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근 부장판사 “근엄한 법관이 불신 키워…대화로 억울함 풀어줘야”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ㆍ‘우리는 왜 억울한가’ 펴내
“이율배반이잖아요. 단군 이래로 가장 잘나가는 시대인데 왜 자살하는 사람, 힘든 사람은 가장 많을까. 법정에서도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 ‘억울함’이란 무엇일까 몇 년간 고민했습니다.”
27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최근 <우리는 왜 억울한가>를 펴낸 유영근 부장판사(47)를 만났다. 책 부제는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이다. 유 판사는 대학 때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 책에서 법률가의 시선과 사회학적 분석을 종합해 한국 사회의 억울함을 들여다봤다.
억울함의 사전적 의미는 ‘불공정하다는 것에 대한 감정’이다. 유 판사는 “불공정하다는 것은 권력이 판단을 하는 것이고, 감정은 개인적인 것”이라며 “이 간격이 좁을수록 좋은 나라이고, 어느 나라든 간격이 없는 곳은 없겠지만 한국은 유난히 넓은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인은 이성과 감성의 중간 영역에 있는 ‘심정’에 대한 표현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권력이 잘못 형성되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결합되면서 억울함이 확대됐다”는 판단이다.
유 판사는 무수한 재판 경험을 통해 꼭 선량한 사람만 억울하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중범죄를 지은 피고인도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래서 그는 “억울함과 서러움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억울함은 자신의 탓이 아닌 것으로 발생한 일에 대한 감정이지만, 서러움은 단지 자신의 처지가 처량한 것에 대한 감정이다.” 유 판사는 “내 탓인지, 남 탓인지, 제3자 탓인지, 제도의 탓인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다 억울하다고 표현을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에선 정치권에서 복지법 등을 만들어 개입하면서 서러움의 영역이 억울함의 영역으로 편입돼 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억울함과 서러움을 구분하지 않는 현상이 개인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개인의 억울함은 보편적인 사회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 판사는 “판사는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을 해야지, 가장 진보적이거나 가장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발휘해야 된다는 것도 사회 보편적인 관념과 형평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야지 편을 들어주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억울함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법관의 태도”를 언급했다. 그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법관은 언제나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며 “그러한 태도는 억울한 사람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관이 어떻게 심증을 형성해 가는지를 솔직하게 말했다고 해서 법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법정에서 대화를 해나가면서 불신의 요인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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