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뇌의 비밀] (1) 노래하는 동안 커지는 카나리아의 뇌…뇌세포가 자란다는 증거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ㆍ도그마를 깬 카나리아의 뇌
‘뇌세포는 한번 태어나면 다시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학생들은 머리를 때릴 때마다 신경세포가 죽으니 머리를 함부로 때리지 말라거나, 새 신경세포가 다시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머리는 점점 나빠진다는 등의 ‘괴담’을 듣고 자란다. 정말 뇌는 한번 만들어진 채로 평생 살아야 하는 걸까?
‘탱고의 도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노트봄(Fernando Nottebohm)이라는 과학자가 있다. 그는 생물학에서는 실험동물로 많이 사용하지 않던 새를 이용해 신경생물학의 근간을 흔드는 발견을 했다. 25년 전 일이다. 당시 파스코 라킥(Pasko Rakic)을 필두로 한 신경생물학자들은 “사람의 뇌는 태어난 후 더 이상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지 않고도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으며, 자라면서 의미 있는 신경세포의 생성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뇌에 자꾸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면 오히려 이미 저장된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헝클어 놓을 것이라고 믿었다. 노트봄의 발견이 이 믿음을 흔들었다.
■카나리아 뇌에서 시작된 신경세포 혁명
미국 록펠러 대학에서 카나리아처럼 노래를 통해 짝짓기를 하는 새를 연구하던 노트봄 박사는 짝짓기를 하는 봄에 새의 뇌가 커졌다가 여름 이후에 다시 수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나리아 수컷은 봄이 되면서 새로운 노래를 배우고 연습하며 짝짓기를 준비하는데 이때 뇌가 커진 것이다. 그의 실험실에 있던 박사과정 학생인 알투로 알바레즈 부이아(Arturo Alvarez-Buylla)는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학습이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든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뇌에서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는 방사성교세포라 불리는 신경교세포의 일종이다. 형태적으로 신경세포와 거리가 먼 세포이기 때문에 그의 발견은 더욱 놀라웠다. 이 새로운 발견은 당시 신경과학계를 주름잡던 도그마, 즉 ‘신경세포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뒤흔드는 질문을 던졌다.
이후, 미국 소크연구소(Salk Institute)의 프레드 게이지(Fred Gage) 박사가 마우스나 사람의 뇌에서도 새로운 기능을 가진 신경세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했다. 소크연구소 뇌과학자들은 스웨덴 연구자가 보내준 뇌 샘플을 이용해 뇌의 해마라는 부위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많이 생겨난 것을 알아냈다. 해마는 새로운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위로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기억에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발견이었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상황과 마주하며 새 기억을 담을 신경세포가 수천개씩 만들어진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누가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까
그러나 이러한 발견은 뇌가 태어날 때 대부분의 신경세포를 갖고 있다고 믿었던 당시 신경과학자들의 고정관념을 바꾸지는 못했다.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나 새로운 기억을 대체하고, 새로운 기억이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나리아 연구로 학계에 충격을 준 노트봄 박사는 1990년대 들어 미국박새의 특이한 행동에 다시 주목했다. 미국박새는 가을에 식물의 씨를 자신만 아는 은신처에 숨겨놓고 겨울을 나는데, 이 장소를 기억해야 다시 그곳에 돌아와 먹이를 먹을 수 있다. 노트봄 박사는 미국박새가 먹이를 숨겨놓은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 뇌의 특정 부위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길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해 보였다. 새로운 신경세포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뇌에서 어떻게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겨나는 걸까. 이러한 궁금증은 신경줄기세포에 대한 오랜 연구에서 단서가 잡히고 있다. 많은 연구를 통해 어른 뇌의 해마 부분에도 신경줄기세포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이 신경줄기세포가 새로운 기억을 담는 새 신경세포로 자라나는 것이다.
신경줄기세포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자. 핵이 들어 있는 세포질은 여러 개의 돌기가 방사형으로 튀어나와 있는데 이 돌출 부위가 혈관과 매우 가까이 있어 혈관에서 분비되는 물질로부터 직간접적인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신경줄기세포는 이 신호를 받아 새로운 신경세포로 자라게 된다. 이처럼 신경줄기세포가 자라는 환경을 ‘신경줄기세포 니치’라고 부르는데, 아름답게 분포해 있는 혈관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고 세포가 만들어낸 부산물을 처리한다. 거듭 말하지만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드는 데는 니치에 있는 혈관이 매우 중요하다.
1999년 소크연구소의 박사후 연구원이던 헨리엣 반 프라그(Henrieete van Praag, 현재 미국노화연구소)가 신경줄기세포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하나를 발표한다. 제목은 ‘달리기가 성체 신경줄기세포로부터 새로운 신경세포를 많이 만든다’였다. 왜 달리기가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도록 자극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아마도 달리기를 하면 신경줄기세포 니치에 있는 혈관이 좋은 성분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다양하고 풍부한 환경이나 좋은 학습 등도 새로운 신경세포를 더 많이 만드는 요인으로 밝혀졌다. 운동, 학습, 환경의 다양성. 뇌가 왕성하게 발달할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라면 이 세 가지는 꼭 주어야 할 선물이다.
■지나친 공부는 100세 인생에 해롭다
달리기나 독서를 통해 하루에만도 신경세포는 수천개나 새로 만들어진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고 몇 주 안에 사라진다. 살아남은 신경세포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며 살아남거나,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하게 하는 ‘저장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뇌와 기억에 대해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매일 새로운 사실들을 보고, 읽고, 저장하고, 시험날 그 정보를 되살려내야 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새로운 정보를 매번 새로운 신경세포에 저장하는 것일까?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 신경세포는 이전에 저장된 정보들을 덮어 써 기존 기억을 지워버리지는 않을까? 저장된 기억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다시 회복되고 새로운 기억과 연합되는 것일까? SF영화에 나온 것처럼 뇌세포에 저장된 기억을 디지털 매체로 다운로드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당장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만으로도 한국의 교육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신경세포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유아기와 신경세포들의 새로운 연접(시냅스)이 계속적으로 바뀌는 청소년기에 한국의 아이들은 대부분 선행교육과 백과사전식 암기학습에 뇌세포를 과하게 노출시킨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신경세포들은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신경세포의 연결 구조를 변화시키고, 정보를 잃지 않기 위해 강한 신경연접을 만들었다 풀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를 신도시와 구도시에 대비해볼 수 있다. 신도시는 도로가 계획적으로 설계돼 넓게 잘 깔려 있다. 반면 오래된 거대 도시는 길도 복잡하고 지도에도 그리기 힘든 골목길이 곳곳에 얽혀 있다. 청소년기까지 뇌 속에 가득했던 신경세포들의 연접은 성인이 되면 신도시처럼 필요한 것만 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신경연접 가지치기’라고 부르는데 뇌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만일 가지치기가 잘못 이뤄지면 신경세포를 돌아다니는 각종 정보와 기억이 제대로 신호를 받지 못하고 느리게 움직이거나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착하지 못하게 된다.
가지치기는 어떤 경우에 잘못 이뤄지는 걸까. 신경세포는 ‘수상돌기가시’라 부르는 1마이크로미터(㎛) 정도 크기로 튀어나온 돌기에서 신경연접을 이루고 신호를 전달하게 된다. 가지치기는 바로 이 부위에서 이뤄진다. 충격적인 사건·사고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반복학습, 운동 부족, 영양 부족 등이 이 부위에 구조적·기능적 기형을 가져올 수 있다. 연구 결과 이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자폐증과 같은 뇌 발달의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한번 소진되면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뇌
가지치기가 제대로 이뤄지는 것 외에 신경줄기세포의 재생능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신경줄기세포는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열 번도 넘게 분열해서 새롭게 신경세포를 만들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분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 환경인 니치가 쇠락하면 신경줄기세포가 제대로 살 수 없으며 지나치게 자극이 많으면 신경줄기세포의 능력이 너무 일찍 소진될 수 있다.
그래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이른 시기부터 반복학습에 노출되는 아이들의 신경줄기세포들은 너무 혹사를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연구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을 오히려 억제하고 니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신경줄기세포가 살고 있는 니치는 운동이나 다양한 환경 자극이 중요한데, 이러한 외부 자극 없이 정보를 저장하고 끄집어 내기만 하는 반복 행동(학습)은 니치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칠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뇌도 100년을 사용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이 중·고교 시절에는 높은 경쟁력을 보이다 정작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 도전정신이나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은 선행교육과 반복학습으로 뇌가 너무 일찍 소진됐기 때문은 아닐까? 문제는 조금 쉰다고 해서 소진된 뇌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이 계속돼 미래세대의 뇌 속이 너무 복잡한 미로로 가득해 경쟁력을 잃어버린 도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모든 도구는 많이 쓰면 닳고 새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신경세포는 수명이 다하면 쉽게 재생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년 동안 써야 할 적은 수의 신경줄기세포를 잘 관리해 필요할 때 새 신경세포를 만들도록 하고, 재생할 수 없는 기존 신경세포는 최대한 아껴 쓰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 아이들 뇌 속에 흐름이 좋은 도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너무 많은 골목길을 갖게 하는 것보다 낫다.
인공지능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 창의성은 신경세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마도 큰 도로를 나란히 달리는 수많은 정보가 뇌 속에서 부딪치면 더 큰 스파크가 일어나 놀라운 창의적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너무 좁은 도로에서는 정보들이 큰 스파크를 튀기며 유레카를 외치기 어렵다. 아이들은 적당한 자극과 운동으로, 더 이상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은 성인은 적당한 운동과 독서로 신경줄기세포가 살고 있는 니치를 잘 가꿔야 한다. 기억이든 창의성이든 우리가 키운 신경세포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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