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환기업 창업자인 고 최종환 명예회장의 딸인 최용주씨는 인터뷰 사진을 찍는 것을 매우 망설였다. 최씨는 “주변에서 내가 삼환 회장의 딸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터뷰도 부친이 평생을 바친 회사가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쩔 수 없이 나섰다”고 털어놨다. <한겨레>는 최씨의 의견을 존중해 옆모습만 찍고 얼굴을 가렸다. 세명 중 오른쪽이 최용주씨, 그 옆은 남편과 친척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삼환기업 창업주 딸 최용주씨 인터뷰
삼환기업 창업주 딸 최용주씨 인터뷰
▶ 해외 건설의 선구자로 꼽히는 삼환기업은 2011년부터 드러난 총수일가의 부정비리와 경영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4월 상장폐지되면서 창업 69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 소액주주들은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마지막까지 회사를 살리려 노력중이다. 하지만 창업자인 고 최종환 명예회장의 아들인 최용권 회장은 지원은커녕 회사 문을 닫게 해 불법행위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창업자 딸인 최용주씨가 회사 회생과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해 오빠인 최 회장의 부정비리를 고발하고 나섰다.
“부친의 명예를 더럽힌 오빠(최용권 회장)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최용주(46)씨는 지난 1일 서울 시내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용주씨는 2012년 작고한 최종환 삼환기업 명예회장의 딸이자 최용권 회장의 여동생이다. 2007년 결혼과 함께 사업가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평범한 주부로 생활해왔다. 그런 용주씨가 2013년 말 갑자기 오빠를 아버지에 대한 망자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초에는 일본 등에 수천억원의 해외 비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추가 고발했다. 이달 초 남편과 함께 한국을 찾은 용주씨는 <한겨레>에 그 사연을 털어놨다.
최 회장이 수백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전·현직 임원 및 지인 명의의 불법 차명계좌 운용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러온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말부터다. 비자금을 관리하던 회사 간부의 횡령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조는 최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비자금과 차명계좌에 대해 “(이미 작고한) 부친이 생전에 관리해오던 것”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검찰은 이 말을 그냥 받아들여 기소 내용에서 제외했다.
2007년 일본 비자금 규모만 3천억원
용주씨는 “부친은 깨끗하고 청렴한 분이었다. 건설사를 경영했지만 정치자금을 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 회장이 자신의 죄를 부친에게 다 뒤집어씌워 명예를 더럽혔다”고 말했다. 삼환기업의 홍순관 노조위원장도 “재판기록과 수사기록, 변호인 답변서를 보면 최 회장이 비자금 관리 직원을 통해 최소 8년 이상 장기간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운용해온 사실이 소상히 드러난다”고 뒷받침했다.
최 명예회장이 정치자금을 거부해 고생한 일화는 회사 안에서도 유명하다. 한 중견 간부는 “1980년대 초 최 회장이 정치자금을 안 내다가 정보기관에 의해 남산으로 끌려가 고문까지 당했는데, 평소 가까웠던 재벌총수가 대신 정치자금을 내줘 겨우 풀려났다”고 말했다.
용주씨가 2007년 부친과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최 명예회장은 사전 연락 없이 일본 지사를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 사무실 책상 위에 있던 비자금 계좌 및 장부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용주씨는 “당시 비자금 규모가 300억엔(약 3천억원) 정도에 달했다. 해외 건설공사 대금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빼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최 명예회장은 대노했지만, 이미 경영권이 아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용주씨는 최 회장이 미국에도 비자금을 갖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장남(최제욱 상무) 명의로 2010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은행 계좌에 300만달러 정도가 있었다.” 최 회장은 <한겨레>에 비자금 의혹이 보도된 2012년 하반기 갑자기 일본과 미국 지사를 폐쇄했다. 용주씨는 “지금이라도 국세청과 금감원이 조사하면 이런 비자금 내역을 모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환기업은 이런 비자금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뛴다. 하지만 노조는 최 회장의 비자금 역사가 오래됐다고 말한다. 홍순관 노조위원장은 “최 회장 취임 직후인 1999년에 <문화방송>에서 불법 비자금을 보도했다. 작은 현장은 월 1천만원씩, 큰 현장은 2천만원씩 비자금을 조성한 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용주씨는 최 회장 가족이 2000년대 초반부터 하와이에 별장을 소유한 내용도 고발했다. “최 회장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하와이에 고급주택을 갖고 있다. 최 회장의 딸이 그곳에서 원정출산을 했다”는 것이다.
용주씨는 최 회장이 젊었을 때부터 회삿돈을 뒤로 빼내는 등 특이한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부친은 회사에 출근해서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1~2시간 운동을 한 뒤 일찍 퇴근하는 스타일이었다. 최 회장은 맨날 아프다는 핑계로 출근하지 않다가, 어쩌다 회사에 나갈 때면 오후 늦게 잠깐 가서, 부친이 무엇을 했는지 살피고는 가방에 돈을 가득 담아 왔다.” 최 회장의 이런 행동 때문에 부자간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용주씨는 “부친이 아들의 비정상적 행동에 대해 야단쳤지만 소용없었다”며 “아들이 하나라 자신 외에는 후계자가 없다는 점을 믿은 것 같다”고 회상했다.
최 회장은 1996년 직접 경영책임을 맡은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용주씨는 “회사 출근은 거의 안 했고, 필요하면 집으로 임원들을 불러 보고받고 결재했다. 해가 진 늦은 저녁 시간에도 임원들이 서류뭉치를 들고 서울 한남동 회장집을 나서는 모습을 종종 봤다”고 말한다. (용주씨는 2007년 결혼하기 전까지 부친의 서울 한남동 리버힐 자택에서 함께 생활했다. 최 명예회장과 최 회장의 집은 리버힐의 같은 동 3, 4층이었다.)
최 회장은 회사에 나오지 않고 무엇을 했을까? 교우 관계도 과거 가회동 시절 이웃사촌이었던 김승연 한화 회장 등에 국한될 정도로 좁아, 주로 집에 칩거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가회동 집 주변 비디오가게의 영화를 다 봤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비디오광이었다고 한다. 용주씨는 “최 회장은 회사 경영이나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회사에서 돈 빼돌리려는 생각뿐이었다.” 삼환기업의 경영승계는 2세의 경영능력이나 자질에 대한 검증 없이 총수의 자식이라고 무조건 경영권을 물려주는 재벌의 잘못된 승계 방식이 기업을 망친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불법 비자금·해외부동산, 차명계좌
직원들에 대한 폭행 등 반인권경영
손으로 꼽을 수 없는 각종 부정비리
검찰·법원·국세청은 감싸주기만
“대한민국 이렇게 썩은 줄 몰랐다” “물려받은 회사 잘 키우기는커녕
부친 작고 3년만에 회사 망할 지경
부정증거 없애려 문 닫으려 해”
삼환기업 쪽은 사실무근이라며
“유산상속 불만…악의적 소송” 완전자본잠식 상장폐지 때도 손 놓아 지난 4년간 언론이나 노조에 의해 제기된 최 회장의 부정비리와 독단경영의 내용을 일일이 꼽으려면 국내외 비자금과 불법 해외부동산, 불법 차명계좌를 제외하더라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최 회장은 수십년 동안 임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갖은 폭행과 폭언을 자행하는 반인권적 경영을 해왔다. 이로 인해 임직원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목 디스크가 돌출되고, 고막이 찢어지고, 맞다가 기절까지 하는 등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또 자금난을 겪는 계열사에 130억원을 부당지원하도록 지시하고, 자신과 아들들이 출근도 하지 않는 계열사로부터 매달 수천만원씩 급여를 챙겼다. 심지어 거동이 불편한 부친의 이름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수년간 급여를 받아 챙기고, 작고했을 때는 5억원의 퇴직금까지 챙겼다. 용주씨는 “부친은 2008년부터 건강이 안 좋아 식사도 도움을 받아 했고, 거동도 휠체어로만 겨우 할 정도였는데 출근은 무슨 출근이냐”고 말했다. 용주씨는 작고한 부친 얘기를 할 때마다 그리움이 솟구치는지 연신 눈물을 글썽였다. 또 아들이 대주주인 부동산 임대 업체(우성개발) 소유 건물을 빌려쓰는 계열사에 과다한 임대료를 부담시키고, 건설 현장 인원을 허위로 부풀려 비자금을 만들었다. 2011년에는 계열 금융사인 신민저축은행이 자본잠식이 예상되자 2대 주주인 자신은 쏙 빠진 채 3대 주주인 삼환기업에 123억원이나 증자에 참여하도록 해 손실을 입혔다. 본인이 보유하던 4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법정관리 돌입 시 회생채권에 포함시키기 위해 딸 소유의 개인회사인 리온기업에 몰래 넘기고, 가족회사인 우성엠알오를 통해 계열사로부터 불법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배임을 저질렀다. 용주씨는 “최 회장 가족들 모두 회삿돈을 빼내려고 혈안이 된 파렴치범”이라고 말했다. 용주씨와 노조는 최 회장과 관련된 범죄혐의를 각각 세차례씩 총 여섯차례에 걸쳐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기소한 것은 신민저축은행 부당증자와 우성엠알오 부당편취 등 2건에 그쳤다. 그나마 법원은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렸다. 나머지 사건들은 수년째 검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국세청도 2012년 삼환기업과 최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100억원대 세금을 추징했으나,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 국세청이 모두 최 회장을 감싸주는 것과 관련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의심이 제기된다. 용주씨는 “최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의 딸들이 중·고등학교 친구로, 최 회장 부부와 대통령 부부도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용주씨는 2014년 9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에서 고발인 자격으로 조사받은 내용이 최 회장 쪽에 흘러간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변호사가 담당검사를 찾아가 유출 의혹을 따졌다. 서울중앙지검은 2014년 11월 사건을 금융조세조사3부로 재배당했다. 용주씨는 “수사중에 배당이 바뀌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은 검찰이 문제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착 의혹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용주씨는 “올해 초 검찰 인사 이후 담당검사가 바뀌어 변호사가 만났는데, 집안싸움에 왜 검찰이 끼어들어 고생해야 하느냐, 언론플레이 자제하라 등의 편파 발언을 들었다”고 말했다. 애초 올 2월로 예정됐던 추가고발 내용에 대한 진술도 계속 늦어지고 있다. 용주씨는 “솔직히 검찰에 진술을 해도 또 최 회장 쪽에 유출될까 걱정이다. 검찰을 못 믿겠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썩었는지 몰랐다”고 탄식한다.
용주씨는 최 회장이 부친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물론 부친에게 물려받은 회사까지 망하게 만들었다고 분노한다. “부친은 삼환기업을 세워 키웠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아들과 손자가 회사를 발전시키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려받은 기업을 잘 키워서 사회에 기여하기는커녕, 돌아가신 지 10~20년 된 것도 아니고 고작 3년 만에 회사가 망할 지경이 됐다.”
용주씨는 최 회장이 회사를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를 없애기 위해 회사 문을 아예 닫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의심한다. 최 회장은 수천억원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난 4월 회사가 완전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될 때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노조는 최 회장 일가의 재산이 회사 비자금 관리인을 통해 굴린 1천억원대 금융자산과, 서울 논현동과 동숭동, 한남동, 가회동 등 다수의 부동산을 합쳐 최소 2천억원을 넘는다고 추정한다. 홍순관 노조위원장은 “최 회장이 신민저축은행 부당증자 배임액 123억원과, 회사 주식을 팔아 차명계좌로 빼돌린 46억원만 제대로 배상했다면 완전자본잠식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최 회장은 배상은커녕 지난 4월 본인과 동아일렉콤 명의로 회사 주식 약 300만주를 헐값에 사들여 지분율을 50% 중반대로 대폭 끌어올렸다. 동아일렉콤은 최 회장의 차명계좌 명의자 중 하나인 이건수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용주씨는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증자 등 사재 출연은 거부해 수백개의 협력업체와 수백명의 직원들, 그리고 수천명의 가족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뒤에 수십억원을 들여 본인 지분을 늘린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의심한다.
“법정관리 반대는 회사 파산 의도”
삼환기업 소액주주들은 17%의 지분을 모아 지난 5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독자적인 회생이 어렵다고 보고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의 지원을 받아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회사는 최 회장의 지시에 따라 법정관리를 기각시켜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삼환기업 홍보실은 “법정관리에 가지 않아도 회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주씨는 “완전자본잠식 이후 수주가 제대로 안 돼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자본잠식 탈피를 위한 대안도 내놓지 않으면서 법정관리를 반대하는 것은 사실상 회사를 파산시키려는 의도”라며 “최 회장이 회사에 대한 배상책임을 피하고, 그동안 제기된 불법행위의 증거자료를 모두 없애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용주씨는 회사 회생을 위해서는 법원이 소액주주들의 법정관리 신청을 꼭 받아줘야 한다고 말한다. “부친이 평생을 바쳐 일군 삼환기업이 중소기업이라도 좋으니 명맥이라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 재벌가의 형제간 분쟁은 대부분 재산이나 경영권 다툼에서 비롯됐다. 삼환기업도 용주씨에 대해 “유산 상속에 불만을 품고 악의적인 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조심스럽게 오누이간 유산 문제 때문이냐고 물었다. 용주씨는 “이번 일은 재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며 “회삿돈을 빼돌려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도 모자라 아예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최 회장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회사 지분도 없고, 직함을 맡은 적도 없고, 경영에도 관심 없다. 남편의 미국 사업이 괜찮은 편이라 유산에도 관심 없다. 만약 회사가 다시 살아난다면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면 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2007년 최씨가 약혼할 때 가족들과 함께 자리한 모습이다. 왼쪽부터 오빠인 최용권 회장, 최씨의 남편, 부친인 최종환 명예회장, 최씨, 최 회장의 장남인 최제욱 상무다. 최용주씨 제공
직원들에 대한 폭행 등 반인권경영
손으로 꼽을 수 없는 각종 부정비리
검찰·법원·국세청은 감싸주기만
“대한민국 이렇게 썩은 줄 몰랐다” “물려받은 회사 잘 키우기는커녕
부친 작고 3년만에 회사 망할 지경
부정증거 없애려 문 닫으려 해”
삼환기업 쪽은 사실무근이라며
“유산상속 불만…악의적 소송” 완전자본잠식 상장폐지 때도 손 놓아 지난 4년간 언론이나 노조에 의해 제기된 최 회장의 부정비리와 독단경영의 내용을 일일이 꼽으려면 국내외 비자금과 불법 해외부동산, 불법 차명계좌를 제외하더라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최 회장은 수십년 동안 임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갖은 폭행과 폭언을 자행하는 반인권적 경영을 해왔다. 이로 인해 임직원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목 디스크가 돌출되고, 고막이 찢어지고, 맞다가 기절까지 하는 등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또 자금난을 겪는 계열사에 130억원을 부당지원하도록 지시하고, 자신과 아들들이 출근도 하지 않는 계열사로부터 매달 수천만원씩 급여를 챙겼다. 심지어 거동이 불편한 부친의 이름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수년간 급여를 받아 챙기고, 작고했을 때는 5억원의 퇴직금까지 챙겼다. 용주씨는 “부친은 2008년부터 건강이 안 좋아 식사도 도움을 받아 했고, 거동도 휠체어로만 겨우 할 정도였는데 출근은 무슨 출근이냐”고 말했다. 용주씨는 작고한 부친 얘기를 할 때마다 그리움이 솟구치는지 연신 눈물을 글썽였다. 또 아들이 대주주인 부동산 임대 업체(우성개발) 소유 건물을 빌려쓰는 계열사에 과다한 임대료를 부담시키고, 건설 현장 인원을 허위로 부풀려 비자금을 만들었다. 2011년에는 계열 금융사인 신민저축은행이 자본잠식이 예상되자 2대 주주인 자신은 쏙 빠진 채 3대 주주인 삼환기업에 123억원이나 증자에 참여하도록 해 손실을 입혔다. 본인이 보유하던 4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법정관리 돌입 시 회생채권에 포함시키기 위해 딸 소유의 개인회사인 리온기업에 몰래 넘기고, 가족회사인 우성엠알오를 통해 계열사로부터 불법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배임을 저질렀다. 용주씨는 “최 회장 가족들 모두 회삿돈을 빼내려고 혈안이 된 파렴치범”이라고 말했다. 용주씨와 노조는 최 회장과 관련된 범죄혐의를 각각 세차례씩 총 여섯차례에 걸쳐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이 기소한 것은 신민저축은행 부당증자와 우성엠알오 부당편취 등 2건에 그쳤다. 그나마 법원은 집행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렸다. 나머지 사건들은 수년째 검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국세청도 2012년 삼환기업과 최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100억원대 세금을 추징했으나,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검찰과 법원, 국세청이 모두 최 회장을 감싸주는 것과 관련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 때문이라는 의심이 제기된다. 용주씨는 “최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의 딸들이 중·고등학교 친구로, 최 회장 부부와 대통령 부부도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삼환기업 일지
삼환기업
1946년 창업한 삼환기업은 1970년대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에 최초로 진출해 해외 건설시장을 개척한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해외건설 총 수주액은 45억3100만달러(약 5조원)에 이른다. 2007년까지 이익잉여금이 2천억원에 달하고, 2012년 법정관리 이전까지 매출과 수주가 각각 1조원에 달하는 건실한 건설업체였다. 하지만 건설경기 부진과 회장 일가의 부정비리 및 경영 실패가 겹치면서 위기로 치달았다.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간신히 졸업했으나, 지난 4월 완전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됐다. 소액주주들은 회사 회생을 위해 지난 5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