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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전문가 드프레메리 서강대 교수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6. 16. 22:52

문화

“소월 시, 조형물로 보여주면 학생들 큰 관심 보이죠”

등록 :2016-06-15 18:59수정 :2016-06-15 19:35

[짬] 한국시 전문가 드프레메리 서강대 교수

한국시 연구로 하버드대 박사
소월 등 20년대시집 원본 추적
최근엔 직접 소프트웨어 만들어
시를 조형물로 바꾸는 작업도

최정례 시인 작품 번역출판도
“번역 중요…교수업적 인정돼야”

웨인 드프레메리 서강대 교수가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김소월의 시를 3차원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앞쪽의 조형물이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lr
웨인 드프레메리 서강대 교수가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김소월의 시를 3차원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앞쪽의 조형물이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lr
소월이나 이상 등 한국 근대 시인들의 작품을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조형물로 탈바꿈시키는 이가 있다. 문자로 된 시가 나무 형태의 그림이나 3차원 조형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다소 생소한 이 작업의 주인공은 웨인 드프레메리(43·사진)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교수다.

그는 ‘1920년대 한국 시집’의 서지학 연구로 5년 전 미국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엔 컴퓨터에서 책의 모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는 ‘컴퓨터 서지학’ 쪽으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국 시 번역을 너무 하고 싶은데 논문 부담 때문에 쉽지 않아 안타깝다는 미 샌프란시스코 태생의 드프레메리 교수를 지난 14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가 지난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영어문예지 <어제일리어>(진달래) 8호에 투고한 논문 ‘‘진달래꽃들’ 다시 인쇄하기’를 보자. 마치 외계 생물체나 미래파 사조 그림 같은 3차원 조형물이 여럿 나온다. 이 창작물은 대략 세 단계를 거쳐 탄생한다. 먼저 소월의 시 ‘진달래꽃’ 한글 텍스트를 컴퓨터에 쳐 ‘유니코드’ 숫자 형태로 바꾼다. 예컨대 ‘애’란 글자는 “U+c560”이란 숫값을 얻는다. 김상훈 개발자와 함께 만든 소프트웨어에 이 숫자를 입력해 3차원 시각물로 바꾼다. 띄어쓰기 형태나, 한자냐 한글이냐 등도 모양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된다. 이어 입체(3D) 프린터로 조형물을 만든다.

2013년엔 같은 대학 김주섭 교수와 함께 소월과 이상의 시를 나무 형태의 시각물로 변형하기도 했다. 시의 연, 행, 어절 등의 변수를 매개로 컴퓨터 알고리듬을 통해 디지털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 결과, 띄어쓰기가 불규칙한 이상의 시는 외계에서 온 나무처럼 생소하게 보이고, 여백이 많고 중복 사용되는 어구가 적은 소월 시 나무는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보인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소월 시를 이야기하면 별로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이 조형물을 보여주면 관심을 보입니다.” 그의 창작물을 활용하면 수업 집중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작업의 유용성으로 김 교수와 함께 쓴 논문에서 ‘기존 작품을 색다르게 감상하는 즐거움, 외국인에게 그림을 통해 원작품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것, 새로운 시의 창작 영감을 부여하는 가능성’ 등을 꼽았다.

초등생 때부터 시인을 꿈꾸었던 드프레메리 교수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에 가깝다. “대학 때 경제학을 전공했죠. 졸업 뒤에 ‘아침에 일어나 경제 그래프를 보는 게 좋을까, 시를 읽는 게 좋을까’ 자문했죠. 답은 시였어요.” 그즈음 한국에 있던 친구가 권했다. “한국에 와서 1년 영어를 가르치면 어떨까.” 95년 가을 첫 한국행 뒤 4년 만에 한국 문학 공부를 위해 다시 서울을 찾았다. “97년 버클리에서 강옥구(2000년 작고) 재미 시인을 우연히 만나 한국 시에 대해 많이 배웠죠. 당시 버클리대에 방문교수로 와 있던 권영민 문학평론가의 권유도 있었죠.” 서울대 국제지역원에서 김소월 시론 연구로 석사를 받고 내처 하버드대에서 박사 논문을 썼다.

왜 소월 시였을까? “번역에 관심이 많았어요. 의미와 리듬을 함께 옮기는 게 번역인데요. 의미 전달이 더 잘될 수 있도록 리듬과 의미의 관계를 깊게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리듬 표현이 두드러진 소월 시를 택했죠.”

그는 애초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모든 시집을 대상으로 박사 논문을 쓰려 했다. “시집 원본을 찾기 힘들었어요. 박사 논문 제안서를 낸 뒤 2년 반 동안에 두 권밖에 못 찾았죠. 그래서 1920년대 시집과 소월 시에 집중했죠.” 그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 약 40개의 시집 원본을 찾아내 참고했다. 대부분이 개인 소장용이었다.

왜 일제 때 시가 중요할까? “전환의 시기였죠. 중국 고전 <서경>에 ‘시언지’(詩言志, 시는 뜻을 말한다)란 구절이 있어요. 이 맥락이라면 시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죠. 그런데 일제 때 서정주의 ‘자화상’엔 사실이 아닌 상상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된 거죠. 그리고 한시 외에 한국 고전시는 노래 형식이었죠. 시조나 가사처럼 노래로 불렀어요. 하지만 20세기부터는 시가 텍스트 형태로 인쇄되어 나왔죠.”

그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시의 ‘물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시집이라는 ‘사물’에 관심을 쏟는 이유다. “소월 시 ‘반달’의 마지막 행을 보면 초판본 두 종 가운데 한 종의 경우 들여쓰기를 하고 있어요. 소월이 이 행에서 표현하려는 ‘뚝 떨어지는’ 느낌이 생생히 살아납니다. <소년> 창간호(1908년)에 게재된 최남선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텍스트는 녹색으로 인쇄되었죠. 붉은 태극문양이 녹색 시를 둘러싸고 있죠. 이런 걸 깊이 분석해야 시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어 “일제 때 텍스트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깊이 연구하는 학자가 별로 없다”고 아쉬워했다. “근대서지학회도 있지만 참여 학자들은 소수이죠.”

그는 현재 자신이 발행인인 출판사를 갖고 있다. “부모님 출판사를 2002년에 물려받았어요. 교수 임용 전까지 5권 정도 책을 냈고, 지금은 회사만 있는 상태죠.” 출판한 책엔 오세영 시인의 시, 소설가 임철우의 단편 영문 번역본이 들어 있다. 고은 시선집 <여지도>(Traveler Maps)는 미국 독립출판인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책 디자인은 모두 그가 했다. “여지도를 하버드대학에서 본 한국 옛지도 판형을 본떠 만들었는데, 평가가 좋았죠.”

5년 전엔 미국 시인 브렌다 힐먼과 함께 최정례 시인의 시를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논문 중심으로 교수 업적 평가가 이뤄지는 국내 대학 풍토에선 쉬운 일이 아니다. “제가 근무하는 국제한국학과에서 보더라도 한국 문학의 번역 소개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승진하려면 번역을 하기 힘들어요.”

인터뷰가 있던 날이 결혼 13주년 기념일이라고 했다. 초등 교사로 근무하는 한국인 아내 사이에 초등 4, 6학년 두 아이를 두고 있다.

글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