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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지정학 요충이 아니다/ 정의길/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2. 09:02

사설.칼럼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중동은 지정학 요충이 아니다”

등록 :2015-06-11 18:27

 

 

이슬람국가(IS)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라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농경 등 문명이 시작된 것은 비옥한 땅 등 환경적 요인에다 지정학적 요인이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인류가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정주에 적합한 지역으로 가장 먼저 조우한 땅이 이곳일 것이다. 지구상 어느 곳보다 인류의 정주 역사가 길다. 이는 자연스레 농경을 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 농경이 시작된 배경이다.

인류 문명의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역사에서 항상 중동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지정학적 위상이 주목되고 강조됐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세 대륙의 접점 지대인데다, 석유의 발견은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를 불변의 진리쯤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미국은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중동에서의 영향력과 패권을 지키려 한다. 이런 미국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는 쪽이나 그렇지 않은 쪽이나 중동은 미국 등 역대 강대국의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 중동의 지도가 그려진 1차대전 종전 때에도 중동은 서방 강대국들이 그리 관심을 갖는 곳이 아니었다. 서방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분할이 거의 끝난 20세기 초까지도 이집트를 제외한 중동 대부분 지역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히 패권국가 영국에 이 지역은 러시아의 세력팽창을 막는 완충지대에 불과했다.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유지가 영국의 주요 관심사였다. 영국은 1차대전 도중 이스탄불을 러시아에 넘겨줄 의사를 한때 내비치기도 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마지막 대결인 영국과 러시아 간 그레이트게임의 배경엔 아프간을 둘러싼 양쪽의 지정학적 오판이 자리한다. 영국은 러시아가 남하해 인도까지 집어삼킬 수 있다고 우려해 그 길목인 아프간을 선점했다. 러시아로서는 영국이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밀고들어오는 것으로 보였다. 아프간 부족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친 영국군은 점령을 위해 세차례나 침공을 감행하면서 막대한 인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아프간에 또다시 과도한 지정학적 가치를 부여하며 여기서 전쟁을 벌였다. 이는 소련의 붕괴로 이어졌고, 미국은 이슬람주의 세력의 무장과 부상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중동은 아프간보다 더한 지정학적 가치의 신화로 포장되어왔다. 미국 등 강대국들은 석유와 같은 이권을 챙기려고 중동에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실천했다. 이는 중동의 이슬람주의 세력을 자극해 더욱 분쟁을 격화시키는 악순환의 길로 이어졌다. 이는 어쩌면 ‘자기충족적인 예언’의 실현 과정이었다. 지정학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개입하고, 이런 개입이 그 지정학적 가치를 더욱 끌어올렸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70년이 되어가는 현재 중동분쟁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아랍 대 이스라엘로 폭발한 분쟁은 지금 수니파 대 시아파,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 분쟁으로 바뀌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중동에서도 심장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이슬람국가라는 가장 반미적이고 비타협적인 집단에 의해 점령된 지 1년이 되고 있다. 미국의 이익은 아직 치명적 타격을 받지 않았다. 미국도 이제는 이슬람국가 격퇴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 지역을 놓고 미국이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 이라크전쟁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도대체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와 그곳에서 미국의 이익은 무엇인지 헷갈린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문명이 발원할 때 초승달 지대는 비옥했지만, 지금은 사막으로 바뀌었다. 석유의 전략적 가치도 퇴색하고 있다.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 신화도 바뀌어야 할 때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