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 건국 이후 첫 주류 교체와 미국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
안병진 지음/메디치·1만6000원
올해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지만, 특히 이번 대선은 트럼프와 샌더스 현상 등 뜯어볼 대목이 많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미국 문명의 대전환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 교수(미국학)의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이번 미국 대선이 예전과 전혀 다르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중도주의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빨갱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버니 샌더스가 바람을 일으킨 것은 기존 미국 정치에선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직업정치인 외에는 백악관 입성을 허락하지 않았던 미국 정치 풍토에서 기업인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 교수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자신의 저서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 교수는 “2016년 미국 대선을 문명사적 전환으로 봐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여기까지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임기 말 오바마 대통령은 레임덕 없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유권자들조차 양극화한 상황에서 중도 노선의 대통령 지지율은 탄탄하기만 하다. 이상의 세 가지 현상을 묶어보려면, 새로운 접근이 불가피하다. 한마디로,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틀에서 봐야 이런 현상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이어 안 교수는 근저에 흐르는 거대한 강물과 토양의 변화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변화인데, 이는 사회운동과 삶의 방식의 변화로 나타난다. 사회운동 쪽으론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거 운동)가 대표적이다. 이는 ‘68혁명’과 같이 일회적인 바람이 아니며, 새로운 시대정신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오큐파이 운동은 이후 경제정의 운동의 토양이 됐고, 실제 지금 미국 전역에선 최저임금 인상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삶의 방식(라이프스타일)에 있어선 미국 북동부의 포틀랜드가 상징적이다. 이곳에선 도시재생과 생태적 삶이 대세를 이룬다. 다른 대도시에서도 20세기 미국 문명을 상징하는 자동차가 이제는 걷기와 자전거, 경전철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격렬한 트럼프 현상을 “지금 퇴조해가는 백인 문명의 최후 단계에서 나오는 절망적 복고 운동”이라 평가한다. 요컨대 미국이 거대한 문명 전환기에 있고, 이행기를 이끌 주인(주체)이 단순한 백인 중심에서 진보적 백인과 소수계의 다인종연합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 안 교수를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트럼프와 샌더스 현상 등을 근거로 ‘문명적 전환’까지 말하는 건 과도하다고 느낄 독자가 있을 듯하다.
“트럼프와 샌더스 현상, 오바마의 부활 등은 미국 정치에서 익히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여기에 사회운동이 부활하고 있으며, 생태 담론이 예전엔 비주류 좌파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주류가 됐다. 이런 현상을 묶어서 봐야 한다.”
-오큐파이 운동은 단순한 일회적 사건이 아닌가. 또 포틀랜드 이야기는 좌파 사이의 유행에 그칠 수도 있는데.
“역사적 분기점마다 거대한 사회운동이 있었다. 오큐파이 운동은 제도권 정치에 영향을 미쳤고, 이번에 힐러리 클린턴은 15달러 최저임금 공약을 내걸었다. 포틀랜드의 ‘생태적 삶’은 뉴욕이나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공통의 화두다.”
-트럼프의 패배를 예측하는 것 같은데….
“70 대 30 정도 아닐까.”
-힐러리 클린턴이 ‘영혼의 정치’를 추구했다는 대목은 그의 이미지와 안 맞아 보인다.
“힐러리는 매파임이 분명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정치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 쿠바와 관계를 정상화한 것을 들어 세계시민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대중국 외교는 압박과 견제 중심 아닌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더할 것 같은데….
“오바마 행정부가 2기에 접어들어 대중국 견제론으로 굳어진 건 사실이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한국 쪽 플레이어의 역할이 생각보다 크다. 이 대목에선 우리나라 대선이 어떻게 될지가 핵심이다.”
-미국이 ‘글로벌 시대’를 넘어 ‘지구 행성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한국은 까마득해 보인다.
“미국이 거대한 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는 제대로 준비를 못하고 있다. 한국에 큰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좌우를 불문하고 대전환의 관점에서 대범하고 과감한 행동이 요구된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