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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칠푼이 / 경향신문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8. 21:19

[글로벌 시시각각]준비 안된 트럼프…너무 준비한 클린턴

김지윤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미국 대선 보도 자문위원

[글로벌 시시각각]준비 안된 트럼프…너무 준비한 클린턴

미국 대선후보들의 첫 TV토론이 26일(현지시간) 열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로운 토론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준비가 많이 안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팽팽한 토론이 되지는 못했다. 한 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에게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준비했다”는 ‘오늘의 발언’이 나왔다. 승패를 따지자면 여러 언론이 평가하듯이 클린턴의 판정승이다.

프리스타일을 강조한 트럼프는 첫 30분가량은 상당히 선전했다. 질문과는 다소 동떨어진 답변이긴 했으나 그동안 강력하게 주장해온 보호무역 정책과 일자리 문제를 엮었고, 빌 클린턴의 NAFTA 비판까지 끼워 넣으며 집요하고 공격적으로 몰아갔다. 백중세였던 토론이 클린턴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의 세금 내역 공개를 두고 클린턴이 세 가지 이유를 들며 조목조목 공격하면서였다. 트럼프가 세금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실상은 본인이 자랑하고 다니는 것만큼 돈이 없어서 아니냐는 말로 시작했다. 사업가로서 성공하지 못한 부도덕한 인물이라는 식의 공세가 계속되자 트럼프는 평정심을 잃었고, 사회자인 레스터 홀트에게 성질을 내는 모습까지 보였다.

트럼프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 자신이 “똑똑해서(smart)”라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답변을 했다. 예전 자신의 아파트에 흑인 세입자를 들이는 것을 거부해 소송을 당했다는 클린턴의 비판에도 무혐의로 끝났다는 소극적인 답변에 그쳤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출생지 음모론 공방은 트럼프 측 재난의 하이라이트였다.

클린턴은 철저히 준비한 모습이었다. e메일 스캔들에 대해서는 짧지만 명료하게 실수(mistake)였다고 책임을 인정하고 넘어갔다. 국무장관 시절 112개국을 방문해 수많은 평화협정과협상을 이끌어냈다고 했고, 의회 청문회에서 11시간 동안 증언했다며 자신의 ‘스태미나’에 대한 의심을 일축했다.

트럼프 회사에서 일하면서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던 노동자 이야기나 히스패닉계 여성을 ‘도우미(Ms. Housekeeping)’라고 부르지 말라며 해당 여성의 이름 알리시아 마카도를 똑똑히 언급한 것은 클린턴의 약점으로 여겨졌던 인간미를 보여주는 전략이었다. 마지막 코멘트 직전 카메라를 정면으로 향하고 했던 응답은 거의 연설에 가까웠다. 지나치게 준비한 느낌마저 들었다.

대선 토론에서는 ‘자세’도 중요하다. 후반부에 트럼프가 흥분한 모습은 확실히 마이너스 요소였다. 토론 내내 클린턴의 말을 끊는다거나 “잘못됐다”면서 끼어들고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반해 무표정하게 경청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클린턴의 태도는 ‘대선후보 토론회에 임하는 올바른 표정’의 교과서를 보는 듯했다.

사실 토론회를 보는 시청자 대다수는 이미 지지 후보가 정해져 있다. 아직 맘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라도 누가 더 대통령다운지(presidential)를 보는 것일 뿐, 정책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이날 더 대통령다워 보였던 것은 클린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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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70201&artid=201609272158005#csidxedea00c1ec9e83386271c7fd13b2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