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메니데스(PARMENIDES)의 세계
파메니데스의 세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 대한 논문
칼 포퍼
요르겐 메이어 (JØrgen Mejer)의 협조를 받아 아르네 F. 피터슨 (Arne F. Peterson)이 편집함.
목차
편집자의 서문
서문
약어표
서문: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 발명과 소크라테스 이전 우주론의 쇠퇴
논문 1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 돌아가라
부록 1: 박진성(迫眞性: verisimilitude)에 대한
역사적 기록
부록 2: 박진성에 관한 몇 가지 추가 암시
논문 2 알려지지 않은 제노파네스(Xenophanes): 그의
위대성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
1 그리스 철학의 시조 - 2 제노파네스의 초기 - 3
제노파네스의 우주론에 대한 오해 - 4 철학적
신학자로서 제노파네스 - 5 제노파네스의 지식론 -
6 제노파네스의 유물론에 관하여 - 7 제노파네스는
역사적 기록을 창시했는가? - 부록 2: 제노파네스의
진리론에 관한 새로운 전문적 윤리론 - 편집자 주
논문 3 파메니데스가 말하는 두 가지 길에 달이 달빛을
비추는 방식 (I)
1 파메니데스의 시(詩)의 구조 - 2 여신(女神)의 계시
- 3 문제 - 4 나의 문제에 대하여 제시되는 해답 - 5
흔적? 아니면 증거? - 6 몇 가지 산재하는 언급 - 7
간략한 평가
논문 4 파메니데스가 말하는 두 가지 길에 달이 달빛을
비추는 방식 (1989)
파메니데스의 시 두 부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정에 관한 기록이 포함된 부록
논문 5 파메니데스가 말하는 두 가지 길에 달은 빛을
비출 수 있는가? (1988)
1 문제 - 2 사실 - 3 모순 - 4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설명 - 5 파메니데스가 제시하는 증거 - 6
파메니데스의 이성적 논박
논문 6 파메니데스의 세계: 파메니데스의 시와 초기
그리스 우주론에서 그 시의 근원에 대한 기록
1 우주론의 중요성 - 2 지구와 하늘의 발견 - 3
철학의 시작 - 4 우주론자로서의 파메니데스 - 5
파메니데스는 존재론자가 아니었다 - 6 파메니데스의
새로운 지식론 - 7 파메니데스와 과학의 방식 - 8
여신(女神)의 계시에 왜 견해라는 기만적 방식이
포함되었나? - 9 파메니데스에 대한 심리학적 추측 -
10 파메니데스의 시에 대한 기록들 요약 - 11 끝맺는
말 - 부록: 파메니데스의 우주론의 근원에 대한
역사적 추측
논문 7 불변의 진리 탐색을 넘어서
1 파메니데스와 현대 과학 - 2 과학적 탐구-끝없는
탐구(원문의 inquery와 undending은 inquiry와
unending의 오기임 - 역자 주) - 3 파메니데스가
가르치는 두 가지 길 - 4 비판적 이성주의에 대한
파메니데스의 기대 - 5 근거 없는 지식 - 6 사실주의
- 7 이성주의와 불변의 진리 탐색 - 8 반대가
되는 것과 변화에 대한 초기 생각들 - 9 변화라는
문제 - 10 변화라는 문제에 대한 파메니데스의 논리적
해결책 - 11 파메니데스의 해결책에 대한 원자론적
비판 - 12 파메니데스의 이성주의적 연구 계획 - 13
파메니데스의 진리 탐구의 유산 - 14 변화에 대한
원자론적 이론 - 15 불변의 진리에 대한 파메니데스의
이론 - 16 현대 물리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파메니데스의 뿌리 - 17 시간의 실재성 - 18
파메니데스의 3차원적 공간과 현대의 상대성 이론 -
19 이성에는 한계가 있는가? - 20 상대성 이론과
불확정론(indeterminism) - 21 물리학에서 비(非)
파메니데스적 양태의 출현 - 22 맥스웰의 도깨비
(Maxwell's demon) - 23 볼츠만(Boltzmann)의
원자론 옹호 - 24 열역학 제 2법칙의 모순 해결 -
25 슈뢰딩어(Schrödinger)식 볼츠만 이론 - 26 현대
물리학으로 볼츠만의 이론으로 환원하기 - 27 현대
물리학에 대한 파메니데스의 또 다른 옹호: 개연성에
관한 주관주의식 해석 - 28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의 주관주의적 해석에 대한 몇 가지 비판 - 29
파메니데스 이론의 파멸로서 양자 물리학에서의
불확정론 - 30 현대 물리학에서 다른 반(反)
파메니데스적 발전 - 31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비(非)
파메니데스적 설명 - 32 파메니데스의 계획으로
부터 일탈 요약 - 33 비(非) 파메니데스적 경제학으로
부터 얻은 교훈 - 34 불변의 진리 탐색을 넘어서:
논리적 이해론을 향하여 - 부록: 소크라테스 이전
인식론에서 반대가 되는 것들과 존재에 관한 기록
논문 8 선사 시대 자아(自我) 발견에 관한,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생각-몸 문제에 관한 언급
1 우주에 대하여 우리가 그린 그림의 역사 - 2
다음에 오는 것에 의하여 해결될 문제 - 3 선사시대의 자아와 생각의 세계(제 2 세계) 발견 - 4 그리스
철학에서 생각-몸의 문제 - 5 추측성 설명 대(對)
궁극적 설명
논문 9 플라톤과 기하학
1 플라톤과 기하학 (1950) - 2 플라톤과 기하학
(1957) - 3 테아이테토스(Theaetetus)의 연대 결정
(1961) - 4 지식의 근원과 무지의 근원에 관하여 - 5
비판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적 기법 대(對)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epagōgē) - 6 유클리드
기하학의 우주론적 근원 - 7 플라톤,
티마이오스(Timaeus), 54e - 55a
논문 10 증명과 반증에 관하여 맺는 말: 귀납법이
반(反)귀납법이 되고, 귀납법이 논박으로
회귀하는 방식
부록: 그리스 철학에 대한 포퍼의 최근 글
글 0-5 파메니데스에 관하여 (II) - 글 6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와 유물론 - 글 7-10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학에 대한 오해 - 글 11 태양에
관한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제노파네스의
이론을 혼란시킨 아리스토텔레스
색인
편집자의 서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에 대한 사랑을 위하여
1965년 여름, 국제 역사 및 과학철학 협회 (the International Union of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후원 하에 윌리엄 닐(William Kneale)과 임레 라카트로스(Imre Lakatros)와 죤 워트킨스(John Watkins)와 다른 사람들이 조직위에 참여하면서 런던정경대학(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과 영국과학철학협회(the British Society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가 주관하는 과학철학에 관한 국제회의가 베드포드 대학(Bedford College)에서 열렸다. 논리학과 수학철학 및 과학철학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 분이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회의는 이전에 우세한 철학의 한 학파인 논리적 실증주의(또는 실증주의: logical positivism)가 마침내 논리학과 지식론에 대한 다른 접근방식에 길을 내주던 때에 열렸다. 회의에 대한 조직위의 주요 목적은 포퍼를 그의 반대자 중 몇 명, 특히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과 토마스 쿤(Thomas Kuhn)과 대면시켜 비판적 이성주의의 힘과 열정을 결과적으로 증명하려는 바람이었던 듯하다.
몇 가지 의미에서 회의는 조직위의 의도와 소망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포퍼와 초대된 포퍼 이론 반대자은 길게 토론을 하지 못했고, 포퍼의 발제사가 지닌 주제와 범위에도 불구하고 그 발제사는 겨우 몇 가지 언급을 촉발시켰을 따름이다. 포퍼의 발제사는 소크라테스 이전 우주론과 논증이 어떻게 서구 과학 사상의 기둥을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이 기둥이 과거 2500년에 걸쳐 물리학과 천문학과 생물학과 철학의 연구계획에서 추적될 수 있음을 매우 상세하게 밝혔다. 과거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했던 방법론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포퍼는 주장했다; 필요한 것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비판적 이성주의 정신의 부활로 포퍼가 당시 이미 고전이었던 포퍼의 강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 돌아가라’에서 권유한 것이었는데, 그 강연은 1958년에 행하여졌고 이번 회의 2년 전에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이라는 책 속에 발표되었다. (그 강연은 이 책에 논문 1로 다시 실렸다.)
포퍼의 요지는 발제사에 대하여 비판을 한 사람들에 의하여 실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발제사의 또 다른 요지인 변화에 대한 원자론의 붕괴에 따른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의 시급한 필요에 관한 토론도 없었다. 회의가 끝난 후 지명된 편집자는 토론에 참가했던 사람들 몇 명에게 발행될 회보에 더 상세한 비판 글을 쓰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회보가 나왔을 때 포퍼의 발제사나 포퍼의 견해에 반대하는 글이 포함되지 않았고, 수 십 년 동안 원고로 남아있던 포퍼의 발제사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 후기(The Postscript to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가 1982-83에 발간되기 전까지 동료들과 학생들 사이에 그랬던 것처럼 몇 년 동안 거의 전설이 되었다. (논문 7은 그 발제사의 증보본으로 이 책에 최초로 실렸다.)
내가 1968년에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면서 나는 런던정경대학에서 열리던 포퍼의 강의와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런던으로 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 나에게 그것은 움직이는 급행열차에 올라타는 것과 같았다. 당시 이 세미나에는 몰입적인 참된 공부 분위기와 지식추구와 과학과 철학의 역사에서 많은 위대한 순간들을 반영하는 가르침이 많았다. 전 세계에서 온 탁월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포퍼의 세미나에 참가하였는데, 그 세미나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관계가 나빠지지 않고도 서로의 견해를 비판할 수 있는 대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편안하게 활동하는 듯했다. 그리고 논리학과 과학적 방법에 관한 포퍼의 강의는, 많은 국적의 학생들이 참가했는데, 특별한 풍요로움과 엄격함을 지니고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지속적인 교육과정을 보여주었다. 강의를 통하여 포퍼는 발견의 상황을 풀이하여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설명하면서 청중들에게서 전율과 계시를 자아냈다. 그는 과학철학을 살아있는 학문으로 만들어 과거의 아이디어들이 현재의 아이디어와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 포퍼는 토론을 계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무실로 학생들을 초대하곤 했다. 내가 운 좋게 그런 무리에 낀 첫 번째 모임에서 화제는 우주론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 바뀌었다. 어느 단계에서 나는 파메니데스의 ‘존재(Being)’와 그 존재가 옥스퍼드에서 (코퍼스 크리스티 대학 [Corpus Christi College]에서 내가 연구하고 있던 초기 그리스 철학에 관한 연구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언급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가 파메니데스의 말의 반향이라고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옥스퍼드를 언급하지말자 포퍼가 이렇게 말을 잘랐기 때문이다: ‘자네 알지, 파메니데스는 언어분석가도 아니요, 존재론주의자도 아니었고 우주론자였을 따름이네. 그의 “존재”는 존재론과 관련이 없네. “그것은 이다(it is)” 또는 논리적 계사(繫辭)는 내가 보기에 빈 것이네: 그것은 기껏해야 형식적 논리의 한 부분인데 그 부분으로부터 항진명제(亢進命題: tautologies)만 도출되지. 그러므로 나는 존재론을 빈말이라고 보네. 물론 그리스어인 “esti”는, 영어인 “is”처럼, 계사나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모호하게 사용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파메니데스가 그 말을 존재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esti”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지.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 우리 세계의 가구에 관하여, 존재에 관하여, 예를 들어, 원자에 관해서나 유기체에 관해서나 혹은 속성에 관해서 - 파메니데스를 따라서, 우주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낫다고 나는 제안하네.’ 나는 이 말에 경악했는데 그 말로 인하여 나는 덴마크 시인 폴 라 쿠르 (Paul la Cour)가 주목한 아티카(Attica)와 우주론 유산, 아티카의 산과 신전 유적, 소나무와 백리향(百里香)의 향기가 짙은 해안의 수직 절벽과 바람을 받은 선박들, 햇빛을 흠뻑 받은 정적 속에 들리는 매미소리와 양의 방울소리를 기억했다.
다음 해 내가 포퍼의 연구조수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우리들의 잦은 대화는 중요한 전기를 맞이했다. 1969년 9월 포퍼 부부는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을 4개월 동안 방문했고, 비서와 나에게 일감을 주기 위하여 포퍼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 후기(Postscript to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를 새로 타자로 칠 것을 요구했는데 그 책은 당시 수 백 가지의 교정과 추가 쪽지가 붙은 교정쇄의 상태였다. 그 해 가을 동안 마조리 워커 부인 (Mrs Marjorie Walker)과 나는 타자를 치고 검토를 하면서 이 일에 매달렸는데, 나는 일에 매혹되어 편지에 답장하는 일이나 중간보고를 보내는 일을 잊어버렸다. 11월이 되자 나의 무례한 침묵으로 인하여 포퍼는 인내심을 잃었다. 그러나 학과장에게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포퍼는 파메니데스의 반(反)감각주의에 관한 자신의 추측뿐만 아니라 파메니데스의 우주론에 관한 아이디어의 연대순에 대하여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두 통의 흥미롭고 친절한 편지로 나에게 전했다. 이 편지들은 즉각 타자로 쳐져 더 상세하게 설명되도록 포퍼에게 반환되었으며, 나는 빛과 암흑에 관한 헤라클리투스의 글을 연구할 때인 몇 년 전에 내가 해낸 몇 가지 열정적인 생각을 덧보태었다. 나중에 포퍼는 나의 언급뿐만 아니라 편지들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하여 그가 쓴 글에서 편집한 쉬운 책에 넣을 것을 제안했다. (두 통의 편지는 이 책에 논문 6의 부록으로 인쇄되었다.)
포퍼 부부는 브랜다이스 대학으로부터 12월 18일에 돌아왔고, 그 후 곧 나는 포퍼 부부에게 한 때 포퍼의 침실에 있던 거의 1200쪽의 기념비적 작품인 새로운 후기 두 권을 가져도 주었다; 그 작품은 포퍼의 침실에 10년 동안 손을 대지 않은 채 놓여 있었고 파메니데스에 대한 우리의 편지를 담은 노란 폴더가 집필 책상 위 창틀에 놓여 있었는데 그곳에서 타자본 ‘발제사’가 세월에 따라 색이 바랬다.
확실히 1970년 대 초에는 많은 시급한 일들이 있어서, 자연이나 우연이 다람쥐의 형태로 간섭하지 않았다면 파메니데스에 관한 논문에는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내가 1971년에 런던정경대학을 떠난 후 처음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던 포퍼 부부를 방문했던 1977년 가을에 그 사건에 대하여 들었다. 어느 봄날 다람쥐 한 마리가 포퍼 부부가 살던 집에 몰래 들어와 여러 가지 논문을 물어가기 시작했는데 분명히 이 진귀한 논문들을 집짓는 재료로 사용할 목적이었고 그 중에 파메니데스에 관한 폴더도 있었다고 포퍼 부인이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다람쥐는 너무 무거웠던 노란 폴더를 나무 둥치에 떨어뜨렸다가 나중에 발견되었다. 포퍼가 대화에 끼어들자 나는 포퍼에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그의 논문을 수집하는 오래된 계획을 상기시켜주었고, 파메니데스에 관한 논문을 다람쥐도 경쟁적으로 흥미를 보인다고 언급하면서 어렵지 않게 그 계획이 시급해졌다고 그를 설득했다. 유쾌해진 포퍼는 내가 논문 편집을 맡을 것을 제안했고, 그 순간부터 나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관하여 그가 쓴 논문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 논문들이 그 후 과학과 철학에 미친 충격에 대하여 발견되는 것마다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일 년에 한 두 번씩 거의 20년 동안 우리들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이 시절에 포퍼는 제노파네스의 우주론과 파메니데스의 인식론에 대하여 나와 함께 작업을 하기 위하여 다른 일들을 하루나 이틀 전형적으로 미루어 두곤 했거나, ‘발제사’에 길고도 긴 주를 달거나 브로드헤드 강연 (Broadhead Lecture)에 (논문 6) 관한 본문 물음에 답하고 몇 년 동안 자신이 작업을 하던 ‘달-논문(Moon-essays)’을 수정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파메니데스가 설명하는 ‘두 가지 길’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를 갑자기 알아채고 포퍼는 초기 원고를 다시 작성하는 데 몰두하여 밤새도록 작업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내가 공항으로 출발하는 때에서야 글쓰기를 멈추었다. 이 밤샘 작업은 그가 거의 90살이 되었을 때 일어났고, 1992년 계간 고전(The Classical Quarterly)에 발표된 논문 3 초기본에 실렸다. 논문 3, 4와 5를 거꾸로 지만 연대순으로 (논문 제목 옆 괄호 안에 적시됨) 읽고 부록 글 0-5인 ‘파메니데스에 관하여 (II)’를 읽으면 파메니데스가 가졌던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서 몇 가지 주요 단계가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관한 모든 작업이 이 회의 동안에 완성된 것은 아니고 세월이 흐르면서 포퍼는 추후에 발표되는 많은 원고를 썼다. 자신의 삶의 막바지에 포퍼는 해외 강연을 위하여 자신이 몰두하던 다른 분야에서보다 아마도 더 빈번히 이 분야에서 강의주제를 선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보다 나은 세상을 찾아서 [In Search of a Better World]에 모두 포함된 바와 같이 ‘책과 사상 [Books and Thoughts]’, ‘관용과 지적[知的] 책임 [Toleration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그리고 ‘지중해 역사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관하여 [On a Little-Known Chapter of Mediterranean History]’와 같은 논문이 발간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포퍼의 헌신에서 고찰되는 바와 같이, 포퍼의 소일거리나 취미에 관한 그의 전체 태도와 일치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논문을 출간하는 문제에 질문을 받고 포퍼는 자신이 죽은 후까지 확실하게 기다릴 수 있다고 대답하곤 했기 때문이다. 포퍼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작업의 일환으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선택한 듯했다.
포퍼는 고대 그리스 문학을 번역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일에서 그의 열정은 자신의 부친 시몬 S.C. 포퍼 (Simon S.C. Popper)를 닮았는데 부친은 여가시간에 시를 쓰고 그리스와 로마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이 책을 통하여 포퍼는 자신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의 생각을 해석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글을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원문을 자주 참고한다는 암시가 보인다. 이 책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포퍼가 여러 가지로 번역한 목록이 번역색인(the Index of Translations)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색인에는 각 번역된 글귀의 다양한 번역 가운데서 최근 번역이 이탤릭체로 된 쪽수로 표시되어 있다.
여러 해에 걸쳐서 나는 몇 명의 동료들 및 친구들과 흥미롭고 즐거운 협력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의 제안 덕분에 많은 편집상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사우스 크로이든 (South Croydon)의 멜리타 뮤 (Melitta Mew) 부인과 레이몬드 뮤 (Raymond Mew) 씨가 포퍼의 유고로부터 관련 서류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몇 가지 최신 글을 이 책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런던의 어니스트 곰브리취 경 (Sir Ernst Gombrich)은 전체 계획에 큰 흥미를 보였는데 특히 편집이 그의 귀중한 제안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논문 2에 흥미를 보였다; 그는 또한 친절하게도 포퍼의 독일어 번역을 기초로 제노파네스의 글 B4와 B22를 영어로 번역하였다. 요르겐 메이어 박사 (Dr J?rgen Mejer)는 코펜하겐과 아테네에서 원고에 나타나는 헬라어 단어 모두와 참고사항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에서 유래하는 인용구 대부분을 추적하고 검토하여 상응하는 이름 및 인용구 색인을 작성했다. 코벤트리(Coventry)의 데이비드 밀러 씨 (Mr David Miller)는 영어 관용구와 포퍼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자문을 하였고, 이 논문들의 명쾌한 특징은 부분적으로 여러 곳에서 조각글로 우리에게 전해진 원문을 그가 비판적으로 읽고 윤문한 덕분일 수 있다. 파리-소르본느와 몽펠리에 (Paris-Sorbonne and Montpellier)의 장 베르나르디 교수 (Professor Jean Bernardi)와 코펜하겐의 에릭 이베르센 씨 (Dr Erik Iversen)에게도 격려해주시고 원문에 의문을 표해 주신 데에 감사한다. 로스킬드(Roskilde)의 트로엘스 에거스 한센 박사 (Dr Troels Eggers Hansen)는 초기 열역학과 상대성 이론에 대한 몇 가지 동떨어진 참고사항을 추적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으며, 포퍼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 번역 색인 (the Index of Popper's translation of the Presocratics)을 영어와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내가 작업용 원고를 가지고 유럽을 여행하던 여러 해 동안 안전상의 이유로 전체 원고의 수정본을 보관한 데에 감사한다. 그들 모두가 이 책을 완결하여 품질을 높인 데에 기여하였기에 나는 그들에게 감사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포퍼의 세상에 끌려들어가서 여러 해 동안 그의 친구가 된 것과 많은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와 흥미로운 화제에 - 그 중 소크라테스 이전 우주론을 그가 매혹적으로 설명한 것 - 관하여 그와 함께 연구를 하면서 내가 누렸던 행운에 대하여 감사하는 감정을 느낀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해 그가 일생동안 지녔던 사랑을 기억하면서, 그가 생전인 1997년 봄 동안에 완성된 ‘헤일-밥(Hale-Bopp)’으로 지금 알려진 혜성의 고대부터 우리 시대까지의 이동을 목격하지 못하여 나는 심히 유감스럽다. 그 혜성이 지난번에 우리 태양계를 지나갔을 때 제노파네스나 파메니데스는 아마도 목격하였으리라. 틀림없이 그 혜성을 목격하고 포퍼는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며, 아마도 이 위대한 천문학의 선구자인 제노파네스와 파메니데스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추측이 포퍼에게서 일어났으리라.
자신이 본보기가 되고 연구를 통하여 포퍼는 지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옛 지평을 청소하였고, 파메니데스식의 의문을 따르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한 사람으로서, 인간이 저지른 짓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우리 문명의 초기에 그랬던 바와 같이 여전히 새롭고 신선할 것이라는 두드러진 인상을 자주 받았다.
아르네 프리무스 피터슨 (Arne Friemuth Petersen)
서문
이 책에는 초기 그리스 철학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포함되어 있는데 나는 그 철학을 여러 해 동안 연구하여 왔다. 나는 이 논문들이 모든 역사는 문제 상황의 역사이거나 그 역사이어야 한다는, 그리고 이 원리를 준수하면서 우리가 과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과 다른 사상가들을 한층 더 이해할 것이라는 주장을 예시할 것임을 희망한다. 이 논문들은 또한 유럽에 그 철학과 과학과 인본주의를 전해준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위대성을 밝히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논문들은 작성 순서에 따라 배치되지는 않았다. 옛날 논문의 하나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와 업적을 이해하려는 몇 가지 초기 노력을 제시하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로 돌아가라 (Back to the Presocratics)’ 다음에, 제노파네스와 파메니데스가 연구했었을 핵심 문제들에 관한 몇 가지 논문이 나왔다. 나중에 나온 이 논문들은 최근에 여러 번 다시 작성되었고 오직 한 가지 논문만 (논문 3) 이전에 출판되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로 돌아가라’라는 논문은 최근 논문들과는 부분적으로 다른 문제를 다룰지라도, 그 논문들은 몇 가지 면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로 돌아가라’를 대체한다. 이것은 또한 왜 고대 그리스 문헌을 제시하려는 반복적인 시도가 나타나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이 글에 실렸는데 이유는 주제가 논문에 따라 다양한 문맥과 관점에서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철학이 지닌 빛에서 반영된 관점 -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 발간 논문 중에서 가장 긴 논문은 (논문 7), 원래 ‘합리성과 불변수 탐색’이라고 제목이 붙은 것으로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논문은 헤라클리투스 (‘만물은 변한다’)와 파메니데스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가 화해하여 현대과학 속에서 결합되는데 현대과학은 헤라클리투스의 변화를 이용하여 파메니데스의 불변을 탐색한다. (에밀 메이어슨 [Emile Meyerson]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것은 물리학에서 미분방정식에 의하여 이룩된다.) 이 논문의 최종 제목은 ‘불변수 탐색’이 제노파네스의 초기 이론에 기초한 이해 이론에 의하여 대체되어 이로울 것임을 가리킨다.
16세의 학생으로서 내가 처음 파메니데스의 탁월한 시를 읽었을 때, 나는 달의 여신 셀레네(Selene: 달)와 헬리오스(Helios: 해)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는데 그의 시에 의하여 나의 눈은 계몽되었다. 파메니데스는 지구와 별이 빛나는 하늘의 시적(詩的) 아름다움에 나의 눈을 열어주었고, 새로운 탐구 정신으로 그들을 바라보도록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셀레네의 열성적인 모습’의 방향을 쫓아가면서 셀레네 여신 자신이 그러는 바와 같이 지구 수평선 아래에 있는 헬리오스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탐색하면서. 파메니데스의 발견을 내가 다시 발견한 것에 관하여 내가 말해준 나의 친구 누구도 이전에는 이것을 탐색하지 않아서 나는 그 친구들 몇 명이 나만큼 내가 다시 발견한 것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파메니데스가 발견한 것의 완전한 중요성을 내가 깨달은 것은 약 70년 후의 일이였고, 그리하여 나는 그 발견이 원래 발견자인 파메니데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나는 파메니데스의 세계에 대한, 그의 두 가지 길에 대한 이 발견의 중요성과, 과학의 역사 특히 인식론과 이론물리학의 역사에서 이 발견의 중요성을 이해하여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언급된 바와 같이 이 논문들은 몇 가지 면에서 중첩되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복적인 시도를 드러낸다. 반복적인 시도가 지나치다면 나는 독자들에게 사과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니면 단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사랑하는 아마추어임을 알고도 논문들을 취합하여 편집하기로 결정한 데 대하여 나의 친구들 특히 아르네 F. 피터슨 (Arne F. Petersen)에게 감사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논문들은 다른 모든 철학자들보다도 세 명의 우주론자들을 사랑함을 보여준다: 제노파네스(Xenophanes),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그리고 파메니데스(Parmenides).
칼 R. 포퍼
켄리(Kenly), 1993년 2월 27일
약어
C. & R. 칼 포퍼, 추측과 논박 (Conjectures and Refutations), 런던,
1963년 5판, 1989.
DK H. 딜스 (H. Diels) 및 W. 크란츠 (W. Kranz),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 (Fragmente der Vorsokratiker), 10판,
베를린, 1960.
L.d.F.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Logik der Forschung),
비엔나, 1934, 10판, 1994.
L.Sc.D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런던, 1959.
O.K. 칼 포퍼, 객관적 지식: 진화적 접근 (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 옥스포드,
1972년, 2판, 1979.
O.S.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6판, 1권 및 2권, 런던, 1969.
S.I.B. 칼 포퍼, 자아와 두뇌 - 상호작용론을 위한 논증 (The Self
and Its Brain - An Argument for Interactionism), 1부
(2부는 죤 에클레스 [John Eccles] 경이 저술), 베를린 -
하이델베르그- 뉴욕, 1977, 3판, 1990.
서문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 발명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우주론 쇠퇴
아마도 반박하는 듯한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를 유일하게 예외로 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모든 깊은 사색가들은 신성하여 신(神)들에게만 열려있는 참된 지식이자 확고한 진리(saphes, alētheia; 나중에는 epistēmē)인 지식(knowledge)과 인간이 소유할 수 있고 제노파네스에 의하여 향상될 수 있는 추측으로 해석되는 견해(opinion: doxa)를 확실하게 구별했다.
이 견해에 대항했던 최초의 사람은 프로타고라스였던 듯하다. 그가 쓴 책의 첫머리가 존재하는데 그곳에서 프로타고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신(神)들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 - 그들이 존재하는지도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나는 그의 인간척도론(homo mensura) 주장이 -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 이것으로부터 유래하며,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고 제안한다: ‘신(神)들에 대하여 우리는 아는 바가 없어서 우리는 그들이 아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은 우리의 기준으로, 우리의 척도로 수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론은 그의 선배들이 단순히 인간의 견해인 것과 신(神)의 지식을 구분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지식을 우리의 기준 즉, 척도로 수용해야 한다.’
다른 사상가들도 유사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역사적으로 프로타고라스의 후배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로타고라스처럼 고향이 압데라(Abdera)였던 데모크리투스(Democritus)가 있다; 데모크리투스가, 디오게네스 라에티우스 (Diogenes Laertius)에 의하면, 프로타고라스의 스승이었지만, 더 믿을만한 역사적 정보에 의하면 프로타고라스가 데모크리투스의 스승이었다. 프로타고라스는 아마도 파메니데스의 이성주의에 반대한 경험주의자였다. 이 요지는 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된다.
그러나 프로타고라스 이후 - 그러나 단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 주요 사상가 대부분은 오직 신(神)들만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파메니데스와 그의 선배들의 관점을 유지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에게서 절대적으로 분명하다. 이것은 훨씬 더 독단적인 플라톤에게서 훨씬 더 분명한데 이유인즉 플라톤의 독단주의가 주로 국가의 법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 법률이 성문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그 법률이 엄격하고 철저히 변할 수 없어야 했다. 이제 우리가 자연과학으로 기술(記述)하는 분야에 관하여 플라톤은 (예를 들어 티마에오스[Timaeus]와 다른 책에서) 자신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기껏해야 ‘진리와 유사해서(truthlike)’ 진리가 아니라고 명백하게 말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진리와 유사하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개연적(probable)’로 해석되지만 우리는 수학적 의미에서 확률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박진성(迫眞性: truthlikeness)을 구분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두 가지 개념을 혼용하는 전통과 이별한다; 그리고 우리는 수학자들이 확률로 의미하는 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이론에 대하여 ‘진리유사성(truthlikeness)’ 즉, 박진성(verisimilitud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플라톤이 사용하는 용어는 실제로 ‘유사함(similar)’이고 때때로 그는 ‘진리와 유사하다(similar to truth)’고 말한다; 그 단어는 ‘회화적(繪畵的) 유사성 (pictorial similarity or likeness)’과 또한 연결되어 이것이 실제로 의미의 뿌리가 되는 듯하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가질 수 있을 따름이다; 플라톤은 그런 지식을 견해(opinion)라고 별로 부르지 않는데 견해라는 용어는 플라톤과 동시대인인 이소크라테스(Isocrates)가 자주 사용하여, ‘우리는 견해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결정적인 분리가 일어났다. 기묘하게도 아리토텔레스는 유신론자였지만 - 심지어 그는 일종의 신학을 설파했다 - 신적(神的) 지식과 인간적 추측을 구분하는 전통과 분명히 결별한다. 그는 자신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이 증명될 수 있는 지식인 지식(epistēmē)을 지니고 있다고. 그리고 서양의 인식론자 대부분에게 이것은 그 후 사실로 남았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합당한 전통과 결별한다. 그는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증명될 수 있는 지식인 지식(epistēmē)에 관한 이론을 내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영리한 사람이자 훌륭한 논리학자이기 때문에 증명될 수 있는 지식이 있다는 자신의 상정(想定)으로 인하여 자신이 무한회귀(an infinite regress)에 빠지는 것을 그는 발견하는데 이유인즉 증명된다면 이 지식은 다른 것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추론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은 또한 증명된 지식이어야 해서 그 외 다른 것으로부터 추론되는 등 추론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제에 다다른다: 어떻게 이 무한회귀가 멈출 수 있을까? 즉: 실제로 원초적인 전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우리는 그 전제를 확신할 수 잇는가? 그는 이 지식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를 실질적인 가설은 정의(定義: definitions) 진술이라는 교설로 해결한다. 여기서 그는, 적어도 때때로, 일종의 기묘한 ‘이중 사고(double thinking)’나 ‘이중 대화(double talk)’를 초래한다. 정의(定義)란 한편으로 관습에 따라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여 확실하다 (분석적[analytic], 자명한[tautological]). 그러나 정의가 관습적이기만 하여 확실하다면 모든 지식(epistēmē)은 관습에 따라 진리이기 때문에 확실하다. 다시 말해서 모든 지식(epistēmē)은 우리가 쓰는 정의(定義)에서 추론되어 자명하다. 이 결론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원하지 않아서 다른 한편으로 관습적이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은 정의가 또한 존재한다고 그는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그 정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본’ 결과여서 통합적(synthetic)이라고 강조한다; 그 정의는 귀납법의 결과이다.
이것이 귀납법이 과학적 방법에 관한 이론인 인식론에 침투하는 방식이었던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귀납법이 학생을 (또는 배우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학자를) 어느 장소로, 어떤 관점으로 이끄는 과정인데 그 장소나 관점으로부터 학생이나 학자 자신이 관심을 지닌 대상의 본질을 볼 수 있다. 이 본질에 대한 기술(記述)을 그는 자신의 근본적 원리(archai)의 하나로서 정의(定義)를 통하여 기획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 원리는 정의이고 동시에 (내가 제안하는 바, 어떤 종류의 ‘이중 대화’에 의하여) 오직 관습적이고 자명한 정의만 지닐 수 있는 확실한 진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법 이론은 젊은이를 사회에 처음 대면시키는 일과 유사하다: 그 귀납법 이론은 젊은이가 어른의 삶이 지닌 본질을 실제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관점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귀납적 과정은 정의를 풍요로운 지식의 근원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의는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다: 정보성 정의와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귀납이론은 - 우리가 사물의 본질적 특성인 본성을 보고 직관으로 이해하도록 유인되는 방식 - 또한 다른 의미에서 이중 대화이다: 귀납이론은 비판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귀납이론을 바라봄으로써 부분적으로 성립하고 (소크라테스식 토론에서처럼), 귀납이론에 대한 많은 경우를, 많은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성립한다. 후자 의미의 귀납법은 일종의 귀납적 3단 논법을 낳는다. 전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플라톤은 죽는다; 시미아스(Simmias)는 죽는다; 기타 등등. 이 모든 사람은 죽는다. 혹은 심지어 더 발전한 결론은 문제의 본질로 들어간다: 분명히 쇠퇴하여 죽는 것은 태어난 모든 것의 본성에 속한다.
방금 언급된 바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귀납적 3단 논법이 무효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방식을 통하여, 언급된 사물의 본질을 직관하거나 그 직관의 도움을 받아서, 이 본질이나 몇 가지 본질적 특징을 기술(記述)하는 서술에 도달하고, 이 서술은 정의로서 참되고 확실하여 지식(epistēmē)의, 증명된 과학적 지식의 궁극적 전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정말로 믿는다.
논리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이론을 도입했을 때 악한 지적(知的)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고 나는 추측한다.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두 가지 논증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그가 취했던 매우 객관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지식이론에서 주관적이 된다: 그는 사물을 아는 데서, 사물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아는 사람과 그의 지식은 알려지는 대상과 하나가 된다고 가르친다; 그 가르침은 신비주의로 합당하게 기술될 이론이다. 아는 것과 알려진 것이 동일하다는 이론은, 명백히, 주관주의적 형태이어서 증명될 수 있거나 3단 논법적 지식이라는 객관주의와는 매우 다르다. 그러나 그 이론은 아무튼, 귀납법이 건너뛰면서 매우 불안한 교량을 제공하는 단절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귀납법을 창안했을 때 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는 다른 징표는 그가 자신의 창안품인 귀납법을 모든 사람 중에서 소크라테스에게 투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혹은 여하한 사람이) 그런 과정에 근거할 수 있는 지식(epistēmē)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사람이 전혀 아니었을 텐데 이유인즉 그는 항상 지식(epistēmē)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모른다고 주장한다 - 더 문자 그래도 번역하여 그가 말하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혹은 주장한다).
모든 사람 중에서 소크라테스에게 귀납법을 창안했다는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 동기는 아마도 모든 사람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귀납법의 필요성을 보았다면 나쁜 논증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무비판적 논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가지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알지 못한다고 엄중하게 주장했다는 것을 부인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소크라테스의 무지 고백이 빈정거림일 따름이라고 제안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식 빈정거림’이다.) 다른 난제는 소크라테스식 방식을 - 반증을 통한 비판적 논박인 elenchus - 확실한 증명 방식으로 변환해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논박으로 시도하는 것은 자신들이 안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지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이 한 주제에 (예를 들어, 미덕) 관하여 완전히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다음에 소크라테스는 경험적이어서 구체적인 사례의 - 반증의 - 도움을 받아서 그들이 완전히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한다. 이 방식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제 구체적 증거를 통한 본질 탐색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에는 어떤 합당성이 있지만 논박(elenchus)을 귀납적 증거(epagōgē)로 전환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소크라테스식 반어법을 불러올 필요가 생긴다.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이 만들어, 말하자면 자신이 감히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발명품에 대하여 책임을 질 사람으로서 소크라테스를 선택하는지 이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이 당시 상황이었던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에게 지식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에게 지식이 있음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으로 인하여 역시 경험주의자였던 프로타고라스와 조금 유사하게 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로타고라스가 아마도 인정했던 것을 - 즉, 인간의 지식은 확실치 않다는 것 - 인정하지 않는다. 프로타고라스는 정말로 심지어 우리가 만물의 척도여서 우리가 실제로 하는 것보다 더 훨씬 더 잘할 수 없다할지라도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지닌 지식을 많이는 아니지만 향상시킬 수 있으므로 우리는 인간의 지식을 모든 지식의 척도로서 수용해야 한다고 인정했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 방식으로 프로타고라스가 지식(epistēmē)을 신뢰했다는 말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테(Dante)에 의하여 ‘지식인의 거장(The master of all who know)’로서 찬양을 받아 묘사된다. 내 생각에 이것은 올바른 묘사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지식은 실제로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지식으로 인하여 찬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제노파네스와 소크라테스의 (그리고 자연과학의 문제를 그가 다룬다는 정도까지 플라톤 또한) 말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추측할 따름이다’는 옳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한 과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평가했지만 플라톤은 언급한 적이 없고 - 어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 증오했다고 여겨지는 테모크리투스만큼 위대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는 두드러지게 학자이자 위대한 논리학자였는데 우리는 논리학의 발명에 대하여 그에게 감사할 수 있으며, 그는 또한 위대한 생물학자였다. 그의 이론이 모두 독단주의로 된 연구라 할지라도 그의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진정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의 실제적인 독단주의자였다 - 심지어 플라톤도 정치적인 독단주의자였지만 인식론에서는 독단주의자가 아니었다.
과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이상(理想)은 본질의 이름인 개념으로 가득 찬 백과사전이라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 이 본질에 관하여 알려지는 것이 개념을 정의(定義)하여, 우리는 다양한 개념의 정의와 상호관계로부터 개념에 관한 모든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이것이 귀납적 과정에 의하여 습득되는 모든 개념을 지닌 추론적 백과사전의 구조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논리적 추론인 3단 논법을 통하여 다른 모든 것을 추론할 수 있는 본질(the archai).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논리적 추론에 관한 이론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4요인 이론으로써, 즉 더 정확하게는 그의 제 3요인(동적이거나 접근이거나 효율적 요인)으로써 플라톤의 본질주의를 상당히 밝혔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본질주의는 미[美]를 아름다운 대상의 원인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과학인 지식(epistēmē)은 (증명될 수 있고 그러므로) 확실한 지식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 인하여 그리스의 비판적 이성주의라는 위대한 업적이 종말을 맞이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자신이 중요한 공헌을 했던 비판적 과학을 죽였다. 우주론에서 위대한 시원적 시도이자 자연에 관한 이론인 자연철학은, 증거를 (귀납적 증거를 포함하여) 요구하던 주로 그의 인식론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붕괴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식론이 파메니데스가 지칭했을 잘못된 방식인 귀납법에 의하여 지배를 당하게 되는 방식에 관한 축약된 이야기이다. 이것은 또한 역시 귀납법에 대한 반증을 포함하고 있는 이 논문들이 파메니데스의 세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계몽이라는 제목으로 수집되었는지의 주요 이유가 된다. 이 논문들은 주로 세 명의 위대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 제노파네스, 헤라클리투스 그리고 파메니데스 - 다루지만 또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토론하기도 하며 그리스 철학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창조적이던 기간으로부터 나중에 가르침을 받은 것과 아직도 가르침을 받을 것을 토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독단적인 인식론으로 인하여 종말을 맞았던 기간이며, 그 인식론으로부터 심지어 가장 현대적인 철학도 거의 회복되지 못했다고 언급된다.
주석
THE WORLD OF PARMENIDES
THE WORLD OF PARMENIDES
Essays on the Presocratic Enlightenment
Karl Popper
Edited by Arne F. Peterson,
with the assistance of JØrgen Mejer
CONTENTS
Editor's Preface
Preface
List of abbreviation
Introduction: Aristotle's invention of induction
and the eclipse of Presocratic cosmology
Essay 1 Back to the Presocratic
Addendum 1: A historical note on verisimilitude
Addendum 2: Some further hints on verisimilitude
Essay 2 The Unknown Xenophanes: an attempt to
establish his greatness
1 Founder of the Greek Enlightenment - 2 Xenophanes' early years - 3 The misunderstood
cosmology of Xenophanes - 4 Xenophanes as a
philosophical theologian - 5 Xenophanes' theory of knowledge - 6 on Xenophanes' materialism - 7 Did Xenophanes inaugurate historical writing? -
ADDENDUM 2: A new professional ethics on
Xenophanes' theory of truth - Editorial note
Essay 3 How the Moon might shed some of her light upon the Two Ways of Parmenides (I)
1 The structure of Parmenides' epos - 2 The
revelation of goddess - 3 The problem - 4 A
proposed solution of my problem - 5 Traces?
Or evidence? - 6 A few scattered comments -
7 A brief assessment
Essay 4 How the Moon might throw some of her light upon the Two Ways of Parmenides (1989)
Addendum with a note on a possible emendation
affecting the relation between the two parts of
Parmenides' poem
Essay 5 Can the Moon throw light on Parmenides'
Ways? (1988)
1 The problem - 2 The facts - 3 The paradox - 4 Clarification of the solution to the problem - 5 Parmenides' proof - 6 Parmendes' rationalist elenchus
Essay 6 The World of Parmenides: notes on Parmenides' poem and its origin in early Greek cosmology
1 The significance of cosmology - 2 The discovery of the earth and the sky - 3 The
beginning of philosophy - 4 Parmenides as a
cosmologist - 5 Parmenides was not an
ontologist - 6 Parmenides' new theory of
knowledge - 7 Parmenides and the methods
of science - 8 Why is the deceitful Way of
Opinion included in the revelation of the
goddess? - 9 A psychological conjecture
about Parmenides - 10 Summary of these
notes on Parmenides' poem - 11 Concluding
remarks - Addendum: A historical conjecture
about the origin of Parmenides' cosmology
Essay 7 Beyond the search for invariants
1 Parmenides and modern science - 2 Scientific inquery - an undending quest - (inquery와
undending은 inquiry와 unending의 오기임 - 역자
주) 3 Parmenides' teaching of the Two Ways -
4 Parmenidean anticipation of critical rationalism
- 5 Knowledge without foundations - 6 Realism
- 7 Rationality and the search for invariants -
8 Early ideas of opposites and change - 9 The
problem of change - 10 Parmenides' logical
resolution of the problem of change - 11 The
atomist critique of Parmenides' solution - 12
Parmenides' rationalist research programme -
13 The legacy of Parmenides' search for truth
- 14 The atomist theory of change - 15 The
Parmenidean theory of invariants - 16 Parmenidean roots of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theories of modern physics - 17 The reality of time - 18 Parmenidean three-
dimensional space and modern relativity theory - 19 Are there limits to rationality? - 20 Relativity theory and indeterminism - 21
Appearance of non-Parmenidean aspects in
physics - 22 Maxwell's demon - 23
Boltzmann's defence of atomism - 24
Resolution of the paradox of the second law of
themodynamics - 25 Schrödinger's version of
Boltzmann's theory - 26 The conversion of
modern physics to Boltzmann's theory - 27
Another Parmenidean apology of modern physics: the subjectivist interpretation of probability - 28 Some critical remarks on the
subjectivist interpretation of information theory - 29 Indeterminism in quantum physics as a
breakdown of Parmenideanism - 30 Other anti-Parmenidean developments of modern physics - 31 Non-Parmenidean explanation of
the expanding universe - 32 Summary of the
deviations from the Parmenidean programme -
33 A lesson from non-Parmenidean economics - 34 Beyond the search for invariants:
towards a logical theory of understanding -
Addendum: A note on opposites and existence in Presocratic epistemology
Essay 8 Comments on the prehistoric discovery of
the self and on the mind-body problem in
ancient Greek philosophy
1 The history of our picture of the universe - 2
A problem to be solved by what follows - 3 The prehistoric discovery of the self and of the
world of mind (world 2) - 4 The mind-body
problem in Greek philosophy - 5 Conjectural
versus ultimate explanation
Essay 9 Plato and geometry
1 Plato and geometry (1950) - 2 Plato and
geometry (1957) - 3 The dating of the Theaetetus (1961) - 4 on sources of knowledge and of ignorance - 5 Socrates' maieutic art of criticism versus Aristotle's induction(epagōgē) - 6 The cosmological origins of Euclidean geometry - 7 Plato, Timaeus, 54e - 55a
Essay 10 Concluding remarks on support and
countersupport: how induction becomes
counterinduction, and the epagōgē returns to the elenchus
Appendix Popper's late fragments on Greek philosophy
Fr. 0-5 on Parmenides (II) - Fr. 6 Democritus and materialism - Fr. 7-10
Aristotle's mathematics misunderstood - Fr. 11 An Aristotelian tangle of Heraclitus' and
Xenophanes' theory of the Sun
Index
EDITOR'S PREFACE
For the love of the Presocratics
In the summer of 1965 an International Colloquium on the Philosophy of Science was held at Bedford College, organized by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the British Society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under the auspices of the International Union of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and with William Kneale, Imre Lakatros, John Watkins, and others on the Organizing Committee. Several world notabilities in logic,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the philosophy of science participated in the meeting, which took place at a moment when logical positivism, the previously dominant brand of philosophy of science, was finally giving way to other approaches to logic and the theory of knowledge. The organizers' main motive for the Colloquium seems to have been to confront Popper with some of his opponents, especially Rudolf Carnap and Thomas Kuhn, in the hope that the outcome would demonstrate the strength and vigour of critical rationalism.
In more than one sense the meeting did not fulfil the organizers' intentions and hopes. The discussions between Popper and the invited opponents did not get far, and in spite of its topic and scope, Popper's Opening Address prompted only some brief remarks. The Address showed in great detail how Presocratic cosmology and reasoning were among the pillars of Western scientific thought, and that this foundation could be traced in research programmes of physics, astronomy, biology, and philosophy over the last 2500 years. Less than ever was there a need to pursue an Aristotle-inspired methodology, Popper argued; all that was needed was a revival of the spirit of Presocratic critical rationalism - a recommendation made in his then already classic lecture 'Back to the Presocratics', which was given in 1958 and published in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wo years before the Colloquium. (It is reprinted here as Essay 1.)
It seems that Popper's message was not really taken in by those who commented on the Address. Nor was there any discussion of another main point of the lecture: the breakdown of the atomic theory of change and the urgent need for a new theory of change. After the meeting, the appointed Editor tried to persuade some of those who spoke in the discussion to write more elaborate criticisms for the forthcoming proceedings. When the proceedings appeared, however, neither Popper's lecture nor the mobilized opposition was included, and in years to come the 'Opening Address', which remained in manuscript for decades, became almost as legendary among colleagues and students as was The Postscript to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before its publication in 1982-83. (Essay 7 is an enlarged version of the Address, which is published here for the first time.)
I knew nothing about all this when, studying in Oxford in 1968, I started to go to London once a week to attend Popper's lectures and seminars at the LSE. To me it was like jumping on to an express train in motion. At that time there prevailed in these seminars a captive atmosphere of real learning, a quest for knowledge and a kind of teaching that reflected many great moments in the history of science and philosophy. Outstanding scientists and philosophers from all over the world took part in Popper's seminars, where everybody seemed at home as members of a large family who could criticize each others' views without being on bad terms. And his lectures on logic and scientific method, which students of many nationalities attended, were the scene of a continuing educational process stirred by a creative and critical mind of unusual richness and rigour. Through a lecture Popper could create a thrill of suspense and revelation in his audience as he unravelled the circumstances of a discovery or recounted the solution to a philosophical or scientific problem. He made philosophy of science a living enterprise showing how ideas of the past could reason with ideas of the present.
After his lectures Popper would often invite a few students to his office to continue the discussion. on the first occasion that I was lucky enough to be included in such a group, the topic turned to cosmology and the Presocratics. At some stage I mentioned Parmendes' 'Being' and how it was understood at Oxford (in a course on early Greek philosophy I had been following at Corpus Christi College). I imagine that I could as well have said that Hamlet's 'To be, or not to be' was an echo of Parmenides, for no sooner had I mentioned Oxford than Popper interrupted along these lines: 'You see, Parmenides was neither a language analyst nor an ontologist but a cosmologist. His "Being" has nothing to do with ontology. The phrase "it is", or the logical copula, seems to me empty: it could bee at best a part of formal logic, from which only tautologies can follow. I therefore regard ontology as an empty word. Admittedly, the Greek "esti", like the English "is", may be used ambiguously as either a copula or as expressing existence. But since it is clear that Parmenides uses it to express existence, his "esti" should be translated by "it exist". So if we wish to speak of what things exist - of the furniture of our world, of the existence, for example, of atoms or of organisms or of properties - then I propose, following Parmenides, that we would do better to speak of cosmology.' I was stunned by these words which reminded me of Attica and a cosmological inventory, noted by the Danish poet Paul la Cour, of its mountains and temple ruins, the vertical blue cliff of the sea with ships in air, heavy with fragrances of pine and thyme, the sounds of cicadas and sheep carillons in a stillness flooded with sunlight.
The following year, when I had started to work as Popper's research assistant, our occasional conversations about the Presocratics took an important turn. In September 1969 the Poppers went on a visit of four months to Brandeis University, and to keep his secretary and me busy during their absence, Popper asked us to produce a newly typed version of his Postscript to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which at that time existed in galley proofs, winged with hundreds of handwritten and typed corrections and additions. During that autumn, Mrs Marjorie Walker and I worked intensively on this task, typing and checking, and I was so carried away that I forgot to reply to letters and to write reports about progress. In November my rude silence apparently broke Popper's patience. Instead, however, of asking the Convenor of the Department to take action, he wrote me two interesting and kind letters about some important new discovery he had made concerning the possible chronology of Parmenides' cosmological ideas, as well as a psychological conjecture about Parmenides' antisensualism. These letters were immediately retyped to be returned to Popper for further elaboration, and I adjoined a few enthusiastic reflections I had made years before when studying Heraclitus' fragments on light and night. Popper later suggested that the letters, as well as my comments, should go into the easy volume that I had proposed to compile of his writings on the Presocratics. (The two letters are printed here as the Addendum to Essay 6.)
The Poppers returned from Brandeis on 18 December, and shortly afterwards I took them two copies of the new version of The Postscript, a monument of almost 1200 pages, which was stored at once in Popper's bedroom; there it remained untouched for a decade, while a yellow folder containing our correspondence about Parmenides was put on a windowsill above the writing desk, where the typescript of the 'Opening Address' withered as time went by.
To be sure, there were many urgent matters to attend to during the first years of the 1970s, and nothing might have happened to the Parmenides papers had nature, or chance, not intervened in the shape of - a squirrel. I heard about the incident in the autumn of 1977 when I visited the Poppers in Penn for the first time since my leaving the LSE in 1971. Lady Popper laughingly told me that one day in spring a squirrel had entered their house unnoticed and had started to carry away various papers, among others the Parmenides folder, apparently with the aim of using these rarities as nesting material. However, the squirrel had dropped the yellow folder, which was too heavy for him, as the foot of a tree, where it was later found. When Popper joined the conversation I reminded him of our longstanding project of collecting his essays on the Presocratics and, alluding to the squirrel's competing interest in the Parmenides papers, I had no great difficulty in persuading him that the project had now become urgent. Amused, he proposed that I should undertake the editing of the essays, and from that moment I began collecting whatever could be found of papers written by him on the Presocratics and on the impact they had on later science and philosophy.
This was the beginning also of our many meetings, once or twice a year, for almost two decades. on these occasions Popper would typically put aside other matters for a day or two to work with me on Xenophanes' cosmology and Parmenides' epistemology, or he would spell out some of the endless notes to 'The Opening Address', answer textual queries about the Broadhead Lecture (Essay 6), and improve the 'Moon-essays' on which he worked for several years. one evening, when he suddenly saw how the solution to the riddle of Parmenides' 'two ways' could best be explained, he became so absorbed in reformulating an earlier draft that he worked through the night and stopped writing only for the following morning when I left for the airport. This nocturnal marathon happened when he was approaching his 90th year and resulted in an early version of Essay 3, which was published in The Classical Quarterly in 1992. A reading of Essays 3, 4 and 5 in the reverse but chronological order (indicated in brackets next to their titles), and then 'on Parmenides (II)', which is Fragments 0-5 in the Appendix, will reveal some of the main steps in the solution to this Parmenidean problem.
Not all the work on the Presocratics was done during these meetings, however, and as years went by Popper wrote many drafts that turned up only later. Towards the end of his life he showed an inclination to pick topics from this field, perhaps more frequently than from other fields that occupied him, for talks he had to give abroad (leading to the publication of papers such as 'Books and Thoughts', 'Toleration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and 'on a Little-Known Chapter of Mediterranean History', all included in In Search of a Better World). This course of events seems to have been in line with Popper's whole attitude to his pastime or hobby, as his devotion to the Presocratics may be considered, for when asked about the publication of his essays he would typically reply that it could certainly wait till after his death. It seemed that he had chosen the company of the Presocratics for some of his last preoccupations.
Popper never stopped working on his translation from ancient Greek. His enthusiasm here resembled that of his father, Simon S.C. Popper, who, in his leisure time, wrote poetry and made verse translations from Greek and Latin poets. Throughout this volume there are signs that Popper returned again and again to the original text trying to improve his rendering into English and German of the fragments most central to his interpretation of the Presocratics. A list of his various translations of the Presocratic fragments that appear in this book is contained in the Index of Translations, where the latest among the different translations of each translated passage is indicated by page numbers in italics.
Over the years I have had interesting and enjoyable collaborations with a number of colleagues and friends, and thanks to their suggestions many editorial problems have been solved. Mrs Melitta Mew and Mr Raymond Mew, South Croydon, have been most helpful in the search for relevant documents from Popper's Nachlass and, thanks to their efforts, it has been possible to include a number of late fragments here. Sir Ernst Gombrich, London, has taken great interest in the whole project and especially in Essay 2, the editing of which has benefited from his valuable suggestions; he also kindly translated Xenophanes' Fragments B8 and B22 into English on the basis of Popper's German translation. Dr J?rgen Mejer, Copenhagen and Athens, has kept a watchful eye on every Greek word and reference that appeared in the manuscript, and he has traced and checked most of the quotations from ancient Greek and Latin sources and worked out the corresponding Index of Names and Citations. Mr David Miller, Coventry, has offered much advice on the English idiom and on Popper's style of writing, and the limpid character of these essays can in part be ascribed to his critical reading and polishing of a text that in many places has come down to us as fragmentary notes. Thanks are also extended to Professor Jean Bernardi, Paris-Sorbonne and Montpellier, and Dr Erik Iversen, Copenhagen, for their encouragement and textual queries. Dr Troels Eggers Hansen, Roskilde, helped in tracing a number of remote references to early thermodynamics and the theory of relativity, and is responsible for the Index of Popper's translation of the Presocratics into English and German; I am indebted to him also for having kept an updated copy of the entire manuscript for reasons of security during all the years in which the working copy travelled with me around Europe. I am grateful to all of them for their contributions to the completion and quality of this book.
Above all, I feel grateful for having been drawn into the world of Karl Popper, for the great privilege of being a friend of his for many years, and for the good fortune I had in working with him on important problems and interesting topics in many fields - among them his fascinating account of Presocratic cosmology. Bearing in mind his lifelong love for the Presocratics I sorely regret that he did not live to witness the passage from antiquity to our time, completed during the spring of 1997, of the comet now known as 'Hale-Bopp', which Xenophanes or Parmenides might have seen when it last passed our solar system. Surely it would have given him great joy, and perhaps have inspired him to new historical conjectures about these great pioneers of astronomy.
Through his example and work Karl opened new roads to knowledge and cleared old ones, and in trying to follow the Parmenidean way of inquiry I, for one, have often been rewarded with the striking impression that, in spite of what mankind has done to it, the world may be still as new and fresh as it was at the dawn of our civilization.
Arne Friemuth Petersen
PREFACE
The present book contains various attempts to understand early Greek philosophy, on which I have worked for many years. I hope that these essays may illustrate the thesis that all history is, or should be, the history of problem situations, and that in following this principle we may further our understanding of the Presocratics and other thinkers of the past. The essays also try to show the greatness of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who gave Europe its philosophy, its science, and it humanism.
The essays have not been arranged in the order in which they were written. After one of the oldest essays, 'Back to the Presocratics', which presents some early attempts at understanding the main interests and achievements of the Presocratics, there follow a number of essays on the central problems that Xenophanes and Parmenides may have worked on. These later essays have been rewritten many times during recent years, and only one of them (Essay 3) has been published before. They supersede in some respects 'Back to the Presocratics', though that essay does deal with problems partly different from the more recent ones. This should also explain why there are recurrent themes and repeated attempts at rendering the ancient Greek text: different translations have been retained in this collection since the main themes appear in different contexts and light from essay to essay - light reflected from the splendour of Presocratic philosophy.
The longest of the unpublished essays (Essay 7), originally entitled 'Rationality and the search for invariants', dates back to the 1960s. It tries to show that Heraclitus ('everything changes') and Parmenides ('nothing changes') have been reconciled and combined in modern science, which looks for Parmenidean invariance with Heraclitean flux. (As Emile Meyerson pointed out, this is done in physics by differential equations.) The final title of this essay indicates that 'the search for invariants' may advantageously be replaced by a theory of understanding founded on Xenophanes' early ideas.
When as a 16-year-old student I first read Parmenides's wonderful poem, I learnt to look at Selene (the Moon) and Helios (the Sun) with new eyes - with eyes enlightened by his poetry. Parmenides opened my eyes to the poetic beauty of the Earth and the starry heavens, and he taught me to look at them with a new searching look: searching to determine, as does Selene herself, the position of Helios below the Earth's horizon, by following the direction of her 'eager look'. None of my friends who I told about my rediscovery of Parmenides' discovery had looked for this before, and I hoped that some of them liked it as much as I did. It was, however, only some seventy years later that I realized the full significance of Parmenides' discovery, and this made me realize that what it must have meant for him, the original discoverer. I have tried since to understand and explain the importance of this discovery for the world of Parmenides, for his Two Ways, and its great role in the history of science, and especially of epistemology and of theoretical physics.
As mentioned, these essays overlap in a number of respects, showing repeated attempts to solve the problem of understanding the ideas of the Presocratics. I apologize to my readers if the repetition is sometimes excessive. I am grateful, though, to my friends, in particular Arne F. Petersen, for their determination in putting together and editing the essays, in spite of their knowing that I am not an expert in this field, that I am a mere amateur, a lover of the Presocratics. I think that the essays reveal that I love three cosmologists above all the others: Xenophanes, Heraclitus, and Parmenides.
Karl R. Popper
Kenly, 27 February 1993
ABBREVIATIONS
C. & R. Karl R. Popper, Conjectures and Refutations, London, 1963, 5th edn, 1989.
DK H. Diels & W. Kranz, Fragmente der Vorsokratiker, 10th edn, Berlin, 1960.
L.d.F. Karl R. Popper, Logik der Forschung, Vienna, 1934, 10th
edn, 1994.
L.Sc.D. Karl R. Popper,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London, 1959.
O.K. Karl R. Popper, 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 Oxford, 1972, 2nd edn, 1979.
O.S. Karl R.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6th
edn, vols I and II, London, 1969.
S.I.B. Karl R. Popper, The Self and Its Brain - An Argument
for Interactionism, Part I (Part II written by Sir John
Eccles), Berlin-Heidelberg-New York, 1977, 3rd edn,
1990.
INTRODUCTION
Aristotle's invention of induction
and the eclipse of Presocratic cosmology
With the sole exception, perhaps, of Protagoras, who seems to argue against it, all serious thinkers before Aristotle made a sharp distinction between knowledge, real knowledge, certain truth (saphes, alētheia; later: epistēmē), which is divine and only accessible to the gods, and opinion (doxa), which mortals are able to possess, and is interpreted by Xenophanes as guesswork that could be improved.
It seems that the first who revolted against this view was Protagoras. There exists the beginning of a book by him, where he says: 'We don't know anything about gods - neither whether they exist, nor whether they don't exist.' I suggest that his homo mensura proposition -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 is derived from this, and that his argument was as follows: 'About the gods we don't know anything, so we don't know what they know. Thus human knowledge must be taken as our standard, as our measure.' In other words, the homo menusra proposition of Protagoras is a criticism of his predecessor's distinction between mere human opinion and divine knowledge. 'Therefore we must take human knowledge as our standard or measure.'
Other thinkers held similar views, but all of them can be placed historically after Protagoras: for example Democritus, whose native city, like Protagoras', was Abdera; although Democritus was, according to Diogenes Laertius, the teacher of Protagoras, more reliable historical sources place them in the reverse order. Protagoras was most probably an empiricist revolting against Parmenides' rationalism. This point is stressed several times in the present book.
Yet after Protagoras - but only until Aristotle - most thinkers of importance continued to hold the view of Parmenides and his predecessors that only the gods have knowledge. This is perfectly clear in Socrates. It is even clearer in the much more dogmatic Plato, because Plato's dogmatism pertains mainly to the laws of the state; although he does not want these laws to be written down, they should be rigid and quite immutable. Concerning the field that we now describe as natural science, Plato says explicitly (in the Timaeus, for example, but also in other places) that all he can tell us is at best only 'truthlike' and not the truth: it is, at best, like the truth. This term is usually translated by 'probable', but we have to make the distinction between probability in the mathematical sense and in the totally different sense of truthlikeness. I therefore break with the tradition of mixing up these two notions; and since we cannot hope to change what mathematicians mean by 'probability', I use the term 'truthlikeness', or 'verisimilitude', especially for theories. The word that Plato uses is really 'similar', and sometimes he says 'similar to truth'; the word is also connected with 'pictorial similarity or likeness', and this seems, indeed, to be the root of the meaning. According to Plato, humans can have only this kind of knowledge; he rarely calls it opinion, which is the usual term used, for example by his contemporary Isocrates, who says 'We have only opinion.'
The decisive break comes with Aristotle. Strangely enough, although Aristotle is a theist - he even has a kind of theology - he definitely breaks with the tradition of distinguishing between divine knowledge and human guesswork. He believes that he knows: that he himself has epistēmē, demonstrable knowledge. And for most epistemologists of the West, it has remained so ever since.
Thus Aristotle breaks with the reasonable tradition that says that we know very little. He thinks he knows a lot; and he tries to give a theory of epistēmē, of demonstrable knowledge; and being a clever man, and a good logician, he finds that his assumption that there is demonstrable knowledge involves him in an infinite regress, because this knowledge, if demonstrated, must be logically deduced from something else, which in turn must also be demonstrated knowledge, and therefore in its turn deduced from something else, and so on.
So he gets to the problem: how can this infinite regress be stopped? Or: what are the real original premises, and how do we make sure of their truth? He solves this fundamental problem of knowledge by the doctrine that the real premises are statements of definitions. Here he invokes, at least sometimes, a kind of strange 'double thinking' or 'double talk.' Definitions, on the one hand, give to words a meaning by convention and are therefore certain (analytic, tautological). But if they are only conventional, and therefore certain, then all epistēmē is truth by convention and therefore certain. In other words, all epistēmē is tautological, deduced from our definitions. This conclusion Aristotle does not want, and he therefore proposes that there exist, on the other hand, also definitions that are not conventional and not certain. Yet he does not stress that they are not certain, only that they are the result of 'seeing the essence of a thing', and so synthetic; they are the result of induction.
This seems to have been the way in which induction entered into the theory of scientific method, of epistemology. According to Aristotle, induction is the procedure of leading the pupil (or the scholar in the sense of the learner) to a place, to an outlook, from which he can see the essence of the object of his interest. The description of this essence he then lays down by definition as one of his fundamental principles, the archai. In Aristotle these principles are definitions, and at the same time they become (I suggest by some kind of 'double talk') the certain truth that only conventional and tautological definitions can have.
Aristotle's theory of induction is similar to the social initiation of a young man: it is the procedure of getting to an outlook from which you can actually see the essence of adult life. Inducing is a way of making definitions a rich source of knowledge. But definitions are in fact nothing like this: there cannot be such things as informative definitions.
Aristotle's theory of induction - the way we are led to see, to intuit, the essential property, the essence, the nature, of a thing - is double talk in another sense as well: it is achieved in part by regarding it critically from several sides (as in a Socratic discussion), and in part by considering many cases, many instances of it. The latter sense of induction leads to the construction of a kind of inductive syllogism. Premises: Socrates is mortal; Plato is mortal; Simmias is mortal; and so on. All these are men. Conclusion (which, Aristotle knows, is invalidly reached): All men are mortal. Or even the further conclusion, which goes to the essence of the problem: it is in the nature of every generated thing that it must decay and perish.
As just mentioned, Aristotle himself is perfectly clear that an inductive syllogism is invalid; but he does believe that we somehow arrive, by its help and by the intuition of the essences of things referred to, at statements that describe these essences, or some essential properties, and that these statements are, as definitions, true and certain and can serve as the ultimate premises of epistēmē, of demonstrated scientific knowledge.
I suspect that the logician Aristotle had a bad intellectual conscience when he introduced this theory. There are two arguments supporting this conjecture. one is that in spite of his generally very objectivist attitude, he becomes, in a strange way, a subjectivist in the theory of knowledge: he teaches that in knowing a thing, in intuiting it, the knower and his knowledge become one with the object known; a theory that may fairly be described as mysticism. A theory that the knowing and the known are identical is, clearly, a form of subjectivism, and a very different from the objectivism of demonstrable or syllogistic knowledge. But it helps somehow to get over the chasm across which induction offers a very insecure bridge.
The other indication that Aristotle had a bad conscience when he invented induction is that he projects his invention of induction on to Socrates, of all people. Yet Socrates would have been the last person to claim that he (or any man) possessed epistēmē that can be based upon such a procedure, simply because he always claims to have no epistēmē: Socrates claims not to know, as Aristotle himself puts it - though what he says, more literally translated, is that Socrates professes (or pretends) not to know.
It seems very strange to burden Socrates, of all men, with the responsibility for inventing induction. The motive may be the thought that if Socrates, of all men, saw the need for induction, then it could not be as the result of a bad argument, an uncritical argument. But Aristotle has to get over two difficulties. He has to deny that Socrates seriously claims not to know; and, indeed, he suggests that Socrates' profession of ignorance is just ironical. (This is 'Socratic irony'.) The other difficulty is to interpret (or convert) the Socratic method - the elenchus, critical refutation by counterexamples - into a positive method of proof.
What Socrates attempts, with his elenchus, is to prove ignorant those who believe that they know. At the start, they believe that they know all about a subject (virtue, for example); and then Socrates shows them with the help of concrete, experiential instances - of counterexamples - that they do not. This method Aristotle now interprets as a method of searching for the essence by way of concrete evidence. Although this interpretation has a ceratin plausibility the conversion of the elenchus into an epagōgē (inductive proof) creates for Aristotle a need to invoke Socratic irony.
It is now understandable why Aristotle chooses Socrates as the person to be burdened with the responsibility for an invention that he, Aristotle, himself had made and for which he, as it were, does not dare to bear the responsibility. That seems to have been the situation: Aristotle knows that he knows (and that he knows that he knows makes him a bit similar to Protagoras, who was also an empiricist). However, Aristotle does not admit what Protagoras might have perhaps admitted - namely, that human knowledge is not certain. Protagoras might have admitted indeed that, even though we are the measure of all things and cannot do much better than we actually do, we can perhaps improve our knowledge a little, but not a great deal, and therefore we have to take human knowledge as the measure of all knowledge. This does not say, however, that he believed in epistēmē in the way that Aristotle did.
Aristotle was described admiringly by Dante as 'The master of all who know'. In my opinion this is a correct description, but he should not be admired for it, since knowledge in the Aristotelian sense is really not accessible to man. Xenophanes and Socrates (and Plato too, to the extent that he dealt with problems of natural science) are right in saying 'We do not know, we only guess.' Aristotle was undoubtedly a great scientist (though not as great as Democritus, who Aristotle appreciates but Plato never mentions and - according to certain traditions - is supposed to have hated); but he was pre-eminently a scholar and a great logician, whom we can thank for the invention of logic, and a great biologist. There are many things that speak in his favour, although his theories are all studies in dogmatism. Indeed Aristotle was the first real dogmatist - even Plato, though a political dogmatist, was not a dogmatist in epistemology.
We may say that the Aristotelian ideal of science is more or less an encyclopaedia full of concepts, the names of the essences. What is known about these essences defines the concepts, so that we can deduce everything about the concepts from their various definitions and their interconnections. This is the structure of a deductive encyclopaedia with all its concepts obtained by inductive procedures: the archai from which we can then derive everything else by means of logical deductions, the syllogisms.
Admittedly, Aristotle, by his theory of logical derivation, and by his theory of the four causes, or more precisely his third cause (the moving or proximate or efficient cause), achieved a considerable clarification of Plato's essentialism (which, for instance, made beauty the cause of the beautiful object).
Nevertheless, I think that with Aristotle's theory, that science, epistēmē, is (demonstrable and therefore) certain knowledge, it may be said that the great enterprise of Greek critical rationalism came to an end. Aristotle killed the critical science to which he himself had made a leading contribution. The philosophy of nature, the theory of nature, the great original attempts in cosmology, broke down after Aristotle, owing mainly to the influence of his epistemology, which demanded proof (including inductive proof).
I think this is in brief the story of how epistemology as we know it came to be dominated by what Parmenides would have called a wrong way, the way of induction. This is also the main reason why these essays, which also contain a disproof of induction, have been collected under the title The World of Parmenides: Essays on the Presocratic Enlightenment. They are mostly about the three great Presocratics - Xenophanes, Heraclitus and Parmenides - but they also discuss Socrates and Plato, and what was later learnt and may still be learnt from the greatest and most inventive period in Greek philosophy; a period that came to an end with Aristotle's dogmatic epistemology, and from which even the most recent philosophy can be said hardly to have recovered.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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