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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과 논박 제 16장 사회과학에서 예측과 예언

이윤진이카루스 2010. 8. 2. 09:34

      16

사회과학에서 예측과

예언

 

1

내 연설의 주제는 ‘사회과학에서의 예측과 예언’이다. 나의 의도는, 역사적 예언을 제의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과제라는 것과 우리가 정치를 이성적 방식으로 실행하기를 원한다면 역사적 예언이 필요하다는 교설을 비판하는 것이다. 나는 이 교설을 ‘역사주의(historicism)’이라고 부르겠다. 역사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보통 역사주의가 매우 새롭고 진보적이며 혁명적이고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확신한다할지라도 나는 역사주의를 고대 미신의 잔재로 간주한다.

역사주의의 원리들은 - 역사적 예언들을 제시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과제라는 것과, 이 역사적 예언들이 이성적 이론에게 필요하다는 것 - 오늘날 화제인데 그 이유는 그 원리들이 자체를 ‘과학적 사회주의’ 즉,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는 저 철학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측과 예언에 대한 나의 분석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방법에 대한 비판으로서 기술(記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나의 분석은 마르크스주의로 알려진 역사주의의 경제적 변종에만 국한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나의 분석이 일반적인 역사주의적 교설에 대한 비판을

 

암스테르담에서 1948년에 열린 10차 국제 철학회의의 본회의에서 행한 연설이며 그 회의의 총서 1에 발표됨; 그리고 P. 가디너(Gardiner)가 1959년에 편집한 역사이론들(Theories of History)에 수록됨.

 

겨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공격의 나의

주요 대상이거나 유일한 대상인양 말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까닭은 내가 ‘역사주의’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주의를 은밀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마르크스주의를 언급할 때마다 나는 역사와 관련된 몇 가지 다른 이론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한다면 나는 기쁘리라; 그 까닭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가 마르크스의 견해와 매우 달랐던 고대와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에 의하여 유효하다고 믿어졌던 특정 역사적 방법을 나는 비판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자로서 나는 나의 과제를 자유주의적인 정신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겠다. 나는 자유롭게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할 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것 몇 가지를 옹호하겠다; 그리고 나는 자유롭게 마르크스주의 교설들을 철저히 단순화하겠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공감하는 한 가지 요점은, 우리 시대의 사회 문제들이 시급하다는 것과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데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세상이 변하도록 일조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 자세에 많이 공감하고, 현재의 모임이 ‘인간과 사회’라는 주제를 선택한 것은 이 문제들을 논의할 필요성이 넓게 인정됨을 보여준다. 인류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극단적인 위험은 - 의심할 바 없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위험 - 철학자들에 의하여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 다만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더 이상 바라보기에는 문제들 너무 시급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즉시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 철학자로서 - 조금이라도 공헌을 할 수 있다면, 당시 아무리 시급하다 할지라도 틀림없이 우리는 미리 만들어진 해결책들 맹목적으로 수용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철학자로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에 그리고 다양한 집단이 옹호하는 해결책에 관련된 이성적 비판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다. 더 구체적으로 내가 철학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방법들에 대한 비판자의 무기로 무장을 하고 문제들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 내가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II

서문을 통하여 내가 왜 이 특정 주제를 선택했는지를 말할 것이다. 나는 이성주의자이고, 내가 이 말로써 의미하는 것은 내가 토론과 논증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나는 또한 사회 분야에서 출현하는 문제들에 과학을 적용하는 바람직함뿐 아니라 가능성 또한 신뢰한다. 그러나 내가 사회과학을 신뢰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이비-사회과학을 걱정스럽게 바라볼 수 있을 따름이다.

나의 동료-이성주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상당히 큰 숫자의 탁월한 물리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마르크스의 교설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다음 것들에 의하여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된다: (a)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이다, (b) 마르크스주의는 진보적이다, 그리고 (c) 마르크스주의는 자연과학이 실행하는 예언의 방법들을 채택한다. 물론 모든 것은 이 세 번째 주장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주장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과,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하는 종류의 예언들이 현대 물리학의 예언들보다는 구약의 예언들과 논리적 특성에서 더 닮았다는 것을 밝히려고 노력할 것이다.

 

III

소위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이 지닌 역사적 방법에 대하여 간단하게 서술하고 비판을 함으로써 나는 시작하겠다. 나는 문제들을 지나치게 단순화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나의 지나친 단순화는 결정적인 요점들에 초점을 맞추는 목적에 부합할 것이다.

역사주의적 방법의, 그리고 더욱 특별히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개념들은 이런 것들로 보인다:

(a) 우리가 일식(日蝕)을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왜 혁명을 예언할 수 없는가? 1780년의 사회과학자가 옛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사들이 천문학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것의 절반만큼 사회에 대하여 알고 있었더라면, 그는 프랑스 혁명을 예언할 수 있었을 텐데.

일식을 예언하는 것이 가능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혁명을 예언하는 일이 틀림없이 가능하다는 근본적인 생각은 사회과학의 과제에 대하여 다음 견해를 낳는다:

(b) 사회과학의 과제는 - 예언과, 그리고 더욱 특별히 역사적 예언, 다시 말해서, 인류의 사회적 및 정치적 발전에 관한 예언들 - 근본적으로 자연과학의 과제와 동일하다.

(c) 이 예언들이 나오자마자, 정치학의 과제가 결정될 수 있다. 그 까닭은 정치학의 과제는 임박한 것으로서 예언된 정치적 발전들과 불가피하게 연결된 ‘산고(産苦: birthpangs)’를 (마르크스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생각들을, 특히 사회혁명에 대한 예언과 같은 역사적 예언을 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과제라고 주장하는 생각을 나는 사회과학에 관한 역사주의적 교설이라고 부르겠다. 임박한 정치적 발전의 산고(産苦)를 줄이는 것이 정치학의 과제라는 생각을 나는 정치학에 관한 역사주의적 교설이라고 부르겠다. 이 교설 양쪽 모두는 역사주의로 - 인류의 이야기에는 계획이 있어서, 우리가 그 계획을 밝히는 데에 성공한다면 우리가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쥘 것이라는 견해 - 불릴 더 넓은 철학적 도식의 부분들로 간주될 것이다.

 

IV

나는 사회과학과 정치학의 과제와 관련된 두 가지 역사주의적 교설을 짧게 개괄했다. 나는 이 교설들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서 기술(記述)했다. 반대로 그 교설들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설들에 속한다. 마르크스 자신의 시대에 그 교설들은, 헤겔로부터 그 교설을 승계한 마르크스 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콩트(Comte)로부터 그 교설들을 승계한 존 스튜아트 밀(John Stuart Mill)에 의하여서도 기술(記述)된 형태로 정확하게 지켜졌다. 그리고 고대에는 그 교설들이 플라톤에 의하여, 그리고 플라톤 이전에는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헤시오드(Hesiod)에 의하여 지켜졌다. 그 교설들은 동방에서 시작된 듯이 보인다; 그리고 정말로 선택된 민족이라는 유태인들의 생각은 전형적인 역사주의적 개념이다 - 역사에는 그 작성자가 야훼(Jahwe)인 계획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계획은 예언자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것. 이 생각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들 중 하나를 - 예언의 꿈, 마래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서 우리의 정책을 그것에 따라서 조정함으로써 우리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생각.

일식에 대한 그리고 행성들의 움직임에 대한 예언들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이 오래된 생각이 유지되었다. 역사주의적 교설과 천문학적 지식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점성술에 관한 아이디어와 관행에서 분명하게 밝혀진다.

이 역사주의적 요점들에는, 물론, 사회과학의 과제에 관한 역사주의적 교설이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와는 관련성은 없다. 이 문제는 사회과학의 방법론에 속한다.

 

V

역사적 발전을 예언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과제라고 가르치는 역사주의적 교설은, 내가 믿기에, 옹호될 수 없다.

의심할 바 없이 모든 이론과학들은 예언을 하는 과학이다. 의심할 바 없이 이론적인 사회과학들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정한다고 - 역사주의자들이 믿는 바와 같이 - 사회과학의 과제가 역사적 예언임을 의미하게 되는가?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이 인상은 내가 한편으로 ‘과학적 예언’으로 다른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역사적 예언들’로 부를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구분하자마자 사라진다. 역사주의는 이 중요한 구분을 하는 데에 실패한다.

과학에서 평범한 예언들은 조건적이다. 그 예언들은 어떤 변화가 (가령 주전자 안의 물 온도의) 다른 변화들에 (가령, 물이 끓는 것) 의하여 동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혹은 사회과학으로부터 간단한 보기를 들면: 특정 물리적 상황에서 보일러가 폭발할 것이라고 우리가 물리학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바와 꼭 마찬가지로, 생필품 부족과 가격통제 및 가령 효율적인 처벌 체계 결여와 같은 특정 사회적 상황에서 암시장이 번창할 것임을 우리는 경제학자로부터 배울 수 있다.

무조건적인 과학적 예언들은 때때로, 문제의 상황이 이룩된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서술들과 함께, 이 조건적 과학적 예언들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 (이 전제들로부터 우리는 긍정식[modus ponens]에 의하여 무조건적인 예언을 획득할 수 있다.) 내과의사가 성홍열을 진단했다면, 자신의 과학의 조건적 예언의 도움을 받아 환자에게 어떤 종류의 붉은 반점이 생길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예언을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론과학에서나 - 다시 말해서 - 과학적인 조건적 예언에서 그런 정당화 없이 무조건적인 예언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예언들은, 예를 들어, 꿈에 기초할 것이고 - 그래서 우연에 의해서 심지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나의 주장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역사주의자가, 사실상, 자신의 역사적 예측들을 조건적인 과학적 예언들로부터 도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기서 첫 번째 주장이 도출된다) 장기적 예측들은 충분히-격리되고, 정적(靜的: stationary)이며, 반복적인 것으로서 기술(記述)될 수 있는 체계들에 적용된다는 조건으로만 과학적인 조건적 예언들로부터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주의자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체계들은 자연에서 극히 드물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분명히 그 체계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이 요점을 좀 더 자세하게 전개하고 싶다. 일식 예언들과, 정말로 계절의 규칙성에 근거한 예측들은 (아마도 인간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이해된 가장 오래된 자연 법칙들) 우리의 태양계가 정적(靜的: stationary)이고 주기적인 체계이라는 이유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태양계가 다른 기계적 체계들로부터 엄청난 빈 공간의 영역에 의하여 떨어져 있어서 그러므로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그렇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그런 주기적 체계들에 대한 분석은 자연과학의 전형이 아니다. 이 주기적 체계들은 과학적 예언이 특수하게 인상적이 되는 특별한 경우들이다 - 그러나 그것뿐이다. 이매우 예외적인 경우인 태양계를 별도로 하고,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체계는 생물학 분야에서 특별히 알려져 있다. 유기체의 생명주기는 반(半)-정적(靜的: stationary)이거나 매우 느리게 변화하는 사건들의 생물학적 연쇄의 부분이다. 유기체의 생명주기에 대한 과학적 예언들은, 느린 진화적 변화들로부터 우리가 도출하는 한,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문제의 생물학적 체계를 정적(靜的: stationary)으로서 간주하는 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기적인 무조건적 예언이라는 방법을 인간의 역사에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관한 이것들과 같은 보기들에서는 어떤 근거도 발견될 수 없다. 사회는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은, 대체로, 반복적이지 않다. 정확하게, 이 발전이 반복적인 한, 우리는 아마도 특정 예언들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종교들이나 독재체제가 발흥하는 양상에는 어느 정도의 반복성이 틀림없이 있다; 그래서 역사학도는 그런 발전 상황들을 초기 사례들과 비교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그 발전 상황들이 출현하는 조건들을 연구함으로써 제한적인 정도까지 자신이 그런 발전 상황들을 예견할 수 있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조건적 예언 방법을 적용해도 우리는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한다. 그 까닭은 역사적 발전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들이 반복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건들은 변하고 있고, 심지어 이전에 발생한 어떤 것과 매우 다른 상황이 (예를 들어, 새로운 과학적 발견의 결과로) 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식을 예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혁명을 예언할 수 있다는 기대에 대하여 유효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고찰은 인간의 진화에 관하여서 뿐 아니라 생명체 일반의 진화에 관해서도 유효하다. 진화의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고, 동식물이 변화한다는, 즉 더 정확하게 동식물이 변화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존재한다. 진화의 방향과 특징을 결정하는 법칙이라는 아이디어는, 전통적으로 하느님에게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기능들을 ‘자연법칙’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려는 일반적인 경향으로 출현하는, 19세기의 전형적인 오류이다.

 

VI

사회과학은 미래의 역사적 발전을 예측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인하여 몇몇 현대 저술가들은 이성에 절망하여, 정치적 비이성주의를 옹호하게 되었다. 예언능력을 실용성과 동일시하여 그들은 사회과학을 무용한 것으로서 비난한다. 역사적 발전을 예보하는 가능성을 분석하려는 시도에서 이 현대의 비이성주의자들 중 한 명은 이렇게 쓴다: ‘자연과학을 괴롭히는 불확실성이라는 동일한 요소가 사회과학에 영향을 미치는데, 더 많이 영향을 미칠 따름이다. 그 요소의 수량적 확산 때문에, 이론구조뿐 아니라 실천적 실용성에 또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아직 이성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평범한 예언과 역사적 예언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즉 역사주의자들만 - 실망한 역사주의자들 - 그런 자포자기적 결론을 내리기 쉽다. 물리과학들의 유용성은 일식을 예언하는 데에 놓여있지 않다; 그리고 유사하게 사회과학의 유용성도 역사적이나 정치적 발전상황을 예측하는 능력에 달려있지 않다. 비판을 하지 않는 역사주의자만이, 다시 말해서, 당연한 문제로서 사회과학의 과제라는 교설을 믿는 사람은 사회과학이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의하여 이성에 대한 절망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리고 몇 명은 사실상 이성을 증오하는 데까지 내몰렸다.

 

VII

그렇다면 사회과학의 임무는 무엇이고, 어떻게 사회과학은 유용하게 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답변하기 위하여, 나는 먼저 우리가 사회과학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기 전에 제거되어야 하는 사회에 대한 두 가지 고지식한 이론을 간단하게 언급할 것이다.

첫 번째는 사회과학이 단체, 민족, 계급, 협회, 문명, 기타 등등과 같은 사회적 통합체들의 행태를 연구한다는 이론이다. 이 사회적 통합체들은 생물학이 동식물을 연구하는 동일한 방식으로 사회과학이 연구하는 경험적 대상물로서 간주된다.

이 견해는 고지식한 것으로서 배척되어야 한다. 이 견해는 소위 이 사회적 통합체들이 경험적 대상물이라기보다는 대체로 대중적 사회 이론의 공준(公準: postulates)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간과한다; 그리고 틀림없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무리와 같은 그런 경험적 대상물들이 있는 반면, ‘중산층’과 같은 이름들이 그런 경험적 단체들을 대표한다는 것은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그 이름들이 대표하는 것은 존재가 이론적 상정(想定)에 의존하는 일종의 관념적 대상물이다. 따라서 사회적 통합체들 즉, 집합체의 경험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고지식한 집단주의(naïve collectivism)로서 기술(記述)될 것인데, 집합체를 포함하여 사회현상들은 개인과 개인의 행동 및 관계로써 분석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의하여 갈음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요구는 또 다른 잘못된 견해를 쉽게 초래할 것인데, 배척될 두 가지 견해들 중에서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는 사회 음모론(conspiracy theory of society)으로서 기술(記述)될 것이다. 그 이론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 사람들이 대체로 싫어하는 전쟁, 실업, 빈곤, 물품부족과 같은 것을 포함하여 - 어떤 강력한 개인들이나 무리들이 직접 의도한 결과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다소 원시적 종류의 미신이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을지라도, 매우 널리 퍼져있다. 그 견해는 역사주의보다 (역사주의는 음모론의 부산물이라고 심지어 일컬어질 것이다) 더 오래 되었다; 그리고 그 견해의 현대적 형태로, 그 견해는 종교적 미신의 세속화에 따른 전형적인 결과이다. 그 음모가 트로이 전쟁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호머 작품의 신(神)들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다. 그러나 호머의 작품에 나오는 올림푸스 산의 신(神)들의 위치는 시온의 지도 장로들(the Learned Elders of Zion)에 의하여, 혹은 독점가들이나 자본가들에 의하여, 혹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하여 이제 점령되었다.

사회 음모론에 대하여 나는, 물론, 음모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것을 주장한다. 첫째로 음모는 그다지 흔치 않고, 사회생활의 특징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음모가 중단될 것이라고 상정(想定)하면서, 항상 우리를 마주하고 있던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우리는 아직도 직시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음모란 거의 성공하지 못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음모로 이룩된 결과들은, 대체로, 음모로 겨냥한 결과와 크게 다르다. (나치의 음모를 생각하라.)

 

VIII

음모로 성취된 결과들은 왜 겨냥한 목표들과 대체로 크게 다른가? 음모이건 음모가 아니건 이것이 보통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론과학의 주요 과제를 언명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론과학의 과제는 의도적인 인간 행동이 초래하는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파장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나는 간단한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 사람이 집을 사려고 한다면, 그는 그 지역의 집값을 올리려고 하지 않는다고 우리는 안전하게 상정(想定)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시장에 구매자로서 출현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시장가격을 인상하는 경향을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말이 판매자에게도 유효하다. 또는 매우 다른 분야에서 사례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보험에 들기로 결심하면,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보험주에 투자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만들 것이다.

우리 행동의 모든 결과가 의도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명백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사회 음모론은 모든 사건들, 심지어 처음 보기에 누구에 의해서 의도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건들조차도 이 결과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 의도한 결과라는 주장에 상당하기 때문에, 사회 음모론은 사실일 리가 없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 칼 마르크스 자신이, 사회과학을 위하여, 이 의도되지 않은 결과들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사람들에 속한다는 것이 언급되어야 한다. 자신의 더 성숙한 말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제도라는 그물에 우리 모두가 잡혀있다고 말한다. 자본가는 악마적인 음모가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당한다; 자본가는 무산자가 상황에 책임이 없는 것처럼 역시 상황에 책임이 없다.

마르크스의 이 견해는 포기되었고 - 아마도 정치 선전적 이유들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이 견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 통속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음모론이 그 자리를 대부분 차지했다. 그것은 - 마르크스에서 괴벨스(Goebbels)에게로의 타락 - 타락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상에서 천국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음모론 채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자신들이 천국을 만들어내는 데에 대한 유일한 핑계는, 지옥에 기득(旣得: vested)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악마의 악의(惡意)이다.

 

IX

우리의 행동이 낳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발견하는 것이 이론 사회과학의 과제라는 견해로 인하여 그 과학은 실험적 자연과학에 매우 유사하게 된다. 그 유사함은 여기서 상세하게 전개될 수는 없지만, 두 가지 과학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서술하는 실용적인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규칙들을 언명할 수 있게 된다고 언급될 것이다.

열역학의 두 번째 법칙은, ‘당신은 100%의 효율을 지닌 기계를 만들 수 없다’는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경고로서 표현될 수 있다. 사회과학의 유사한 규칙은, ‘생산성을 높이지 않고 당신은 노동인구의 실질 임금을 높일 수 없다’와 ‘당신은 실질임금을 균등화하면서 동시에 생산성을 높일 수는 없다’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금도 수용되지 않는, 이 분야에서 장래성이 있는 가설의 보기는 - 또는 다시 말해서, 여전히 열려져 있는 문제는 - 다음과 같다: ‘당신은 인플레이션 없이 완전고용을 이룰 수 없다.’ 이 보기들은 사회과학이 실제적으로 중요한 정도를 보여줄 것이다. 사회과학으로 인하여 우리가 역사적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과학은 정치 분야에서 무엇이 실행될 수 있고 무엇이 실행될 수 없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역사주의적 교설이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지만, 이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과학이나 이성에 대한 믿음을 잃지는 않는다. 반대로 그 사실이 사회생활에서 과학의 역할에 대한 보다 명확한 통찰을 초래한다. 그것의 실제적 역할은, 가능한 행동들이 낳는 더 동떨어진 결과들을 이해하는 데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행동들을 더 현명하게 선택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겸손한 역할이다.

 

X

역사주의적 교설을 제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는 자체의 과학적 주장에 관한 한 철저히 파괴된다. 그러나 역사주의적 교설을 제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더 전문적이고 정치적인 주장들은 - 우리의 사회체제를 완전히 개조하는 사회혁명만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사회 환경을 만든다는 주장 -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의 인류애적인 목표들이 지닌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겠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이 목표들에는 매우 많은 것들이 있음을 나는 발견한다. 고통과 폭력을 줄이려는, 그리고 자유를 증대시키려는 희망은 내가 믿기에 마르크스와 많은 그의 추종자들을 고무시켰던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들 대부분을 고무시키는 희망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목표들이 혁명적인 방법들에 의하여 실현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반대로 혁명적인 방법들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을 따름이라고 - 그 방법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 나는 확신한다; 혁명적인 방법들이 점점 더 폭력을 많이 초래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 방법들이 자유를 틀림없이 파괴한다고.

혁명은 항상 사회의 제도적이고 전통적인 틀을 파괴한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 이것은 분명해진다. 그리하여 혁명은 자체가 그 실현을 위해서 수행되는 바로 그 가치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정말로 몇 가지 가치는 그 가치들을 지지하는 사회적 전통이 존재하는 한에서 사회적 중요성을 지닐 수 있다. 이것은 다른 가치들에서만큼 혁명의 목표에서도 참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회를 혁명화 하여 사회의 전통들을 전복하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이 원한다고 그리고 여러분이 원할 때 이것을 멈출 수 없다. 혁명 와중에는 좋은 의도를 지닌 혁명가들이 내세운 목표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의문시 된다; 혁명이 파괴하는 사회로부터 성장해서, 필수적으로 그 사회의 한 부분이었던 목표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것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화포(畵布: canvas)를 철저히 청소하는 것이 - 사회적 백지상태를 만들어 그 백지 위에 새로운 사회제도를 그림으로써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 - 자신들의 가장 큰 소망이라고.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전통을 파괴하자마자, 문명이 그 전통과 함께 사라짐을 발견한다할지라도 놀라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아담과 이브가 시작했던 위치로 인류가 돌아갔음을 - 혹은 성서적 언어가 아닌 것을 사용하여 그들이 동물들로 돌아갔음을 - 발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혁명적 진보주의자들이 할 수 있을 유일한 일은 인간 진보의 느린 과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 (그래서 아마도 또 다른 자본주의적 기간에 수천 년이 걸려서 도달하는데, 그로 인하여 그들은 또 다른 싹쓸이 혁명을 일으켜서 다시 동물들로 돌아가고, 기타 등등 반복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전통적 가치들이 파괴된 사회가 스스로 더 나은 사회가 틀림없이 된다는 합당한 근거가 없다 (당신이 정치적 기적을 믿거나, 혹은 악마 같은 자본주의자들의 음모가 분쇄되자마자 사회는 자연적으로 아름답고 훌륭하게 되는 경향일 있을 것이고 희망하지 않는다면).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것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 견해, 다시 말해서, 사회 혁명이 더 나은 세상을 낳을 것이라는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주의적 상정(想定)에 근거하여서만 이해 가능하다. 역사적 예언에 근거하여 사회혁명의 결과가 분명히 무엇이 되는지를 여러분이 안다면,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희망하는 모든 것임을 여러분이 안다면, 그렇다면, 그 경우에만 여러분은 그 혁명을 그 혁명이 가져오는 밝혀지지 않은 고통과 함께 밝혀지지 않은 행복이라는 목표에 대한 수단으로서 고찰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주의적 교설을 제거함과 동시에 혁명 이론은 완전히 옹호될 수 없게 된다.

우리들에게서 자본주의적 음모를 제거하는 것,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사회개혁에 대한 반대행위를 제거하는 것이 혁명의 과제일 것이라는 견해는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그 견해는, 우리가 잠시 그런 음모가 존재한다고 상정(想定)할지라도, 옹호될 수 없다. 그 까닭은 혁명이 옛 주인들을 새로운 주인들로써 갈음하기 쉽고, 누가 새로운 주인들이 더 나은 주인이 될 것이라고 누가 보증하는가? 이기 때문이다. 혁명이론은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모습을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훌륭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훌륭한 제도들이라는 것 - 간과한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사람도 권력에 의하여 부패할 것이다; 그러나 피통치자들로 하여금 통치자에 대하여 얼마간의 효과적인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들로 인하여 심지어 나쁜 통치자들도 피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혹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여 우리는 훌륭한 통치자들을 선택하기를 원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우리가 그런 통치자를 만나지 못할 것임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이것이 심지어 나쁜 통치자들로 하여금 너무 많은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막는 제도들을 고안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다.

오직 두 가지 종류의 정부제도만 있는데, 피를 흘리지 않고 정부를 바꿀 수 있도록 마련하는 정부제도들과, 그렇지 않는 정부제도들이다. 그러나 정부가 유혈사태 없이 교체될 수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그 정부는 전혀 교체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말에 관하여,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참되거나 본질적인 의미와 같은 그런 사이비-문제들에 관하여 말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두 가지 종류의 정부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떤 명칭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혈사태 없이도 교체될 수 있는 정부 형태를 ‘민주주의’로, 다른 정부를 ‘독재체제’로 부르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은 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두 가지 형태의 제도들에 대한 중요한 구분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도로써가 아니라 계급으로써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계급은 민족이 그러한 것처럼 통치하는 적이 없다. 통치자들은 항상 특정 인간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속하는 계급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통치자이면 그들은 통치계급에 속한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도를 통하여 사색하지 않는다; 그들은 특정 개성에, 혹은 아마도 특정 개인들이 예전에 무산자들이었다는 사실에 - 계급과 계급 충성도에 관한 최고의 중요성을 그들이 믿는 결과 - 자신들의 믿음을 둔다. 반대로 이성주의자들은 인간들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농후하다. 이것이 주요 차이점이다.

 

XI

그러나 통치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역사주의자들과는 반대로 나는 이 질문이 조금도 헛되지 않다고 믿는다; 그것은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 까닭은 민주주의에서 통치자들은 여론이 그들이 하기를 원하는 것을 하라고, 정권교체로 위협하면서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은 모든 사람들, 특히 철학자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철학자들의 생각은 흔히 미래의 전개상황에 영향을 미쳤다 - 확실히 상당한 시차를 두고. 영국의 사회 정책은 지금 벤담(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정책인데 그는 사회 정책의 목표를 ‘전체 노동인구에게 높은 임금으로 완전고용을 확보하는 것’이라는 목표로서 요약하였다.

철학자들은 과거 50년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사회 정책의 합당한 목표를 계속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윤리나 최대의 선(善) 기타 등등의 ‘본질’을 논의하는 데에 자신들을 국한시키는 대신에, 법 앞에 평등이라는 어떤 원칙이 없이는 정치적 자유가 없다는 사실에 의해서 제기되는 것과 같은 그런 근본적이고 어려운 윤리적이자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그들은 생각해야 한다; 절대자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칸트와 함께 절대자유 대신에 사회생활에서 불가피한 결과들인 자유의 제한과 관련된 평등을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특히 경제적 의미에서 평등 추구는, 본질적으로 바람직하다 할지라도, 자유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유사하게,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최대의 행복이라는 원칙은 쉽게 인자한 독재체제를 위한 핑계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우리는 그 원칙을 더 겸손하고 더 현실적인 원칙으로써 - 행복의 증대는 주로 사사로운 자발성에 맡겨져야 하는 반면, 피할 수 있는 고통에 대한 싸움이 공공정책의 인정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 - 갈음해야 한다는 제안을 그들은 고찰해야 한다.

이 수정된 공리주의는 내가 믿기에 사회개혁에 관한 의견일치에 훨씬 더 쉽게 도달한다. 그 까닭은 행복에 대한 새로운 방식들은 이론적이어서 비현실적인 것들인데, 그것들에 관하여 의견을 형성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은 지금 여기에 우리들과 함께 있고, 미래에도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이것을 안다. 멀고 아마도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매우 큰 선(善)을 위하여 여러 세대를 희생시키는 대신에,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 사회악과 하나하나 지금 여기서 싸우는 일이 현명하다는 단순한 생각을 여론에 각인시키는 일을 우리의 과제로 만들자.

 

XII

역사주의적 혁명은, 대부분의 지적(知的) 혁명들처럼, 근본적으로 유신론적(有神論的: theistic)이자 권위적인 유럽 사상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에 대한 초기 자연주의적 혁명은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자연’이라는 이름으로써 갈음하였다. 거의 모든 다른 것들이 변하지 않고 남겨졌다. 하느님에 대한 과학인 신학(神學)은 자연과학에 의하여 갈음되었다; 하느님의 율법은 자연법칙에 의하여 갈음되었다. 하느님의 의지와 권능은 자연의 의지와 권능에 의해서 갈음되었다 (자연의 힘); 그리고 나중에 하느님의 의도와 심판은 자연선택에 의하여 갈음되었다. 신학적 결정론은 자연주의적 결정론에 의하여 갈음되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전지전능은 자연의 전능과 과학의 전지(全知: omniscience)에 의하여 갈음되었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자연이라는 여신(女神)을 차례에 따라 역사라는 여신(女神)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법칙을 얻는다; 역사의 권력과 힘과, 경향과 의도와 계획; 그리고 역사적 결정론의 전지전능. 하느님에 대하여 죄를 지은 자들은 ‘역사의 행진에 헛되이 저항하는 범죄자들’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역사가 (‘민족’이나 ‘계급’의 역사) 우리를 심판하게 될 것임을 배운다.

내가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것은 역사를 이렇게 신격화하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 - 자연 - 역사라는 순서와, 그에 상응하는 세속화된 종교들의 순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든 기준은 결국 역사적 사실들이라는 (하느님에게서, 기준과 사실은 하나이다) 역사주의적 발견은 사실들에 대한 - 인간의 삶과 행동의 현존하거나 실제적인 사실들에 대한 (유감스럽게도 오직 주장되는 사실들을 포함하여) - 신격화를, 그리하여 민족과 계급, 실존주의과 실증주의, 그리고 행동주의라는 세속화된 종교를 낳는다. 인간의 행동에는 언어적 행동이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에 관한 사실들의 신격화로 훨씬 더 멀리 이끌려간다. 이 사실들의 (혹은 주장되는 사실들) 논리적이자 도덕적인 권위에 대한 호소는 우리 시대 철학의 궁극적 지혜인 것으로 보이리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칼 포퍼 -

 

 

                  16

PREDICTION AND PROPHECY IN THE SOCIAL SCIENCES

1

THE TOPIC of my address is 'Prediction and Prophecy in the Social Sciences'. My intention is to criticize the doctrine that it is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to propound historical prophecies, and that historical prophecies are needed if we wish to conduct politics in a rational way. I shall call this doctrine 'historicism'. I consider historicism to be the relic of an ancient superstition, even though the people who believe in it are usually convinced that it is a very new, progressive, revolutionary, and scientific theory.

The tenets of historicism - that it is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to propound historical prophecies, and that these historical prophecies are needed for any rational theory - are topical today because they form a very important part of that philosophy which likes to call itself by the name of 'Scientific Socialism' or 'Marxism'. My analysis of the role of prediction and prophecy could therefore be described as a criticism of the historical method of Marxism. But in fact it does not confine itself to that economic variant of historicism which is known as Marxism, for it aims at criticizing the historicist doctrine in general. Nevertheless, I have decided to speak as if

 

An address delivered to the Plenary Session of the 10th International Congress of Philosophy,

Amsterdam 1948, and published in the Library of the 10th International Congress of Philosophy, 1,

Amsterdam, 1948; and in Theories of History, ed. P. Gardiner, 1959.

 

Marxism were my main or my only object of attack, since I wish to

avoid the accusation that I am attacking Marxism surreptitiously under

the name of 'historicism'. But I should be glad if you would remember

that whenever I mention Marxism, I always have in mind a number of

other philosophies of history also; for I am trying to criticize a

certain historical method which has been believed to be valid by

many philosophers, ancient and modern, whose political views were

very different from those of Marx.

As a critic of Marxism, I shall try to interpret my task in a liberal spirit. I shall feel free not only to criticize Marxism but also to defend certain of its contentions; and I shall feel free to simplify its doctrines radically.

One of the points on which I feel sympathy with Marxists is their insistence that the social problems of our time are urgent, and that philosophers ought to face this issue; that we should not be content to interpret the world but should help to change it. I am very much in sympathy with this attitude, and the choice by the present assembly of the theme 'Man and Society', shows that the need to discuss these problems is widely recognized. The mortal danger into which mankind has floundered - no doubt the gravest danger in its history - must not be ignored by philosophers.

But what kind of contribution can philosophers make - not just as men, not just as citizens, but as philosophers? Some Marxists insist that the problems are too urgent for further contemplation, and that we ought to take sides at once. But if - as philosophers - we can make any contribution at all then, surely, we must refuse to be rushed into blindly accepting ready-made solutions, however great the urgency of the hour; as philosophers we can do no better than bring rational criticism to bear on the problems that face us, and on the solutions advocated by the various parties. To be more specific, I believe that the best I can do as philosopher is to approach the problems armed with the weapons of a critic of methods. This is what I propose to do.

II

I may, by way of introduction, say why I have chosen this particular subject. I am a rationalist, and by this I mean that I believe in discussion, and argument. I also believe in the possibility as well as the desirability of applying science to problems arising in the social field. But believing as I do in social science, I can only look with apprehension upon social pseudo-science.

Many of my fellow-rationalists are Marxists; in England, for example, a considerable number of excellent physicists and biologists emphasize their allegiance to the Marxist doctrine. They are attracted to Marxism by its claims: (a) that it is a science, (b) that it is progressive, and (c) that it adopts the methods of prediction which the natural sciences practise. Of course, everything depends upon this third claim. I shall therefore try to show that this claim is not justified, and that the kind of prophesies which Marxism offers are in their logical character more akin to those of the Old Testament than to those of modern physics.

III

I shall begin with a brief statement and criticism of the historical method of the alleged science of Marxism. I shall have to oversimplify matters; this is unavoidable. But my oversimplifications may serve the purpose of bringing the decisive points into focus.

The central ideas of the historicist method, and more especially of Marxism seem to these:

(a) It is a fact that we can predict solar eclipses with a high degree of precision, and for a long time ahead. Why should we not be able to predict revolutions? Had a social scientist in 1780 known half as much about society as the old Babylonian astrologers knew about astronomy, then he should have been able to predict the French Revolution.

The fundamental idea that it should be possible to predict revolutions just as it is possible to predict solar eclipses give rise to the following view of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b)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is fundamentally the same as that of the natural sciences - to make predictions, and, more especially, historical predictions, that is to say, predictions about the social and political development of mankind.

(c) once these predictions have been made, the task of politics can be determined. For it is to lessen the 'birthpangs' (as Marx calls them) unavoidably connected with the political developments which have been predicted as impending.

These simple ideas, especially the one claiming that it is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to make historical predictions, such as predictions of social revolutions, I shall call the historicist doctrine of the social sciences. The idea that it is the task of politics to lessen the birthpangs of impending political developments I shall call the historicist doctrine of politics. Both these doctrines may be considered as parts of a wider philosophical scheme which may be called historicism - the view that the story of mankind has a plot, and that if we an succeed in unravelling this plot, we shall hold the key to the future.

IV

I have briefly outlined two historicist doctrines concerning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and of politics. I have described these doctrines as Marxist. But they are not peculiar to Marxism. on the contrary, they are among the oldest doctrines in the world. In Marx's own time they were held, in exactly the form described, not only by Marx who inherited them from Hegel, but by John Stuart Mill who inherited them from Comte. And they were held in ancient times by Plato, and before him by Heraclitus and Hesiod. They seem to be of oriental origin; and indeed, the Jewish idea of the chosen people is a typical historicist idea - that history has a plot whose author is Jahwe, and that the plot can be partly unravelled by the prophets. The ideas express one of the oldest dreams of mankind - the dream of prophecy, the idea that we can know what the future has in store for us, and that we can profit from such knowledge by adjusting our policy to it.

This age-old idea was sustained by the fact that prophecies of eclipses and of the movements of the planets were successful.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historicist doctrine and astronomical knowledge is clearly exhibited in the ideas and practices of astrology.

These historical points have, of course, no bearing on the question whether or not the historicist doctrine concerning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is tenable. This question belongs to the methodology of the social sciences.

V

The historicist doctrine which teaches that it is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to predict historical development is, I believe, untenable.

Admittedly all theoretical sciences are predicting sciences. Admittedly there are social sciences which are theoretical. But do these admissions imply - as the historicists believe - that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is historical prophecy? It looks like it: but this impression disappears once we make a clear distinction between what I shall call 'scientific prediction' on the one side and 'unconditional historical prophecies' on the other. Historicism fails to make this important distinction.

Ordinary predictions in science are conditional. They assert that certain changes (say, of the temperature of water in a kettle) will be accompanied by other changes (say, the boiling of the water). Or to take a simple example from a social science: Just as we can learn from a physicist that under certain physical conditions a boiler will explode, so we can learn from the economist that under certain social conditions, such as shortage of commodities, controlled prices, and, say, the absence of an effective punitive system, a black market will develop.

Unconditional scientific predictions can sometimes be derived from these conditional scientific predictions, together with historical statements which assert that the conditions in question are fulfilled. (From these premises we can obtain the unconditional prediction by the modus ponens.) If a physician has diagnosed scarlet fever then he may, with the help of the conditional predictions of his science, make the unconditional prediction that his patient will develop a rash of a certain kind. But it is possible, of course, to make such unconditional prophecies without any such justification in theoretical science, or - in other words - in scientific conditional predictions. They may be based, for example, on a dream - and by some accident they may even come true.

My contentions are two.

The first is that the historicist does not, as a matter of fact, derive his historical prophecies from conditional scientific predictions. The second (from which the first follows) is that he cannot possibly do so because long-term prophecies can be derived from scientific conditional predictions only if they apply to systems which can be described as well-isolated, stationary, and recurrent. These systems are very rare in nature; and modern society is surely not one of them.

Let me develop this point a little more fully. Eclipse prophecies, and indeed prophecies based on the regularity of the seasons (perhaps the oldest natural laws consciously understood by man) are possible only because our solar system is a stationary and repetitive system; and this is so because of the accident that it is isolated from the influence of other mechanical systems by immense regions of empty space and is therefore relatively free of interference from outside. Contrary to popular belief the analysis of such repetitive systems is not typical of natural science. These repetitive systems are special cases where scientific prediction becomes particularly impressive - but that is all. Apart from this very exceptional case, the solar system, recurrent or cyclic systems are known especially in the field of biology. The life cycles of organisms are part of a semi-stationary or very slowly changing biological chain of events. Scientific predictions about life cycles of organisms can be made in so far as we abstract from the slow evolutionary changes, that is to say, in so far as we treat the biological system in question as stationary.

No basis can therefore be found in examples such as these for the contention that we can apply the method of long-term unconditional prophecy to human history. Society is changing, developing. This development is not, in the main repetitive. True, in so far as it is repetitive, we may perhaps make certain prophecies. For example, there is undoubtedly some repetitiveness in the manner in which new religions arise, or new tyrannies; and a student of history may find that he can foresee such developments to a limited degree by comparing them with earlier instances, i. e. by studying the conditions under which they arise. But this application of the method of conditional prediction does not take us very far. For the most striking aspects of historical development are non-repetitive. Conditions are changing, and situations arise (for example, in consequence of new scientific discoveries) which are very different from anything that even happened before. The fact that we can predict eclipses does not, therefore, provide a valid reason for expecting that we can predict revolutions.

These considerations hold not only for the evolution of man, but also for the evolution of life in general. There exists no law of evolution, only the historical fact that plants and animals change, or more precisely, that they have changed. The idea of a law which determines the direction and the character of evolution is a typical nineteenth-century mistake, arising out of the general tendency to ascribe to the 'Natural Law' the functions traditionally ascribed to God.

VI

The realization that the social sciences cannot prophesy future historical developments has led some modern writers to despair of reason, and to advocate political irrationalism. Identifying predictive power with practical usefulness, they denounce the social sciences as useless. In an attempt to analyse the possibility of forecasting historical developments, one of these modern irrationalists writes: 'The same element of uncertainty from which the natural sciences suffer affects the social sciences, only more so. Because of its quantitative extension, it affects here not only theoretical structure but also practical usefulness.'

But there is no need as yet to despair of reason. only those who do not distinguish between ordinary prediction and historical prophecy, in other words, only historicists - disappointed historicists - are likely to draw such desperate conclusions. The main usefulness of the physical sciences does not lie in the prediction of eclipses; and similarly, the practical usefulness of the social sciences does not depend on their power to prophesy historical or political developments. only an uncritical historicist, that is to say, one who believes in the historicist doctrine of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as a matter of course, will be driven to despair of reason by the realization that the social sciences cannot prophesy: and some have in fact been driven even to hatred of reason.

VII

What then is the task of the social sciences, and how can they be useful?

In order to answer this question, I shall first briefly mention two naïve theories of society which must be disposed of before we can understand the function of the social sciences.

The first is the theory that the social sciences study the behaviour of social wholes, such as groups, nations, classes, societies, civilizations, etc. These social wholes are conceived as the empirical objects which the social sciences study in the same way in which biology studies animals or plants.

This view must be rejected as naïve. It completely overlooks the fact that these so-called social wholes are very largely postulates of popular social theories rather than empirical objects; and that while there are, admittedly, such empirical objects as the crowd of people here assembled, it is quite untrue that names like 'the middle-class' stand for any such empirical groups. What they stand for is a kind of ideal object whose existence depends upon theoretical assumptions. Accordingly, the belief in the empirical existence of social wholes or collectives, which may be described as naïve collectivism, has to be replaced by the demand that social phenomena, including collectives, should be analysed in terms of individuals and their actions and relations.

But this demand may easily give rise to another mistaken view, the second and more important of the two views to be disposed of. It may be described as the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It is the view that whatever happens in society - including things which people as a rule dislike, such as war, unemployment, poverty, shortages - are the results of direct design by some powerful individuals or groups. This view is very widespread, although it is, I have no doubt, a somewhat primitive kind of superstition. It is older than historicism (which may even be said to be a derivative of the conspiracy theory); and in its modern form, it is the typical result of the secularization of religious superstitions. The belief in the Homeric gods whose conspiracies were responsible for the vicissitude of the Trojan War is gone. But the place of the gods on Homer's Olympus is now taken by the Learned Elders of Zion, or by the monopolists, or the capitalists, or the imperialists.

Against the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I do not, of course, assert that conspiracies never happen. But I assert two things. First, they are not very frequent, and do not change the character of social life. Assuming that conspiracies were to cease, we should still be faced with fundamentally the same problems which have always faced us. Secondly, I assert that conspiracies are very rarely successful. The results achieved differ widely, as a rule, from the results aimed at. (Consider the Nazi conspiracy.)

VIII

Why do the results achieved by a conspiracy as a rule differ widely from the results aimed at? Because this is what usually happens in social life, conspiracy or no conspiracy. And this remark gives us an opportunity to formulate the main task of theoretical sciences. It is to trace the unintended social repercussions of intentional human actions. I may give a simple example. If a man wishes urgently to buy a house in a certain district, we can safely assume that he does not wish to raise the market price of houses in that district. But the very fact that he appears on the market as a buyer will tend to raise market prices. And analogous remarks hold for the seller. Or to take an example from a very different field, if a man decides to insure his life, he is unlikely to have the intention of encouraging other people to invest their money in insurance shares. But he will do so nevertheless.

We see here clearly that not all consequences of our actions are intended consequences; and accordingly, that the conspiracy theory of society cannot be true because it amounts to the assertion that all events, even those which at first sight do not seem to be intended by anybody, are the intended results of the actions of people who are interested in these results.

It should be mentioned in this connection that Karl Marx himself was one of the first to emphasize the importance, for the social sciences, of these unintended consequences. In his more mature utterances, he says that we are all caught in the net of the social system. The capitalist is not a demoniac conspirator, but a man who is forced by circumstances to act as he does; he is no more responsible for the state of affairs than is the proletarian.

This view of Marx's has been abandoned - perhaps for propagandist reasons, perhaps because people did not understand it - and a Vulgar Marxist Conspiracy theory has very largely replaced it. It is a come-down - the come-down from Marx to Goebbels. But it is clear that the adoption of the conspiracy theory can hardly be avoided by those who believe that they know how to make a heaven on earth. The only explanation for their failure to produce this heaven is the malevolence of the devil who has a vested interest in hell.

IX

The view that it is the task of the theoretical social sciences to discover the unintended consequences of our actions bring these sciences very close to the experimental natural sciences. The analogy cannot here be developed in detail, but it may be remarked that both lead us to the formulation of practical technological rules stating what we cannot do.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can be expressed as the technological warning, 'You cannot build a machine which is 100 per cent efficient'. A similar rule of the social sciences would be, 'You cannot, without increasing productivity, raise the real income of the working population' and 'You cannot equalize real incomes and at the same time raise productivity'. An example of a promising hypothesis in this field which is by no means generally accepted - or, in other words, a problem that is still open - is the following: 'You cannot have a full employment policy without inflation.' These examples may show the way in which the social sciences are practically important. They do not allow us to make historical prophecies, but they may give us an idea of what can, and what cannot, be done in the political field.

We have seen that the historicist doctrine is untenable, but this fact does not lead us to lose faith in science or in reason. on the contrary, we now see that it gives rise to a clearer insight into the role of science in social life. Its practical role is the modest one of helping us to understand even the more remote consequences of possible actions, and thus of helping us to choose our actions more wisely.

X

The elimination of the historicist doctrine destroys Marxism completely as far as its scientific pretensions go. But it does not yet destroy the more technical or political claims of Marxism - that only a social revolution, a complete recasting of our social system, can produce social conditions fit for men to live in.

I shall not here discuss the problem of the humanitarian aims of Marxism. I find that there is a very great deal in these aims which I can accept. The hope of reducing misery and violence, and of increasing freedom, is one, I believe, which inspired Marx and many of his followers; it is a hope which inspires most of us.

But I am convinced that these aims cannot be realized by revolutionary methods. on the contrary, I am convinced that revolutionary methods can only make things worse - that they will increase unnecessary suffering; that they will lead to more and more violence; and that they must destroy freedom.

This becomes clear when we realize that a revolution always destroys the institutional and traditional framework of society. It must thereby endanger the very set of values for the realization of which it has been undertaken. Indeed, a set of values can have social significance in so far as there exists a social tradition which upholds them. This is true of the aims of a revolution as much as of any other values.

But if you begin to revolutionize society and to eradicate its traditions, you cannot stop this process if and when you please. In a revolution, everything is questioned, including the aims of the well-meaning revolutionaries; aims which grow from, and which were necessarily a part of, the society which the revolution destroys.

Some people say that they do not mind this; that it is their greatest wish to clean the canvas thoroughly - to create a social tabula rasa and to begin afresh by painting on it a brand new social system. But they should not be surprised if they find that once they destroy tradition, civilization disappears with it. They will find that mankind have returned to the position in which Adam and Eve began - or, using less biblical language, that they have returned to the beasts. All that these revolutionary progressivists will then be able to do is to begin the slow process of human evolution again (and so to arrive in a few thousand years perhaps at another capitalist period, which will lead them to another sweeping revolution, followed by another return to the beasts, and so on, for ever and ever). In other words, there is no earthly reason why a society whose traditional set of values has been destroyed should, of its own accord, become a better society (unless you believe in political miracle, or hope that once the conspiracy of the devilish capitalists is broken up, society will naturally tend to become beautiful and good).

Marxists, of course, will not admit this. But the Marxist view, that is to say, the view that the social revolution will lead to a better world, is only understandable on the historicist assumptions of Marxism. If you know, on the basis of historical prophecy, what the result of the social revolution must be, and if you know that the result is all that we hope for, then, only then, can you consider the revolution with its untold suffering as a means to the end of untold happiness. But with the elimination of the historicist doctrine, the theory of revolution becomes completely untenable.

The view that it will be the task of the revolution to rid us of the capitalist conspiracy, and with it, of opposition to social reform, is widely held; but it is untenable, even if we assume for a moment that such a conspiracy exists. For a revolution is liable to replace old masters by new ones, and who guarantees that the new ones will be better? The theory of revolution overlooks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social life - that what we need is not so much good men as good institutions. Even the best man may be corrupted by power; but institutions which permit the ruled to exert some effective control over the rulers will force even bad rulers to do what the ruled consider to be in their interests. Or to put is another way, we should like to have good rulers, but historical experience shows us that we are not likely to get them. This is why it is of such importance to design institutions which prevent even bad rulers from causing too much damage.

There are only two kinds of governmental institutions, those which provide for a change of the government without bloodshed, and those which do not. But if the government cannot be changed without bloodshed, it cannot, in most cases, be removed at all. We need not quarrel about words, and about such pseudo-problems as the true or essential meaning of the word 'democracy'. You can choose whatever name you like for the two types of government. I personally prefer to call the type of government which can be removed without violence 'democracy', and the other 'tyranny'. But, as I said, this is not a quarrel about words, but an important distinction between two types of institutions.

Marxists have been taught to think in terms not of institutions but of classes. Classes, however, never rule, any more than nations. The rulers are always certain persons. And, whatever the class they may have belonged to, when they are rulers they belong to the ruling class.

Marxists nowadays do not think in terms of institutions; they put their faith in certain personalities, or perhaps in the fact that certain persons were once proletarians - a result of their belief in the overruling importance of classes and class loyalties. Rationalists, on the contrary, are more inclined to rely on institutions for controlling men. This is the main difference.

XI

But what ought the rulers to do? In opposition to most historicists, I believe that this question is far from vain; it is one which we ought to discuss. For in a democracy, the rulers will be compelled by the threat of dismissal to do what public opinion wants them to do. And public opinion is a thing which all can influence, and especially philosophers. In democracies, the ideas of philosophers have often influenced future developments - with a very considerable time-lag, to be sure. British social policy is now that of Bentham, and of John Stuart Mill who summed up its aim as that of 'securing full employment at high wages for the whole labouring populations'.

I believe that philosophers should continue to discuss the proper aims of social policy in the light of the experience of the last fifty years. Instead of confining themselves to discussing the 'nature' of ethics, or of the greatest good, etc, they should think about such fundamental and difficult ethical and political questions as are raised by the fact that political freedom is impossible without some principle of equality before the law; that, since absolute freedom is impossible, we must, with Kant, demand in its stead equality with respect to those limitations of freedom which are the unavoidable consequences of social life; and that, on the other hand, the pursuit of equality, especially in its economic sense, much as it is desirable in itself, may become a threat to freedom.

And similarly, they should consider the fact that the greatest happiness principle of the Utilitarians can easily be made an excuse for a benevolent dictatorship, and the proposal that we should replace it by a more modest and more realistic principle - the principle that the fight against avoidable misery should be a recognized aim of public policy, while the increase of happiness should be left, in the main, to private initiative.

This modified Utilitarianism could, I believe, lead much more easily to agreement on social reform. For new ways of happiness are theoretical, unreal things, about which it may be difficult to form an opinion. But misery is with us, here and now, and it will be with us for a long time to come. We all know it from experience. Let us make it our task to impress on public opinion the simple thought that it is wise to combat the most urgent and real social evils one by one, here and now, instead of sacrificing generations for a distant and perhaps forever unrealizable greatest good.

XII

The historicist revolution, like most intellectual revolutions, seems to have had little effect on the basically theistic and authoritarian structure of European thought.

The earlier, naturalistic, revolution against God replaced the name 'God' by the name 'Nature'. Almost everything else was left unchanged. Theology, the Science of God, was replaced by the Science of Nature; God's laws by the laws of Nature; God's will and power by the will and the power of Nature (the natural forces); and later God's design and God's judgment by Natural Selection. Theological determinism was replaced by a naturalistic determinism; that is, God's omnipotence and omniscience were replaced by the omnipotence of Nature and the omniscience of Science.

Hegel and Marx replaced the goddess Nature in its turn by the goddess History. So we get laws of History; powers, forces, tendencies, designs, and plans, of History; and the omnipotence and omniscience of historical determinism. Sinners against God are replaced by 'criminals who vainly resist the march of History'; and we learn that not God but History (the History of 'Nations' or of 'Classes') will be our judge.

It is this deification of history which I am combatting.

But the sequence God - Nature - History, and the sequence of the corresponding secularized religions, does not end here. The historicist discovery that all standards are after all only historical facts (in God, standards and facts are one) leads to the deification of Facts - of existing or actual Facts of human life and behaviour (including, I am afraid, merely alleged Facts) - and thus to the secularized religions of Nations and of Classes, and of existentialism, positivism, and behaviourism. Since human behaviour includes verbal behaviour, we are led still further to the deification of the Facts of Language. Appeal to the logical and moral authority of these Facts (or alleged Facts) is, it would seem, the ultimate wisdom of philosophy in our time.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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