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월병과 파이 전문점, 서울/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9. 24. 12:42

문화문화일반

“어머니 솔잎송편 못잊어” “중국집 보조시절 눈물의 월병”

등록 :2015-09-23 20:20

 

추석을 앞둔 18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셰프 이연복(오른쪽)과 레이먼 킴. 이들은 레이먼 킴이 처음 낯선 한국 요리업계에 발 디뎠을 때 이연복 셰프가 그를 가족처럼 도와줘서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박미향 기자
추석을 앞둔 18일 서울 서교동에서 만난 셰프 이연복(오른쪽)과 레이먼 킴. 이들은 레이먼 킴이 처음 낯선 한국 요리업계에 발 디뎠을 때 이연복 셰프가 그를 가족처럼 도와줘서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박미향 기자
[한가위] 셰프 레이먼 킴-이연복 추석 토크
추석을 눈앞에 둔 지난 18일, 중식당 ‘목란’의 이연복(56) 셰프와 ‘미드가르드’, ‘테이블 온 더 문’ 등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요리사 레이먼 킴(40)이 서울 서교동의 한 중국집에 모여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들이 모인 시각은 밤 10시. 화교 출신의 이연복 셰프는 요즘 ‘스타 셰프’란 명칭보다는 ‘예능 대세남’으로 통한다. 방송 입문으로 따지자면 선배 격인 레이먼 킴은 15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32살 서양음식 전문 요리사가 되어 귀향한 스타 셰프다. 영역도 다르고 나이 차이가 나면서도 두 사람은 8년 넘게 돈독한 우정을 이어온 사이다. 추석이 우리의 대표 명절이라지만,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며 온 가족이 모이는 비슷한 명절을 즐기는 나라는 세계 곳곳에 많다. 두 외국요리 셰프가 추석을 화두로 심야에 ‘고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화교 중식 셰프 이연복
“둥근 달 닮은 월병
중화권에선 꼭 먹는 음식
서울토박이 처갓집 추석상
호박전·잡채·불고기…정말 좋았어”

서양요리 전문 레이먼 킴
“칠면조 구이·늙은 호박파이…
서양 추수감사절의 주 메뉴
동포들은 송편·빈대떡 빚어
가족 모이는 추석 기다려져요”

레이먼 킴(이하 킴) 추석에 화교 분들은 주로 뭘 먹나요?

이연복(이하 이) 중추절(중국의 추석)이라서 화려한 상을 차릴 것 같지만 아니야. 밥상은 평범하고 해바라기씨나 호박씨를 까 먹으면서 달을 보고 소원을 빌어. 참, 월병이 있지. 월병은 추석에 꼭 먹는 음식이지요. 선물로도 많이 사요. 모양이 둥근 달을 닮았잖아.

저도 월병에 관한 추억이 있어요. 제가 살던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의 차이나타운은 꽤 컸어요. 캐나다의 동양인 대부분은 중국인이죠. 우리나라처럼 산둥성이 아니라 주로 홍콩에서 온 이들입니다. 중국인 친구들이 월병을 선물로 주고 차이나타운에 빨간 깃발이 걸리면 ‘추석이 되었구나’ 생각했어요. 어른들은 빨간 봉투에 돈도 넣어 주던데요.

훙바오(紅包)라는 건데 우리로 치면 세뱃돈 같은 겁니다. 중국인들에게 빨간색은 복을 부르고 악을 물리치는 색이지. 자녀가 대학입시라도 치면 온 가족이 모두 빨간색 팬티를 입고 다닐 정도니깐. 설 명절에 주는 용돈 같은 거지. 대만이나 중국 본토에는 수십가지 화려한 월병이 있지만 우리 화교가 주로 먹은 월병은 뻔했어. ‘도향춘’ 등 몇 집에서만 만들었어요. 그 전문점에서 만든 월병이 계속 선물로 돌고 돌았어. 대추잼이나 팥, 달걀노른자가 들어간 것 등 대충 3가지 정도밖에 없었어요.

서양의 추석은 추수감사절이죠. 미국은 11월 넷째 목요일인데 캐나다는 10월 둘째 월요일이에요. 북아메리카의 전통적인 휴일입니다. 커다란 칠면조구이와 호박파이, 크랜베리 소스, 매시트 포테이토(삶아 으깬 감자와 버터, 우유 등을 섞은 음식), 스터핑(감자, 채소 등을 가금류 안에 넣어 같이 조리하는 소) 등을 먹어요. 10㎏이 넘는 무거운 칠면조로 만들죠. 가족이 다 모이니깐 큰 게 적당해요. 늙은 호박은 그때가 한창 제철이고요. 교포들은 역시 송편을 먹어요. 추석 때마다 월병은 푸짐하게 드셨겠네요?

어릴 때 월병은 귀했어요. 3남2녀의 둘째였는데, 가난해서 열세살부터 중국집에서 일했지. 일년에 설과 추석만 쉬었어. 얼마나 그날이 기다려지던지! 주인이 월병 두 박스를 줘. 그걸 들고 동생들이 기다리는 집에 가서 풀어놓으면 “와!” 하고 신나게 나눠 먹었지. 다른 친구들은 새 옷 입고 머리 이발하고 멋을 내러 가는데 말이야. 달콤한 빵과 안에 든 짭짜름한 노른자 맛을 못 잊어요. 월병은 떡도 아니고 과자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음식이야.

전 추석 하면 “솔잎 좀 따 와라” 소리가 기억나요. 한국에 계셨던 어머니가 캐나다에 오시면 녹두빈대떡과 송편을 해 주셨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죠. 어머니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집 근처 소나무로 달려가 솔잎을 땄어요. 캐나다 소나무라서 그런지 솔 향은 별로 안 났지만요. 김치가 없으니깐 어머니는 배추를 소금물에 절여 꼭 짜서 숙주와 같이 두툼한 빈대떡을 만들어 주셨어요. 추석은 역시 가족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추석에 동생들을 만나는 게 좋았어요. 그때는 출퇴근을 안 하고 중국집에서 아예 자고 먹고 했으니깐. 주인이 퇴근할 때 문을 잠가 놓고 갔어. 한번은 화딱지가 나서 2층에서 보따리 던져 도망나온 적도 있지요. 열여섯살 때인가, 추석에 집에 가니 막내 동생이 동네에서 티브이가 있는 집 문 앞에서 몰래 그 집 티브이를 보다가 집주인한테 혼이 나는 거야. 어찌나 화가 나던지, 연휴 끝나고 바로 1년 할부로 티브이를 사 들여놓고 왔지. 동생들에게는 뭐든 최고로 해주고 싶었어요. 지금 그 동생은 인천의 한 호텔에서 일해. 만두 빚어 먹은 기억도 나는구먼.

만두는 만들기가 간단하죠. 튀겨도 삶아도 맛있잖아요. 칠면조구이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아요. 말린 빵, 칠면조 내장 등을 뱃속에 넣어 익히기도 하고 따로 빼서 조리해 같이 먹기도 했어요. 늙은 호박은 그때가 제철이라 파이로 만들면 맛나요. 외갓집이 서울 정릉이었는데 그 동네에 점집이 많았어요. 캐나다 가서도 만장이 휘날리고 스산했던 그 동네 풍경이 종종 생각날 때가 있었어요. 추석 때 외가를 자주 갔거든요.

나는 장가가서 받은 처가댁 추석상이 정말 좋았어요. 아내는 서울 토박이 한국인이거든. 떡만두국, 녹두빈대떡, 호박전, 잡채, 불고기 등 한 상 나오는데 ‘추석상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스물두살에 아내와 살림부터 차렸어요. 양가의 반대가 심해서 결혼식은 나중에 하기로 한 거지. 처가댁 눈치가 보여도 용감하게 갔어.

두 분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연애를 하신 거네요.

아내는 형수의 친구였어요. 형 친구들과 다 같이 나이트클럽에라도 갈 때면 파스를 붙였지. 요리사들에게는 양파 같은 음식 냄새 많이 나서 여자들이 싫어하니깐 생각해낸 방법이었어. 십년 뒤에 결혼식도 올리고 열심히 일해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면서 처가댁의 인정을 받았지요.

최연소 대만대사관 총주방장으로 일하실 때 좋으셨겠네요.

아내는 ‘명절 과부’라고 오히려 투정이 심했어. 추석에는 대사관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밥상을 차리고 치우느라 이틀은 꼬박 붙어 있었지요. 잡채, 불고기, 떡만두국 등 차려놓고 두런두런 얘기하는 우리 추석상이 나는 참 좋아. 이번 추석에도 그런 상을 차릴 생각이야.

저도 딸이 생기고 나니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이 기다려져요.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두 셰프가 추천하는 월병과 파이 전문점

도향촌. 사진 박미향 기자
도향촌. 사진 박미향 기자
도향촌

1968년에 문 연 역사가 오래된 월병전문 제과점. 중국의 전통적인 문양을 새겨 넣은 포장지 등이 색다르다. 해바라기씨, 잣, 호두 등 다양한 소가 들어간 월병을 판다. 월병 가격은 개당 2500~4500원. (서울 중구 명동2길 26)

더루시파이키친. 사진 박미향 기자
더루시파이키친. 사진 박미향 기자
더루시파이키친

미국 가정식 파이를 파는 곳으로 지역에서 꽤 소문난 집이다. 호박파이는 10월 중순 출시되어 한정판으로 판매한다. 호박파이 여덟 조각에 4만 4000원. 다른 파이들은 6000~7000원 선이다. (서울 용산구 이촌로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