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절세의 천재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4. 21:48

[여적]절세와 천재

안호기 논설위원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세금을 회피한 데 대해 지지자들이 오히려 ‘천재’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1995년 소득세 신고 때 9억1600만달러 손실을 신고해 이후 18년 동안 소득세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클린턴 캠프는 “형편없는 기업인”이라고 비난했고, 미국 주요 언론도 “폭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세법을 어떻게 활용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천재적이다. 매우 좋은 뉴스” 등으로 트럼프를 옹호했다. 법을 어기지 않고도 세금을 안 냈으니 훌륭하다는 뜻이다.

트럼프 자신도 소셜미디어에 “나는 역대 어느 대통령 후보보다 복잡한 세법을 잘 안다”고 자찬했다. 절세는 세법 테두리 안에서 세금을 줄이는 방법이다. 불법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도 부자에게 유리한 현행법 규정을 이용했기 때문에 트럼프가 소득세를 내지 않은 게 불법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논리를 한국에 적용하면 트럼프를 뛰어넘는 천재가 수두룩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 17.1%(9월30일 종가 기준 4조8685억원)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이 부회장은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48억3091만원어치를 인수했다.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고, 이후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꾼 뒤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20년 전 인수한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현재 가치는 1000배 넘게 불어났다. 헐값 전환사채 인수 이후 사실상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재벌 총수일가뿐 아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인이 대표인 가족회사 정강은 지난해 총 2억5247만원의 임대·금융소득을 신고했다. 그러나 세금은 3.8%인 969만원만 냈다. 고소득 근로소득자 실효세율 16.6%나 중소기업 법인세 실효세율 12.6%보다 훨씬 낮다. 우 수석 가족으로만 구성된 회사에서 복리후생비 292만원, 교통비 476만원, 차량유지비 782만원, 접대비 1000만원 등을 쓴 탓이다. 이것이 바로 법을 아는 사람들의 세금회피, 이름하여 절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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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201&artid=201610032101005#csidxc817cf6a7bc625cba377bd0c52de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