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1)서울 장기 농성장 13곳서 길을 묻다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5. 20:41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1)서울 장기 농성장 13곳서 길을 묻다

김종목·박광연·이유진·최민지·허진무 기자 jomo@kyunghyang.com

ㆍ권력에 ‘아니다’ 말 못하는 나라, 그래서 우린 길에 나섰다
ㆍ“국민 의견 안 들어주는 국회…우린 왜 대표자를 뽑았을까요?”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는 비정규직 강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부근 국민은행 앞 천막은 가장 오래된 농성장이다. ‘자발적 가난과 고난’을 택한 장기 농성자들의 삶은 민주공화국의 부재 또는 위기를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은 농성장 앞에서 팻말을 든 김씨 부부 앞을 무심히 지나갔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는 비정규직 강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부근 국민은행 앞 천막은 가장 오래된 농성장이다. ‘자발적 가난과 고난’을 택한 장기 농성자들의 삶은 민주공화국의 부재 또는 위기를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은 농성장 앞에서 팻말을 든 김씨 부부 앞을 무심히 지나갔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지면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기획을 진행합니다. 웹·모바일 페이지에 취재팀이 만난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명의 육성을 특집으로 싣습니다. 특집 페이지는 시대를 진단하는 아카이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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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전원이 갑자기 꺼졌다. 남은 배터리 용량은 30%.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김선혁씨(39) 말을 받아치던 중이었다. 폭염으로 과열된 탓일까.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농성장 밖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스마트폰으로 온도를 확인했다. 8월11일 오후 3시 기온은 36도, 체감기온 38.6도. 차량으로 가득한 도로는 초대형 온풍기처럼 열기를 뿜었다. 햇볕이 살갗을 파고드는 날씨에도 천막을 치지 못한다. 구청은 “뼈대가 들어간 천막은 가건물”이라며 ‘철거 대상’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씨가 가로수 그늘 아래 차린 농성장에서 얼음 조각을 입에 넣고 말했다. “겨울 노숙은 하거든요. 우리끼리 그러죠. 그게 낫다고. 아~ 여름 노숙은 정말 힘들어요.” 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11년 해고 뒤 회사와 법원을 오가며 노숙 투쟁만 2년을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해고 뒤 삶 자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의 연속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벌어져선 안될 일들이다. 지난 1월 현대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과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를 공모한 사실이 확인됐다. 노조는 직장폐쇄와 노조 탄압 배후에 현대기아차가 있다고 여겼다. 5월17일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석 달째인 7월21일 대전고등법원은 유성기업 노동자 2차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은 농성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복직은커녕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았다. 회사는 대화도 거부한다.

와중에 동료는 세상을 떠났다. 농성장엔 지난 3월17일 자살한 유성기업 노조원 한광호씨의 간이 분향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동료들은 그가 노조 탄압에 괴로워하다 죽음을 선택했다고 전한다.

노조 파괴는 이어진다. “갑을오토텍 노조 문제도 똑같아요. 컨설팅한 회사 노무사가 창조(컨설팅)에 있던 사람입니다.” 김씨는 기업과 언론, 지식인들이 노조를 탄압하면서 이윤을 내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한참을 생각하다 강정과 밀양, 성주 이야기를 꺼낸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존중해야 하는 거잖아요. 간담회를 얼마나 열었나요? 얘기를 들어봤느냐는 거죠. 왜 권력층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외부세력으로 매도하느냐는 거죠. 이게 과연 민주공화국일까요?”

■길에서 민주공화국을 묻다

특별취재팀은 지난 8월 서울의 장기 농성장 13곳을 찾았다. 22년 만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때다. 노동자가, 농민이, 장애인이 잔뜩 달궈진 거리로 나와 끝 모를 싸움을 이어갔다. ‘자발적인 가난과 고난’을 감당하는 이들은 지금 이 시대의 ‘장기수’ 같아 보였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의미를 물었다. 길에서 더위와 추위와 싸우는 이유가 헌법 제1조의 실현과 직결된다고 여겼다. 농성장에서 ‘민주공화국’을 찾기는 어려웠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주권은 부재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만 시퍼렇게 번득인다. 농성자들은 추방당한 채 탄압에 시달리고, 무관심에 고통받는다. 생계는 힘들고 위태롭다. 힘에 부친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국민의 죽음

하이디스 노조 2·3대 지회장을 맡았던 배재형씨는 지난해 5월 세상을 등졌다. “제가 다 책임지고 이렇게 갑니다. 동지들, 끝까지 싸워서 꼭 이겨주세요”라고 유서에 썼다. 사람이 죽고서야 투쟁이 ‘조금’ 알려졌다. 배씨의 죽음 전 해고자들은 “(언론에 나려면) 사람이 하나 죽든가”라는 말을 들었다.

광화문 동화면세점 농성장에서 김승배씨(44)가 말한다.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서라면 자본가들은 돈이나 시간이 얼마가 들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김씨는 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수막은 이들의 투쟁 이유를 압축해 보여준다. “흑자 정리해고! 우량공장 폐쇄! 특허기술 유출! 무책임한 외국기업 횡포를 정부는 즉각 저지하라!”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싸운 지 1년 반이 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8월 하이디스가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들이 삶으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판정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씨가 스마트폰으로 ‘민주공화국’을 검색하고 말했다. “이런 투쟁에 전혀 관심 없었거든요. 가장으로 아이들 키우는 데만 초점을 맞췄죠. 해고 뒤에 너무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을 많이 접했어요. 분명한 건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게 민주주의고, 민주공화국이죠.”

농성장은 밤이면 종종 위험해진다. 취객들이 술병이나 돌멩이를 농성장에 집어 던진다. 농성장에서도 헌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윤효선씨(32)는 위협적인 상황을 보고도 신경 안 쓰는 경찰들이 있다고 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도와주러 안 와요.” 국가는 이들을 ‘국민 생명 보호’의 대상에서 배제한다. 종종 ‘비국민’으로 취급한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1)서울 장기 농성장 13곳서 길을 묻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은 중구 명동 신일빌딩 앞 화단 옆에 있다. 티브로드 최성근 수석부지부장(41), 권석천 부지회장(42)이 8월11일 저녁식사를 하러 천막으로 돌아왔다. 티브로드·세종호텔·사회보장정보원 공동투쟁단의 충무로 시위를 마친 뒤였다. 매연이나 더위는 차라리 견딜 만하다고 했다. “인생이 없다. 젊은 날을 도둑맞은 것 같다.” 비정규직의 삶을 두고 최성근 부지부장이 말했다. 저임금에 근로기준법 미준수가 다반사다. ‘당일 처리’는 온전히 노동자 몫이었다. 자정까지 일해도 콜센터 예약을 감당하지 못했다. 방송 송출선 담당 기술자들은 새벽에도 전화가 오면 뛰어나갔다. 유선방송 설치가 늦었다며 항의하는 고객에게 회사 대신 사과했다. ‘위험의 외주화’에도 무방비로 노출됐다. 별다른 안전장비 없이 전봇대에도 올라갔다. 소비자들은 눈비가 와도 설치해달라고 했다. 회사도 종용했다. 관련 법은 우천 시 전봇대 작업을 금지한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들은 순간 한마디로 ‘우리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은 자본의 나라일 뿐이다. 권 부지회장이 말했다. “자본이 우선되는 사회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죠. 돈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대우를 더 잘 받아야 하고, 갑질을 해도 된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거 같아요.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생각을 하는데 아무 말도 없어요. 참 이상하죠.” 최 부지부장은 곰곰이 생각하곤 말을 이었다. “지역 센터장은 자기가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고 본사가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또 본사(원청) 가서 얘기하면 ‘너희와 상관없다’고 해요.” 그에게 민주공화국은 사회·경제·정치 부문의 구조적 잘못을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불평등 투쟁해야 민주공화국

명동역 10번 출구를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세종호텔 벽에 기대어 세워진 팻말과 호텔 노조원들의 1인 시위다. 8월18일 고진수 위원장이 서 있었다. 연봉제 확대와 임금 삭감을 통한 정규직 퇴출, 일일근로계약서, 연장수당·주휴수당 미지급 등 사측이 끌어들인 여러 조치를 하나씩 이야기했다. 과장급 직원은 연봉제 대상자가 되고 4년 뒤 임금이 반토막 났다고 한다. ‘노동 탄압의 백화점.’ 고 위원장은 회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헌법 제1조? 네. 잘 알죠. 하도 많이 외치고 듣고 했으니까요. 노래도 있고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다만 헌법 제1조는 ‘말’로 익숙할 뿐이다. 민주공화국인가는 회의적이다. “힘 있는 몇몇이 ‘이거 맞지’라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가 됐어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요.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을 뿐이죠.” 농성은 고달프다. 생계도 위험하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절망이 삶을 피폐하게 만들 거라 생각한다. “구세주가 짠~ 하고 나타나서 바꿔줄 수 있는 건 없어요. 불평등과 부조리에 투쟁해야 바꿀 수 있죠.”

■연대로 이어진 섬들

농성장은 언뜻 외딴섬처럼 보인다. 광화문에서, 명동에서, 강남에서 각자의 소리만 외치는 듯하다. 이 섬들은 가늘지만 강고한 ‘연대’라는 이름의 다리로 이어진다. 운동은 연대의 힘으로 확장한다. 세월호 유족이, 유성기업 노조원이 백남기 농민의 농성장을 찾았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반올림 농성에서 공연한다. 농성장 사람들은 참사, 노동, 도박, 장애인 문제를 함께 투쟁할 일로 여긴다.

8월18일 고진수 위원장과 함께 간 곳은 세종호텔에서 5분 거리의 사회보장정보원 집회장이다. 동양시멘트·하이디스·티브로드·하이텍·세종호텔·콜트콜텍 노동자 등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고 위원장은 2012년 파업 당시 기륭전자·쌍용차·코오롱·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왔다고 전한다. “150여명의 동지들이 로비를 메웠을 때 굉장히 큰 힘이 됐죠. 이후 다른 투쟁 사업장에 꾸준히 다닙니다.”

■생명줄이 끊겼다

8월11일 관악구 한남운수 차고지 입구 농성장에서 만난 버스정비 해고노동자 이병삼씨(46)는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사업주들의 잘못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도 자주 찾지 않았다고 한다. “법치국가나 3권 분립을 상징하는 저울 있잖아요? (투쟁하면서) 저울이 절대 평평하지 않다는 걸 느낀 겁니다. 검사든, 경찰이든, 판사든 목소리를 들어주는 데가 없더라고요.”

하도 답답해서 들춰본 게 헌법이다. “내가 누군지 처음 생각해본 거죠. 왜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도요.” 노동법, 근로기준법, 취업규칙을 읽었다. 이씨는 자신의 투쟁이 ‘준법투쟁’이라고 확신했다.

민주공화국인가? 이씨는 미숙아로 태어난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여동생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병원비 내기도 힘들다. “둘이 죽어라 벌어도 빚만 지고 살죠. 팔, 다리, 치아 다 성치 않은데 국가 보조는 한 달 20만~30만원입니다. 큰 병원에 한 번 가면 기본이 몇십만원 넘죠. 이게 개인 잘못인가요?”

이씨의 삶도 망가졌다. 농성 뒤 집을 헐값에 팔았다. 대출과 투쟁기금으로 간신히 살아간다. 생계는 농성자 모두가 겪는 문제다. 농성장을 떠나는 이들도 있고, 계속 싸우는 이들도 있다. 40대 중반 나이. 그는 “생명줄이 끊겨 버렸다”고 말한다.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이 일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배운 정비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마지막 투쟁이라고 각오한다. 그래서 농성장을 더더욱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자라난 아이들, 해고도 이어진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54)가 해고됐을 때 큰아이는 고교 2년생이었다. 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알바’를 하다 직장인이 됐다. 신협에서 계약직으로 2년 일하다가 해지됐다. 임씨는 “은행은 다 정규직인 줄 알았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8월11일 임씨의 투쟁은 3482일, 여의도 농성은 312일째였다. 임씨가 해고된 뒤 확인한 건 “한국은 독재국가이고 부정부패한 나라”라는 것이다. “권력도 돈으로 좌우되잖아. 돈이면 판사도 사고 검사도 사고 다 사잖아. 해고조건이 법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한국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너무 힘들고 비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근 콜텍지회장(51)은 민주공화국의 부재를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다. 축적의 시기’라고 이야기하며 민중들을 착취했잖아요. 여전히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자본 축적만 이뤄지죠. 민중의 삶은 하나도 나아진 게 없죠.”

■판결도 이행하지 않는 나라

노동부는 지난해 2월13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인 동일산업이 ‘유령회사’이며 하청노동자들은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양시멘트 소속 정규직 노동자라고 판정했다. 동양시멘트는 노동부 판정에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 노동자 100여명 해고로 답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했지만 동양시멘트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소송 소장도 보냈다. 23명 조합원에게 매긴 배상금이 총 16억원이나 된다.

정부와 법원이 가끔 해고 무효와 복직 판정을 내려도 기업은 잘 듣지 않는다.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이 광화문 미국대사관 뒤편 삼표그룹 본사 건물 입구 앞 천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8월10일 노동자들이 353일째 노숙 농성 중이었다.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데 그게 민주공화국일까요? 헌법대로 한다면 부당해고 판정이 났는데 우리가 노숙 농성을 할 필요가 없죠.” 이재형씨(42)가 말했다. 이씨는 26세이던 2000년 10월 동일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임금은 정규직의 40%를 받았다. 회사 식당에선 “하청 주제에 왜 먼저 밥을 먹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를 악물고 굴착기와 불도저를 몰았다. 연장근무를 밥 먹듯 했다. 그렇게 일하다 해고됐다. 이씨가 서울에서 싸우는 동안 아내는 삼척에서 돈을 번다. 여섯 살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식당에 나간다. 아내는 남편의 투쟁을 성원한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해고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정치도 대의도 없다

분수대에서 초등학생들이 뛰어놀았다. 8월8일 낮 기온은 35도.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족 단식 농성장 바닥은 물로 흥건했다. 열기를 식히려고 분수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려놓았다. “광화문광장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곳에선 호소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세월호 특조위 김형욱 언론팀장이 말했다.

오후 2시40분쯤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단식 농성장에 나왔다. 딸 예은양의 단원고 학생증이 목에 걸려 있었다. “헌법은 그냥 갖다 제일 위에 꽂아놓은 두꺼운 책 정도의 의미일 뿐이죠.” 한참 뜸 들이다 말을 이었다. “헌법은 그 누구라도 어떤 경우라도 함께 지키자고 약속한 기본이고 상식이잖아요. 그것을 무시하는 현실에서 어디에 희망을 걸고 살 수 있을까요?”

‘정치’도 ‘대의민주주의’도 없다고 유씨가 말한다. 야당은 수시로 말을 바꿨다. “19대 국회 때는 ‘소수 야당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니, 시민들이 다수당을 만들어 주니까 ‘국회 법과 절차, 질서를 해칠 수가 없다,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국회의원의 특성’이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 말이 제일 웃겨요. ‘가족 여러분들이 여론을 만들어 주십시오.’ ” 정세균 국회의장이 한 말이라고 했다. 세월호 이후 참사가 마치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유 위원장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참사 때마다 현장을 찾고 있다. 그는 1명이든 300명이든 생명을 계량할 수 없고, 인권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파란색 유리로 덮인 용산화상경마장 건물은 겉만 봐선 ‘도박장’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구에 흰색 유니콘과 황금색 말 조형물이 화상경마장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사람들은 알고 찾아온다. 화상경마장 앞엔 종종 오토바이가 행렬을 이룬다. “생업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분들이죠. 현금 만지는 택시기사 분들도 와요. 힘들 게 사는 사람들 주머니 털어가는 거죠.”

정방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공동대표(46)는 농성 후 헌법을 찾아봤다. “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 제1조에만 썼다는 걸 처음 알았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나왔다. 국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의민주주의도 작동하지 않았다. 19대 국회 때 용산화상경마장 관련 법안은 15개 상정됐다가 논의 없이 끝났다.

20대 국회 들어 시민 1500명의 뜻을 모아 입법청원을 제기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시민이 입법청원하면 추진해야 합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해놓고서 국민 요구를 국회가 안 들어주면 헌법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마사회는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농림축산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서 ‘마사회로부터 농림축산기금을 받기에 이전을 대놓고 찬성하기 곤란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화상경마장 반대는)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 구청장, 시장 등이 해야 되는 거죠. 우리가 반대 운동까지 할 거면 대표자들을 왜 뽑았나 싶어요.” 8월11일 현재 도박장 반대운동은 1198일째였다. 정 대표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영화 <부산행>을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 ‘나만 아니면 괜찮아’라는 이기적인 생각,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예우하지 않는 문화가 민주공화국을 위협합니다.”

■이 외침은 뭘 타전하는 걸까

광화문역 9번 출입구 왼편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이 들어섰다. 8월10일 현재 1452일째.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정훈 권익옹호국장(47)이 휠체어를 탄 채 행인들에게 서명을 요청했다. 김 국장이 강조한 건 시설 격리·수용 문제다. 사회는 장애인이 원하는 삶을 인정하지 않고, 지금 ‘민주공화국’은 거대한 시설과도 같다. “집단 격리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는 상태에서 사는 겁니다. ‘사람들이 중증장애인이면 사회에서 어떻게 사느냐, 격리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하는 소리를 들을 때 민주공화국이 맞나 싶죠.” 스웨덴 정부는 1950년대부터 장애인 거주시설을 없애왔다고 했다. “자본주의 잣대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왜 같이 보듬고 살아야 하는지 알리는 게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소리/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 귀뚜루루루 …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김 국장은 가수 안치환의 ‘귀뚜라미’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 외침이 사람들에겐 ‘타전’을 한다고 봐요. 언젠가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며 좋은 날을 맞이할 겁니다.”

■정부는 자본을 비호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농성장은 44층 높이의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배경으로 두고 서 있다. 8월11일은 서초사옥 농성 투쟁 309일째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등 직업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대책을 요구하며 9년째 투쟁 중이다. 농성장엔 삼성전자 직업병 사망자 76명을 상징하는 흰고무신 화분과 추모 ‘솟대’가 보였다.
 농성장을 찾았을 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불거졌을 즈음이다.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당시 23세)가 병원 치료를 받을 때 삼성 관계자는 4000만원을 지원해 줄 것이라고 말해놓고, 정작 들고온 돈이 500만원이었다고 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등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 이 활동가가 내린 민주공화국 정의다. “노동법에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마저도 구현되지 않아요. 정부와 공권력은 자본을 철저히 비호합니다.” 야당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삼성 출신 양향자씨가 더민주 공천을 받아 지난 총선에 출마했을 때 사망 사태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은 오지 않았다..

■삶의 고통을 응축한 농성장에서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는 비정규직 강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 1.5평 규모의 천막은 대학강사 교원 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다. 8월11일 3262일째였다. 가장 오래된 농성장이다. 김동애씨가 민주공화국에 관한 질문을 듣고 목소리를 높였다. “똑같은 걸 가르치는데 한쪽은 1억원을 받고 한쪽은 교원 신분도 없이 연봉 500만~600만원을 받고. 그게 민주공화국이에요? 논문 대필이 관행이라는 나라가요? 국회도 묵인하는 그런 나라가 어떻게요?”

전국의 대학 시간강사는 지난해 4월 말 기준 5만9000여명이다. 대부분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일한다.

오랜 투쟁에도 바뀐 게 없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등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을 유예시켰다. 3번째 유예였다.

농성 10년.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교원 지위 회복은 장년에 접어든 두 사람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김동애씨도 자주 이 생각을 한다. 결론은 내린 듯하다. “꼭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하는 데까지 하는 거예요.”

농성은 삶의 고통을 응축한다. 이 장소는 쉬이 감당할 곳이 아니다. 자본은 외면한다. 국가는 추방한다. 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몸은 상해간다. 마음엔 화병이 든다. 사람들은 관심 없다. 투쟁에 지쳐간다. 농성자들은 서로 힘을 주는 ‘연대’와 조그만 ‘관심’으로 이 ‘민주공화국’을 버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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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51827005&code=940100#csidxb8f3235a17ec3128850c3d2f9f7021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