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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시맨더(ANAXIMANDER)와
그리스 우주론의 기원
찰스 H. 칸 (CHARLES H. KAHN)
쿠르트 폰 프리츠 (Kurt von Fritz)에게
목차
서문 xi
2쇄 서문 xiv
약어 및 인용에 사용된 짧은 제목 xix
관련서적 xxi
개론 3
아낙시맨더의 견해에 대한 문서 증거
고대철학서에 대한 개론 11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 및 그가 인용하는 사람들,
12. 초기 그리스 철학에 대한 역사가로서의 테오프라스투스,
17. 추가 기록: 문헌자료를 사용함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투스의 상대적 정확성에 관하여, 22.
고대철학서의 배열 25
아낙시맨더에 대한 고대철학서의 주제, 26. 고대철학서에서
저자들 요약, 27. 딜스-크란츠(Diels-Kranz)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속의 배열과 일치, 27.
고대철학서: 원문과 비평 28
아낙시맨더의 우주론
I. 자연세계에 대한 밀레투스학파의 이론
지구의 위치, 76. 지구의 형체, 81.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두 지점 (대척지), 84. 천체의 형성; 별과 태양; 달; 크기,
위치, 그리고 고리의 거리, 85. 기상학, 98. 바람; 비;
번개와 천둥, 100. 바다의 기원, 102. 동물의 기원; 인간의
출현, 109. ψuχhv, 114. 추가 기록: 구형(球形) 지구에 대한
초기 이론, 115.
II. 원소와 대립하는 것들: 세계의 원소 119
고전적 교설, 121. 기원, 133. 추가 기록: 아낙사고라스
(Anaxagoras)와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사이의
연대기적 관계에 대하여, 163.
III. 아낙시맨더의 글: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 166
단편 글의 언어, 168. 글자 해석, 178. 단편 글의 철학적 의미,
183. 추가 기록: 단편 글의 초기 해석, 193.
결론
밀레투스학파의 생각과 자연에 대한 그리스 철학 199
부록
I. 초기 그리스 철학에서 코스모스(KOSMOS)라는 용어의 용법 219
II. 아낙시맨더의 아페이론(APEIRON) 231
주석: 초기 그리스 산문 논문 240
색인
주제 241
명칭과 인용 243
그리스 용어 248
삽화
아낙시맨더 속표지
석판 I. 바빌론의 세계지도 88쪽 맞은 편
석판 II. 89쪽 맞은 편
A. 비안키니의 평면 천체도
B. 컴퍼스를 이용한 창조
서문
이 논문은 몇 년 전에 시작된 파메니데스(Parmenides)의 시(詩) 연구의 결과이다. 나는 파메니데스의 논증이, 그가 스스로 창조한 창조물이 아니었지만 그로 하여금 사물의 본성(피지스: fuvsiς) 및 세상의 질서 잡힌 구조(코스모스: kovsmoς)와 같은 기초적 개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허용한 견해인 물리적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성적 관점에 대비해서만, 이해될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여기서 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이 파메니데스 이전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인데, 그 개념의 근원이 틀림없이 기원전 6세기 밀레투스(Miletus)에 위치해 있다는 가정을 근거로 진행된다. 이 가정은 그리스 철학의 기원에 대한 모든 고대의 설명 속에 함축되어 있어서, 한편으로는 호머(Homer)와 헤시오드(Hesiod)의 물리적 개념과 다른 한편으로는 아낙시맨더(Anaximander)와 아낙시메네스(Anaximenes)의 물리적 개념 사이의 근본적인 대비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듯하다.
여기에 제시된 역사적 발전에 대한 견해는 오직 두 가지 면에서 전통적 체계와 다르다. 나는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독창성을 헬레니즘적 상상력의 상상물로서 - 혹은 적어도 과장 - 무시했다. 다시 말해서 자연연구에 관한 한, 나는 이탈리아학파를 이오니아학파의 분파로서 취급했지 경쟁자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세 명의 밀레투스학파 철학자들의 묘사되는 규모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바처럼 일정하지 않다. 고대 역사기술의 기념비적 문체에서 밀레투스학파 철학자들은, 많은 동료들의 꼭대기에 서서, 동일한 크기와 반열의 세 상(像)으로 제시된다. 나는 그 인물들의 위대함을 사상사에서 그들의 역할이 지닌 중요성에 맞추어 조정하려고 노력했다. 탈레스(Thales)와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맨더의 선배이자 제자로서 아낙시맨더 다음 위치를 각자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과 비교되면 왜소해진다.
통상적인 처리로부터의 또 다른 일탈이 논문의 규모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파메니데스를 (그리고 훨씬 더 많이 그들의 후계자들을) 다루면서 나는 그들의 특징적인 업적으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주로 무시했다. 이 책은 초기 그리스 철학사가 아니라 밀레투스학파의 우주론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후기 사상가들은 여기서 주로 밀레투스학파의 후계자와 채무자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나는 최근에 출판된 G. S. 커크(Kirk)와 J. E. 레이븐(Raven) 공동저작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캠브리지, 1957년)을 언급하고 싶은데 그 책은 주석에서 체계적으로 언급하기에는 너무 늦게 나에게 도착했다. 몇 가지 요점에서 증거에 대한 저자들의 세밀한 분석으로 인하여 나는 나의 견해를 재언명하게 되었다. 그들의 저술은 여기서 토론된 많은 문제들에 관하여 중요한 서술을 제공하여 매우 상세하게 비교되어야 한다.
몇 가지 초기 관련 연구가 최근에야 나의 눈에 들어온 반면, 몇 가지 다른 관련 연구는 나의 원고가 완료된 후에 출현했다. 한두 가지 경우에 새로운 토론이 이제 요구될 것이다. 아마도 이런 종류로 가장 중요한 사례는 W. K. C. 거스리(Guthrie) 교수의 “소크라테스 이전의 세상-그림”에 관한 기고문, 하버드 신학 리뷰 (Harvard Theological Review), XLV (1952년), 87인데 나는 나의 책이 인쇄에 들어간 후에야 그 기고문을 읽었다. 코스모스( kovsmoς)가 처음부터 둘러싸고 있는 신적(神的)인 것인 페리엑손(perievχon)과 구별되었다는 - 그래서 코스모스(kovsmoς)와 신(神: to; pa'n)을 스토아학파가 구분한 것은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이다 - 그의 제안은 내가 보기에 합당하기에 나는 이 생각을 부록 I에 이제 수용하고 싶다. (나는 그 제안이 이미 부록 II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스리 교수의 “놀라운 숫자의 기원전 6세기 및 5세기 초의 그리스 철학 및 종교 사상가들이 우주의 본질에 대한, 생명체에 대한, 신성(神性)에 대한 공동 그림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일반론에 더할 나위 없이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그림은 그들 중 한 사람의 창조물이 아니라, 철학적이지 않은 군중이 그 그림을 공유했다고 그리스 문학에서 어떤 암시가 또한 제안하는 바처럼,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가정했던 것처럼 오히려 보인다”고 그가 부언할 때 나는 그와 의견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이상의 철학 이전의 견해들의 요소가 이오니아학파의 우주론에 섞여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다고 나는 말하겠다. 그러나 상고시대에 결핍되어 있는 특성은 바로 철학자들의 경우에 매우 본질적인 것이다: 이성적 명쾌함과 일관성을 위한 체계적 관심. 아낙시맨더를 헤시오드에게 흡수시키려는 최근의 경향은 - 지식의 원리 (Principium Sapientiae)에서 또한 그에 대한 콘포드(Cornford)의 탁월한 취급의 기초를 이룬다 - 그리스 서사시인들과 초기 철학자들을 특징짓는 자연에 대한 매우 다른 태도들을 혼동시킴으로써, 각자의 구별되는 특징을 흐리게 하는 데 도움을 줄 따름이다. 이 첫 번째 철학자들이 일관적이고 이미 만들어진 우주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면, 그들은 결국 첫 번째가 아니었을 텐데. 다른 한편으로 밀레투스학파와 그들의 후계자들이 일관적인 우주 구도를 완성하자마자, 그 구도는 자연스럽게 시인들과 교육을 받은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우리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나 기원전 432년의 포티다이아 비문 (Potidaea Epitaph of 432)에 있는 - 혹은 날짜가 없는 오르페우스의 시에 있는 - 그런 구도의 흔적을 우리가 발견한다면, 이오니아학파 우주론이 대중적 상상력 속에 이전에 존재한 것의 증거로서가 아니라 이오니아학파 우주론이 확산된 증거로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속표지의 사진을 게재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하여 Soprintendenza alla Antichità di Roma I에 감사하고, 석판 I의 사진을 게재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하여 대영박물관의 보관위원들에게 감사하고, 석판 IIA의 사진을 게재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하여 파리(Paris)의 문서보관소에 감사하고, 석판 IIB의 사진을 게재하도록 허락한 것에 대하여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에 감사한다. 나는 게재된 하나 이상의 기념물에 관한 정보에 대하여, 로마의 국립박물관 M. 보르다(Borda) 교수와 대영박물관의 D. J. 와이즈먼(Wiseman) 박사뿐만 아니라 오토 J. 브렌들 (Otto J. Brendel) 교수, 이블린 B. 해리슨 (Evelyn B. Harrison) 교수, 그리고 O. 노이게바우어(Neugebauer) 교수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 책이 약 10년간의 연구 결실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교수들과 학자들에 의하여 이 책은 영향을 받았다. 나는 어떤 교수보다도 시카고 대학의 데이비드 그린 (David Grene) 교수와 이브즈 R. 사이먼 (Yves R. Simon) 교수를 생각하는데 그들은 최초로 나를 그리스 문학과 철학에 소개한 분들이다 - 그리고 최초의 인상은 지속적으로 남아 있다. 보다 직접적인 정도로 나는 심사위원회의 모지스 하다스 (Moses Hadas) 교수와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데 그들은 컬럼비아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으로서의 초벌원고 대부분을 읽고 비판했다. 전체 저서의 읽기 용이함은 특히 길버트 하이트 (Gilbert Highet) 교수의 비평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많은 난해한 논증과 많은 어설픈 표현을 나에게 지적해주었다. 나의 친구 마틴 오스트왈드 (Martin Ostwald) 교수는 탁월한 충고로 나를 도왔으며 게다가 교정쇄 전부를 통독했다.
스탠우드 카키 로지 재단 (Standwood Cockey Lodge Foundation)에 특별히 나는 감사를 표하는데 그 재단의 충분한 기금으로 인하여 이 책은 발간될 수 있었으며, 컬럼비아 대학 출판부의 모든 직원들에게도 나는 특별히 감사를 표하는데 그분들은 저자인 나에게 내가 원하는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지금 뮌헨 대학에 봉직하고 있는 쿠르트 폰 프리츠 (Kurt von Fritz) 교수에게 헌정하면서, 다양한 시간과 장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다정하게 이끌어주고 꾸준히 이 책에 관심을 가져준 데 대하여 나의 지속적인 감사를 기록하고 싶다.
C. H. K.
뉴욕시 컬럼비아 대학교
1959년 4월
2쇄 서문
몇 년 동안 이 책이 인쇄되지 않았지만 학자들이 여전히 요구를 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에, 다시 이 책을 인쇄하게 될 기회가 지금 찾아와서 나는 기쁘다. 몇 가지 사소한 수정이 본문에 가해졌지만 사진 게재의 상황에는 근본적인 수정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도 그만큼 좋은 것이다. 논문이 처음 발표된 지 25년이 지나서 다시 읽으면서, 내가 그리스 철학과 과학에 관하여 여기에 제시된 그림을 변경시키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여전히 내가 보기에 옳다. 몇 가지 점에 관하여, 물론, 나의 생각이 변했다. 초기의 철학과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나의 견해는 1970년의 기고문 “초기 그리스 천문학에 관하여 (On Early Greek Astronomy)” (그리스 연구저널 [JHS: Journal of Hellenic Studies], 99-116쪽) 보다 완벽하고 정확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 기고문은 일종의 이 책의 후기로 읽혀야 한다. 그리고 이 책에 서술된 헤라클리투스의 원문에 대한 해석은 전체적으로 헬라클리투스의 기교와 사상 (The Art and Thought of Heraclitus) (캠브리지, 1979년)에 있는 동일한 자료에 대한 나의 토론에 의하여 대체된다. 그러나 밀레투스학파의 우주론과 그 우주론이 지닌 침투적이고 영구적인 영향력의 특징에 관해서는 나는 나의 견해를 굽힐 수 없다. 내가 당시 인정한 바와 같이 아낙시맨더(Anaximander)의 개인적 역할에 대한 나의 강조가 과장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자료의 특성으로 인하여 우리는, 더 상세히 기록되거나 더 통찰적인 방식으로 이 강조를 수정할 수 없다. 밀레투스학파의 우주론의 체계적 통일성이 단 한 사람의 정신으로 이룩된 작품인양 그러나 또한 모든 그리스 자연철학에 대한 독창적이고 지속적인 배경으로서, 이런 방식으로 그 통일성을 강조함으로써, 우리는 그렇지 않으면 주의를 벗어날 관계와 지속성을 볼 수 있다.
이 책이 초판본의 형태로 다시 출판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그리스와 라틴어로 된 많은 숫자의 번역되지 않은 글로 인하여 비전문가인 독자들이 완벽하게 이 책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원문을 변경할 수 있다면 나는 번역과 음역(音譯)을 더 자유롭게 할 텐데.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불행하게도 여전히 고전 박사학위 논문으로서 그 원형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나는 다음 비평을 세부요점에 대한 학문의 부분적 갱신으로서 제공한다.
16-17쪽. 결국 “크리티아스(Critias)” 글을 에우피데스(Euripides)에게 귀속시킨 데서 아에티우스(Aëtius)는 옳을 것이다. 헤르메스(Hermes) 105호 (1977년), 28-42, A. 딜레(Dihle) 참조.
50쪽. pavnte" oiJ oujranoιv가 아낙시맨더에게 하늘의 고리들을 의미했다는 젤러(Zeller)의 제안은 더 이상 합당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을 세계 체계의 주기적 반복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수용하는 해석자들은 아마도 옳다. 훌륭한 토론에 대하여 J. 만스펠트(Mansfeld)의 가짜 히포크라테스 논문 peri; eJbdomavdwn 1-11장 및 그리스 철학 (The Pseudo-Hippocratic Tract peri; eJbdomavdwn ch. 1-11 and Greek Philosophy) (아센[Assen], 1971년), 44쪽 이하 참조.
55쪽. 히폴리투스(Hippolytus)에게서 나온 증언에서 나는 이제 uJgrovn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표시하고 싶다: 전해진 원문도 제시된 교정안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84쪽 이하. 주간론(週間論: De Hebdomαdibus)의 날짜에 관하여 위에 인용된 J. 만스펠트의 연구서 (50쪽에 대하여)를 이제 참조하라. 만스펠트는 기원전 1세기의 날짜를 지지하여 논증한다. 그가 옳다면 이 논문에 대한 모든 언급은 나의 저서로부터 삭제되어야 한다. (84쪽 이하에 덧붙여, 이것은 94, 207 및 224쪽에도 관련된다.)
88쪽. 내가 이 책을 썼을 때 나는 황도경사(黃道傾斜: the obliquity of the ecliptic)의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함을 깨달아서, 그런 지식을 아낙시맨더에게 귀속시키는 데서 우리가 가진 자료가 올바를 수 있는지를 의심할 이유가 있다. “초기 그리스 천문학에 관하여 (On Early Greek Astronomy)”, 그리스 연구저널 (JHS: Journal of Hellenic Studies) 90 (1970년), 101-109 참조.
92쪽. 노이게바우어(Neugebauer)에게서 나온 인용구의 역사적 중요성을 내가 해석했는데 심각하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교정에 관하여 그리스 연구저널 (JHS: Journal of Hellenic Studies) 90 (1970년), 104쪽, 주석 18 참조.
93-4쪽. “우리 머리 주위를 모자처럼” 도는 별들이라는 아낙시메네스(Anaximenes)의 견해에 대한 탁월한 천문학적 해석에 관하여, 그리스 연구저널 (JHS: Journal of Hellenic Studies) 90 (1970년), 108쪽, 주석 34 참조.
108쪽. 벼락에 대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설명에서 (기원전 407년 구름) 바람이 화염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내가 제안한 바와 같이 아마도 구름에 대한 마찰 때문이 아니라 빠른 움직임의 결과로서 승화되어 불로 변하기 때문이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A 6 참조.
120쪽. stoicei'on의 초기 의미에 대한 더 나은 설명에 관하여 Philologus 103호 (1959년), 167쪽 이하의 W. 부어케르트(Burkert)의 기고문 참조.
125쪽 (또한 157쪽).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 38.1의 해석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논쟁거리이다. J. 볼락(Bollack)의 엠페도클레스(Empédocle) III (파리, 1969년), 261쪽 참조 (그의 단편 글 320에 대한 비평).
153쪽, 주석 2 및 157쪽. 페레키데스(Pherecydes)의 우주기원론에 대한 확산적 해석에 관한 커크(Kirk)와 레이븐(Raven)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캠브리지, 초판본, 1957년) 55쪽 이하 (재판본, 1983년, 56쪽 이하와 동일) 및 M. L. 웨스트(West)의 초기 그리스 철학 및 동양 (Early Greek Philosophy and the Orient) (옥스포드, 1971년), 10쪽 이하 참조.
156쪽, 주석 3. 제노파네스(Xenophanes)의 “가장 위대한 신(神)”은, 신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기 때문에, 세상 자체일리는 없다 (B25-26). 이 우주적 신은 아마도, 아낙시맨더(Anaximander)가 주장하는 무한자(Boundless)처럼, 세상 도처에 놓여있다.
159쪽. 내가 알크마이온(Alcmaeon)의 연대를 “6세기말”로 잡은 것은 다소 신중하지 못했다. 반스(Barnes)의 주장인 “아마도... 5세기 초에, 피타고라스보다 어린 동시대인”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I, 115쪽)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그를 엠페도클레스와 동시대인으로 만들려는 거스리(Guthrie)의 생각은 (그리스 철학사 [History of Greek Philosophy] I, 341쪽 이하, 357쪽 이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자기들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여 고대의 증거를 거부할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양보한다.
163-5쪽. 엠페도클레스에 대한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의 연대기적 우선순위는 내가 보기에 25년 전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명백할 따름이다. 불행히도 이것은, 많은 토론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거의 없거나 아주 없는 소크라테스 이전 학문의 드문 요점 중 하나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 toi}" d& e]rgoi" u{stero"를 “그의 철학적 활동에서 나중에”로 해석하는 것은 (젤러[Zeller]를 따르는 로스[Ross]의 번역) (a) 언어학적으로 개연성이 없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e]rga는 “서적들”을 의미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무엇을 우리가 연대로 정할 수 있을까?) (b) 사실에 입각하여 옹호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i)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안다고 해도, 자신의 시대보다 한 세기 앞서서 서적들이 출간되거나 강연이 행해진 정확한 날짜를 알 방법이 있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 그리고 (ii)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가 그러는 바와 같이 (아래 164쪽에 인용된 구절) 사실상 그는 도처에서 아낙사고라스가 선배라고 상정(想定)한다 (para; tou;" provteron prw}to"가 분명히 아낙사고라스가 선배였음을 전제하는 기상학 985a29를 우선 참조). 최근의 토론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J. 만스펠트의 타이탄 여신 (Mnemosyne) 33 (1980년), 90쪽 이하와 D. 사이더(Sider)의 아낙사고라스의 단편글 (The Fragments of Anaxagoras) (Beiträe zur klass. 언어학 118, 마이젠하임 암 글란 [Meisenheim am Glan], 1981년), 5쪽 참조. 문제의 표현은 상상컨대 아낙사고라스가 자신의 철학서적에서 “열등하다”기보다는 “더 현대적”이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의미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나중에 철학에 관하여 글을 쓰고 있었고 책을 발간하고 있었거나 강연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커크-레이븐-스코필드(Kirk-Raven-Schofield)의 저서(2판 353쪽) 속에서 로스(Ross)의 번역과 젤러(Zeller)의 해석의 지속성, 거스리의 저서(2권, 128쪽 주석 4)와 반스(Barnes)의 저서(2권 4쪽)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사에서 아낙사고라스 이전에 엠페도클레스를 토론하는 통상적인 관행과 함께, 내 견해로는 문화적 침체의 우울한 사례들이다: 젤러가 세운 나쁜 사례는 고질적인 버릇이 되었다.
170쪽. 이 책에 대한 자신의 검토의견에서 거스리가 지적한 바와 같이, 헤로도투스(Herodotus)로부터 인용된 두 가지 원문에서 tov 형태는 (내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관사가 아니고 그로부터 관사가 발전하는 정 대명사 (the definite pronoun)이다.
189쪽, 주석 2. 양생법의 연대를 기원전 400년경으로 잡는 것을 지지하여, R. 졸리(Joly)의 히포크라테스, 양생법 (Du Régime) (파리, 1967년), 14-16쪽을 그의 저서 양생법에 관한 가짜 히포클라테스의 논문에 대한 연구 (Recherches sur le Traité pseudo-hippocratique Du Régime) (파리-리에즈[Paris-Liège], 1961년)을 참고하여 참조하라.
219쪽 이하. 나는 H. 딜러(Diller)가 브루노 슈넬 기념집 (Festschrift Bruno Snell) (뮌헨, 1956년), 47-60쪽에서 kovsmo"에 대하여 철학 이전 용법을 탁월하게 연구한 것을 인용했어야 했다. J. 커쉔슈타이너(Kerschensteiner)의 코스모스(Kosmos) (제문제[Zetemata] 30, 뮌헨, 1962년) 또한 참조.
최근의 해석과 참고서적 목록에 관해서는 지금 참고할 세 가지 일반적인 역사서가 있다:
W. K. C. 거스리(Guthrie), 그리스 철학사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I-II권 (캠브리지, 1962-1963년).
J. 반스(Barnes),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2 권. (철학자들의 논증, 루틀리지 앤드 키건 폴 [Routledge and Kegan Paul], 1979년).
G. S. 커크(Kirk), J. E. 레이븐(Raven), M. 스코필드(Schofield),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2판. (캠브리지, 1983년).
나는 이 책이 몇 년 동안 품절된 후에 재인쇄하여 준 것에 대하여 해켓 출판사 (Hackett Publishing Company)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찰스 H. 칸 (Charles H. Kahn)
필라델피아
1994년 4월
인용구에 사용된 약어 및 소제목
AJP 미국 언어학 저널 (American Journal of Philology)
보니츠(Bonitz), 색인 H. 보니츠, 아리스토텔레스 색인 (Index Aristotelicus) (2판; 그라즈[Graz], 1955년).
버넷(Burnet) J. 버넷(Burnet), 초기 그리스 철학 (Early Greek Philosophy) (4판; 런던, 1945년).
CP 고전 언어학 (Classical Philology)
CQ 계간 고전 (Classical Quarterly)
딜즈(Diels), 고문서(Archiv) H. 딜즈, “아낙시맨더의 코스모스에 관하여 (Ueber
Anaximanders Kosmos),” 철학사에 관한 고문서
(Archiv für die Geschichte der Philosophie), X
(1897년), 228.
D.L.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Diogenes Laertius),
저명한 철학자들의 생애 (Lives of Eminent Philosophers); 원문 및 번역, R. D. 힉스(Hicks),
로엡 고전문고 (Loeb Classical Library) (2권;
런던, 1942년).
Dox. H. 딜스(Diels), 그리스 철학서 (Doxographi Graeci)
(베를린, 1879년).
하버드 연구 (Harv. Stud.) 고전 언어학에 대한 하버드 연구 (Harvard Studies in
Classical Philology)
히스(Heath), 아리스타쿠스 T. L. 히스, 고대의 코페르니쿠스인 사모스의
(Aristarchus) 아리스타쿠스 (Aristarchus of Samos, the Ancient
Copernicus) (옥스퍼드, 1913년).
횔셔(Hölscher), “아낙시맨더 U. 횔셔, “아낙시맨더와 철학입문 (Anaximander (Anaximander)” und die Anfänge der Philosophie,” 헤르메스
(Hermes), 81호 (1953년), 257쪽 이하 및 385쪽
이하.
야에거(Jaeger), 파이데이아 W. 야에거, 파이데이아, 3권, G. 하이어트(Hig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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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에 관한 주석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의 자연학(Fusikw}n Dovxai: Phys. Opin.)의 단편 글은 딜스(Diels)의 저서 그리스 철학서 (Doxographi Graeci)에서 인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단편 글은, 로스(Ross)의 번호 매김에 따라서, W. D. 로스(Ross)의 단편 글 선집 신판에서 (옥스퍼드, 1955년) R3으로 기입되었다. 아낙시맨더를 제외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모든 언급은 딜스-크란츠(Diels-Kranz) (Vors)에 기인한다; 아낙시맨더에 대한 인용 체계는 아래 25쪽 이하에 기술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그리스 비평가들은 베를린 아카데미의 판본으로부터 인용된다.
히포크라테스의 작품 제목은 (Hp로서 인용됨) 일반적으로 LSJ의 약어에 따라서 라틴어로 주어진다. W. H. S. 존즈(Jones)가 로엡 고전문고에서 편집한 히포크라테스 전집 (Hippocratic Corpus)의 작품은 저 판본으로부터 인용된다 (Jones로 약술); 그렇지 않으면 에밀 리트레 (Émile Littré)가 편찬한 프랑스어 사전인 리트레(Littré)를 참조한다. 존스의 번역 또한 이 원문들을 제시하면서 자주 참조되었다. 주간론(週間論: De Hebdomadibus)에 관해서는 W. H. 로숴(Roscher)의 일곱 숫자에 대한 히포크라테스의 글 (Die hippokratische Schrift von der Siebenzahl), 고대 역사 및 문화에 대한 연구 (Studien zur Geschichte und Kultur des Altertums), VI (파더보른[Paderborn], 1913년), 3-4. 의학 파피루스인 Anonymus Londinensis는 W. H. S. 존즈(Jones)의 판본인 Anonymus Londinensis의 의학서 (The Medical Writings of Anonymus Londinensis) (캠브리지, 1947년)에서 인용되어 의학서(Medical Writings)로 약술됨.
서론
우리가 역사를 더 잘 안다면, 우리는 모든 창안의 근원에서
거대한 지성을 발견할 텐데
(Si nous savions miex l'histoire, nous trouverions aux origines
de toutes les innovations une grande ìntelligence).
에밀 말르 (Émile Mâle), 12세기 프랑스의 종교예술
(L'art religieux du XIIe siècle en France)
아낙시맨더의 글은 고인이 된 어느 작가에게서 단 하나의 간단한 인용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지고 그 작가에게는 원본이 이미 상실되었기 때문에, 아낙시맨더의 사상을 상세하게 연구하는 일을 떠맡는다는 것은 어리석을 짓으로 보일 것이다. 기원전 6세기의 이 그리스 철학자는 우리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혹은 현대 사상가에 대하여 기대하는 것과 같은 그런 역사적 분석의 주제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아낙시맨더는 멀리서 위압적으로 나타나는 존경스러운 산꼭대기의 일종으로서보다 덜 미시적인 연구대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서 목격하는 것은 개별인간의 용모가 아니라 그리스인들이 “자연탐구(perij fuvsew" iJstoriva: the Investigation of Nature)”라고 불렀던 것을 창시한 사람의 희미한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사에 대한 일차적인 근거자료는 겨우 기원전 6세기 말과 5세기 초에 이용이 가능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한 세대의 범위 안에서,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파메니데스(Parmenides)에 관한 글 몇 조각과, 알크마이온(Alcmaeon)의 한두 가지 문장, 그리고 제노파네스(Xenophanes)의 몇 가지 철학적 운문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 글의 단순성이나 모호성 때문에 남은 글 대부분은 기껏해야 해석에 관하여 신뢰할 수 없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파메니데스의 경우에는 그의 시의 처음 몇 쪽이 연결이 되면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그리스 철학의 엄정한 문서자료가 시작된다고 언급될 장소가 여기인데 왜냐하면 진정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기원전 5세기 문턱의 사변적 사고의 특징과 복잡성을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은 이 원본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을 고전시대와 분리하는 문체와 정신세계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원시적 시작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온(ejon)이라는 파메니데스의 교설과 그 교설을 지탱하는 그의 추론과 그 교설의 보완물인 물리적 철학체계 모두는 철학적 토론에 대한 고도로 문명화한 환경을 전제로 한다. 다른 초기 단편 글들은, 정확히 이 공통의 지성적 배경이자 사상에 관한 공통적 풍토의 대표로서 자체의 최대 의미를 띠는데 그 배경과 풍토는 자연세계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관점을 구성한다고 언급될 것이다.
이 초기 문서들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그리스 자연철학이 이미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소 놀랍게도) 그 자연철학이 자체의 고전적 발전에 매우 결정적인 몇 가지 개념을 이미 포함하고 있음을 또한 발견한다. 예를 들어 본성(fuvsi")이라는 개념 자체는 그 개념에 대하여 더 고대 그리스 문헌에는 흔적이 없는데, 헤라클리투스와 파메니데스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그 개념은 제노파네스가 사용하는 동사 fuvein에도 또한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물리적 세상에 관한 코스모스(kovsmo")나 디아코스모스(diavkosmo")라는 용어는 또 다른 중요한 진기함으로 헤라클리투스와 파메니데스가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다시 제노파네스, 헤라클리투스, 그리고 파메니데스 모두는 그리스의 전통적인 모든 신(神)이 지닌 직능과 완전히 다른 직능을 지닌 우주적 신(神)에 관하여 말한다. 알크마이온(Alcmaeon)은 완벽한 지식과 - 신(神)들만의 소유물 - 인간이 사물의 진실에 관하여 수행할 수 있는 불완전한 상상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데에 다른 세 사람과 합류한다. 원소의 변형은 제노파네스와 헤라클리투스 두 사람 모두에게 친숙한 주제인데 그 두 사람은 원소로서 대립하는 것들이 교차하여 변화하는 것을 또한 언급한다. 게다가 그 목록은 길어질 것이다.
이 아이디어의 공통적인 몸통은 대략 동일한 시대의 다양한 사상가들에게서 확인되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의 개인적인 창안으로서 설명될 수는 없다. 크로톤(Croton) 출신 알크마이온과 티레니안 해 (Tyrrhenian Sea)에 인접한 에레아(Elea) 출신 파메니데스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에베소(Ephesus) 출신 헤라클리투스로부터 빌려오지 않았다; 또한 시인 제노파네스의 방황도 그리스 세계의 양극에서 동시적으로 사상의 꽃을 피운 것에 대한 원인이 되지 못한다. 이 폭넓게 격리된 발전 사이의 유사성은 부분적으로 개인과 아이디어의 활발한 교류에 기인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유사성은, 그 지역적 형태들이 탄생한 공통적 씨앗을 전제로 한다.
고대철학사는 그 씨앗이 기원전 6세기 전반에 밀레투스(Miletus)에 심어졌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새로운 과학은,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이오니아(Ionia)를 떠나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로 갔던 많은 이주자들이 - 사모스(Samos) 출신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같은 사람들 - 서쪽지방으로 가져간 것이다. 이 그리스 철학의 밀레투스적 전형은 대부분 실종되었다; 그 자리에 우리는, 한편으로, 다양한 후손들을 만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후대 저술가들의 고대철학에 대한 보고서와 해설서를 만나게 된다. 초기 그리스 사상에 대한 그런 고대의 설명에서는, 그리고 그 설명에 일차적으로 근거한 현대 철학사에서는, 이오니아 철학의 초창기와 파메니데스로부터 히포크라테스 저술가들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적 글에 이르는 훨씬 더 문서가 잘 보존된 기간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하여 주목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그 주제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자연세계에 대한 그리스 사상 속의 내재적 지속성을 기꺼이 인식할 것이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이 초기 철학자들을 그렇게 많은 숭고한 개인주의자들로서 취급하는 데 일반적으로 고대인들을 따르는데, 그 개인주의자들 사이의 관계는 분명히 주로 논쟁의 대상이다.
물론 초기 그리스 자연철학의 본질적인 통합성을 밝히기 위하여 더 많은 연구가 수행될 수 있다. 방금 언급된 것과 같은 그런 근본적인 유사성을 통하여, 고대 철학서에 의하여 우리에게 보존된 밀레투스 철학의 황량한 골격에 살과 피와 유사한 것을 부여하는 일이 분명히 가능하다. 역사적 방법을 통하여 우리는 실종된 선조를 재구성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후손들을 부활시키면서 가족적 유사성을 근거로 한다. 그 과제는 여기서 고생물학자의 과제와 비교될 것인데 고생물학자는 화석으로부터 보존된 종의 멸종한 조상의 형태를 재추적할 수 있다; 혹은 언어학자의 과제와 비교될 것인데 언어학자는 자매 언어들의 초기 형태 사이의 체계적인 유사성이 드러내는 부모 언어를 재구성한다. 아이디어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훨씬 더 미묘한 문제를 부과하는데 왜냐하면 철학체계는 말(words)이나 뼈(bones)의 형태학적인 일치성이 규칙적으로 전승되는 것과 비교하여 그렇게 전승되지 않기 때문이다. 재구성 과제는 여기서 틀림없이, 우리가 문제의 전형에 대한 개괄적 모습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과제이리라. 밀레투스학파의 고대 철학서들이 그리스 사상의 근원에 대한 여하한 연구를 위하여 분명히 토대 역할을 할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대 철학서들은 토대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상부구조를 위한 바위는 다른 곳에서,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의 그리스 사상에 관한 일차적인 문헌으로부터 세밀하게 탐색되어야 한다.
이 문헌들이 내놓는 공통적인 특징을 그리스 철학에 대한 고대의 설명은 일반적으로 무시하는데 그 고대의 설명은 한 사상가가 (혹은 사상가 무리가) 다른 사상가와 대비될 수 있는 요점에 대해서만 자체의 관심을 유지한다. 이 사실과, 그 사실로부터 도출될 도덕성은, 75년 전에 폴 타너리 (Paul Tannery)에 의하여 명백하게 지적되었다: 과학사는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공통적인 자산을 찾기 위하여 표면적인 모순을 초월하여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문헌이 [고대 철학서] 무엇보다도 고대 자연철학자들 사이의 차이점을 돌출하게 만드는 반면, 역사가의 역할은 오늘날 무엇보다도 유사점을 탐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그것은 차이점의 원인을 제시할 수 있고, 차이점에 대한 진짜 특성을 언명할 수 있고 차이점에 대한 실제적 중요성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사점에 대한 관찰이다 (L'histoire de la science restera inintelligible... si l'on ne pénètre au delà des contradictions apparentes pour retrouver le fonds commun. Ainsi, tandis que les documents [des doxographes] font surtout ressortir les différences entre les anciens physiologues, le rôle de l'historien doit être aujourd'hui de rechercher surtout les ressemblences; c'est, en effet, leur constatation seule qui peut permettre de rendre raison des différences, d'en préciser le véritable caractère et d'en déterminer l'importance réelle).
이 연구는, 초기 사상가들을 서로 묶는 저 근본적인 아이디어들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자료들의 세부사항을 상쇄하려는 노력으로서, 타너리의 비평 정신으로 수행된다. 우리가 그리스 자연철학을 통합체로서 그리고 전체로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 공통적 특징 때문이다. 그리고 이 통합체는 역사적 설명을 받을 수 있는데, 다만 그 공통적 특징이 공통적 자료로부터 나온 발생론적 계승에 의하여 귀결됨이 증명된다는 조건이 따른다. 우리가 지닌 가장 오래된 일차적인 문헌에 따라서, 이 자료는 파메니데스가 가정하고, 또한 파메니데스가 부분적으로 저항하여 반응하고 있는, 세계구도로서 묘사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자연철학의 더 정밀한 근원지를 찾기 위하여 우리는 이 구도를 아낙시맨더(Anaximander)의 우주론으로서 정의(定義)해야 한다.
우리가 이 초기의 잔존 글을 검토하는 바와 같이, 기원전 6세기 사상에서 핵심적인 인물로서 점점 더 분명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아낙시맨더이다. 매우 개연적으로, 고대 과학이 추종하여 발전할 수 있었던 방향을 제시한 것은 그의 저서이고 그리스 자연철학에 그 특징적인 각인을 남긴 것은 그의 정신이다. 우리가 지닌 문헌자료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이 판단은 분명히 여하한 종류의 엄정한 증거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나 확신적으로 단언될 것은 아낙시맨더가, 탈레스(Thales)와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같은 전설적 인물보다 현대 역사가들에게 훨씬 더 쉽게 접근된다는 것이다. 최초로 자신의 견해 자연에 관하여 (peri; fuvsew")를 기록했던 사람은 그였으며, 그리하여 새로운 과학적 전통을 위하여 글쓰기의 토대로서 작용하게 될 새로운 기록 형태를 - 산문에 사용된 최초의 형태 - 확립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티마에오스(Timaeus)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논문과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만물의 본성에 대하여 (De Rerum Natura)를 포함하여, 그 범주의 모든 후대 표본에게 선조가 된다. 아낙시맨더의 견해를 보전하여 전승하고, 그 견해를 아리스토텔레스가 토론하고, 그 견해를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가 요약하고, 마지막으로 심플리키우스(Simplicius)가 물리학에 대한 자신의 비평에서 그 견해를 인용했던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 기록 형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리스 철학사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글로 표현한 아낙시맨더의 행위였다. 이유인즉 역사는 문헌을 필연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낙시맨더,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그리고 그들은 계승했던 사람들이 “자연에 관하여” 기록 형태로 남기지 않았다면, 초기 그리스 철학은,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의 구두(口頭) 가르침이 그런 것처럼, 역사적 연구의 문제가 아니리라. 다른 한편으로, 창안자로서 아낙시맨더의 중요성은 분명히 그보다 젊은 동포인 아낙시메네스의 중요성보다 훨씬 더 큰데, 아낙시메네스의 교설은 동일 방식으로 우리게 알려졌지만 덜 완벽하다. 그렇다면 기원전 6세기 사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아낙시맨더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을 연구하는 데는 아낙시맨더의 우주론을 연구하는 형태가 가장 필요할 것이다.
아낙시맨더의 철학체계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아무튼 서양에서, 자연세계에 관한 이성적 관점의 출현이다. 이 새로운 관점은 화산폭발의 힘으로 자신의 가치를 주장했으며, 뒤이어 사색의 홍수가 밀레투스로부터 그리스어가 사용되는 땅을 종횡으로 가로질렀다. 이 파생적 물줄기 모두가 여기서 추적될 수는 없다. 특히 아르케(ajrchv) 즉, 최초의 원인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는데 이유인즉 현실과 신성(神性)이라는 그런 개념을 합리적으로 다룬 것이 저서의 차원을 배가(倍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낙시맨더의 교설인 아페이론(a]peiron)의 경우에는 부분적인 예외도 있었다; 부록 II 참조.)
그리하여 이 책은 밀레투스학파의 우주론과, 자연 전체에 대한 그리스의 관점에 관한 그 우주론의 관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의 첫 부분은 아낙시맨더에 관한 테오프라스투스의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테오프라스투스의 원본은 실종되었지만 그 내용은, 이런저런 정도로 그 원본에 의존하는 다양한 고대 철학서의 설명을 비교함으로써 복구될 것이다. 이 자료의 분석은 반드시 포함되지만, 그런 분석을 통해서만, 우리 수중에 있는 자료의 본성에 의하여 절망적으로 애매모호해진 문제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얻어질 수 있는 문제들을 우리는 구별할 수 있다./
그렇게 획득된 정보는 두 번째 부분을 역사적으로 토론하는 데에 대한 토대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 토론의 첫 장은, 천체의 형성과 기상학적 사건의 원인과 지구상의 생명체의 기원과 같은 문제들에서 아낙시맨더가 지닌 구도의 더 구체적인 특징을 개괄한다. 뒤이은 두 부분에서는 이 이론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더 일반적인 자연철학을 규정하기 위한 노력이 시도된다. 그리하여 두 번째 장은 원소에 대한 고전적인 이론과 그 이론의 시적(詩的) 선례와 기원적 6세기의 그 이론에 대한 철학적 기원을 다룬다. 세 번째 장은, 법칙으로 조직된 우주로서 자연세계를 그리스인들이 보는 것에 대한 최초의 표현으로서 간주되는, 아낙시맨더의 유일한 단편 글을 세밀하게 해석한다. 결론에서는 밀레투스학파의 사상이 끼친 영향의 몇 가지 영속적인 모습이 고찰될 것인데, 특히 자연·본성(fuvsi")의 근본적인 의미와 고대의 대부분의 물리적 구도에서 우주기원론에 할당된 중요한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부록은, 그 처리가 주요 토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너무 긴 두 가지 문제를 다룬다: 코스모스(kovsmo")라는 용어의 원초적인 철학적 의미; 그리고 아페이론(a[peiron)이라는 아낙시맨더의 개념.
어떤 업적들은, 실제로 탈레스(Thales)나 피타고라스나 또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의 것으로 주장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한 저작권이 확인될 시험은 불행하게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 아낙시맨더의 이름은 여기서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 사상의 익명적 창조정신에 대한 상징으로서 서있다고 언급될 것이다. 아낙시맨더의 생애와 사상의 개인적인 특징은,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밀레투스에서 나온 고대의 상(像)의 몸체 없는 잔해가 그러하듯이 완전히 훼손되었다. 그러나 자연에 관한 최초의 일관적인 견해가 한 사람의 작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한, 우리는 정말로 아낙시맨더를 “그리스 자연철학의 저술가로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서양 자연철학의 저술가로서” 간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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