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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문제로 한국과 협상을 원하는 중국의 이중성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8. 25. 21:54

국제중국

중국, 한국에 “사드 협상하자” 왜?

등록 :2016-08-25 15:56수정 :2016-08-25 21:36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에 중국이 맹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4일 ‘전면적 영향’을 위협하면서도 ‘협상 가능성’을 거론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관건은 한-중의 극한 갈등이 국면 전환을 맞이할 수 있을지 여부지만 현실적으로는 ‘넘지 못할’ 산이 많아 보인다.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한-중의 입장 차이는 선명하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8일 사드 배치 발표 이후 배치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한 발짝도 물러선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에도 “사드 배치는 바뀔 수 없는 문제”(8월2일 국무회의)라거나 “사드 배치는 자위권적 조처”(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라고 강조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한달여 동안 중국 관료들은 사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마다 “우리는 이미 여러차례 밝혔듯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있다. 관영매체에서도 ‘사드입한’(사드 주한미군 배치)에 양보의 여지를 주는 의견은 전무하다.

서로 물러설 곳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중국이 ‘협상’을 거론한 것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협상은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양보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시진핑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정상회담에서 “역외세력(미국)이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듯, 중국은 사드 문제의 주체를 미국으로 규정한다. 한국에 대한 왕 부장의 ‘사드 협상’ 제안은 번지수가 엉뚱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왕 부장이 협상을 거론한 것은, 우선 한-중의 지나친 갈등이 자칫 ‘한국의 미-일 동맹 하위 파트너 편입’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왕이 부장은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한 양쪽의 기본 입장을 교환하고, 이와 관련된 소통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국 외교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아울러 윤 장관은 “특정 사안으로 인해 양국 관계 발전의 대국(큰 국면)이 저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외교부는 덧붙였다. 사드 배치 결정을 둘러싸고 양쪽의 기본 방침·인식이 평행선을 그었지만, 외교당국 간 의견 교환은 지속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또 시진핑 주석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9월4~5일 항저우)의 성공적 개최에 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정세적 판단도 있을 수 있다. 윤 장관과 왕 부장은 회담 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를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양쪽은 한-중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 상태다. 회담이 불발되면 그 자체가 냉랭해진 양국 관계를 확인시키게 되고, 회담이 열려도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예전처럼 웃는 낯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두 사람은 2014년 3월과 11월 각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대하는 등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주인공들이다.

다만, 당장은 ‘언어’에 불과한 협상 제안이 뜻밖의 결실로 이어져 ‘몸짓’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국의 결정이 지금처럼 후보지 변경 논란 등으로 지연되고, 그 사이에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늦추는 모습을 보인다면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도쿄/김외현 길윤형 특파원, 이제훈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