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화천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3. 00:14

esc

굽이굽이 산길·물길 완행버스 따라 청춘도 흘러가네

등록 :2016-05-18 20:06수정 :2016-05-19 15:28

 

화천 북한강 물길 따라 조성된 ‘수상 데크’ 길. 도보·자전거용 ‘산소길’의 일부 구간이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화천 북한강 물길 따라 조성된 ‘수상 데크’ 길. 도보·자전거용 ‘산소길’의 일부 구간이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군인들의 고장’ 화천 사내면의 삼일계곡 화음동정사지, 곡운구곡 둘러보고 북한강변 따라 느릿느릿 신록 감상
이병학 기자의 완행버스 여행
화천 사내면 사창리~삼일리~화천읍

“승객은 다 군인이죠. 95% 이상 될걸요.”

동서울버스터미널과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버스터미널을 오가는 직행버스 운전기사의 말이다. 말하자면, 휴가 나온 군인과 부대 복귀하는 군인들의 전용 버스인 셈이다. 그렇다. 경기·강원 북부 지역이 다 그렇듯이, 화천군도 군인들의 고장이다. 20대 초반 푸르디푸른 청춘의 사내들이 모여, 먹고 자고 훈련하며 단결도 하고 충성도 하는 이 지역은, 청춘들 못지않게 자연경관도 맑고 깨끗하고 푸른 곳이다. 푸른 산과 물 맑은 계곡이 기다리는 고장으로 떠나는 완행버스 여행이다.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버스터미널에서 마을버스로 출발해 삼일계곡 화음동정사 터를 둘러본 뒤, 계곡 따라 이어지는 경관 ‘곡운구곡’ 일부를 거쳐 화천읍내로 이동해, 북한강 물길 따라 자전거를 즐기는 여정이다.

 삼일리행 마을버스. 하루 4회 운행한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삼일리행 마을버스. 하루 4회 운행한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삼일리행 버스 하루 4회, 시간 잘 맞춰야

사내면 사창리. 버스터미널에도 식당에도 다방에도 군인들이 깔렸다. 해마다 8월 초 토마토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유학자 김수증(1624~1701)이 머물던 ‘화음동정사지’(華陰洞精舍址)로 가기 위해 삼일리행 버스를 기다렸다. 삼일리까지는 버스로 15분 거리지만, 운행은 하루 네번뿐이다.

대합실에서 10시30분 차를 기다리는데, 삼일리 사신다는 할머니 한 분이 물으신다. “거기 정자(화음동정사지를 지칭) 사진 찍으러 가나배.” 그렇다고 하니 친절하게도 “버스가 거기 내려주고 양어장까지 올라갔다가 돌려 내려오는 동안 찍으면 돼유” 하신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려면 무려 4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니, 후딱 찍고 다시 그 버스 타고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근처의 고찰 법장사까지 둘러보며 4시간을 기다릴 작정으로 버스에 올랐다.

아담한 크기의 푸른색 24인승 마을버스(태흥운수)다. 손님은 할머니 한 분뿐, 운전기사는 “통학생들 타는 아침·저녁 빼곤, 빈 차일 때도 많다”고 했다. 부대 앞 지나 물길 따라 신록 우거진 산길을 달린다. “저, 거기서 내려줘유.” 운전기사는 할머니 내릴 곳을 안다. 정류소도 아니다. “법규대로 정류소 정차를 고집하면,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이 너무 힘들어해 원하는 곳 어디든지 내려 드린다”고 했다. 한마디 덧붙인다. “사고라도 나면 몽땅 운전사 책임이지만….”

사내면 사창리 버스터미널 대합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사내면 사창리 버스터미널 대합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터미널에도 식당에도 군인들 북적
24인승 푸른색 마을버스엔 어르신뿐
바위에 정자 올린 화음동정사지와
곡운구곡 암반엔 김수증 발자취
읍내에선 강변·붕어섬 자전거 한바퀴

곡운 김수증이 머물렀던 삼일계곡 화음동정사지 앞 물길.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곡운 김수증이 머물렀던 삼일계곡 화음동정사지 앞 물길.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벼슬 버리고 은둔 김수증의 ‘화음동정사지’

화음동정사지는 조선 중기 성리학자 곡운 김수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계곡 물가에 초당 등 주거공간을 만들고 은둔해 살던 터를 말한다. 화악산(1468m) 북쪽 자락, 암반계곡인 삼일계곡의 중하류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천막 방갈로들 옆으로 ‘화음동정사지’를 알리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거대한 암반을 따라 흐르고 쏟아지며 부서지는 물길이 매우 깨끗한데, 물길 양쪽 암반들과 물 가운데의 바위 등이 모두 정자가 들어섰던 유적지다. 바위 위엔 송풍정을 복원했고, 산 밑 바위자락 옆엔 삼각 정자인 삼일정도 복원해 세웠다. 붕당정치로 밀려난 사대부의 은둔생활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생활공간이자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삼일정 옆 암반엔 태극도·팔괘 등 당시 성리학자들의 세계관을 나타낸 다양한 석각이 새겨져 있다.

화음동정사지에서 찻길 따라 상류 쪽으로 올라 다리 앞에서 오른쪽 지류를 따라 30분쯤 오르면 아담한 절 법장사를 만난다. 기도원 못미처 오른쪽 산자락이다. 본디 신라 때 미륵사란 절이 있었고, 이 터에 곡운 김수증이 한 스님에게 반수암이란 암자를 짓게 한 뒤, 화음동정사와 반수암을 오가며 지냈다고 한다. 법장사는 반수암 터에 다시 지은 절이다.

삼일계곡 법장사의 옛 부도.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삼일계곡 법장사의 옛 부도.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대웅전 뒤쪽 산신각 위 거북바위 틈에 뿌리내리고 자란 노송이 참 아름다웠다고 한다. 하지만 산신각에 불이 난 3년 전 불타 사라지고 뿌리만 안쓰럽게 남아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절 들머리 바위절벽에 남은 커다란 글씨 석각 흔적이다. 법장사 주지 스님은 “김시습의 글씨인데, 전에 있던 한 스님이 ‘유교의 산물’이라며 불로 지져 쪼아내버렸다”고 했다. 석 자의 큰 글씨와 두 자의 작은 글씨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절에 남은 옛것은 들머리 밭 안쪽의 커다란 부도 1기가 유일하다.

화천읍 붕어섬 들머리의 ‘연인’상.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화천읍 붕어섬 들머리의 ‘연인’상.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곡운구곡’ 지나 북한강 본류 따라 화천읍내로

네 시간여 뒤에 다시 들어온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사창리 버스터미널에서 화천읍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역시 24인승 마을버스, 승객은 어르신 두 분뿐이다.

삼일계곡 하류인 용담계곡(지촌천)의 암반 위를 흐르는 물줄기엔 김수증이 이름붙인 아홉 경치 ‘곡운구곡’이 이어진다. 버스편이 뜸해(사창리~화천버스터미널 버스 하루 6회 왕복) 버스에서 내려 감상하긴 부담스럽다. 아홉개의 암반 경치 중에서 볼만한 것은 3곡 ‘신녀협’과 4곡 ‘백운담’ 등이다. 김수증의 의뢰를 받은 당시 화가 조세걸이 아홉 경치를 답사해 실경을 그린 <곡운구곡도>가 전해온다. 조선 실경산수화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림이라고 한다.

버스는 용담샘터를 지나 물길 따라 굽이치는 56번 국도를 달린다. 지촌삼거리 거쳐 5번 국도를 따라 북한강 물줄기를 오른쪽에 두고 달려 화천읍내로 든다. 화천은 북한강 물길에서 벌이는, 겨울 산천어축제와 여름 쪽배축제로 유명한 ‘물의 고장’이다. 버스 타기는 이쯤 하고, 자전거로 강변 경치를 즐겨보기로 했다. 읍내에서 상·하류 쪽으로 강변 양쪽에 ‘산소길’이라 이름붙인 근사한 자전거길이 조성돼 있다.

자전거로 달리는 북한강 ‘수상 데크’ 환상적

붕어섬 들머리 대여소에서 자전거(1만원, 5천원은 상품권으로 반환)를 빌려준다. 상류 쪽으로 달려 미륵바위~숲으로다리~수상 나무데크길~산길~화천대교~뜬다리로 돌아오는 2시간 코스(약 4.8㎞)를 탔다. ‘파로호 산소 100리길’의 일부 구간이다. 아카시아꽃·애기똥풀꽃 들이 반겨주고, 뻐꾸기·꾀꼬리 들이 우지짖는 아름다운 자전거길이자 산책 코스다.

가장 매혹적인 구간은 부교(뜬다리)인 ‘숲으로다리’(숲으로 드는 다리라는 뜻)를 건너, 하류 쪽으로 1㎞나 이어지는 ‘수상 데크’ 길이다. 밑이 평평한 작은 배 모형들을 띄우고 나무를 깔아 만든 ‘물 위의 산책로’다. 강변의 울창한 숲과 어우러진 수상 데크 풍경이 그림 같다. 데크길이 끝나면 15분쯤 숲속 흙길을 거쳐야 하지만, 자전거를 끌고 가는 데는 큰 부담이 없다. 더덕 향기 맡고 새소리 들으며 걷는 울창한 숲길이다.

자전거 반납 시간은 5시까지다. 여유가 되면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놀이동산인 붕어섬도 자전거로 탐방해볼 만하다. 다리로 연결된 이 섬 안에서 수상자전거·카누·카약·다인승자전거·전통스쿠터·레일바이크 등도 즐길 수 있다.

화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화천 완행버스여행 정보

대중교통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면소재지) 버스터미널까지 직행버스가 하루 24회 2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 소요, 1만1200원. 사창리~삼일리(화음동정사지) 시내버스(마을버스·24인승)는 하루 4회(07시30분, 10시30분, 14시50분, 16시) 운행. 15분 소요, 1200원. 버스를 놓쳤다면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삼일리까지 미터기로 6천원 안팎. 사창리 버스터미널 옆에 택시 승차장이 있다. 사창리~화천읍은 시내버스가 하루 6회(08시, 08시50분, 10시50분, 13시20분, 16시, 19시10분) 운행한다. 30여분 소요, 3910원. 자주 운행하는 춘천행 버스를 타고 어리고개(지촌삼거리)에서 내려, 춘천~화천 버스를 타도 된다. 화천공영버스터미널에서 동서울까지는 하루 28회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30분 소요. 무정차(춘천만 경유) 직행은 2시간 소요. 1만3900원.

먹을곳·묵을곳 화천읍내 화천시장 안에 소머리곰탕·국밥·순댓국 등을 내는 식당이 많다. ‘황해식당’의 소머리국밥, ‘옛골식당’의 닭도리탕 등. 화천경찰서 옆 골목의 ‘화천순두부’는 허름한 식당이지만 매일 순두부를 만드는 곳. 다 팔리면 문을 닫는다. 읍내에서 북한강 상류 쪽 대붕교에 이르는 도로(평화로·자전거길 옆)변에도 막국수·두부전골 등을 잘하는 식당들이 많다. ‘화천막국수’의 동치미막국수·비빔막국수 등. 오골계를 즉석에서 잡아 요리해주는 ‘웰빙오계가든’(화천읍 가손이길)도 있다. 사내면 사창리에선 터미널 옆 ‘삼대막국수’의 소머리국밥과 막국수가 먹을 만하다.

화천읍에 덕성파크·로터스모텔 등 모텔들이 있다. 북한강변 평화로를 따라 파로호 쪽으로 펜션·민박집들이 많다. 한옥펜션도 있다. 사창리에도 모텔·여관이 10여곳 있다.

화천 시티투어 버스 춘천역에서 출발해 화천의 볼거리를 둘러보는 시티투어버스가 있어 이용할 만하다. 코스마다 다르지만 대개 민속박물관·산소길·화천시장·평화의댐·감성마을 등이 포함된다. 평일 춘천 출발 1만5천원, 화천 출발 1만1천원, 주말(토·일) 춘천 출발 1만9천원, 화천 출발 1만5천원. 2일 전 예약 필수. 사내면 쪽 코스는 없다.

화천 여행문의 화천군 관광안내소(시티투어버스 예약) (033)440-2575, 자전거대여소 (033)442-7570, 화천 시외버스터미널 (033)442-2902, 화천 시내버스터미널 (033)442-2092, 사내면 사창리 버스터미널 (033)441-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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