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하늘이 내린 풍경의 '바다' '한계'넘은 산길 물길

이윤진이카루스 2010. 10. 18. 08:26

하늘이 내린 풍경의 ‘바다’ ‘한계’ 넘은 산길 물길
[한겨레 특집] 인제포토워크숍 | 인제 멋
한겨레 이병학 기자기자블로그
강원도 내륙 깊숙이 자리한 인제.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이다. 원시림과 청정계곡 등 깨끗한 자연환경이 자랑거리다. 인제 공무원이나 주민들이 지역 자랑을 할 때 ‘하늘내린’ ‘청정웰빙’ 등 수식어를 앞에 놓는 이유다. 깊어가는 가을, 인제 읍내에서 남설악 한계령에 이르는 산길·물길에 자리 잡은 경치와 문화유적들을 찾아간다.

현몽 꾸고 건진 돌

먼저 인제읍내 번지점프대를 지나 합강정 휴게소에 차를 대고 합강정을 만난다. 합강이란,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한계천(북천)과 내린천 물길이 만나는 지점을 말한다. 합강 하류부터는 소양강으로 불린다. 합강정은 1676년 현 위치 아래쪽 물가에 처음 세운 2층 누각이다. 몇 차례 중수와 소실·이전을 거쳐 최근 현 위치에 다시 지었다. 누각 앞엔 300여 년 전 한 목재상이 현몽을 꾸고 물속에서 건져낸 돌을 다듬어 만들어 세웠다는, 코도 입도 눈도 희미해진 미륵불(합강미륵)이 서 있다.

코스모스 만발한 국도를 따라 원통리 지나 한계삼거리로 간다. 한계령 길과 미시령·진부령 길이 갈리는 삼거리다. 한계령 길로 차를 잠시 몰면 왼쪽에 호두나무집 식당이 보인다. 이 집 뒤쪽의 300년 된 아름드리 돌배나무가 눈길을 끈다.

선녀가 울고 갈 옥녀탕

44번 국도 오른쪽 한계천 물길엔 2006년 강원 중북부 일대를 휩쓸었던 대홍수 피해 흔적이 뚜렷하다. 한계1교 앞에서, 조선 중기 황장금표와 통일신라 때 절터를 보기 위해 왼쪽 치마골(큰절골) 산길로 오른다.





자욱한 풀벌레·딱따구리 소리 들으며, 앞쪽이 트인 장방형 석축 앞에 서면, 주변이 절터(치마골사지·운흥사지)임을 알려주는 불좌대 등 석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석축 위쪽 큼직한 돌에, 황장목 소나무의 벌목을 금한다는 내용의 글(‘황장을 금하는 산이다. 서쪽으로 옛 한계에서부터 동쪽 이십 리까지가 경계이다’)이 새겨져 있다.

다시 차를 몰아 옥녀탕을 찾는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옥녀탕은 4년 전 대홍수의 직격탄을 맞았다. 옥같이 맑고 깊던 소는 토사에 묻히고, 찾는 이가 없어 휴게소도 주차장도 텅 비었다.

석이버섯이 많았다는 하늘벽을 보고 장수대에 도착한다. 한계령길 휴게소 겸 남설악 등산로 들머리 중 한 곳으로, 국내 3대 폭포로 꼽히는 대승폭포 아래쪽, 신라 때 절터 한계사지 옆이다.

한계사 터로 걸어 오른다. 널찍한 숲길을 2~3분 걸으면 무너져가는 옛 산장 건물 위쪽에 절터가 나타난다. 두 개의 아담한 탑과 무너진 불좌대, 그리고 다양한 무늬가 조 각된 무수한 석물들이 흩어진 절터의 주인은 잠자리·메뚜기·사마귀 들이다.

한계사는 백담사의 전신이 되는 사찰이다. 자장율사가 647년 창건한 뒤 불에 타 790년 아래 30리 지점(황장금표 표석이 있는 곳)에 절을 옮겨 운흥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운흥사도 고려 때(985년) 불타 주변 여러 곳으로 절을 옮기며 개명을 거친 뒤 조선 세조 때 현재의 백담사로 옮기게 됐다.

구룡 박연, 그리고 대승

대승폭포까지는 왕복 1시간30분 코스(약 1㎞)다. 가파른 나무계단길을 40여 분 올라 전망대에 서면, 건너편 절벽에 걸린 대형 폭포(높이 88m)가 모습을 드러낸다. 금강산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폭이다.

전망대 옆 바위 바닥엔 ‘구천은하(九天銀河)’ 대형 글씨가 새겨져 있다. 조선의 명필 양사언의 글씨로 전하는데, ‘구천은하’란 이백의 시 ‘여산폭포를 바라보며’의 한 구절인 ‘의시은하락구천’(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구나)에서 따온 말이다.

장수대에서 8㎞쯤 굽잇길을 오르면, 동해바다 쪽 전망이 시원한 한계령 정상(950m)이다.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기암괴석이 늘어선 봉우리들과 구비구비 찻길이 그림같다. 한계령휴게소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것이다.

‘백팔계단’을 따라 설악산 등산로로 잠깐 오르면, 한계령 도로를 건설한 군인들이 1971년 세운 시멘트 정자 설악루(현재 보수공사 중)와 도로 공사 희생 장병 위령탑이 있다. 설악루 현판은 당시 지휘관 김재규가 썼다고 하는데, 설악루 뒤쪽 표석엔 ‘…위대한 영도자의 휘호를 받다’(1971년)라는 글이 보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로 보기도 한다.

필례약숫길, 안 가면 후회

한계령을 넘어 양양 쪽으로 500m쯤 가다 현리 쪽으로 우회전해 내려가는 필례약숫길 드라이브를 즐겨볼 만하다. 단풍이 한창 물들 때면 매우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가 된다. 필례약수는 톡 쏘는 맛이 예전같지 않다고는 하나, 여전히 마실 만한 약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군량밭을 지나 쌍다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다 하추리 쪽으로 우회전해 물길 따라 내려가, 내린천을 따라 인제로 돌아오는 드라이브 코스를 달려도 좋다.

■ 여행쪽지

⊙ 가는 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강일나들목을 나가 춘천행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나들목에서 나간다. 인제·속초 쪽 팻말 보고 44번 국도 타고 인제로 간다.

⊙ 먹을 곳 인제읍 합강3리 옛 국도변의 다들림 막국수 (033)462-3315, 필례약수터 필례식당(033-463-4665)의 산채비빔밥, 인제읍 상동리 궁궐해물탕 (033)463-9800.

⊙ 묵을 곳 하늘내린 호텔(033-463-5700), 스카이락 모텔(033-462-5551), 내린천 고사리의 노루목산장(033-461-1966), 하추리의 하추자연휴양림(033-461-0056·10월 주말은 예약 완료)

인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시내 북동해안 아담한 두 오름, 사라봉·별도봉   (0) 2010.12.05
세계의 걷는 길  (0) 2010.11.26
교동도  (0) 2010.11.19
우리나라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0) 2010.11.19
섬진강 상류길  (0) 201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