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섬진강 상류길

이윤진이카루스 2010. 11. 5. 08:39

임실을 지나는 섬진강 상류의 물길이 시냇물 같다. 강가의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러운 곡선을 긋는다. 야윈 강이었지만 억새가 있어 따뜻해 보였다. 도로를 따라 가던 방향으로 조금 걸으니 ‘장구목가든’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처음부터 경사가 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멘트로 닦은 좁은 길이 이어진다. 마른 숲에서 향기가 난다. 마른풀과 나무들이 품고 있는 향기다. 


갈래길이 나왔다. 윗길이 지름길이다. 하지만 우리는 ‘싸리재마을’을 지나가는 아랫길로 내려갔다. 싸리재마을은 이 길에서 처음 만나는 마을이다. 사람 사는 집이 몇 가구 안 되지만 대숲 아래 마을이 아늑하다. 바람소리도 빨아들일 것 같은 적막감이 마을을 에워싼다. 이런 마을이라면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에 개들이 ‘컹컹’대며 짖을 텐데 아무 소리도 없다. 뒹구는 비닐조각과 멀리서 일렁이는 대숲의 바람소리가 전부다. 우리도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며 걸었다.

 

 

 

강에 솟은 기암괴석들, 그리고 강 가의 밤

해가 짧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날은 잔뜩 찌푸렸다. 물줄기도 제법 ‘콸콸’대며 흐른다. 여울이면 여울대로 큰 바위를 만나면 저 만치 돌아가며 물길이 났다. 장구목이다.

 

장구목. 섬진강 상류 강바닥 너럭바위가 신비한 모양으로 빚어졌다.

  

 

강에서 솟은 기암괴석들이 신기하다. 밀가루반죽을 해 놓은 듯 암반바위 전체가 요상한 모양으로 빚어졌다. 눈을 낮춰 바라보면 바위 모양이 넘실대는 물결 같기도 하고 굽이치는 산봉우리도 닮았다. 우리는 그 바위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새로운 형상을 찾느라 정신 없었다. 추상에서 찾아내는 우연 같은 형상이랄까. 특히 이곳은 요강바위로 유명하다. 너비와 높이가 2~3m 정도 되는 큰 바위 위부터 바닥까지 큰 구멍이 났는데 어른 두 명 정도가 들어가 서 있을 정도의 구멍이다. 여기 사람들은 그 바위를 보고 요강바위라고 하는데 여기에 사연이 있다.

 

바위 모양이 기이해서 어떤 사람이 일본으로 팔아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바위의 가격이 20억 원이 넘었다는 것. 요강바위가 없어진 것을 알고 수소문 한 끝에 일본으로 나가기 전에 인천 모처에서 발견하고 원래의 자리에 다시 옮겨놓았다. 요강바위는 장구목가든 앞 기암괴석이 펼쳐진 곳에 있다. 우리는 강가를 서성거리다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미 날은 어두웠고 강가에는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새우탕을 시켰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서비스로 참게 두 마리를 넣어 ‘참게 새우탕’을 끓여냈다. 걷느라 목도 마르고 출출하기도 해서 밥을 먹기 전에 동동주를 먼저 시켰는데 그 맛이 어찌나 좋던지 한 동이를 다 비우고 또 한 동이를 시켰다. 창밖에는 강바람이 ‘훙훙’거리며 불어 가고 따듯한 방안에서는 뚝배기에서 찌개가 ‘보글보글’거리며 끓는데 이것이 시골에서 맛보는 이 계절 밤의 운치 아닌가. 밥상에 오른 반찬에 푸른 들풀이 돋았고 꽃이 피었다. 주인아줌마가 단풍잎튀김, 황새냉이무침, 꽃차 등 들풀과 꽃, 나뭇잎으로 만든 음식으로 상을 차린 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자연을 상위에 담고 싶은 마음에 그랬단다.


20여 년 전 이곳으로 시집와 세탁기도 없이 빨래를 하고 농사일에 시골생활을 이겨내야 했다. 어머니의 세월을 젊은 새댁이 살았던 것이다. 그 세월 덕에 자연이 좋은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눈앞에 흐르는 섬진강과 그 주변 자연들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선물하는지 알게 됐다. 지천에 피어난 들풀과 들꽃도 모르면 그냥 풀과 꽃인데 알면 밥상 위에 오르는 반찬으로 음식으로 한 잔의 차로 새롭게 태어난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자연에 묻혀 살면서 하나 둘씩 배운 것이다.


겨울로 가는 계절은 밤이 길다. 그 긴 밤 이야기에 웃음소리가 섞여 창밖 섬진강으로 퍼져나갔다.강이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려 우리는 강가로 나갔다. 가로등 불빛이 겨우 미치는 곳까지 가서 바위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흐르는 강은 소리로 보고 들어야 한다. 우리가 나누는 말소리도 여울을 흐르는 강물소리를 닮아가고 있었다.

 

 

억새 일렁이는 강은 따듯하다 

섬진강으로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새날 새 햇볕이 쏟아진다. 산봉우리를 비집고 나온 해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푸른 물 위에 물결마다 빛나는 햇볕이 보석 같다. 풍성한 빛의 질감에 주변 바위와 풀과 나무의 색도 모두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빛난다. 하루 중 이때가 가장 황홀하다. 장구목 기암괴석들도 햇볕을 받아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음까지 풍요로워진다.


강가에는 억새가 넘실댔다. 무리 지어 피어난 억새의 부드러운 꽃술이 있어 시린 하늘도 따듯해보였다.  키 큰 나무를 지나고 벼락같은 바위 앞도 지났다. 마을 입구에 서있어야 하는 커다란 동구나무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다음 목적지인 구미마을이 멀지 않게 느껴졌다. 그 큰 동구나무에서 길은 갈라졌다. 우리는 마을이 나올 것 같은 왼쪽 길을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미마을에 도착했다.

 

물가의 억새는 더 부드러워 보인다. 바람에 물결 일면 억새도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하염없다. 

  

 

마을은 햇살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문전옥답’이라 했던가, 마을 앞이 논이다. 그 전체적인 풍경이 안정되고 여유로웠다. 옛집과 돌담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은 푸근한 할머니 품 같았다. 마을 담장이며 벽에도 그림을 그렸다. 낮은 돌담이 정겨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봤다. 아주머니 한 분을 길에서 만났다. 이 마을은 아직도 100여 가구가 산단다. 원래는 300가구가 넘었는데 지금은 100가구 정도 밖에 안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시골에 100가구나 살고 있는 데가 어디있냐시며 말을 이었지만, 아줌마는 옛날이 그리우신가 보다.


마을 여기저기 잘 돌아보고 조심해서 올라가시라며 안부인사도 잊지 않는다. 옛 마을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감나무 끝에 까치밥이 달렸다. 자세히 보니 매달린 감 반이 없어졌다. 까치가 벌써 한 끼 식사를 마친 모양이다. 우리도 배가 고파졌다.

 

 

길에서 찾은 고향 들판 어린 시절 추억

구미마을 돌담길과 그림이 그려진 골목을 천천히 돌아봤다. 지붕 위 늙은 호박이 줄기에 달린 채 그대로 시들었다. 시골 마을 시간은 도시의 그것과는 다르게 흐르나 보다.

 
구미마을을 나와 동계마을 방향으로 걷는다. 빈 논과 허름한 집, 작은 마을 등 평범한 시골마을 풍경을 보며 도로를 따라 걷는다. 벌판 바람에 날이 섰다. 코끝이 찡하다. 고향 배상 들판에서 얼음을 지치던 어린 시절 그 바람 향기가 났다. 누런 코를 훌쩍 거리며 겨울 들판을 내달리던 그 시절 그 마음으로 걸었다. 가끔 다니는 차만 제외하면 이 길에서 사람도 마을도 모두 풋풋한 자연 같다. 도착지인 동계면 소재지가 가까워지면서 멀리 ‘쌩쌩’거리며 질주 하는 차들이 보였다. 속도가 낯설다.

 

 

가는 길

*자가용
호남고속도로 태인나들목 - 30번 국도 - 칠보 - 산내 - 섬진강댐 - 회문삼거리에서 강진방면 30번 도로로 좌회전 - 717번 도로로 우회전 - 천담교

*대중 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임실까지 간다. 임실에서 강진까지 간다. 강진에서 천담교 앞을 지나는 버스(동계 방면)를 타고 가다가 천담교 앞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버스가 자주 없다. 택시를 타고 천담교까지 간다.(강진면소재지에서 천담교까지 약 6km 거리다.)

  

숙소
장구목 요강바위 앞에 장구목 가든 등 숙박할 곳이 두 세 곳 있다.

 

먹을거리
장구목 부근에 가든 등 식당에서 매운탕 등을 판다.

 

주변 여행지
10km 안팎 거리에 회문산자연휴양림과 옥정호 등이 있다.

 

 


여행하기 좋은 시기 : 가을

주소 : 출발 (전북 임실군 덕치면 천담리), 도착 (전북 순창군 동계면)
총 소요시간 : 6시간

총거리 : 13km

준비물 : 편안한 운동화. 물 한 병. 햇볕 가릴 모자. 물 가 찬바람 막아 줄 옷은 필수.

 

섬진강 상류 계곡 물줄기를 따라 걷는 길이다. 천담교에서 도로를 따라 약 800m 정도 걷다가 장구목가든 이정표를 보고 길을 따라 간다.

 

갈림길이 나오면 아랫길로 가면 된다. 이후 싸리재마을, 장구목마을을 지나는데 해거름이라면 장구목마을에서 하룻밤 잔다. 출발지인 천담교에서 도착지점인 동계마을까지는 약 13km 거리인데 하루에 걷기 충분하지만 늦게 출발 했다면 중간에 장구목(요강바위 부근)에서 하룻밤 묵으며 밤의 섬진강 물소리를 즐겨도 좋겠다. 약 9km는 물길을 따라 걷고 나머지는 평온한 시골마을 옆 도로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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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장태동
여행기자를 거쳐 2003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살고 있다. 전국을 걸어 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다. [서울문학기행], [아름다운 자연과 다양한 문화가 살아 있는 서울·경기], [맛 골목 기행], [서울 사람들], [대한민국 산책길] 등의 책을 썼다. 이름 없는 들길에서 한 번쯤 만났을 것 같은 얼굴이다.

 

발행일  201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