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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말하기 교육을 많이 받는다/ 박현/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6. 12. 08:43

사설.칼럼칼럼

[특파원 칼럼] 미국이 사드 성능을 말하지 않는 이유 / 박현

등록 :2015-06-11 18:21

 

요즘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사드) 체계와 관련한 미국 당국자들의 말을 듣다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방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사드 레이더가 중국 영토나 중국이 미국을 향해 발사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으면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거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거기서 끝이다. 구체적인 이유나 논거를 대지 않는다. 프랭크 로즈 국무부 차관보가 세미나에서 ‘일본에 이미 사드 레이더 두개가 배치돼 있기 때문에 한국에 배치한다고 중국에 추가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의 답변을 하긴 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배치되는 레이더가 일본에 배치된 레이더보다 어림잡아 1000㎞ 이상 중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더 정밀한 탐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논거로는 빈약하다.

미국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말하기 교육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답변이 논리정연하다. 그러나 사드 문제와 관련해선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미국이 공개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드 성능이 군사기밀로 분류돼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맹국에서 1년 가까이 큰 정치적 논란거리가 된 사안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치고 빠지기 식으로 얘기하면서 한국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말만 되뇌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의문이 꼬리를 문다. 사드 레이더는 전진배치 모드와 종말 모드 두가지 있는데, 전자의 탐지거리는 1800~2000㎞이고 후자는 600~900㎞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말만 떠돈다. 더 나아가, ‘익명의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는 종말 모드가 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한겨레>의 취재 결과,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문서엔 두 모드를 8시간 안에 전환할 수 있다고 적시돼 있다. 위기 상황에선 대북용이 대중국용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시어도어 포스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미국 미사일방어 전문가 2명의 분석 결과, 사드 레이더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3000㎞ 이상 거리까지 탐지·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됐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무기라면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한다. 주로 국방부 쪽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문제는 사드가 ‘미-중 파워게임’에 이용되는 전략무기라는 것이다. 이 레이더는 탐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미 본토 조기경보 레이더망에 전송할 수 있다는 게 포스톨 교수의 분석이다.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 미사일방어 체계에 본격적으로 통합된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와 무관한 일로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가 중국의 잠재적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 군사전략가들은 사드 레이더를 중국에 대한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박현 워싱턴 특파원
미국은 앞으로 사드 배치를 한국에 공식 요청할 때도 사드의 성능과 운용방식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그대로 말했다간 한국이 배치를 꺼릴 수 있는 탓이다. 사드 문제에 관한 한, 나는 우리 정부가 거부 의사를 빨리 밝히면 밝힐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공식 요청하는 단계까지 일이 진행된다면, 그동안의 한-미 동맹과 현 정부의 성격상 그때 가서는 거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