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집권당 대표가 국회 거부하고 단식이라니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어제 “거야(巨野)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선 비상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며 농성에 돌입했다. 김무성 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중진 의원들은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지난 24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된 데 반발하며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정 의장 사퇴를 요구해왔다. 이 때문에 어제 시작된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도 극심한 파행을 겪었다.
집권당이 국감을 거부하고 여당 대표가 국회의장 물러나라며 단식을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는 주권자에 대한 직무유기이자 한국 정치를 후퇴시키는 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새누리당은 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당시 ‘세월호(특조위 연장)나 어버이연합(청문회) 둘 중 하나를 내놓으라는 건데 안 내놓는다’는 정 의장 발언을 뒤늦게 문제 삼고 있으나 대표가 곡기까지 끊을 사안은 아니다. 원내 교섭단체 간 이견을 중재해 국회를 원만하게 운영해야 할 의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다. 더욱이 정 의장이 두 야당에 국감 일정을 2~3일 늦춰 정상적 국감을 치르자고까지 한 마당이다. 야당이 이 제안을 검토하는 사이 여당 대표가 출구를 막아버리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이 대표는 2년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 중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라며 국회의원의 단식을 비판한 바도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인가.
새누리당이 ‘아스팔트 여당’을 자청하는 의도가 세간의 조롱처럼 ‘야당 연습’은 아닐 것이다. 1차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지인 최순실씨의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 확산을 차단하는 데 목표가 있다고 본다. 국감이 본격화하면 야당이 추가 폭로하고, 관련 증인들이 이를 뒷받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시민의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여론을 양극단으로 분열시킴으로써 대선 과정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속내도 있음직하다. 그러나 과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새누리당과 이 대표의 행태는 도를 넘었다. 극단의 행동을 멈추고 정치가 왜 존재하는지, 정치인의 책무가 무엇인지 돌아볼 때다. 이 대표는 즉각 단식을 중단하고 새누리당은 조속히 국감에 복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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