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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독재일 뿐이고 폭군은 폭군일 뿐이다 / 유재원 외국어대 교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3. 16:25

국제국제일반

오늘날 독재를 빼닮은 참주정…3대까지 간 적은 없었다

등록 :2016-05-22 19:59

 

유재원 교수가 길에서 만난 그리스 사람, 역사, 문화
⑪ 리케이온 폐허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아테네에 세운 학교 리케이온 유적지 모습. 리케이온은 중산층 학생들이 주로 수학했는데 생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이 교육의 중심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아테네에 세운 학교 리케이온 유적지 모습. 리케이온은 중산층 학생들이 주로 수학했는데 생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이 교육의 중심이었다.
아테네의 중심인 신다그마 광장에서 국회의사당을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옛 왕궁의 정원이었던 국립공원을 지난다. 공원이 끝나는 곳 옆으로 난 길 쪽에 그리스 공화국 대통령궁이 있다. 그 길을 지나쳐 조금 더 가면 장교 클럽이 나온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그리스 군부 독재 시절에 권력의 중심부였던 건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앞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이 이 건물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권력의 무상함이 다시 느껴진다.

바로 그 건물 뒤편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 리케이온의 유적지가 있다. 아테네 서쪽 성 밖이었던 이곳은 서북쪽의 아카데미아와 남쪽의 키노사르게스와 함께 가장 먼저 만들어진 김나시온 가운데 하나였다. 원래 운동을 하기 위한 시설로 만들어진 김나시온은 차차로 지덕체(智德體) 모두를 기르는 곳으로 발전하여 당시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유명한 김나시온을 중심으로 학교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기원전 387년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이다. 또 키노사르게스에는 역시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가 학교를 세워 어머니가 외국인인 학생들을 가르쳤다. 안티스테네스의 어머니도 트라케 출신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에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 이소크라테스의 학교가 제각기 특성을 가진 학교로 서로 경쟁했다. 기원전 391년에 가장 먼저 세워진 이소크라테스의 학교는 식민지 출신 학생들이 다니던 곳으로 수사학과 읽기, 쓰기와 같은 교양 위주의 교육을 했고, 기원전 387년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는 귀족층 자제들의 학교로 주로 수학과 형이상학을 가르쳤다. 기원전 335년에 뒤늦게 시작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은 중산층 학생들이 주로 수학했는데 생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이 교육의 중심이었다.

아테네 서쪽 성 밖 리케이온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학교다
회랑을 거닐며 이뤄진 아침수업
그래서 ‘소요학파’라고 했다

그가 보는 참주정은 최악의 정치
공익은 아랑곳않고 아첨꾼 중용
겉보기 절제 알고 보면 흥청망청
시민을 분열시키고 엿듣고 엿보고
가난하게 만들어 딴생각 못하게

무솔리니·히틀러·프랑코가 그짝
큰 업적 있다손 쳐도 독재는 독재
중요한 것은 권력행사의 방식
민주정 뒤엎은 자 영웅될수 없다

원래 리케이온은 목동들의 신 ‘리케이오스 아폴론’의 신전이 있던 곳으로 김나시온이 만들어진 뒤에는 주로 중무장병과 기마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바로 그 옆에 아테네 장교 클럽이 있는 것을 보면 한 장소에 이어지는 전통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학교를 세우기 전부터 이미 리케이온은 아테네의 지적 생활의 중심지로 음유시인들이 시를 낭송하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프로타고라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학생들과 학문적 토론을 벌이던 곳이었고, 또 프닉스 언덕에 민회 장소가 마련되기 전에는 바로 이곳이 민회가 열리던 곳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곳에 학교를 세울 당시 이곳은 지붕이 있는 포장된 산책로를 가진 회랑 두 개, 안뜰과 화려한 건물들, 무사이 여신들의 신전과 제단이 있는 가장 세련된 김나시온이었다.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서 12년 동안 아테네의 청년들을 가르쳤다. 당시 이곳은 지붕이 드리워져 두 개의 회랑이 있었는데 제자들을 가르치는 아침 수업은 주로 이 회랑 사이를 걸으면서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을 ‘페리파티케 스콜레’, 즉 ‘소요(逍遙)학파’(=걷는 자들)라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후에는 실내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강연을 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곳에 당시로서는 당대 최고의 도서관을 마련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158개의 그리스 폴리스의 정치 체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오직 아테네에 대한 기록만 전해진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이 모든 정치 체계에 대한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정치학(politika)을 썼다. 그런 의미에서 리케이온은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시작된 곳이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metaphysics)과 니코데모스 윤리학도 집필했다.

기원전 86년 로마의 장군 실라는 아크로폴리스를 공격하기 위해 이곳 리케이온과 아카데미아의 나무들을 잘라 공성기 제작에 썼다. 새로운 강대국 로마의 강자들에게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학자들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다.

■ 참주정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이라는 책에서 정치를 ‘하늘이 내린 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해내고 계속 개선해 나가는 일’로 본 그리스 정신에 따라 그때까지 그리스 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정치 체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모든 정치 체제를 논의한다. 그의 참주정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참주정은 민주정과 귀족정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정치 체제였다. 그리스 폴리스 가운데 참주정을 경험하지 않은 나라는 스파르타를 비롯하여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정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정이 왜곡된 것이 참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참주정은 자연의 이치를 가장 많이 거스르는 정치 체제로서 민주정과 과두정의 해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최악의 정치 체계라고 비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정은 국가를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듯 통치하는 일인 지배 체제로, 독재자가 자기와 동등하거나 더 훌륭한 자들을 자의적으로 강압적으로 지배하기에 올바른 정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왕정은 민중에 맞서 더 나은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고, 왕은 걸출한 탁월함이나 업적이나 훌륭한 가문에 힘입어 더 나은 계층에서 선출되는 반면, 참주들은 귀족을 비방함으로써 민중의 신임을 받은 민중 선동가 출신이다. 왕은 자진하여 복종하는 자들을 통치하고 참주는 마지못해 복종하는 자들을 통치한다. 그래서 왕은 시민들 중에 친위대를 뽑지만, 참주는 시민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외국인 용병을 친위대로 쓴다. 그런 까닭에 참주는 돈이 있어야 친위대와 호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왕은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지만 참주는 축재와 쾌락을 추구하여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공익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또 참주는 대중을 불신하기에 대중들에게서 무기를 빼앗고 억압하여 도성 밖으로 내쫓는가 하면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적인 귀족을 적대시하고 추방한다. 이렇게 경쟁자를 정권의 장애물로 보고 파멸시키기에 참주정에는 박해를 받은 자들의 증오가 항상 존재하고, 그들의 사치스러운 삶의 방식 때문에 경멸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참주정 보존 방법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쓴 야비한 수법을 일일이 열거한다. 참주는 우선 시민들을 분열시켜 서로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시민들이 서로 친밀하게 지내면 신뢰가 생겨 독재에 대해 반항할 수 있으므로 공동 식사와 정치 동아리를 금지하고 정치 교육이나 토론하는 일을 가능한 한 억제하여 시민들끼리 될 수 있으면 서로 모르고 지내게 한다.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 그리고 귀족과 민중, 부자와 부자를 이간질하여 다투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참주는 비밀경찰을 만들어 항상 시민들을 엿듣고 감시하여 시민이 두려움을 느껴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한다.

또 시민들이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도록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해 도시에 거주하는 자들은 언제나 공공장소에 모습을 드러내고,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무슨 일을 은밀히 꾸미지 못할 것이고, 늘 노예 취급을 당함으로써 자신을 미천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민들을 가난하게 만들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느라 음모를 꾸밀 여가를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신전 건설, 대형 기념물 만들기와 같은 큰 공사를 일으키거나 판아테나이아 축제나 이스트모스 체전과 같은 큰 축제를 벌이는 한편,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경제적 여유를 빼앗는다. 아니면 전쟁을 일으켜 불안을 조성해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도록 만든다.

동시에 걸출한 시민들은 잠재적 정적이므로 제때에 제거해야 한다. 특히 존경받는 귀족들은 파멸시키거나 추방한다. 반면 자신에게 아첨하는 고분고분한 추종자들은 요직에 앉혀 충성심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어떤 부하에게도 큰 권력을 맡기지 않음으로써 반란을 예방한다.

시민에 대한 감시와 압제와 함께 참주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일단 참주 자신은 독재자가 아니라 공익을 위하고 국고를 잘 관리한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절대로 흥청망청하게 보여서는 안 되고 항상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경건하게 보이도록 노력하고 무뚝뚝하지 않으면서도 근엄해 보이도록 해야 한다. 품위 있는 처신과 군사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존경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참주들이 이렇게 노력했지만 3대까지 이어진 참주정은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공공 업무를 처리하고픈 욕망이 강해 참주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325~300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을 로마 때 복제한 것으로 아테네에서 발굴되었다. 원래 헤르메스 기둥의 머리 부분으로 양면으로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기원전 325~300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을 로마 때 복제한 것으로 아테네에서 발굴되었다. 원래 헤르메스 기둥의 머리 부분으로 양면으로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그리스 참주의 수법과 정책이 오늘날의 독재자들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개인 호위대를 거느리고 비밀경찰에 의존하며, 대규모 토목 공사와 큰 축제를 벌이는 것이 그대로 빼닮았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폰티노 습지 배수 공사와 로마 포룸 정리와 같은 대규모 공사를 벌였고,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성대하게 꾸몄다. 또 사회 긴장을 불러일으켜 불안감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는 수법도 똑같다. 히틀러는 제국 의회에 방화를 하여 비상 상황을 만들어 권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참주와 현대 독재자들 사이에 차이도 있다. 그리스 참주들은 귀족이었고 교양을 갖췄지만 현대 독재자들은 무자비하고 무식한 경우가 많다.

■ 공이 많아도 독재자는 독재자일 뿐이다

참주들이 폴리스 발전에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그런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독재자로 기억할 뿐이다. 참주들이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내었다 하더라도 집권 과정이 불법이므로 정당한 권력이 아니다. 또 참주들은 민의를 물어 통치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독재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결과가 좋다고 이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리스에서부터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서양 사회는 어떤 독재자가 아무리 훌륭한 공헌을 많이 남겨도 결코 독재자라는 사실 이외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나 독일 히틀러가 세계일차대전 후의 암울했던 조국을 부흥시키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에 공헌을 했어도, 또 스페인의 프랑코 총독이 오랜 독재 정치 동안 나라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켰어도 그들은 독재자로 평가되고 기억될 뿐 결코 영웅화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을 칭송하고 치켜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신나치’, 또는 ‘신파시스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
한 정치가를 평가함에 있어 그의 업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권력을 어떻게 행사했는가 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많은 일을 하는 것은 통치가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일 뿐 찬양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아니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오히려 권력 유지를 위해 권력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가두고, 고문하고 심지어는 살해한 정권은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친일파의 기득권을 지켜준 대가로 권력을 잡거나 민주 헌정을 뒤엎은 독재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웅이 될 수 없다. 독재는 독재일 뿐이고 폭군은 폭군일 뿐이다. 그리고 참주로 번역되는 영어 ‘타이런트’(tyrant)의 본뜻은 ‘폭군’이다. 따라서 참주정은 ‘폭군정’일 뿐이다.

한국외국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