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안 닿을까, 한 계단 한 계단…그렇게 마음을 비웠네 ‘삼국지의 고장, 쓰촨성’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입력 : 2016.09.21 22:18:00 수정 : 2016.09.22 10:28:42
ㆍ속세 벗어나 부처를 보다
중국 쓰촨성(四川省)에도 하늘이 내린 땅, 영지(靈地)가 있다.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 해발 3000m가 넘는 아미(峨眉)산이 그런 영지다. 아미산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고 예로부터 영험한 기운이 샘솟는다는 명산 중의 명산이다. 모진 세월을 버텨내 산세는 장쾌하고, 깎아지른 협곡은 절경 그 자체다. 거칠고 단단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미산에 오르면 그 산세만으로도 평생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줄 법하다.
쓰촨성엔 세상에서 가장 큰 낙산대불도 있다. 너그러운 부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지러운 눈은 맑아지고 이끼 낀 마음은 순수로 돌아간다.
■평생 소원 들어주는 아미산
쓰촨성은 중국의 22개 성 중 하나로 수도는 청두(成都), 삼국지의 나라다. 남한 면적의 4.8배로 인구는 9000만명이나 된다. 청두에서 남쪽으로 160㎞가량 떨어져 있는 아미산은 차로 2시간쯤 걸린다. 거대한 산을 오르기 위해선 버스와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한나절도 더 걸린다고 했다. 일찍 서둘렀다.
아미산으로 오르는 전용 버스는 빈 좌석이 없을 만큼 꽉 찼다. 젖먹이를 안은 젊은 부부부터 노모까지 저마다 소원을 품고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길은 쉼이 없었다. ‘이제 다 왔나’ 싶으면 또다시 산허리였다. 구불구불 힘겹게 오르고 또 올랐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이룬 숲은 진한 물감을 뿌려놓은 듯했다. 버스로만 산중턱까지 50㎞를 오르는 데 1시간30분 넘게 걸렸다. 이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어떻게 산 정상에 올라가 기도를 했을까. 그저 간절한 마음이 ‘고행’을 견디게 했으리라.
입구에 도착하자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쓰촨에서는 “하늘이 맑아 해가 드러나면 개가 짖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그만큼 날이 흐리고 비가 많이 와 맑은 날을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미산도 365일 중 비가 내리는 날이 250일쯤 된다고 하니 푸른 하늘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싶었다. 천천히 30분 정도 올라가 케이블카로 갈아탔다.
마침내 해발 3092m 산 정상에 섰다. 갑자기 비가 그치더니 새 하얀 구름이 발아래 깔렸다. 청정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데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5분쯤 더 갔을까. 금불상(사면십방보현보살좌상)이 안개에 가려져 전체가 보이지 않았는데도 어마어마했다. 순금으로 만든 불상은 높이가 48m, 무게는 600t에 달했다. 금박을 붙이는 데만 22억여원이 들었다고 한다.
붉은 가사를 입은 스님 10여명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가왔다. 휴대폰을 건네는데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인지, 영어도 안되고 중국어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해맑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스님 한 분 한 분씩 사진을 찍고 단체 사진까지 촬영해줬다. 그때,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지면서 금불상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먼 곳에서 온 스님들의 기도가 통한 것인지 한동안 눈빛을 나누는데 울컥했다. 스님들의 눈망울이 그렇게 맑고 순할 수가 없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숨겨왔던 소원을 빌었다. 다시 안개가 차오르고, 발갛게 달아오른 두 볼을 씻어주었다.
■앉은 키가 71m, 낙산대불
절벽을 깎아 만든 낙산(樂山)대불은 아미산에서 동쪽으로 45㎞ 남짓 떨어져 있다. 높이가 71m나 된다. 앉아있는 불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어깨가 28m, 얼굴 10m, 귀 크기가 7m이다. 폭 8.5m의 발등에는 100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다. 당나라 때인 713년에 불사를 시작해 90년 동안 공사를 했다고 한다. 금빛찬란한 불상을 13층 높이의 목조누각이 덮고 있었다는데 지금은 붉은빛이 감도는 바위만 남아있다.
1000년 세월을 안은 낙산대불은 배를 타고 먼 발치서도 볼 수 있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까이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배를 탔다. 대불은 백과사전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압도적이었다. 낙산시를 휘감아도는 세 갈래 강물이 만나는 지점의 산 하나를 통째로 뚝 잘라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을 한 컷에 담기가 버거워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야만 했다.
낙산의 ‘수불(睡佛)’이란 글자는 ‘잠자는 부처’를 말하는데 강 건너에서 보면 능운산과 오우산, 낙산대불이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다. 그 심장이 불상의 자리다. 마음속에 늘 부처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바로 앞에서 본 대불은 나쁜 기운을 눌러주고 약한 기운을 채워주겠다는 듯 엄숙하고 자비롭다.
좋은 기운이 있는 영험한 곳은 세계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저 멀리 깨소금만 한 사람들이 대불에 다가서기 위해 가파른 절벽에 총총히 매달려 있다. 앞서 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합장하면 다음 사람도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모은다. 소망을 이고 진 발걸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뱃머리에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그들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지만 내 마음도 어느새 그들의 마음길을 따라간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성찰의 시간은 더욱 소중하다. 붉은 가사를 두른 듯 해질 녘 낙산대불의 미소가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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