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바다 밖에서 싹튼 생명체의 비밀…‘생명의 나무’는 알고 있다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8. 17:56

[리틀 빅히스토리](3) 바다 밖에서 싹튼 생명체의 비밀…‘생명의 나무’는 알고 있다

김서형 조지형 빅히스토리 협동조합 이사장

ㆍ생명의 탄생과 진화
ㆍ‘철’을 통해 본 모든 것의 이야기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1911년. 서로 연결된 하늘·땅·지하세계와 역동적인 나뭇가지는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1911년. 서로 연결된 하늘·땅·지하세계와 역동적인 나뭇가지는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관능적인 그림을 그린 상징주의 화가가 있다. 바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다. 흔히 ‘키스’나 ‘유디트’ 등 여성을 소재로 삼은 에로틱한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생명의 나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 그림은 ‘기대’와 ‘생명의 나무’, 그리고 ‘이행’이라는 세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생명의 나무’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세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역동적으로 표현된 나뭇가지는 생명의 복잡성을 상징한다. 이 그림은 결국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근원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명의 나무’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진화를 이해하는 토대이기도 했다. 멸종했거나 지금까지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진화 계통을 보여주는 것이 ‘생명의 나무’인데, 다윈은 이를 통해 공통조상으로부터 종 분화를 거쳐 여러 종들이 갈라져 나오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종의 기원> 제4장 ‘자연선택’에서 이와 같은 계통수를 제시하면서, 동일한 종의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 분화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결국 다른 종으로 분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DNA 분석을 통해 지난 35억년 동안 지구에 살았던 약 2300만종의 계통도를 작성한 ‘생명의 나무’가 발표되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원시 박테리아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사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창조주가 인간을 포함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만연했지만, 과학의 발전과 여러 과학적 증거들을 토대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생명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러시아의 생화학자 알렉산드르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이다. 오파린은 1936년 자신의 저서인 <생명의 기원>에서 생명의 화학적 진화설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원시 지구의 대기에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 등이 풍부했는데, 이와 같은 물질들은 물 분자와 결합해 물에 잘 녹지 않는 콜로이드 상태로 존재했다. 그리고 간단한 형태의 막에 둘러싸인 액체 방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원시 생명체의 기원인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이다. 코아세르베이트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물질들을 수용하고, 어느 정도의 크기에 도달하면 분열해서 그 수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생명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파린은 이를 토대로 코아세르베이트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생명체가 나타났다는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원시 대기상태와 비슷한 조건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 ‘밀러 실험’ 장면.

원시 대기상태와 비슷한 조건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 ‘밀러 실험’ 장면.

오파린의 가설을 구체적으로 입증한 실험이 1952년 시카고 대학에서 이뤄졌다. ‘밀러 실험’이라 불리는 이 실험은 메탄, 암모니아, 수소가 혼합된 장치에 수증기를 주입하고, 고압 전기 불꽃을 일으켜 나타나는 반응을 관찰한 것이다. 전기를 띤 수증기는 냉각기로 이동해 물방울로 변화했다. 이 물방울을 끓여 수증기를 만든 뒤 방전시켰더니 글리신과 같은 단백질을 합성하는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 이 실험은 메탄이나 암모니아가 풍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시 대기 상태와 비슷한 조건 속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말에 미쓰비시 화성생명 과학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대기 온도가 1000도 이상 되자 원시 지구의 성장핵이었던 금속철의 산화 비율이 감소하면서 수소의 발생량 역시 감소했다. 그 결과 탄소는 일산화탄소로 환원되었다. 당시 원시 대기는 수증기와 일산화탄소, 질소, 그리고 수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대기 온도가 1000도 이하로 낮아지자, 금속철의 산화 비율이 증가하면서 수소 발생량도 증가했다. 그리고 원시 대기 중의 탄소는 수소와 결합해 메탄(CH4)을 형성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오파린의 가설이나 밀러 실험에서 설정하고 있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 등이 풍부한 원시 대기의 조건이 바로 금속철의 산화 때문에 만들어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심해 열수구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깊은 바다에서 높은 압력을 받은 바닷물이 지각의 갈라진 틈을 통해 지하로 스며들고, 마그마에 의해 데워진 다음 지각의 틈으로 배출된다. 이렇게 열수가 나오는 분화구가 심해 열수구인데, 열수구 근처에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이산화탄소나 유황과 같은 가스 및 화합물을 통해 생존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심해 열수구의 환경이 원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었던 지구의 골디락스 조건(Goldilocks condition)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속철의 산화는 생명체의 진화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심해 열수구에서 원시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지구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섭취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바로 광합성이다. 광합성은 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하는 과정이다. 원시 생명체가 등장했던 시기에는 대기 중 산소가 매우 희박했기 때문에 오존층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태양으로부터의 자외선이 그대로 지구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고, 생명체는 깊은 바닷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다양한 생명체들이 바다 표면에서 광합성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시작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변화는 철 화합물 덕분에 가능했다. 페리하이드라이트(ferrihydrite)라 불리는 산화 철광물이 자외선을 차단하고 보호막을 제공했기 때문에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호주 샤크 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 남세균이 퇴적층을 이룬 화석이다.

서호주 샤크 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 광합성을 하는 박테리아 남세균이 퇴적층을 이룬 화석이다.

광합성을 하는 최초의 박테리아는 남세균(cyanobacteria)이었다. 줄무늬가 있는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는 남세균이 퇴적층을 이룬 것으로, 남세균의 광합성 때문에 지구에 나타난 놀라운 변화를 잘 설명해준다. 남세균은 엽록소를 가지고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분해하는 광합성을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당은 박테리아가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산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그렇게 산소가 축적되면서 대기 중 산소 농도도 점차 증가했다.

서호주 필바라의 산화철 퇴적층. 약 20억~25억년 전에 형성된 산화철 퇴적층은 철의 산화작용에 따른 대기 중 산소 농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서호주 필바라의 산화철 퇴적층. 약 20억~25억년 전에 형성된 산화철 퇴적층은 철의 산화작용에 따른 대기 중 산소 농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대기 중 산소 농도의 변화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서호주 북서부지역에 필바라(Pilbara)라는 철광석 산지가 있다. 이 지역에서는 검붉은 부분과 흰 부분으로 구성된 산화철 퇴적층이 빈번하게 발견된다. 약 20억~25억년 전에 형성된 산화철 퇴적층은 남세균의 광합성 이후 산소 축적 과정을 잘 보여준다. 대기 중의 산소가 풍부해서 철이 산화되면 검붉은 부분이 형성되고, 산소가 적어 산화작용이 활발하지 않으면 흰 부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필바라의 산화철 퇴적층은 철의 산화작용에 따른 대기 중 산소 농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인 셈이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생명체의 진화와 대멸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 최소 11차례의 멸종이 발생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컸던 5차례의 멸종을 대멸종(Mass extinction)이라고 한다. 대멸종 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약 2억4500만년 전에 일어났다. 고생대 페름기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걸친 대멸종으로 인해 당시 해양생물의 96% 이상이 멸종했다. 과학자들은 대멸종이 대규모 화산 폭발과 더불어 산소 농도가 낮아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늘날 대기 중 산소의 농도는 약 21%다.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을 포함해 5차례의 대멸종 당시 산소의 농도는 이보다 훨씬 낮았다. 사실 산소가 처음 발생했을 때 일부 종들에게 산소는 매우 유해했다. 일례로 남세균의 광합성 이후 대기 중 산소 농도가 1%를 넘자 당시 무산소 호흡을 하던 많은 종들이 멸종했다. 그러나 무산소 호흡 종들이 멸종하면서 생존을 위해 산소를 활용하는 새로운 종들이 탄생했다. 이 새로운 종들이 사라진 종들의 공간을 채우면서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고 진화했다. 이런 점에서 산소 농도는 생명체의 멸종과 새로운 탄생, 그리고 진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요소라 할 수 있다.

약 45억년 전에 지구가 탄생한 이후 철은 액체와 고체 상태로 지구 중심부에 존재했다. 금속철의 산화와 산화 철광물 덕분에 유기물질이 만들어졌고, 35억년 전에 최초의 원시 생명체들이 탄생했다. 약 25억년 전에는 산소 농도가 증가하는 지구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핵과 세포소기관을 가진 진핵생물이 등장했다. 4억7500만년 전에는 바다를 떠나 육지로 이동하는 생명체들이 나타났다. 이후에도 지구 전체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다양한 방법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생명체는 더욱 다양한 종으로 분화하고 진화하게 되었다.

▶김서형

 

[리틀 빅히스토리](3) 바다 밖에서 싹튼 생명체의 비밀…‘생명의 나무’는 알고 있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조지형 빅히스토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내 최초로 대학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소통과 융합을 추구하는 빅히스토리 교양과목을 강의했다. <거대사: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 <왜 유럽인가: 세계의 중심이 된 근대유럽>(공역) 등의 번역서와 <농경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610103&artid=201610072047005#csidx2e2e5216d621850b80d05c47d956ac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