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흙수저들이여, 단결하라! / 인문학자, 김경집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0. 21:58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흙수저들이여, 단결하라!

김경집 | 인문학자

 

입력 : 2016.09.19 20:56:01 수정 : 2016.09.19 20:57:08

한가위도 지났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처럼 만난 명절. 그러나 ‘늘 오늘만 같아라’던 명절은 더 이상 아니다. 삶은 고단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못 찾고 있다.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은 염장만 지르고, 정의를 외치는 검찰은 정의를 유린한다. 경영 능력도 없는 총수 일가가 맡은 대기업은 침몰하면서도 제 잇속은 다 챙기며 책임은 외면한다. 그 비용은 또 서민이 물어낼 판이다.한가위 보름달도 이미 기울고 있다. 차고 기우는 게 자연의 순리다. 그걸 거역하는 게 망조다. 자기만 애국한다고 밤잠 못 자며 걱정한다고 우길 일이 아니다. 이제 기우는 달이다. 버 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아직도 1년 넘게 지켜봐야 하는 국민 노릇 하기 너무 힘들다. 민주주의를 더 이상 능멸하지 말아야 한다. 정의와 공정을 조롱하지 말아야 한다.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흙수저들이여, 단결하라!

나는 백종원씨가 나오는 방송이 불편하다. 그가 나오는 TV 프로그램들은 공정하지 않다. 이른바 먹방, 쿡방이 뜨는 이유는 고작해야 충족시킬 게 식욕뿐이라서 그렇다는 건 차치하자. 그는 음식 프랜차이즈 사업가다. 사업하는 국회의원도 유관 상임위에서 배제된다. 주식도 많으면 신탁한다. 그런데 현재 사업 중인 자에게 경쟁하듯 방송을 맡긴다? 피디들도 시청률 때문이겠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비판은커녕 환호하니까. 우리가 그렇게 프로그램 소비하면서 그는 식당도 모자라 다방까지 진출했고 편의점에서 김밥과 도시락까지 점령했다. 기존 납품업자들은 어디로 내쫓겼을까.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본적 공정성조차 허물어지고 있다. 굳이 그가 방송하려면 적어도 당분간 음식사업에서 손떼고 해야 한다. 그게 정상이고 상식이다.

정치가 빠질 수는 없다. 공직사회의 정점인 장관의 자리가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보란 듯 임명한다. 청문회는 왜 하는 건가. 그 와중에 자신이 흙수저여서 홀대받았다고 흥분하는 장관도 있다. 전세난에 시달리는 서민 약 올리듯 염가 전세, 황제 대출 등에도 당당했다. 심지어 노모를 차상위자로 등록해 의료비 2000여만원까지 떠넘겼다. 그런데 지방대 출신이라 자신은 흙수저라니. 그럼 우리는 아예 수저조차 없는 셈이다. 자신의 과다한 씀씀이와 수입 지출 내역조차 못 밝히는 자는 두 번째 장관 자리를 꿰찼다. 게다가 교과서에도 분명히 적시된 5·16 쿠데타에 우물쭈물이다. 2013년 여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때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되어 있다”더니 이번에도 “공부가 아직 안됐”단다. 그게 몇 년 동안 공부해도 모자란 일인가? 그 머리로 무슨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나. 허물 덮을 만큼 능력 있는 자들도 아니다. 하기야 음주운전 전력자가 경찰 총수인 ‘너그러운’ 나라다. 이쯤이면 조롱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최소한 염치는 지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무망하고 허망한 기대일 뿐이다. 온갖 의혹과 상당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정무수석은 눈 하나도 꿈쩍 않는다. 끔찍하다. 하기야 경쟁하듯 쏟아지는 판검사들의 비리를 보면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다. 고상함은커녕 비리와 저질스러움으로 테를 두른 자들이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고 있다. 개인적 일탈도 일부의 비리도 아니다. 이쯤이면 구조적 혹은 태생적 악행이다. 걸핏하면 위기를 과장하고 그걸 빌미로 억압한다. 그러나 위기에 처하면 제일 먼저 도망갈 자들이다. 그러면서 사회지도층이란다. 도대체 누가 누굴 지도한다는 말인가. 언론도 그따위 형편없는 낱말부터 쓰지 말아야 한다. 하기야 언론도 썩었는데 제 악취는 못 맡으니 말해 무엇하랴만.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그러나 지난 정부는 그 악덕기업을 응징하기는커녕 덮기에 급급했다. 정작 국민은 보호하지 않았다. 그건 경제를 살리는 것도 기업 프렌들리도 아니다. 논에서 피를 뽑아내야 벼가 튼실하게 자란다. 지난 국회 때 장하나 의원이 가습기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여당 의원들이 뭉갰다. 다행히 지난 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되자 상황이 변했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마치 금시초문이라는 듯. 그러나 우리 모두 그 문제를 외면했던 공범자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그런 것처럼. 분노한 시민들은 해당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 기업들은 사죄와 배상은커녕 마트에서 ‘1+1’ 행사로 대응했다.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돈 앞에선 꼼짝 못할걸?” 그런 뜻이다. 우리가 1년이라도 철저하게 불매운동 해본 적 있는가? 올림픽 개막일만 셀 게 아니라 불매운동 날짜를 광장에 붙이고 싸워야 한다.

이미 공화정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새로운 계급사회다. ‘숟가락’으로 규정되는. 이 사회의 금수저들은 더 이상 눈치도 보지 않는다. 제 잇속 챙기는 일에는 하이에나들이다. 이익 앞에서는 정의 따윈 안중에 없다. 이런 사회에서 99%의 흙수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연대’뿐이다. 저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흙수저들의 연대다. 그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뭉치는 걸 막는다. 분열을 조장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지역으로, 세대로, 심지어 종교까지 동원해서. 스스로 사퇴해야 할 장관이나 그런 자들 고르고 임명하는 자나 국민 조롱의 극치다. 저들이 흙수저를 만만하게 여기는 한 흙수저의 자존과 자립은 불가능하다. 이제 연대는 생존 그 자체다. 연대의 힘마저 빼앗기면 정의와 진실은 불가능하다. 혼자만 잘난 1%는 99%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조차 없다.

무릎이 깨지고 다리가 부러지기 전에 벌떡 일어나야 한다. 불의에 저항하고 싸울 결의를 다져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그래야 우리 자식들이 산다. 연대는 귀찮은 일도 남의 일도 아니다. 순응과 순치는 공멸의 길이다. 연대만이 살길이다. 흙수저들이여, 단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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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9192056015#csidxbe1e23cf242c7c1a9ee8a4e3252e2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