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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수 있다는 어느 언론인의 궤변 / 한겨레신문 칼럼

이윤진이카루스 2016. 8. 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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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카오스의 여왕’ 힐러리

등록 :2016-08-04 17:17수정 :2016-08-04 20:09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힐러리의 과거 행적을 보면,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매우 위험한 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힐러리가 들고나온 “우리가 함께하면 미국이 더 강해집니다(stronger together)”라는 핵심적 슬로건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양당의 후보가 마침내 확정되었다. 공화당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게 여러 달 전부터 굳어진 대세였기 때문에 문제는 민주당 후보가 어떻게 결정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될 게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긴 했으나 이번 선거 기간에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가 마지막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지는 끝까지 사람들의 큰 관심사였다(녹색당의 질 스타인 대통령 후보는 자신이 양보할 테니 샌더스가 녹색당 후보로 나서줄 것을 간곡히 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싱거울 정도로 샌더스는 자신이 그토록 “자격이 없다”고 비판해왔던 힐러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하고 물러나버렸다. 이에 샌더스의 열렬한 지지자들과 ‘새로운 미국’을 기대해왔던 수많은 미국인들(그리고 세계인들)은 좌절하고 말았다.

하기는 힐러리에 대한 샌더스의 전폭적인 지지 선언은 힐러리 쪽이 샌더스의 주요 공약을 일부나마 수용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공약 중 대표적인 것, 즉 월스트리트 거대 금융사들에 대한 규제 문제를 예로 든다면, 막상 힐러리는 전당대회에서 거대 은행들의 탐욕과 부도덕한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원칙적인 발언 이외에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실제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샌더스와 합의한 공약들이 휴지 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 아닌가? (힐러리가 월스트리트나 대자본가 위주의 경제구조를 뜯어고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클린턴 부부는 지난 15년간 1회 평균 2억원이 넘는 ‘강연료라는 형태의 뇌물’을 수없이 받았고, 미국의 거대 기업과 자본가들은 ‘클린턴재단’에 끊임없이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해왔다.)

그동안 힐러리는 늘 “나는 여잡니다. 나에게 표를 주세요”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자신이 ‘유리천장’을 깨는 선구적 투사임을 자처해왔다. 물론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의 등장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 대통령이 등장함으로써 얼마나 인간적인 국가,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이 될 길이 열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힐러리가 들고나온 “우리가 함께하면 미국이 더 강해집니다(stronger together)”라는 핵심적 슬로건이다. 하필이면 왜 ‘더 강한 미국’일까? 그냥 순하게 ‘좋은 나라, 평화로운 세계’라고 하면 미국 사람들도, 미국 바깥의 사람들도 듣기 좋고 마음이 편안해질 텐데, 어째서 굳이 ‘더 강한’ 미국을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은 선거를 겨냥한 전략적 계산의 결과라기보다는 필시 힐러리나 그를 에워싼 사람들의 오랜 사고 습관을 반영하는 슬로건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가가 되어 사실상 세계의 유일 지배자로 군림해온 미국에서 자라나 교육을 받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출세하고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미국 제일주의’(혹은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신앙이다. 그들은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사정과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기본 원칙을 완전히 망각하고, 오로지 ‘미국적 가치’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중요하고, 따라서 세계인들이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깊이 젖어왔다. 힐러리 클린턴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힐러리야말로 오늘날 현역 미국 정치가 중 가장 대표적인 ‘미국 제일주의’ 신봉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가령 <카오스의 여왕-힐러리 클린턴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왔는가>(2015)라는 책 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현재 프랑스에 장기 체류 중인 미국인 정치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이애나 존스턴(Diana Johnstone)이 쓴 이 책은 단지 힐러리라는 개인 정치가의 이력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기성 권력체제, 특히 군산복합체가 여하히 미국과 세계를 상시적인 전쟁체제로 만들어왔고, 그로 인해 세계가 얼마나 위험에 처해졌는지를 명료한 언어로 요약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집필 동기가 간단하지만 몹시 절박한 것이었다고 강조한다. 즉,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제3차 세계대전, 즉 ‘핵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저자의 말이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전율을 느끼며, 확인할 수 있다.

주류 언론들은 흔히 힐러리가 대중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대통령감으로는 무난하다는 인상을 퍼뜨려왔고, 그 결과 우리들 다수 한국인들도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지금보다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는 않을지라도 크게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기후변화를 비롯하여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오늘날의 세계 상황을 생각하면, ‘패권국가’ 미국의 정치가 달라지지 않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힐러리의 과거 행적을 보면,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매우 위험한 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보다 힐러리가 대외관계에서 미국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이성적인 대화와 설득이라는 수단보다는 ‘힘’에 의한 공격과 지배를 일관되게 선호해온 행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11년 리비아에 대한 공격만 하더라도 그렇다. 애당초 리비아에 대한 서구의 공격은 정당한 명분이 없었다. ‘독재’에 대항하여 봉기한 민중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카다피를 제거함으로써 리비아 민중을 구하고 리비아를 민주화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나토’와 미군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개입하여 결국 카다피를 죽였지만, 그 결과는 지금까지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리비아와 그 이웃 나라들의 ‘혼돈상태’이다.

원래 카다피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그는 석유로 얻은 이익으로 리비아를 아프리카 최고의 복지국가로 만들었고,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통합을 시도하고, 달러와 프랑화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아프리카의 독자적인 공통통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게다가 서구의 군사적 개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카다피는 외교 경로를 통해 자신의 자발적인 사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구와 미국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공격에 나섰고, 그때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가장 강경하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국무장관 힐러리였다. 다이애나 존스턴은 그런 결정을 내릴 때에도 오바마에게는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힐러리에게는 그런 머뭇거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003년 부시 정부가 거짓 명분을 내걸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개시했을 때도 힐러리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그 공격을 지지했다. 그 뒤 이라크와 중동은 완전히 절망적인 지옥이 되어버렸지만, 힐러리는 지금까지 어떤 사과나 반성의 발언도 한 바 없다. 이뿐만 아니다. 온두라스에서도, 보스니아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끊임없이 허위정보를 퍼뜨리면서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해왔고, 그때마다 힐러리가 중심에 있거나 연루돼 있었다. 이제 패권국가 미국은 동아시아의 ‘동맹국’ 한국 땅에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봉쇄’를 한층 더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카오스의 여왕’ 힐러리 클린턴이 유력한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