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언어의 효능/ 정재승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5. 23. 16:44

과학과학일반

‘값비싼’보다 ‘엄선된’ 초콜릿이 왜 더 많이 팔릴까

등록 :2016-05-20 20:43수정 :2016-05-21 18:27

 

나이가 든 사람이라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신경네트워크가 좀더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뇌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스카프 판매점 ‘보물섬’을 운영하는 김영신(60)씨가 동대문 미래창조재단 중국어 교육팀한테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나이가 든 사람이라도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신경네트워크가 좀더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 뇌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스카프 판매점 ‘보물섬’을 운영하는 김영신(60)씨가 동대문 미래창조재단 중국어 교육팀한테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13) 신경언어학
오타가 찍힌 문자를 보면 많이 거슬리나요?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틀린 문법이 발견되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까칠하고 폐쇄적(내향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실로 뜨끔한 연구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늘 정확한 문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오타나 비문을 못 견뎌 하는 성격이라 강박적으로 수정하려 애쓰는 편이다. 그래서 이 논문을 살펴보며 잠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살면 나만 피곤하다!”

미국 미시간대학 언어학 연구팀인 줄리 볼런드와 로빈 퀸 박사는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 성격이 오타나 틀린 문법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연구팀은 같은 집에서 살기를 원하는 가상 룸메이트가 작성한 이메일을 83명의 연구 대상들에게 읽게 했다. 연구 도구로 이용된 이메일에는 문법 오류나 오타가 대거 포함돼 있었다. 이후 연구팀은 피험자들의 성격을 이른바 빅 파이브, 즉 개방성·성실성·외향성·친화성·신경증 측면에서 평가했다.

그 결과, 피험자들은 외향적이든 내성적이든, 친절하든 까칠하든 상관없이 문법적인 실수가 적은 신청자를 더 호의적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연구팀은 “덜 친절하고 덜 외향적인 사람이 문법 오류나 오타에 화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특히 성격이 거친 사람은 틀린 문법에, 폐쇄적인 사람은 오타에 더 예민했다. 다시 말해, 사람의 성격이 그 사람의 언어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 때 뇌세포 활발

흥미로운 연구를 하나만 더 소개하자. 제2외국어 같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뇌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발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운동으로 신체 건강을 챙기듯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학습하는 활동이 뇌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연구팀이 ‘신경언어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39명의 피험자들 중에서 절반에게만 6주간 중국어 단어를 공부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험 전후 신경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자기공명장치를 부착하고 결과를 비교했다. 그 결과, 중국어를 학습했던 사람들의 뇌 활동이 더 활발한 걸로 나타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신경 네트워크가 좀 더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나이가 든 피험자들이더라도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 뇌의 전반적인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침팬지는 지능은 높지만 집중적인 훈련을 거쳐도 인간의 발성을 거의 흉내내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담배 피우는 침팬지 ‘찰리’. AP 연합뉴스
침팬지는 지능은 높지만 집중적인 훈련을 거쳐도 인간의 발성을 거의 흉내내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담배 피우는 침팬지 ‘찰리’. AP 연합뉴스

이 두 편의 논문이 보여주듯이, 인간의 언어생활은 우리 뇌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어디 그뿐이랴! 인간의 언어 능력은 인류의 문명사에도 강력하게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가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날 수 있었던 것도 언어 덕분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의 언어구사 능력은 탁월하다.

지금까지 개나 앵무새, 침팬지 등 다양한 동물들이 문법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지, 혹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이 이뤄져왔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앵무새는 성대구강 구조가 우리와 유사한 측면이 있어 인간의 말을 흉내낼 수 있지만, 문법 구조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반면 지능이 높은 침팬지나 개는 인간의 발성을 거의 흉내내지 못한다. 신경과학자이자 언어학자인 필립 리버먼은 1960년대 말에 다양한 유인원의 목구멍을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유인원은 구강해부학적으로 볼 때, 중요한 어휘를 똑똑히 발음할 수 없다고 한다. 원숭이는 성대 옆에 공기주머니를 가지고 있는데, 이 주머니가 크게 소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우리와는 매우 다른 언어 구조를 갖게 됐다고 한다. 뇌 내 거울 뉴런은 원숭이들로 하여금 인간의 손가락 운동이나 얼굴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게 해주지만, 침팬지의 언어 모사에는 별로 도움을 못 주는 듯하다. 침팬지는 집중적인 훈련을 해도 그저 막연하게 한숨 쉬듯이 “헤” 또는 “에”라고 하는 것 이상을 발음하지 못한다.

20세기 중반까지 우리는 언어 능력을 본능보다 문화적 산물로 여겨왔다. 인간은 에스페란토(자멘호프라는 폴란드인이 창안해낸 인공 언어)나 볼라퓌크(1879년 독일인 목사 슐라이어가 구상한 첫 번째 근대적 국제 언어) 같은 새로운 언어를 쉽게 만들어냈다. 청각을 잃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화 역시 새롭게 구상해낸 언어다. 이처럼 언어를 만드는 행위는 과학적이고 문화적인 행위로 보였다.

그 후 노엄 촘스키가 보편문법 이론을 주장하면서 그의 가설이 대세가 됐다. 모든 인간은 언어의 문법을 지배하는 요소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물론 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언어가 선천적인지, 아니면 환경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에 관한 의문은 언어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언어가 광범위하게 인지 사고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학문을 신경언어학이라 부른다. 이 학문은 언어의 탄생과 형성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같은 곳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인간의 언어 습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매력적인 제품 광고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는 성격·뇌발달과 밀접
‘문법 오류’ 태도 실험 결과
폐쇄적 성향은 오타에 예민
사고·인지와 말 관계 연구하는
신경언어학은 마케팅에 큰 도움

언어습관 제품 광고에 이용
유명 초콜릿 포장지 문구에
‘엄선된’ 표현 넣어 대성공
소비자에게 행복감 준 덕분
‘Pop’ 상표 샴페인도 인기

특별선물용엔 배타적 이미지가 유리

일례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제과회사 페레로는 유명한 명품 초콜릿 라파엘로의 포장지 뒷면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삽입해 자사의 초콜릿을 설명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엄선된 재료를 사용해 독특한 방식으로 가공한 초콜릿으로서, 최고급 탈지유로 만든 밀크크림에 흰색 아몬드를 살짝 담근 다음, 그 위에 바삭바삭한 와플과 부드러운 코코넛을 둘렀습니다.”

우리에게는 ‘공항에서 판매하는 선물용 초콜릿’으로 더욱 잘 알려진 라파엘로에 대한 페레로의 설명에서 ‘엄선된’이란 단어 대신 ‘값비싼’이란 단어를 넣었다면, 과연 그 효과는 어땠을까?

독일의 신경마케팅 전문가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은 저서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흐름출판, 2008)에서 이 초콜릿 소개 문구에서 ‘엄선된’이란 단어가 ‘값비싼’으로 대체됐다면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했을 거라고 지적한다. 언뜻 보기에 ‘엄선된 재료’란 표현은 ‘값비싼 재료’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썩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총매출액 측면에서는 ‘값비싼 재료’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효과를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다.

‘엄선된 재료’라는 표현을 접한 소비자들은 자신이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게 되며, 그런 행복감을 자주 경험하고 싶어한다. 물론 ‘값비싼 재료’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의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 경우에는 값이 비싸다는 정보가 표면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제품’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차이가 사람들의 구매 태도에 영향을 미쳐, 결국 장벽이 높아져 버린 ‘값비싼’의 경우 매출액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호이젤 박사의 주장이다.

‘설날처럼 특별한 날에 특별한 분들께만 드리는 선물’용으로 만든 제품이라면, 광고와 상품 설명에서 고귀하고 배타적인 인상을 주는 것이 때론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소비돼야 할 제품에는 외려 치명적일 수 있다. 프랑스의 샴페인 제조업체들도 이런 ‘고가의 선입견’ ‘배타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일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포메리 같은 와인 회사는 푸른색 병에 담긴 ‘팝’(Pop)이라는 이름의 샴페인을 이용해 고가/배타성의 함정을 피해가려고 시도하고 있다. 모에 샹동, 뵈브 클리코, 볼랭제 등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샴페인 메이커로 알려진 포메리는 샴페인이 특별한 날에만 먹는 술이라는 인상에서 벗어나 평소에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의 이미지를 주기 위해 ‘Pop’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실제로 이 제품은 샴페인 시장에서 높은 매출액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언어는 비슷한 뜻을 지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뉘앙스나 함의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그 미세한 차이가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언어를 처리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자신의 회사가 만든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결론을 자연스레 얻게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신경언어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기업과 함께 마케팅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Maluma’와 ‘Takete’ 실험

심리학자들이 즐겨 하는 실험 중에 ‘Maluma’와 ‘Takete’를 소리내어 읽고 의미를 유추해 보라는 것이 있다. 두 단어는 모두 뜻이 없는 조어이지만, 왠지 Maluma가 따뜻하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느껴진다면, Takete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이런 감정은 철자 하나에도 담겨 있는데, A가 U보다는 가벼운 느낌을 전하며, K나 T보다는 M이나 L이 좀더 온화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제품의 이름을 지을 때 제품의 성격에 맞게 이런 언어적 요소들을 함께 고려한다면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신경언어학에 대한 고려가 각별히 효과적일 수 있는 곳은 포장지나 상품 뒷면에 들어가는 제품설명일 것이다. 상품 뒷면이나 포장지에 쓰여 있는 문장들은 고객들을 향해 ‘저를 사주세요!’라는 신호를 보낸다.

물론 독일 뮌헨 근처에 있는 님펜부르크대학의 연구팀에 따르면, 슈퍼마켓에서 제품을 구입할 때 포장지나 제품 뒷면의 소개글을 자세히 관찰하고 구매하는 고객은 채 0.1%도 되지 않는다. 아예 읽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15~20%의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한 뒤 집에 와서 제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볼 목적으로 제품 뒷면을 살펴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이 물건을 산 것은 잘한 선택일까?’ ‘이 물건을 사는 데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지출해야만 했을까?’ 의구심을 갖는 소비자들에게, 포장지와 제품 뒷면의 설명은 어떤 답을 해주고 있는 걸까?

‘절약’을 모토로 하고 있어서일까? 대부분의 제품들은 내용물의 구성성분과 사용방법을 여러나라 말로 깨알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 속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화학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제품설명을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품 겉포장지에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마케터들이 제대로 답하기 위해 바로 신경언어학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재승 교수
정재승 교수
정재승 교수

▶ 정재승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박사를 받은 뒤 예일대 정신과 연구원,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크로스>(공저) 등의 책을 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행동을 탐구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 연재물은 영혼을 조종하는 뇌의 탐구를 통해 자연과학과 공학·인문학·사회과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모색하려는 시도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