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술의 지배’ 동의 못해…인간 존엄 가치로 통제 가능” / 클라우스 마인처 독일 뮌헨공대 교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3. 16:35

과학과학일반

“‘기술의 지배’ 동의 못해…인간 존엄 가치로 통제 가능”

등록 :2016-05-22 19:15

 

클라우스 마인처 독일 뮌헨공대 교수. 사진 성한표 사진작가·언론인 제공
클라우스 마인처 독일 뮌헨공대 교수. 사진 성한표 사진작가·언론인 제공
[짬] 클라우스 마인처 독일 뮌헨공대 교수


“미래에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슈퍼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의 희생과 고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왔듯이 ‘디지털 존엄성’도 우리의 노력으로 지켜가야 합니다.”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아데코) 주최로 지난 20일 서울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열린 ‘인간 중심 사회에 고하는 이별’ 심포지엄에서 ‘자연지능과 인공지능: 기계는 언제 인류를 대체할 것인가’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 독일 뮌헨공대 클라우스 마인처(69) 교수는 강연 직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의 발달이 궁극에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세계를 지배할 것이란 일부 미래학자의 예견과 달리 역사적으로 인간이 존엄성을 기본권으로서 수호해야 할 가치로 정립해온 것처럼 미래에도 인공지능을 인간의 존엄성 가치 안에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수학과 철학, 물리학을 전공한 마인처 교수는 지난달 초 심포지엄 강연 주제와 같은 이름의 책을 발간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독특한 통찰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국내엔 2005년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소개된 바 있다.

‘기계와 인간’ 주제로 방한 강연
지난달 인공지능 통찰한 책도

“인간 뛰어넘는 슈퍼인공지능은
가능하지만 로봇 형태는 아냐
사물인터넷 발전 통해 구현될 것
법과 제도로 존엄성 지킬 수 있어”

마인처의 예견이 다른 미래학자들과 갈리는 대목은 강한 인공지능(슈퍼인공지능)의 등장 형태다. “나 역시 인간의 사고능력을 뛰어넘는 슈퍼지능의 출현이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단독 로봇 하나가 슈퍼지능을 가질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도 완결된 지능은 아니지만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치면 슈퍼지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지능은 사물인터넷(IoT)의 발전을 통해 구현될 것이다.” 마인처는 인공지능 시대의 지구를 뇌에 비유했다. “뇌 속에서 뉴런들이 상호작용하듯이 주식시장, 의학, 범죄 예방, 스마트 시티, 스마트 그리드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공동진화를 할 것이다.”

그는 따라서 인공지능의 구성(컨스트럭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인처는 “인간이 기술에 지배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 기술이 발전하도록 인간이 이끌어가야 하고, 또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이 슈퍼인공지능이 출현해 인간을 지배하는 특이점이 도래할 것이라는 실리콘밸리 주장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 헌법 1조에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이다’라고 돼 있다. 독일의 경우 두 차례의 독재(나치와 동독) 경험을 통해 인권과 존엄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기술에 의해 존엄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법과 제도로 존엄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많은 직업군의 소멸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인처는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그는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IT)이나 메카트로닉스, 로보틱스 분야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새로운 직업군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에 의해 도래할 산업4.0 시대에는 사람 없이 기계만 존재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산업혁명 때와 달리 우리는 산업4.0을 능동적으로 구성해갈 수 있다”고 했다. 마인츠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변혁이 필요할 때 사람들에게 재교육 과정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는 특정 분야가 아니라 정부·기업·노조 등 모든 사회 구성 주체들이 참여해야 한다. 기술을 구성한다는 것은 교육을 구성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했다.

독일의 인공지능 산업 전망에 대해 마인처는 “자동차업체인 베엠베(BMW)의 경우 최근 인공지능 관련 직원 500명을 새로 고용할 계획을 세우는 등 대기업이 인공지능 산업을 주도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중소기업들이 인공지능을 적극 수용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는 100년이 훨씬 넘는 전통적인 가족기업이 많은데, 어렵게 쌓은 자본을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기를 꺼리던 그들도 최근에는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변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독일에는 강소 소트프웨어 회사가 많은데, 이들이 중소기업과 6개월~1년 정도 공동으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협업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생명 연장 내지 영생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영생은 몰라도 생명 연장은 충분히 가능하고 나이 들어 떨어진 뇌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통한 생명 연장이 좋은 얘기이긴 해도 사회적 정치적 측면도 살펴봐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독일도 심각한 고령화 사회의 하나로 일할 젊은이가 없거나 젊은이가 일할 자리가 없는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올해가 정년인 나 스스로도 아직 은퇴할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일자리가 필요하고 나이 든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