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은 "도시락 같이 먹으며 이야기하자"고 12일 오전 8시 위원장실이 아닌 의원실로 오라고 했다. 조찬모임이 없으면 이렇게 먹고 저녁엔 주로 의원실에서 김밥을 먹는단다. 거품 없는 소탈함에 긴장이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어법에도 직구가 있다면 유 의원은 '돌직구' 스타일이었다. 유 위원장은 "인터뷰를 안 하면 안 했지 한다면 거짓말은 말자고 다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간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물었고, 들었다.
유 위원장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 총사퇴 파문에 대해 "사퇴는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총선 이후 불체포특권 포기 등 쇄신 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국민 입장에서 보면 그런 약속을 하지 말든지, 했으면 지키든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국민의 눈에는 새누리당 신뢰에 흠이 가는 일이었고,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원내대표단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당이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원내대표단 유임을 결의했다고 하자 "의원이 투표로 얻은 선출직 자리는 사퇴하겠다면 그걸로 끝이지 만류한다고 다시 앉고 하면 웃기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렇다면 원내대표 경선을 하자는 말인가.
"이번 원내 지도부는 상임위 배정 문제나 세비 반납 등 일련의 일들을 지시하는 형태로 했다. 설득이 아니라, 그래서 의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원내대표가 사퇴한 이상 당의 체제정비 차원에서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경선하는 것이 맞다. 대안을 걱정하시는데 새누리당 국회의원 149명 중 원내대표를 할 사람이 없겠나. 그건 아니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쇄신 설득이 약했나.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대화하고 호소하고 설득해야지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하면 의원들은 반발한다. 원내대표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 유승민이라는 이름이 빠지자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다.
"그거야 (박근혜) 후보가 이름을 뺏으니 없는 거지.(웃음) 캠프는 후보 자신이 자기 취향에 맞게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유승민의 마음이 떠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 거 없다. 나는 여전히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 후보 통틀어 박 전 대표가 대통령 되는 게 나라를 위해 가장 좋다. 확신 없이 지지할 수 있나? 여당에 임태희 김문수 김태호…. 지지도 차이가 아니라 '대통령감'으로서 박 전 대표만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거리가 멀어졌다는 말이 있는데 2007년 경선 이후 조금 멀어지고 지금은 제법 멀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박 전 대표의 반경 1m 안에 들어가야만 돕는 것인가. 내 방식대로 도울 것이다. 나는 '자리 욕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때도 주군을 모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때 두 번 거절하고 세 번째 제의가 왔을 때 하겠다고 했다. 단 조건이 있다고 했다. '내가 대선(이회창 후보)에 지고 나서 후회가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건의를 못 했습니다. 비서실장을 하더라고 할 말은 다 해도 되겠습니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할 말은 다했다. 지금도 나는 박 전 대표와 나의 관계가 상하, 주종,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라고 절대 생각 안 한다. 정치권에서 '동지'라는 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인데 그런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고 도와드렸다. 지금도 필요하다고 하면 어드바이스한다."
-지난 4월 "박 전 대표가 제대로 된 보좌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언론 인터뷰가 크게 회자했다.
"그때 언론에서 박 전 대표 주변의 권력투쟁, 자리다툼이라고 썼다. 무슨 권력을 놓고 투쟁을 한단 말인가. 내가 스스로 (캠프에) 가서 자리 달라고 한 적 없다. 최경환 의원과의 불화설도 있을 수 없다. 자리를 노리지도 않는데 싸울 이유가 없지 않은가. 최 의원은 2002년에 내가 정치권으로 들어오라고 한 사람이다. 박 전 대표가 최근 경제민주화나 복지 추구 등을 이야기하면서 2007년에 비해 좌클릭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하지만 역사인식이나 선거전략 등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박 전 대표를 2002년에 알았고 2004년부터 함께했다. 생각의 차이가 분명히 있고, 둘 다 고집이 세고 하니 대화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 나는 생각이 단순하다. 국방위원장으로서 국가를 위한 내 역할, 지역발전 나라발전을 위한 내 역할을 하고, 내 방식대로 돕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없다."
-박 전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아직도 제대로 된 보좌인가.
"박 전 대표가 출마 선언을 할 때 '불통과 소신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소신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친구끼리도. 부부간에도 그것 때문에 싸우지 않느냐. 민주정치에서 제일 기본적인 생각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선거전략, 국정운영도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훌륭한 지도자는 반대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결론 내기 전에는 경청해야 한다. 아주 진지하게. 박 전 대표에게는 왜, 무엇 때문에 그런 반대가 있는지 이야기하는 '회의체'가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표와 생각이 다른 '데블스 에드버킷'(악마의 대변자) 같은 그런 직언이나 쓴소리를 하는 직책이 있어야 하고 그 회의체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면서 캠프 전략이든 국정 운영이든 해나가야 한다. 내가 느끼기에 박 전 대표를 돕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의견에 너무 끌려다닌다는 느낌이다. 그러면 에러가 발생한다."
-현재 당 지도부, 원내 지도부가 다 친박계 친정체제 아니냐.
"친박계가 밀어서 됐으니 얽매이고 있다. 그러면 당이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잃게 된다. 경선 룰도 고집을 부릴 필요가 있었나. 중재안을 내놓고 정몽준, 이재오도 경선을 같이 해야 했다. 당 운영이 경직된다. 박 전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나 안 됐나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문제다. 당이 생동감 있게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바로 그게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총사퇴까지 간 것도 소속 의원들이 반발한 것 아니냐,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표와 비교해서 야권 후보는 어떤가.
"야권은 단일화해서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기에 (박 전 대표만 한 사람은) 없다. 확신한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에 있다 간 사람이고, 김두관은 서민 이력 이런 거 다 좋지만 대통령감이냐는 시각으로 보면 나는 회의적이다. 문재인은 좋지만 노무현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실정(失政)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안철수 서울대 교수로 흘러갔다. 유 위원장은 꽤 길게 안철수 교수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는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다. 안 교수는 아직도 저렇게 골방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감이냐? 대통령이 되겠다 결심이 섰으면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타이밍만 재고, 링에도 오르지 않고…. 교수이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것이다. 안 교수가 국가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 있나. 나는 국방이나 외교안보 분야를 워낙 중시한다. 만약 천안함 사태 같은 게 또 터졌을 때 박근혜와 안철수를 비교하면 어떤가. 국군통수권자로서 외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상황을 판단할 때 안철수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가. 국가의 생존, 흥망과 직결된 부분인데 안 교수에게 그런 경험이, 식견이, 판단력이, 결기가 있나. 그런 부분에서 끔찍하다. 선거는 결국 상대적인 선택인데 박근혜만 한 사람이 있는가. 앞으로 5년을 놓고 지금 후보 중에 박 전 대표가 제일 낫다."
-야권은 여러 시나리오가 있는 것 같다.
"드라마틱한 단일화 아니겠느냐. 안철수 교수가 출마 선언도 안 했는데 지지도가 꺼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지지 선언 하고 물러나고 박 전 대표가 네거티브를 현명하게 방어하지 못하고 하면 난리 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정말 '이상한 대선'이다. 야권의 유력한 후보(안철수)가 지금까지 출마 선언도 안 하고 있으니 진짜 이상한 대선 아니냐?"
-국방위원장이 되면서 K2 공군기지가 곧 이전되겠다는 기대가 있다.
"국방부 입장에서는 분명 (유승민 국방위원장이) 신경 쓰일 것이다.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 위원장직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지난 18대 국회에서 이 문제는 국방부와 이야기를 끝낸 사안이다. 그때는 국방개혁법에 발목이 잡혔지만 이번에는 군 공항 이전 특별법과 연계해서 처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표결하지 않겠다는 게 원칙이다."
-18대 때 '군용비행장 문제해결을 위한 의원모임'을 만들어 대표로 활동하지 않았나.
"군용비행장 모임은 아직 결성 안 했고, 국회 혁신도시 의원모임은 결성했다. 군용비행장 문제는 대구 수원 광주가 가장 핵심 지역인데 수원의 김진표 의원이 국방위에 왔기 때문에 따로 모임을 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다."
-국방부가 군 비행장과 사격장 주변 소음피해지역의 보상대책 기준을 개인주택은 80웨클(WECPNL) 이상(수원`대구`광주 85웨클)으로, 공공시설은 75웨클 이상으로 정하는 것을 골자로 '군용비행장 등 소음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항공기 소음과 전투기 소음이 뭐가 다르냐. 소음 차별이냐. 그런 나쁜 법은 통과시키지 말라고 국회의원이 있는 것이다."
정치적 목표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12월까지는 박 전 대표를 돕고,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낙선한 한 의원이 국회의장이 꿈이라고 했다고 말하자 "분명한 것은 저는 국회의장 할 생각이 없다. 국회의원을 늙을 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