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박근혜와 우병우, 그 닮은꼴에 대하여
김민아 논설위원월간 신동아 9월호에 실린 ‘우병우 사단? 검사 20년 했는데 없다면…’ 기사를 읽었다. 이 기사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4월 한 식사 자리에서 기자 3명과 대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8월 중 일부 내용이 보도됐지만 전문을 읽는 일은 더 흥미로웠다.
우 수석은 ‘여러 사건을 접해봤기 때문에 세상 보는 눈이 일반인과 다를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저는 세상에 도(道)통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잘되는 사건은 자료나 수사나 다 딱딱 맞아요. 안되는 사건은 안됩니다. 팔자죠. 감방 갈 사람은 가는 겁니다. 저는 뭐, 마지막에 밀어 넣어주는 거지. 도망가는 놈, 자살하는 놈… 이렇게 되면 수사하다가 안되는 거죠.” 우 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박연차 게이트’의 주임검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자살하는 놈’이란 표현을 입에 올리다니. 도통한 사람이 아니라 무서운 사람이다.
세간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일개 차관급 정무직에 불과한 우 수석을 왜 안 자르는지 궁금해한다. 못 자르는 것 아니냐고도 한다. 우 수석이 정권의 비밀이나 실세들의 약점을 쥐고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신동아 기사를 통해 약간의 단서는 얻을 수 있겠다.
우 수석의 내면세계는 놀랄 만큼 박 대통령과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우주의 중심은 나’다. 민주국가의 공직자는 시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다르다. 시민적 기준보다 자기 내면의 기준이 우선이다. 박 대통령은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며 자신을 순수한 애국자로, 비판자들을 불순세력으로 분류한다. 우 수석은 스스로를 “도통한 사람” 반열에 올린다. 자신을 ‘무오류’ ‘무결점’으로 간주하는 이들은 반성이나 사과에 익숙지 않다. 경북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 발생한 다음날 박 대통령은 “또 발생할지 모르는 더 큰 지진에도 대비해주기를 바란다”고만 했다. 새누리당마저 질타했던, 국민안전처의 늑장 대응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 수석 역시 처가의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의혹 보도가 나온 뒤 기자간담회를 자청했으나 ‘정무적 책임’조차 거부했다.
닮은꼴의 흔적은 또 있다. 배신 트라우마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유신 때는 ‘유신만이 살길’이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하는 것을 보니 서글픔이 밀려왔다”고 썼다. 우 수석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 변호사 개업을 한 뒤 비슷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한겨레21 보도를 보면, 민정비서관에 발탁되기 전 우 수석이 지인에게 “밖에 나가니 후배 검사들이 무시하다시피 하더라. 심지어 인사도 안 한다”며 불쾌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엘리트 중 엘리트이던 그에겐 견디기 힘든 모욕이요 배신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닮은꼴은 닮은꼴을 알아본다. 게다가 우 수석은 충성심까지 투철하다. 신동아 인터뷰에서 그는 말한다. “(검찰에선) 일만 시켜먹고 승진 때는 빼고. 그게 더 억울하지. 비서관, 수석비서관이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렇게 안 억울해했겠죠.” 대통령을 향한 고마움이 절절하다.
박 대통령은 우 수석을 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운명공동체처럼 묶여버린 까닭도 있지만, 당장 쓰임새가 급하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감시”를 지시했다. 조만간, 아마도 국정감사가 끝나면 ‘불순세력 박멸’ 광풍이 몰아닥칠 가능성이 있다. 솜씨 좋은 우 수석은 이미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워놨을지 모른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시점도 국감 이후인 11월이었다. 검찰도 국감이 종료되면 우 수석에게 면죄부 주는 걸 두려워할 이유가 없게 된다.
박 대통령은 ‘무위(無爲)’를 지향하는 지도자이다. 북핵은 “통제불능 김정은” 탓, 지진은 천재지변 탓, 한진해운 사태는 조양호·최은영 탓, 세월호 참사는 유병언 탓, 헬조선은 자기비하 탓이다. 자신은 어떤 문제에도 움직이거나 책임질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도전’하거나 ‘배신’한다고 여길 때만 무위를 포기한다. 우병우는 도전과 배신에 ‘잘 드는 칼’이다. 그러나 이 칼의 효용성도 영원하지 않다.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클수록 그 칼은 더 예리하다. 정작 그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이다. 그 칼을 마구 휘둘러서 쌓이는 원망, 분노, 복수심 등은 되돌아와 그의 목을 조른다.”(박 대통령의 1990년 9월2일 일기) 우병우는 폭염을 이겨내고 한가위도 넘겼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권의 시곗바늘은 임기말을 향해 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도 모르는 배임죄의 기준…대수술이 필요하다 / 변호사 홍원의 / 경향신문 (0) | 2016.09.20 |
---|---|
흙수저들이여, 단결하라! / 인문학자, 김경집 / 경향신문 (0) | 2016.09.20 |
중국이 북한 핵을 묵인한다면서도 중국을 넣어서 비핵화를 논의하라는 진보신문 경향신문의 기이한 사설 (0) | 2016.09.20 |
여론이 악화된었다면서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기이한 진보신문의 사설 / 경향신문에서 (0) | 2016.09.20 |
미국 가서는 사드 찬성하는 야당 / 연합뉴스 (0) | 201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