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간 감정조차 인공지능보다 뛰어나다는 보장 없다” /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4. 27. 21:48

문화

“인간 감정조차 인공지능보다 뛰어나다는 보장 없다”

등록 :2016-04-26 19:49수정 :2016-04-26 20:55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역사학)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역사학)가 26일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피엔스’ 저자 하라리, 내한 간담회

“AI, 30~40년뒤 모든 직업군 침범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
컸을때 아무짝에 쓸모없을 수도

‘지구제국’ 되면 불평등이 정당화?
쪼개져 있는 국가체제가 더 위험
지구온난화 등 대처할 수 없어”
“지금 아이들 세대는 기성 교육으로는 (세상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역사상 첫 세대가 될 것이다.”

30여개 언어로 번역출간된 베스트셀러 <사피엔스>(김영사)의 저자 유발 하라리(40)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역사)가 출판사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26일 서울 중구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하라리 교수는 “지금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컸을 때는 거의 아무짝에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정규수업보다는 휴식시간에 놀면서 배우는 게 오히려 더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라리 교수는 30~40년 뒤면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산물들이 지금 있는 거의 모든 직업군들에서 인간을 밀어낼 것으로 전망하면서, 감정이 필요한 분야조차 인간의 우위가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감정도 생존의 필요에 따라 생겨난 복잡한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 알고리즘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했다. “얼굴 표정 읽기나 언어 선택 분석에서 이미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러나 지능과 의식은 다른 것이라며, 첨단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도 지능은 높았으나 기쁨도 불안도 느낄 수 없는 “의식 제로상태”라고 했다. “이제까지는 지능이 높으면 대체로 의식도 높았으나, 앞으로의 세상은 그런 등식이 깨어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하라리 교수는 지금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산업 시대의 유산이며,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200여개로 쪼개져 있는 국가들이 결국 거대한 ‘지구제국’으로 수렴돼 갈 것이라고 보는 <사피엔스>의 ‘빅 히스토리’적 전망이, 결국 강대국 중심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데 쓰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하라리 교수는 “‘지구제국’보다 잘게 쪼개져 있는 체제가 더 위험하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그는 “지구제국 문제와 불평등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구 온난화나 인공지능·생체공학 등 인류가 직면한 전지구적 문제들은, 분산된 국가들로는 대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구문제도 저출산보다 인구과잉을 걱정했다. “70억 인구는 너무 많다. 인구가 줄어 편해지고 행복해진다면 좋은 것 아닐까.”

그는 “지금의 기술 수준 상태에서 지구 온난화를 멈추는 방법은 경제성장을 멈추는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녹색당이 처한 딜레마를 언급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녹색당도 성장을 멈추자고 했다가는 집권할 수 없고, 집권했더라도 분노한 대중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하라리 교수는 지금과 같은 ‘대전환’의 시기에는 통상 재앙 차원의 비극들이 되풀이돼 왔지만 대전환이 반드시 비극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봤다. “우리가 기술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기술이 우리의 조종간을 쥐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행복’이 기술발전이나 성장, 진화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고 본 하라리 교수는 평소 불교적 명상(비파사나)에서 행복의 실마리를 찾는 듯 보인다. 우유·달걀을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비건)인 그는 매일 2시간씩 명상을 하며, 매년 30~60일간 외부와 자신을 완전히 차단하는 불교적 ‘결제’를 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는?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적 지식을 종횡으로 구사하면서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인류의 도정을 거시적 안목으로 그려낸 책 <사피엔스>는 2011년 히브리어로 첫 출간됐고, 지난 2014년 영어판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지난해 11월 출간돼 지금까지 총 13만부 넘게 팔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