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원전 사고는 없을 것이란 신화에서 깨어나라,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3. 9. 22:03

원전 사고는 없을 것이란 신화에서 깨어나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제대로 수습 못해 물러났던 간 나오토 전 총리, ‘탈핵 전도사’로 변신

제1102호
2016.03.09
등록 : 2016-03-09 15:12

 

간 나오토(70) 전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깊은 인연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도쿄공업대학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한 ‘공대생 정치인’이자, 정계 입문 전까지 ‘공포의 화학물질을 추방하는 그룹’이라는 시민단체 대표를 지냈다. 환경단체 경력을 바탕으로 34살이던 1980년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일본 민주당 창당 대표를 거쳐 2010년엔 일본 94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정치적으로는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부터 10년간 5명의 세습 정치인이 총리를 해오던 일본 정치계에 ‘세습 총리 시대’를 끝낸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하다.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빚은 인재(人災)”

그러나 취임 7개월 만에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고가 터지자 그는 도쿄전력과 함께 통합대책본부를 만들어 직접 본부장을 맡았다. 그가 원전을 책임져야 했던 도쿄전력 임직원에게 “60살 이상은 후쿠시마 현지 수습을 책임질 각오를 해라. 나도 그럴 것”이라고 한 말은 잘 알려져 있다.

5개월 뒤, 그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쿠시마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중의원으로 정치권에 남아 ‘탈핵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올해로 12선 중의원을 지내고 있는 그를 2월24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일본에서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후쿠시마의 교훈이 잊혀지는 것 같다.

올해는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1986년 4월26일)가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5년이 지났다. 어느 의미에서는 체르노빌보다 더 큰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은 후쿠시마에서 반경 250km 권역 주민 5천만 명이 당장 피난을 해야 할지 말지 기로에 서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원전 사고의 피해 크기를 분명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이 사실을 모두 제대로 인식하면, 핵발전소를 재가동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너지 정책도 핵발전 중심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고의 교훈을 잊으려 하는 것 같다. 정부는 원전 재가동뿐 아니라 아직 방사능 위험이 있는 후쿠시마 피해 지역에 주민 귀환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태도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가장 유감이다.

과거 아베 신조 총리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대해 “나라를 망칠 정권”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원전 사고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난해 체르노빌에 다녀왔다. 사고 당시 5살이던 아이가 지금 34살 정도의 성인이 됐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들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추적조사 같은 걸 해오고 있다고 들었다. 당연히 후쿠시마 아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대응이 필요하다. 이들이 방사능 추적조사를 받는다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건강조사를 계속해야 한다. 후쿠시마 대지진은 자연재해라고 해도, 원전 사고는 도쿄전력과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빚은 인재(人災)다. 정부가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관료들의 안 좋은 점은 자신의 전임자가 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해가 될까 싶어 오히려 이것을 철저히 감추려고 한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원전 사고가 재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여당에 원전 재가동 정책을 멈추라고 압력을 가해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일본 내에 ‘원전 제로’가 되도록 다시 분발하겠다.

“체르노빌처럼 아동 방사능 추적해야”

일본 정부의 귀환 정책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주와 피해보상금을 연계해 사실상 강제 이주라는 원성이 높다. 하지만 피해 지역의 방사능 농도가 여전히 높다. 귀환곤란구역인 곳들도 눈에 띈다.

아베 신조 정부는 후쿠시마 사태를 빨리 끝내려고 한다. 특히 2020년 도쿄에서 올림픽이 예정돼 있어 최대한 빨리 후쿠시마 복구가 완료됐다고 선언하고 매듭을 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핵발전소 사고는 자연재해처럼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복구되는 것이 아니다. 체르노빌 사고 지역은 30년이나 지났어도 귀환이 불가능하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도 좋지 않다.

하지만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가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피난 지시 해제를 시작했다. 2년 전, 다무라시 미야고지 지구 동부와 가와우치무라 동부 지역 주민들의 피난 지시가 해제됐다. 지난해엔 나라하마치의 피난 지시도 풀렸다. 2017년까지는 9개 지역이 추가로 해제된다. 이는 후쿠시마 피난 주민들의 뜻에 역주행을 하는 것이다. 주택이나 보상금 지원을 더는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사실상 주민들을 겁주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는 원전 피해 주민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자주적 피난민의 선택도 존중해주고 지원금을 계속 줘야 한다. 돌아가지 않는다고 괘씸하다고 말해선 안 된다. 귀환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그에 합당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지금의 여당인 자민당도 사고 당시 ‘원전 사고 피해자 생활 지원법’을 함께 만들었다. 취지에 걸맞은 대응을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산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이어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기 좋은 환경인 것으로 안다. 재생 가능 에너지가 핵발전보다 더 안전하다.”

간 나오토가 총리일 때, 일본은 원전 54개를 보유한 채 전체 전력의 30%를 원전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간 전 총리는 원전 비중을 기존 30%에서 최대 50%로 확대하는 정책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사고 뒤, 그는 곧바로 ‘원전 제로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일본 국민 80% 이상이 찬성했지만, 그는 탈원전 정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간 전 총리는 지난해 한국을 찾아 반핵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그는 “이전까지는 일본의 높은 기술 수준을 과신했다. 나조차 그런 큰 사고는 없을 것이란 ‘원전 안전 신화’에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도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원전에 기대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다면

한국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세계적인 탈핵 추세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고리 1호기 핵발전소 폐쇄는 지역 주민의 단결된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난해에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치권으로부터 초대받아 울산과 경북 경주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인구가 밀집한 한국에서 후쿠시마 원전 규모로 사고가 나면, 역시 250km 밖으로 피난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국토의 절반 정도가 피난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 간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의 절반이 날아갈 뻔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국가 기능 자체가 작동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산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이어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기 좋은 환경인 것으로 안다. 재생 가능 에너지가 핵발전보다 더 안전하다. 경제적 이점도 크다.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도쿄(일본)=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