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경주 지진 앞, 오만과 겸손 / 조현철 신부, 서강대 교수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9. 21:13

[녹색세상]경주 지진 앞, 오만과 겸손

조현철 신부, 서강대 교수

규모 5.8의 지진은 지나갔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7일의 4회를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436회의 여진이 발생했다. 부산, 울산, 경주에서는 원인 미상의 가스 냄새 신고가 이어졌고, 태화강의 숭어떼와 광안리 해수욕장의 개미떼가 화제가 됐다.

강진이 다시 올 거라는 ‘지진 괴담’이 떠다닌다. 지진으로 가장 불안해지는 건 아무래도 핵발전소다. 불길하게 자꾸 ‘후쿠시마’가 연상된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26기 중에서, 경주 인근의 ‘월성’과 ‘고리’에 14기가 몰려 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녹색세상]경주 지진 앞, 오만과 겸손

“규모 6.5~7.0의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지진에 안전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당당한 설명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내진설계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만 유효하다. 전제는 사실이 아니라 가정이다. 규모 6.5~7.0의 내진설계에서 ‘핵발전소 안전’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기상청장은 6.5 이상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했다. 뒤집어보면, 6.5 이상의 지진도 발생한다, 드물긴 하지만. 지진 예측만큼이나 지진 규모의 예측도 어려운 일이다.

안전의 수치화가 필요하겠지만, 숫자로만 현실을 파악하는 것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현실에는 숫자로 다룰 수 없는 상황과 요소가 수두룩하다. 핵발전소 건물이나 격납용기의 손상이 없어도 사고는 일어난다. 전원 상실이나 파이프 파열 등 어떤 원인으로든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 엄청난 사고가 발생한다. 내진설계 이하의 약한 지진이라도 건물의 안정성에 좋을 리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 인공구조물은 약해지는 법이다. 내진설계의 숫자에는 이런 요소들이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런데도 현실을 숫자로 장담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다. 현실은 숫자보다 크다. 이런 요소들을 외면하는 한수원의 장담은 불안하기만 하다.

경주 지진 발생 후, 박근혜 대통령은 월성핵발전소를 찾았다. “원전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라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시설”이라며 안전을 한껏 강조했다. 실수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지시는 공허하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 그래서 ‘실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용납될 수 없는” 것은 “한 치의 실수”가 아니라 조금만 실수해도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가공할 재앙을 부르는 “시설”, 바로 핵발전소다. 그러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진정으로 생각했다면, 핵발전소에 대한 선제적 안전조치를 지시하고, 근본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을 약속했어야 한다. 이것이 빠진 그 어떤 지시와 약속도 공허한 말치레일 뿐이다.

지진을 계기로, 우리의 한계를 돌아보고 겸손해져야 한다. “규모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위험을 무릅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절대로 감수하지 말아야 할 위험도 있고,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실험도 있다”(웬델 베리, <지식의 역습>). 핵분열은 우리가 하지 말았어야 할 실험이었고, 우리는 이미 일을 저지른 셈이다. 이제는 그 위험을 감수할 일만 남았다.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양산, 울산, 일광 단층이 활성단층으로 알려졌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그 인근에 핵발전소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지진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용틀임 앞에서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오만이다. 오만은 반드시 위험을 불러온다. 한편, 영광에서는 원불교 주도로 매주 월요일 군청에서 핵발전소까지 22㎞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걸으면서 자신을 한껏 낮춘다. 자신을 돌아본다. 지난주 200회를 맞은 ‘생명·평화·탈핵순례’다. 아마도 이 같은 탈핵순례의 발걸음과 겸손이 저들의 오만이 불러올 핵발전소의 재앙을 막고 있는지 모른다.

이 땅의 안전과 생명과 평화의 길을 묵묵히 열어가고 있는 모든 순례자들의 발걸음에 축복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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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9282054005#csidxe421cb3fdcd18b7b3302936667fa14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