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가 그런 말을 했을 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설득이나 토론은 이미 접었다고 봐야 한다. 상식에 어긋난다며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상식으론 성립 불가능한 주장이 통할 리 애초 만무하다. 기실, 그런 말은 자기편을 향한 ‘주문’(呪文)이다. 원래 ‘이쪽’에 가까운데 국정화엔 찜찜해하는 사람들이 애초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다리’를 놓은 것이겠다. 그래서 그런 이들이 ‘90%가 빨갱이라던데, 그런 교과서를 둘 순 없으니 국정화도 이해할 만해’라고 되뇌면 되는 것이다. 정말 90%가 좌파인지, 정부가 틀어쥐고 감독했던 지금 교과서가 실제로 좌편향인지, 설령 그렇다고 해도 국정화가 해법인지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데도 겅중겅중 징검다리 넘듯 지나쳐버린다. 합리성이 배제된 정치 선동의 전형이다. 보수 결집의 민낯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쪽을 포기하면 쉽게 적과 나를 가르는 이분법이 된다. 나아가 자기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적으로 몰아붙이면, 그 적에게는 얼마든지 폭력을 가해도 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언어는 존재의 집’(마르틴 하이데거)이니 그런 생각은 고스란히 말로 드러난다. 지금 그런 모습을 본다.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가 끝난 지 이틀 만인 16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와 의원모임에선 집회 참가자들이 “폭도” “전문시위꾼”으로 매도됐다. 새누리당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옹호하면서 더 강력한 진압을 주문했고, 몇몇 의원들은 미국 사회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경찰의 총기남용을 되레 ‘선진국의 정당한 공권력’으로 치켜세웠다. 폭도는 물대포로 다치게 하거나 패버려도 무방하고 그러다 죽어도 “미국 경찰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80~90%는 정당하다고 한다”(이완영 새누리당 의원)는 것처럼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놀랍고 무서운 말이다. 한국전쟁 동안 좌우의 민간인 학살도 바로 그렇게 ‘나와 다른 적’을 죽인들 어떠냐는 것이었다. 여당 의원들의 말은 어느 순간 “빨갱이는 죽여야 해”라는 ‘아스팔트 극우’의 혐오 외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은 피의 악순환을 불렀던 다른 나라의 인종갈등, 종교전쟁과 다를 바 없다.
정치의 말이 거칠어진 데는 박근혜 대통령 탓이 크다. 박 대통령은 “진실한 사람들”과 “혼이 없는 비정상”을 나누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등 혐오와 저주에 가득 찬 말을 쏟아냈다. 그 뒤 정치권의 막말이 이어졌다.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실제 위험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체 무엇이 불안하고 두렵기에 그런 ‘거친 생각’으로 전쟁 같은 정치를 만드는지 묻고 싶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여현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