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을 폐쇄해야 하는 이유

‘각자도생’은 없다 / 윤순진 서울대 교수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3. 22:31

[녹색세상]‘각자도생’은 없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지난 9월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05년 근대적인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또 1978년 지진 통계가 시작된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이후 오늘 오전까지 무려 475회의 여진이 발생해 여진 횟수로도, 한 해 발생 지진 횟수로도 사상 최다를 기록 중이다.

지진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우리나라에선 좀체 경험할 수 없었던, 그래서 항상 남의 일처럼 느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낯설기 때문에 공포스럽다. 경험도 대비도 없었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다.

[녹색세상]‘각자도생’은 없다

이런 공포심과 당혹감을 더욱 깊게 하면서 불안감을 더하는 건 지진 발생지가 경주란 사실이다. 월성 원전은 이번 본진 진앙으로부터 28㎞ 거리에 있다. 그곳엔 원전 6기가 가동 중이고 그중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넘겨 연장 운전 중이다. 이미 이질암반으로 인해 다소 기울어진 상태에 있던 월성 1호기는 이번 지진에 다른 원전보다 훨씬 더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 소내 임시저장고는 가장 먼저 포화상태에 이를 예정이며 그 옆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입지해 있다. 그만큼 위험이 집중해 있는 것이다.

경북에는 월성 원전 외에도 고리 원전과 울진 원전이 있는데, 역대 가장 강력했던 상위 5위 지진 가운데 세 차례가 경북지역에서 발생했기에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 가능성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태풍 차바가 부산 앞바다에 상륙했을 때 9.8m 높이 파도가 마린시티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는데 그런 파도가 고리 원전에 들이닥친다면? 해발 5.8m에 입지한 고리 원전 앞에는 4.2m 높이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10m 넘는 파도가 밀려온다면? 대규모 지진해일의 발생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고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점점 높아지며 다양한 기후재난이 빈발하고 있기에 이런 우려가 기우일 수 없다.

2011년에 일어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참사는 인류 모두에게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세계 최고 원자력 안전관리국으로 널리 알려졌던 일본에서 그런 참사가 발생한 건 사고 대응이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안전불감증으로 사전 대책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13m 높이 이상의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정 외”로 간주하고 대비하지 않은 탓이 컸다. 규모 5.8 지진이 이미 발생했고 신라시대 이래 역사에도 지진 기록이 나오며 몇몇 지질학자가 대규모 강진 발생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한수원이 일축하듯 규모 6.0 이상의 지진은 “상정 외” 현상인 걸까?

월성 원전은 경주 지진 발생 후 4시간이나 지나 가까스로 수동 정지에 들어갔고 지진 안내 문자 수신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세 시간 이상 먹통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수 국민은, 바로 인근 주민은, 지진이 발생하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린 이제 정부와 한수원의 안전불감증과 무능을 탓하기보다 지진과 원전 참사에도 ‘각자도생’해야만 하는 걸까? 나와 우리 가족은 세월호를 타지 않아서, 가습기 살균제를 쓰지 않아서, 고 백남기씨처럼 집회에 참가해 물대포를 맞지 않아서, 지금 목숨을 보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전 참사로 방사성물질이 누출된다면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오염된 공기는 경계 없이 흐르고 오염 의심 농축수산물도 경계를 넘어 유통될 것이기에.

국민 안전,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있어 사후 약방문은 아무 소용이 없다. 활성단층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월성 1호기 수명연장과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는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면 사전 주의, 사전 예방만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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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10122031005#csidx4e305820fa9efc7bcba04382999de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