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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가르침을 믿지 않으면 오랑캐"라는 송시열의 주장과 사상의 독재/ 강명관 부산대교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6. 08:49

문화

사상의 독재

등록 :2015-11-05 21:33

 

강명관의 고금유사
1708년(숙종 34) 3월 27일 숙종은 주강(晝講)을 열었다. 공부할 책은 <절작통편>이었다. 이 책이 만들어진 내력은 이러하다. 원래 이황은<주자대전>의 편지를 추려 <주자서절요>란 책을, 정경세는 편지 외에 여러 중요한 글을 추려서 <주문작해>란 책을 엮었다. 송시열이 두 책을 합치고, <주자대전>에서 더 추려낸 글을 더한 것이 <절작통편>이다.

<절작통편>이 주강의 교재가 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주강이 끝나자 검토관 임수간이 <절작통편>을 읽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무방하겠지만, 주자가 친구들과 한가롭게 주고받은 편지까지 제왕학의 텍스트로 삼는 것은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역대 명신(名臣)들의 주의(奏議)를 주강의 교재로 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이관명이 발끈했다. 주자 같은 대현(大賢)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는 모두 본받을 만한 것이고,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평범한 말에도 모두 배울 만한 것이 있으니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인엽이 임수간의 편을 들며 반박하자 이관명은 앞의 논리를 반복했다. 주자가 남긴 말 한 마디, 글자 하나가 모두 올바른 이치를 담고 있으므로 후학들이 함부로 논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무엄하다고 성토하고 물러나와 상소를 올려 두 사람을 공격했다. 숙종은 임수간과 이인엽의 손을 들어주고 이관명을 크게 나무랐다.

<숙종실록>의 해당 날짜 기사에는 노론 사신의 논평이 붙어 있다. “대개 윤휴가 <중용>의 주석을 고쳐서 주자를 모욕한 뒤부터 남인과 북인들이 모두 주자를 존숭하지 않았다. 박세당과 최석정이 주자의 경전 주석을 고치며 주자를 공공연히 모독하였고, 그의 당파들은 또 송시열이 주자를 존숭한다는 이유로 주자까지 원수로 여겨 함께 배척하였다. 망령된 젊은 무리들은 주자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하며 헐뜯는 것이 한이 없었다. 송시열이 한 무리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4백~5백 년 전 중국의 성인이 우리나라의 당론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곤욕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괴이한 일이다.”

송시열은 노론의 수장이었다. 이관명은 노론, 임수간은 소북, 이인엽은 소론이었다. 저들 당파들이 권력투쟁을 벌인 것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주자를 절대 무오류의 성현으로 여기고, 주자의 해석 외의 다른 경전 해석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송시열은 “주자의 가르침을 믿지 않으면 오랑캐다”라고 말한 바 있다. 송시열과 노론이 과연 주자의 말을 독실하게 믿고 실천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겠는가? 주자의 권위를 빌려 다른 당파를 제거하기 위해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과연 그들은 반대당파를 사문난적으로 몰아붙이며 권력을 잡았고 조선이 망할 때까지 놓지 않았다.

‘중도 우익’ 성향의 국사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단정하고, 역사학자 90%를 좌파로 모는 자들의 속내도 송시열이나 노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론이 정치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조선을 영원히 지배했듯, 이들 역시 사상의 독재를 통해 대한민국을 영원히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은 것이리라.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