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 무시한 대통령, 국회 포기한 여당, 국정 팽개친 정권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국회의 건의를 거부했다. 그제 장차관 워크숍에서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하더니 어제는 정연국 대변인을 통해 수용 불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대통령이 국회가 결의한 장관 해임안을 거부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로,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한 정세균 국회의장을 형사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여론 무시와 편법 국정운영, 그리고 여당의 무책임한 대야 공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암담할 뿐이다.
청와대는 김 장관에 대해 제기된 의혹이 청문회 과정에서 모두 해소된 데다 임명된 지 한 달이 안된 김 장관의 해임을 결의한 것은 정치공세라며 야당을 비판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비상식적으로 낮은 전세와 특혜 금리 등이 드러나 고위공직자로서 결격사유가 명백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김 장관의 임명을 강행, 청문회 무용론까지 불러일으켰다. 임명장을 받은 김 장관은 대학 동문회 게시판에 지방대 출신의 ‘흙수저’여서 부당하게 비판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엉뚱한 화풀이로 장관으로서 자질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박 대통령의 여론 무시도 김 장관 해임안 통과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해임안 처리 전날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를 둘러싼 야당의 의혹 제기를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라고 하자 비판 여론이 비등했다. 김 장관 해임안에 미온적이었던 국민의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발언에 자극받아 대거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 해임안 가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편법적인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표 수리도 야당을 자극했다. 이 감찰관은 K스포츠재단의 출연금 모금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감찰을 벌인 일이 알려져 국회에서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한 달 가까이 방치했던 이 감찰관의 사표를 곧바로 수리했다.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의 증인 채택은 여야 합의사항이라는 점을 악용해 그의 증언을 막기 위해 꼼수를 쓴 것이다. 결국 이번 해임건의안은 김 장관의 개인 문제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운영이 결부되어 여론이 악화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위기와 혼란이 있다면 그것은 국정 최고책임자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므로 사과·반성하고 국정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박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대통령 흔들기로 보는 것은 독선이다. 문제는 이런 독선이 새누리당의 정세균 의장 고발 및 국회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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