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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라는 랑케의 주장은 허상이다/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5. 11. 6. 08:45

문화학술

“역사는 해석되는 과거…‘있었던 그대로’란 허상이다”

등록 :2015-11-05 21:32

 

지난달 30일 오전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달 30일 오전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3일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확정하는 대국민 담화에서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헌법가치에 충실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역설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또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객관적 실체가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역사학계의 중론은 다르다. 가령 1961년 5월16일 박정희를 비롯한 일단의 군인들이 무력으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린 사건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배경과 의도가 무엇인지, 혁명인지 쿠데타인지, 현대사의 전체 맥락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는 ‘관찰자’에 따라 얼마든지 갈리기 때문이다.

전국 역사학대회 발표문들
‘하나의 역사’ 강요 비판
“역사학계 합의에 맡겨라”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소통’을 주제로 지난달 30~31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58회 전국역사학대회에선 역사학의 현재적인 연구 결과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여러 논의가 이뤄졌다.

‘역사교육과 역사학: 객관 관념과 주체 인식의 변증’이란 발표문에서 양정현 부산대 교수는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즉 ‘있었던 그대로의 사실’(wie es eigentlich gewesen)이란 것은 없다고 했다. 근대 역사학의 기초를 다졌다는 독일 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의 이 언명은 그 뒤 “역사학자들의 금과옥조가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한다. 그러나 역사인식의 주체를 ‘신’으로 설정하고, 모든 시대를 신의 섭리가 실현된 결과로 보는 랑케의 사관은 “불의의 세계, 부자유한 현실조차도 긍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국가주의적 성향과 통한다.

랑케 사관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수입됐다. 일본에서 근대국가 건설에 필요한 “‘국체의 대요’를 알게 하고 ‘국민지조’를 가르치는” 데 동원된 랑케 사관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이식되어, 특히 “관변 역사학으로서 확고한 토대를 다졌다.”

그러나 랑케에 뿌리를 대고 있는 ‘사실 숭배’는 부당전제에 해당한다고 양 교수는 비판했다.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과거에 관한 사실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사료, 자료도 이미 누군가에 의해 취사선택된 것이다. 확정된 ‘주어진 사실’은 없다. 그리하여 해석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 서술은 언제나 오류와 왜곡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 우리가 아는 사실에는 주관의 렌즈를 통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무오류의 ‘하나의 역사’”라는 것은 “랑케의 신을 불러와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일부 나라들에선 보수정권이 역사교육에 적극 개입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다. 김중락 경북대 교수는 ‘역사교육을 위한 역사학자와 역사교사의 협력 방안: 영국의 예를 중심으로’에서 보수당이 집권했던 ‘대처 시대’는 물론 최근 캐머런 정부에서도 ‘영국사-백인’ 중심의 교육과정 개편이 시도되었다고 보고했다. 특히 2013년 2월 발표된 정부의 역사과 교육과정 초안에서 이런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지만 사이먼 샤마, 리처드 에번스, 크리스 허즈번즈 등 유명 역사가들이 나서고 역사협회(HA·Historical Association)를 중심으로 일선 역사교사들이 대거 반대 의사를 표출하면서 결국은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이웃인 독일은 랑케의 조국이면서 한국 못지않은 분단과 냉전의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세계화 시대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교육: 서양사의 시선’을 발표한 이진모 한남대 교수는 “독일은 현대사에서 극심한 소용돌이를 겪었지만, 역사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논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이유인즉 교과서 검정 절차는 각 연방주가 연방 차원의 지침을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 사실상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절차도 간편해서 “독일에서 형식 요건이 가장 까다롭다는 바이에른 주에서도 내용 심의는 심의위원 2명의 평가를 통과하면 될 정도다.”

그나마 전체 16개 연방주 가운데 6곳은 주 정부가, 5곳은 전문 교육 연구소가 검정 책임을 맡고 있지만, “검정 절차 없이 추천교과서 목록만 작성했던 함부르크 외에도 베를린 등 4개 주는 점차 검정제를 폐지하고 자유발행제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하는 중요한 이유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권장하기” 위해서다. 실제 교과서의 각 단원 끝에는 다양한 해석을 돕는 수많은 질문들이 달려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교과서는 무척 두껍고 커서 가지고 다니기보다는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실제 수업은 교사가 제공하는 워크시트나 워크북으로 한다. 교과서가 이런 형태를 갖는 이유는, 역사를 보는 유일무이한 기준이라는 것은 애초에 정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간 역사학계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역사담론을 모두 담은 자료집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송상헌 공주교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거리’라는 주제 발표문에서 역사교육은 역사적 사실에 관한 지식만을 전하는 교과가 아니라 역사 인식론을 가르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에 ‘안전한 교과서’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관련 학계의 합의에 맡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단 하나의 ‘성전’처럼 만들겠다는 “안심하고 읽힐 수 있는 교과서란 (결국) 수많은 사실 가운데 자신들의 사관에 맞는 사실만 서술하고 나머지 사실은 지워버린 교과서”로서 “역사 연구의 발전을 가로막고, 역사 교육의 질식 사태를 유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구체화될 내년이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주장했던 랑케가 세상을 뜬 지 130년이 된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