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진도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6. 2. 21:08

esc

북적북적 진도 여행, 기억과 위로의 또다른 방식

등록 :2016-06-01 23:34수정 :2016-06-02 13:43

 

한 여성이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 쪽 바다를 바라보며 노란 리본을 묶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한 여성이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 쪽 바다를 바라보며 노란 리본을 묶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진도 희망투어
세월호 참사 이후 어려워진 주민 위해 섬연구소가 기획한 ‘진도 섬 살리기 희망투어’
전남 진도군 조도면(鳥島面). 진도 남서쪽 바다, 13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해상, 거칠기로 이름난 이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새떼처럼 깔렸다. 상조도·하조도·가사도·거차도·맹골도·병풍도·관매도…. 거센 물살 견디며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올망졸망 어여쁘고 곱고 길고 짧은 섬들.

2014년 4월 이후, 섬들은 세월호 안에 머물러 있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품고 가라앉은 세월, 그 안으로, 진도와 팽목항이 그리고 조도면의 섬들이 하얗게 떠 있다. 모두가 미안하고 가슴 아파서, 죄송하고 쓰라려서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어 하염없이 떠 있다.

“미안함 씻기 위해서라도 이젠 가봐야 할 곳”

지난 5월20일 밤. 그곳으로 가기 위해, 시리고 저린 가슴으로 ‘섬 탐방객’들이 서울 종로2가 ‘문화공간 온’에 모였다. 사단법인 섬연구소가 주관한 ‘진도 섬 살리기 희망투어’ 두번째 탐방 행사, 팽목항~관매도~진도 여행에 참가한 남녀노소 27명이다. 그 섬에 닿기 위해 진도 팽목항으로 떠나는 밤, 버스를 타기에 앞서 열린 ‘섬 강연’에서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이 말했다. “가보아야 합니다. 미안함을 씻기 위해서라도 가야 합니다. 가서 희생된 이들 앞에 ‘잊지 않겠노라’ 약속하고, 실의에 빠진 섬 주민들도 만나야 합니다.”

이제 세월호를 매만지지 않고 진도와 딸린 섬들을 여행하는 방법은 없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바람이 잦아든 뒤에도 진도의 섬들은 그렇게 ‘세월호 앞바다’에 떠 있을 것이다. 잊을 수도 없고, 잊지 말아야 하기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섬들이다. 그래서 ‘진도 희망투어’는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순례의 길이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 어려움을 겪는 섬 주민들을 위로 방문하는 여정이다.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대형 리본 조형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대형 리본 조형물.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못 와봐서 더 아팠다” 팽목항 분향 뒤 눈물

아침 6시, ‘세월호 온전한 인양!’ 깃발과 노란 리본들이 나부끼는 팽목항(진도항). 밤새 달려온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가장 먼저 ‘팽목항 세월호 분향소’를 찾았다. 홀로 참가한 대학생, 60대 노신사, 50대 자매,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들, 신혼부부. 모두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빈 영정을 포함한 304명의 희생자 영정 앞에 머리를 숙였다. 어떤 이들은 영정을 하나하나 찬찬히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희망투어’ 참가자 대부분은 “꼭 와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틈을 낼 수 없었던” 이들이었고 “실의에 찬 섬으로의 여행이 죄스러워서 실행을 못했던” 이들이었다.

서울 도봉동에서 온 채경숙·규순 자매(50대)는 “미뤄둔 숙제처럼 마음이 늘 무거웠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막상 분향소를 찾으니 가슴은 더 아프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덜게 됐다”고 털어놨다. “시간이 갈수록 아픔이 희석되는 것 같아 더 고통스러웠어요. 잊지 않을 겁니다. 아직 우리는 더 슬퍼해야 하고 더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홀로 참가한 대학생 이종원(24·인천 작전동)씨도 입을 열었다.

한 참가자는 “분향소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다른 참가자는 “‘팽목항’ 팻말이 ‘진도항’으로 바뀌었다”며 “항구 간판 바꿔 단다고 세월호가 지워질 줄 아느냐”며 씁쓸해했다.

딸린 섬 관매도 트레킹부터
팽목항 부근 남도진성, 운림산방까지
빼어난 경관 즐기며 주민 만나
“죄스러워 여행할 수 없었던 곳
찾아오니 마음의 짐 더는 듯”

“‘가고 싶은 섬’ 선정으로 관광객 회복 기대”

팽목항에서 아침 8시 배를 타고 창유항(하조도) 거쳐 관매도에 도착한 일행은 아침식사 뒤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관매도는 세월호가 침몰한 거차군도와 맹골도·병풍도 사이 맹골수도에서 동북쪽에 자리한 섬이다. 독특한 바위 등 빼어난 해안 경관, 울창한 소나무숲, 풍성하게 전해오는 이야기들로 조도면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안에서도 대표적인 섬 여행지로 꼽혀왔다. 세월호 참사 직전인 2013년엔 약 4만명의 관광객이 몰렸던 곳이다.

관매마을 전 이장 조창일(76)씨는 “세월호 참사 첫해에는 관광객이 완전히 끊겼고, 지난해부터 조금씩 들어오더니, 올해 들어선 차츰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2011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명품마을’ 제1호로 선정되면서 환경·생태·전통이 살아있는 청정 섬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관매도는 최근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지원 섬으로 선정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이웃 섬 주민들과 함께 직접 어선을 몰고 나가 승객들을 구했던 관매도 주민들은 조만간 관광객 발길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볼거리 많은 ‘명품 섬’ 곳곳 차분히 트레킹

배를 타고 오면서 갑판을 서성이거나 바다와 섬들을 조용히 바라보곤 하던 일행은, 강 소장으로부터 관매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지 설명을 듣고 본격 트레킹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풀렸다.

주민들은 방문객을 반기며 친절하게 맞이했다. 도로변에 채취한 톳을 널어 말리던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묻자, “톳 말리기는 일이 고되다”면서도 톳이 얼마나 맛있고 건강에 좋은지 설명하며 무쳐 먹는 방법까지 일일이 알려줬다.

‘진도 섬 살리기 희망투어’ 관매도 탐방단 일행이 ‘기억의 전망대’에 들른 뒤 관호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 옥황상제가 가지고 놀았다는 ‘꽁돌’이 보인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진도 섬 살리기 희망투어’ 관매도 탐방단 일행이 ‘기억의 전망대’에 들른 뒤 관호마을로 돌아가고 있다. 멀리 바닷가에 옥황상제가 가지고 놀았다는 ‘꽁돌’이 보인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옥황상제의 공깃돌이라 전해오는 ‘꽁돌’(돌묘와 꽁돌),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 쪽 바다가 보이는 ‘기억의 전망대’를 찾은 일행은 관매해변의 300년 된 울창한 소나무숲과 남근바위가 우뚝한 방아섬 코스를 둘러보며 관매도의 매력을 실감했다. 몇몇은 소나무숲 그늘 속 노거수에 기대앉아 단잠을 청하며 청정 섬에서의 휴식을 즐겼다.

‘기억의 전망대’에선 노란 리본 달기 행사도 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마다 리본에 애달픈 마음을 적어 울타리 밧줄에 묶으며 희생자의 명복을 빌었다. ‘기억의 전망대’는 지난 4월 ‘희망투어’ 첫 행사 때 명명식을 하고 작은 팻말을 매달았던, 맹골수도 쪽 바다가 보이는 해안절벽 위 언덕이다.

‘기억의 전망대’ 팻말.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기억의 전망대’ 팻말.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팽목항 방문 겸한 섬나들이 권하고 싶어”

오후 배를 타고 팽목항으로 돌아온 일행은, 조선시대 석성인 남도진성(남도석성)과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세방낙조전망대를 둘러봤다. ‘듬북갈비탕’(조도 앞바다에서 나는 해조류인 듬북을 넣어 끓인 갈비탕) 등 전통음식으로 저녁을 든 뒤 이들은 진도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엔 운림산방 등 진도 명소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1박3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학생 이종원씨는 “팽목항 분향소도 찾고 섬 여행도 즐길 수 있어 좋았다”며 “발길이 선뜻 떨어지지 않겠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이라면 섬 여행을 겸해 팽목항을 찾아볼 것을 꼭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진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