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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에게 2차 한국전을 거부했던 마우쩌둥 / 한겨레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 22:14

국제일본

김일성-마오 1975년 마지막 만남…‘한반도무력통일’에 이견

등록 :2016-09-01 22:11수정 :2016-09-01 22:27

 

중 교수, 회담 분석 책 출간
북, 이후 자체 핵개발로 돌아서

1975년 4월18일 베이징의 중난하이 마오쩌둥 주석 저택. 사진 속 만년의 마오와 김일성 주석은 활짝 웃으며 뜨겁게 손을 맞잡고 있다(사진). 그러나 지금껏 자세히 공개된 적 없는 두 인물의 마지막 대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중국 화둥사범대학의 선즈화 교수가 이 물음에 대해 결정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자료를 발굴해 신작 <최후의 ‘천조(天朝)’마오쩌둥과 김일성 시대의 중국과 북한>을 통해 공개했다고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들이 1일 보도했다.

둘의 만남이 이뤄진 것은 베트남에서 호찌민이 미국을 상대로 결정적 승기를 잡고, 이웃 캄보디아에서 폴 포트의 공산 정권이 친미 정권을 쓰러뜨리던 격변의 시대였다. 김 주석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그들(베트남)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와 같은 것”이라며 자신도 한반도에서 같은 방식의 무력통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마오 주석에게 전하려 했다. 그러나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방중으로 미-중 ‘데탕트’의 길을 연 마오 주석은 김 주석의 이런 말을 계속 회피하며 “정치적인 얘기는 더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는다. 결국 둘의 대화는 30분 만에 썰렁하게 끝난다.

선 교수는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회담에서 김 주석이 제2차 한국전쟁을 하겠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방중 전에 조선노동당 내에서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 적이 있다. 실제 생각한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못한 김 주석에게 마오가 냉랭한 반응을 보이며 양자 간 회담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 셈이다.

한반도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는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1975년 중국이 북한이 원했던 무력통일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관측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회담으로) 김 주석은 중국이 중요한 때에 결국 자신들을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통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은 이후 중국을 벗어난 자주국방 노선을 걷게 되고, 이는 결국 현재까지 이어지는 핵개발이라는 난제로까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