과 전후 평화노선의 전환을 우려하고 있었다.
성별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일반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정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경제 정책을 중시할까, 민주주의의 원칙 자체를 중시할까라는 차이가 성별과 우연히 겹쳐진 것일 게다. 결국 일본의 정치에 가장 영향력을 갖는 이들은 경기가 좋다면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해도 좋다는 남성들이다. 그렇다면 경제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한 아베 정권은 안정을 유지한다는 게 된다. 이후 아베 정권은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이 장래에 얼마나 큰 비용을 국민에게 끼치게 될지와 관계없이.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