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교동도

이윤진이카루스 2010. 11. 19. 13:10

철새 떠나는 곳 내 마음 머문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어르신들 옛놀이로 하루가 지는 강화 교동도의 늦가을 정취
이병학기자
» 교동도 삼선리 간척지 논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쇠기러기떼. 2~3월까지 교동도에서 만날 수 있는 철새다.
“심순이 왕(중종)께 보고하기를 … (교동도) 가는 길에 남녀노소가 뛰어나와 (유배 가는 연산군을) 다투어 상쾌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위리안치소에 이른즉 위리가 좁고 높아서 해를 볼 수가 없고 다만 작은 집만 있었다. …”(<교동향토지>) 패악을 일삼던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교동도로 위리안치된 정황을 설명한 대목이다. ‘위리안치’란 유배형 중에서도 가장무거운 형벌이다. 5~9m 높이가시나무(탱자나무) 울타리 안에 가두고 행동을 제약했다. 주로 왕권다툼과 관련돼 내몰린 왕족들에게 내려졌다. 교동도는 연산군 말고도 고려의 21대 왕인 휘종, 조선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광해군의 폐비 류씨, 흥선대원군의 큰아들 영선군 등이 유배됐던 ‘왕과 왕족의 유배지’였다.

강화 교동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대룡리 시장 골목. 60년대 골목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지금 모습도 ‘위리안치’를 닮았다. 해안선의 5분의 4를 철조망이 둘러쌌다. 뚫린 곳은 남동쪽의 포구 두세 곳. 이마저 군인들 통제를 받는다. 섬인데도 주민 3000여명 가운데 전업 어민은 단 2명(1명은 어촌계장, 1명은 병원선 운항 겸업)뿐이다. 그럴 만도 하다. 섬 북쪽도 북한 땅, 서쪽도 북한 땅인 최전방 지역이다. 분단의 ‘가시울타리’에 갇히고 ‘지붕 없는 박물관’ 강화도에 눌려 진면목이 가려 있던 가깝고도 먼 섬이다. 이런 교동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강화도~교동도 연륙교가 내후년 완공 예정으로 공사중이다. 이달 초 송영길 인천시장은 제2의 개성공단 격인 ‘교동도 남북평화산업단지’ 추진계획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외지인 유입과 개발 바람에 교동도의 본모습이 사라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오랜 세월 눌려 살았던 주민들에겐 ‘희망가’로 다가온다.





피란민 배불리던 ‘능에’ 없어도 들판 가로지르는 철새떼의 향연

삼선리·난정리 들판. ‘볼 것 하나 없다’는 교동도의 볼거리를 찾아 들어간 지난 11일. 생각지 않은 ‘볼거리’를 만났다. 들판과 하늘을 휩쓸고 다니는 철새떼다. 수천마리씩 떼지어 몰려다니며 먹고 지껄이는 쇠기러기떼 모습이 장관이다. 가시울타리도 철조망도, 바다도, 엄중한 분단 현실도 날갯짓 몇 번으로 가볍게 뛰어넘는 새떼들. 철새떼만으로도 늦가을 교동도는 멋진 여행지였다. 삼선2리 주민 김종필(59)씨 말은 좀 달랐다. “인제 뭐 끽해야 기러기하고 오리잖우. 가끔씩 고니도 오긴 오지만, 옛날엔 종류가 정말 엄청났어요.”

» 삼선2리 경로당에 모여 곱새치기 놀이를 즐기는 어르신들.

드넓은 간척지 논바닥에 내려앉아 나락 주워 먹으며 요란스레 떠들고 있는 쇠기러기를 가리키며 이한정(70)씨도 말했다. “이상기온이래서 그런지 올핸 오리(가창오리)두 벨루 읍서. 베 빌 무렵에 아주 새카맣게들 몰려왔는데.” 몇년 전까지도 오리류·기러기류, 고니·두루미 등 철새들이 다양했는데, 갈수록 종류가 눈에 띄게 준다고 한다.

“한 40년 전까지두 능에(느시·천연기념물)라구, 아주 큰 새가 왔었는데, 통 볼 수가 없어.” “다 잡아치웠으니 읍지.” “피난 와가지구 그땐 뭐 먹을 게 있었나. 누런 색깔에 큰 오리 종륜데, 잡으면 고기가 개 한마리 이상이 나왔어.” “요새 철새 한 마리 잡음 을만 줄 알아? 아, 저 건네서 죽은 기러기 주워 갔다가, 몇십인가 몇백인가 벌금 엄청 물었대여.” “농작물 피해 오리두 만만찮어. 산돼지 저리 가라야.” 주민들이 풀어놓은 철새 이야기에 사람살이 애환이 다 담겼다.

“상주 웃기던” 곱새치기 놀이 아련히 이어가는 경로당 풍경

삼선2리 경로당. 어르신 다섯이 둘러앉았다. ‘곱새치기’ 놀이가 한창이다. 곱새치기란, 화투가 널리 퍼지기 이전까지, 두꺼운 종이를 길게 잘라 숫자를 나타낸 형상을 그린 24장의 패를 사용해 즐기던 전통놀이다. 자신의 패를 내며 그 숫자를 표현하는 구성진 노랫가락을 곁들이는 게 특징이다. 일제강점기까지 주로 상갓집에서 밤을 새우며 판을 벌이던 놀이로 전국에서 유행했으나, 지금은 화투에 밀려 사라진 지 오래다. 교동면 문화보존회 한기출(62)씨는 “아마 곱새치기 놀이를 지금도 이어가는 지역은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대룡리 행복집 주점 간판.

붓으로 그린 옛날식 패(긴목·진목)를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일반 화투를 대신 사용한다. “그림 그려 진목 만들 줄 알았던 유일한 어른”이 몇년 전 돌아가셨단다. 한낮인데 소주병이 놓였다. “이게 다 장삿집 상주 웃길라구들 하던 투전놀이여. 술 한잔씩들 하면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한신우씨·77) 1~4까지는 석장씩, 5~10은 두장씩 모두 24장으로, 4명이 하고 1명은 쉰다. 3장씩을 나눠 가진 뒤 돌아가면서 패를 한장씩 내려놓으며 노래를 부른다. 다 내려놓으면 다시 패를 섞어 3장씩 갖는다. 남이 갖지 않은 수를 많이 살려낸 이가 이기는데, 이를 장원이라 한다. 차례로 패를 내며 구성진 노래를 이어간다. “불리임 잡고(‘불림’은 자신의 차례가 왔다는 뜻), 어디 보자아. 팔도로 돌아라 여든닷냥 금이 났구나(8을 낸다는 뜻).” “장에 가거드은 우리 집에도 들러서 가라(10을 낸다는 뜻).”

“짐장(김장) 도와주러” 또 “콩 털러” 가야 하므로, “잠깐 돈질하고 가겠다”던 어르신들은 걷잡을 수 없이 ‘곱새치기 삼매’로 빠져든다. “꼬꼬댁일세.” 꼬꼬댁은 “놀이에서 진 사람 한 명만 장원에게 쇠질(돈질)하는 것”이고, ‘두어댁’은 둘이, ‘서너댁’은 셋이 전부 장원에게 돈을 내는 경우다. 놀이방식이 복잡해 몇번을 다시 묻자, 이한표(78)씨가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지” 한다. 한 숫자를 가리키는 표현이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선 즉석에서 꾸며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린 뭐가 나오는지 척 들으면 알지.”

시간은 없고 놀거리는 많은 시대에, 고색창연한 ‘곱새치기 놀이’가 행해지고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구성지게 노래 부를 사람도, 재미있게 보고 들어줄 사람도 거의 없어 이제 ‘사라지는 일’만 남은 놀이다.

» 곱새치기 패의 숫자를 표현한 그림.

실향민들도 함께 저물어가는 옛기억 간직한 낡은 골목길

대룡리 골목시장. 육이오 전까지 교동도 주민에겐 거리로 보나 정서적으로 보나 경기도보다 황해도가 가까웠다. 생활권도 황해도 연안이었다. 교동도에 피란 와 눌러앉은 실향민들 고향도 대부분 연안·연백 일대다. 실향민들은 “전쟁 끝나면 고향 가겠다는 생각”으로 대룡리에 정착했다. 거적 깔고 움막 짓고, 떡이고 술이고 장사 되는 것이면 뭐든 해다 팔며 버티는 와중에 형성된 골목시장이다. “고생한 건 말도 못하지. 저 화개산 울창하지? 나무? 그때 어디 나무가 있어? 풀 한포기두 없이 홀랑 벳겨진 산이여. 아, 잔디 한 오래기까지 캐 모아서 불 때고 살았으니깐.”

고구리에서 나오던 ‘토탄’은 요긴한 땔감이었다. 대룡리 골목에서 50년째 연안정육점을 열고 있는 최덕곤(73)씨가 말했다. “땅밑을 늑자(넉자)쯤 파면 꺼멓고 누런, 탄화된 고목이 나와. 그걸 낫으루다가 주욱 갈라 두부처럼 떠 말려선 난로에 때면 아주 화력이 좋았지.” 토탄층에선 심심찮게 선인들 생활용품이 발견되기도 했다. 최씨는 “뭐가 낫에 툭 걸려 뒤져보면 화살촉이나 철제 수저 같은 게 나오는 거야. 다 던져버렸지.” 토탄층은 지금 저수지 물에 잠겼다.

대룡리는 옛모습을 간직한 낡은 골목이지만, 교동도에선 가장 번화한 거리다. 고향 그리며 어렵게 살던 1세대 실향민들은 거의 세상을 떴고, 어린 시절 부모 손 잡고 넘어온 2세대들도 칠순을 넘어섰다. “요 근너여. 30분 노 저으면 되는 거리니깐. 저번에 애들이 쌍안경을 사가지구 왔드라구. 내 고향이 연백군 호동면 남당리 장수동인데, 지석리 가서 보니깐 아이구, 옛날 마을이 훤히 보이드라구. 다 바뀌었어두 척 보니깐 알겠드라구.”(교동이발관 지광식씨·72) 50~60년대 지은 낡은 건물들이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 좌우로 골동품 같은 가게들이 즐비하다. “뭘 볼 게 있다고 여까지 오누. ‘1박2일’? 하이구, 거기나오구서 한동안 볶아치드니 인제 뚝 끊겼어.”(최덕곤씨) 그래도 주말이면 몇명씩 들어와 골목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 강화 교동도

다리 놓이고 개발 바람 불어도, 철새떼는 하늘을 덮고 어르신들은 곱새치기를 즐길까. 대룡시장 오래된 골목도 살아남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골목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말했다. “섬사람만 고생하란 법 있나. 개발이 돼이지, 개발.” 중앙철물 한옥숙(69)씨는 달리 말했다. “다리 놓이면 좋아질 건 또 뭔구? 자식들이구 관광객이구 당일루 왔다간 다 빠져나갈 텐데.” 그렇다. 자식들도 묵어 가고, 관광객도 묵어 가는 섬이 좋은 섬이다.

교동도 여행 알아두기

강화도 창후포구~교동도 월선포구 배편은 물때에 따라 소요 시간이 네배까지 차이가 난다. 물이 찼을 땐 15분가량 걸리지만, 물이 빠지면 배가 우회해 1시간이나 걸린다. 교동도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

특히 당일 여행일 경우, 월선선착장에 내려 미리 그날의 ‘배 도는 시간’을 알아두시길.

⊙ 창후리 포구에서 배를 탈 때 인적사항을 적어 군인에게 제출해야 한다.

⊙ 교동도에서 철조망이나 부대 주변, 북녘 해안을 향한 촬영은 금지된다.

대룡리 시장골목은 주말에 더욱 썰렁해진다. 식당 등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자식들 기다리는 서울·인천으로 나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