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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연구 ‘일 최고 권위자’ “한·일 12·28합의 백지화해야”/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 9. 13:36

국제일본

위안부 연구 ‘일 최고 권위자’ “한·일 12·28합의 백지화해야”

등록 :2016-01-08 18:54수정 :2016-01-08 22:09

‘일본군 개입’ 밝힌 요시미 교수
“피해자들이 수용하기 힘든 내용
그러면 합의 이행 불가능해져”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 사진 길윤형 특파원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 사진 길윤형 특파원
“이번 합의는 백지로 돌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어려울 땐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본 내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요시미 요시아키(69) 주오대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한 한-일 양국 정부 사이의 ‘12·28 합의’를 백지화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요시미 교수는 그 이유로 “이 합의는 피해자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이번 합의가 실행 과정에 들어간다 해도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이번 합의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시미 교수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식에 진전이 있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에 대해선 “위안부 제도를 만든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 여전히 애매한데다, 1993년 고노 담화 때와 달리 ‘재발 방지’ 조처에 대해선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예전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요시미 교수는 1992년 1월 일본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만드는 데 깊숙이 개입했음을 밝힌 일본의 공문서를 최초로 발굴한 위안부 연구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의 문서 발굴은 위안부 모집 등의 강제성과 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요시미 교수는 2013년 5월 사쿠라우치 후미키 일본유신회 중의원 의원이 그의 저서를 “날조”라고 공격한 데 대한 명예훼손 소송의 1심 판결(20일)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 소송은 위안부 제도의 성격에 대한 일본 사법부의 판단을 요청한 것이란 의미도 담고 있어, 일본 사회 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12·28 합의’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

“결론부터 말해 이번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합의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몰아붙여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향한) 피해자의 염원을 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위안부 제도를 만들어) 여성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를 한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점이다. 책임의 주체가 여전히 애매하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표현이 나온다. ‘군의 관여’가 아니라 ‘군이’라고 주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업자가 개입된 경우에도 군이 주체이고 업자는 종속적인 역할을 했다. 군에 책임이 있다면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기시다 외상은 10억엔의 출연금이 ‘배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에서 (이전과 달리) 도의적이라는 표현을 뺐다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결국 배상이 아니고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일본이 통감하는 책임이 뭐냐는 의문이 생긴다. 업자가 나쁜 것을 했는데 정부가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사과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1993년에 나온 고노 담화와 비교할 때 진전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고노 담화 때와 달리 ‘재발 방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고노 담화에선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영원히 기억에 머무르게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번엔 10억엔만 내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고노 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다. 이에 견줘 한국 정부는 소녀상의 철거를 위해 노력한다는 의무를 지게 됐고,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기시다 외상은 한국 정부가 위안부 관련 증언과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를 볼 때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실패한 게 아닌가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위안부 제도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보면, 일본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를 인정하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울까?

“전후 7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식민 지배나 전쟁 책임 문제에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이를 극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미국도 필리핀 지배나 베트남 전쟁에 대해 제대로 사죄하지 않는 것처럼 일본도 좀처럼 그게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일본이 동아시아나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이 이를 깨달을 때까지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계속 주장해 갈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진보세력들이 여러 차례 분열을 겪었다.

“결국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도 피해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듣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같은 일을 했다. 당시 기금을 추진한 사람들은 지금의 일본 정부나 관료들이 ‘이 정도밖에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이 정도로 하자’는 생각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이를(이런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합의 이후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 문제가 쟁점이 됐다.

“가해국이 피해국에 기념물 같은 것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보통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의 등록 문제도 그렇다.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에서 ‘오래 기억에 머무르게 한다’고 국제사회에 공약을 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중국 등과 협력해 (위안부 관련 증언과 기록을)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실제 위안부 관련 자료는 대부분 일본이 갖고 있다.”

-현실 외교적으로 국가 간의 약속을 단숨에 뒤집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합의가 실행 과정에 들어간다 해보자. 피해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럼 합의 이행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최종 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이미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은 10억엔 출연을 끝으로 모든 사업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고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이다. 매우 지독한 얘기다.”

-앞으로 위안부 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결국 한-일 양국 정부가 단합해 피해자들에게 ‘더 이상은 말하지 말라’고 억누르는 구도를 만들었다. 이번 합의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백지로 돌려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울 땐 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할머니들이 한국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라면 곤란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분위기로 봐) 그렇지 않다니 다행이다. 이 합의로는 일-한의 상호 신뢰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