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모든 것은 ‘운동’하고, 모든 운동은 ‘수학’으로 풀이된다 / 김상욱 부산대 교수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5. 13:41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2) 모든 것은 ‘운동’하고, 모든 운동은 ‘수학’으로 풀이된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ㆍ물리학자가 세상 보는 법

물리는 세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물리에서 운동이란 시간에 따라 물체의 위치가 공간 내에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춤·운동도 인간(물체)이 무대·경기장(공간)에서 펼치는 몸의 운동이다. 역학적으로만 보면 춤은 돌멩이가 날아가는 운동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경향신문 자료

물리는 세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물리에서 운동이란 시간에 따라 물체의 위치가 공간 내에서 바뀌는 것을 뜻한다. 춤·운동도 인간(물체)이 무대·경기장(공간)에서 펼치는 몸의 운동이다. 역학적으로만 보면 춤은 돌멩이가 날아가는 운동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경향신문 자료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고, 자동차가 움직이고,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오고, 사람들이 대화한다. 이 모든 것이 왜 이러한지를 설명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그냥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전능한 존재인 ‘신’이 있다고 하면 어떨까? 사실 이것보다 쉬운 답은 없다. 모르면 그냥 신 때문이라고 하면 되니까. 어찌 보면 이것은 답이 아니다. “태양이 뜬다”를 “신이 태양을 뜨게 했다”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물리학자의 이해방식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텅 빈 공간이다. 빈 공간 안에서 물체가 움직인다. 태양, 자동차, 스마트폰, 인간과 같은 모든 것이 물체에 해당하며 이들은 아주 작은 원자들의 모임으로 되어 있다. ‘레고’를 가지고 놀아본 사람은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은 당연하지 않다. 빈 공간, 그러니까 ‘진공’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때 수많은 과학자, 철학자들이 반대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자 그러니까 ‘레고블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20세기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태양과 자동차의 운동, 스마트폰의 진동은 모두 물체의 움직임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도 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목이 진동하여 ‘소리’라 불리는 주변 공기의 진동을 만든다. 이것이 상대방 귓속의 달팽이관에 들어있는 내부 액체를 진동시킨다. 이를 세포가 감지하여 전기신호를 일으키고 이것이 뇌로 전달된다. 전기신호란 것도 세포막을 통해 이동하는 나트륨, 칼륨 같은 이온의 운동에서 오는 것이다. 물리학자는 이처럼 세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운동은 위치의 문제다

그렇다면 ‘운동’이란 무엇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운동은 위치변화다. 위치의 변화가 없는 것도 ‘정지’라는 운동이다. 아무튼 위치에 대한 문제란 말이다. 위치는 공간과 물체 사이의 관계다. 편의상 물체에서 한 점을 잡아 그것으로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자. 예를 들어 사람이라면 코끝을 잡아도 된다. 이제 사람의 운동은 코끝에 있는 점의 연속적인 위치변화가 된다. 이 점들을 따라가면 선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운동은 선이라는 추상적 대상이 된다. 물리학자에게 운동은 ‘선’이다.

운동은 숫자로 나타낼 수도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업적이다. 그에 따르면 3차원 공간상의 위치는 가로, 세로, 높이를 나타내는 3개의 숫자로 표현된다. 이것을 ‘좌표’라고 부른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것은 혁명적인 아이디어다. 운동은 공간의 선, 즉 도형이 되고, 이 도형은 숫자로 표현된다. 숫자는 수식으로 다룰 수 있으니 운동을 수학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이 때문에 문명국가의 대부분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수학시간에 ‘함수’라는 것을 배운다. 함수는 수식과 도형을 연결해주는 장치다. 물리학자는 수식에서 도형을 읽어내고, 도형에서 운동을 보고, 운동으로 자연을 이해한다.

좌표를 쓰기 위해서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해운대는 부산역에서 동쪽으로 11㎞, 북쪽으로 4.6㎞ 지점에 위치한다. 광안리를 기준으로 하면 동쪽으로 2㎞가 된다. 기준점은 아무 곳이나 잡아도 될 거 같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은 내가 기준점이 되는 기술이다. 하지만 기준점이 움직이고 있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경우 누가 운동의 기준점이 되어야 할까? 이 문제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나온다는 것만 이야기해두고 지나가자.

■운동법칙

지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달. 달이 지구 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초기에 지구 표면과 수평한 방향의 속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br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달. 달이 지구 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초기에 지구 표면과 수평한 방향의 속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제 운동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그렇다면 운동을 기술하는 법칙이 있을까? 있다면 법칙이 왜 존재할까? 이에 대해서도 심오한 철학적 논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물리학자는 의외로 쉬운 답을 가지고 있다. 그냥 법칙이 있다고 믿는 거다. 이걸 종교라고 비난하면 할 말은 없다. 비행기는 10만개의 부품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운동법칙에 따라 작동하여 날아간다. 이걸 보며 법칙이 없다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고만 해두자.

물리학자는 아직 우주를 이해하는 완벽한 법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점점 더 많은 자연현상이 법칙으로 기술되고 있다. 때로 이전의 법칙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법칙은 이전의 법칙을 조화롭게 포함하며 그 적용 범위를 확장해왔다. 이 때문에 물리학자는 우주를 기술하는 궁극적인 법칙이 있을 거라 믿는다. 물론 여기에도 수많은 비판이 가능하다. 법칙은 환상이고 물리학자들끼리 합의한 규칙일 뿐이라는 거다. 이 칼럼은 물리학자의 생각을 쓰는 것이라고만 해두고 지나가자.

운동법칙은 갈릴레오에 의해 제시되고 뉴턴에 의해 정립되었다. (로버트 훅과 라이프니츠의 공로에 대한 과학사적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해두자.) 이에 따르면 운동법칙은 단 한 줄로 기술된다. “외부에서 아무런 영향이 없을 때,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직선 운동한다.” 외부영향이 없다는 것은 대상이 되는 물체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다 없애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런 상황을 실제 구현하기는 힘들다. 물질이 거의 없는 우주공간에 나가면 그나마 비슷한 상황이 된다.

이 법칙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귀결은 “외부영향이 있으면 물체가 등속이 아니거나 직선을 따라 운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여기서 원인이 결과에 선행한다는 인과율을 가정해야 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철학자 흄은 인과율을 의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남은 일은 이것을 수학으로 쓰는 거다. 그 일을 뉴턴이 했다. 문명국가의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F=ma’다. 여기서 F는 힘인데, ‘외부영향’의 물리적 표현이다. a는 가속도. 속도의 변화율을 나타낸다. 여기에는 방향의 변화도 포함시킬 수 있다. 아직 설명하지 않은 새로운 것은 m이다. 이것은 질량인데, 지금으로써는 질량이 여기 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이걸 깊이 파고 들어가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도달한다.

■F=ma

우선 F=ma의 의미를 음미해보자. 물리학과 학생들은 ‘역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1년 내내 이 식을 음미한다. 이 식은 미분방정식이다. 가속도 a는 속도의 변화를 나타내고, 속도는 위치의 변화를 나타낸다. ‘변화’란 수학적으로 미분이다. ‘미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사람이 있을 거다. 셰익스피어를 이해하려면 영어를 알아야 하듯이, 이 식을 알려면 미분을 알아야 한다. 운동은 위치의 문제다. 가속도에서 속도, 속도에서 위치를 알아내는 과정을 적분이라 한다. 미분과 적분이 항상 붙어 다니는 이유다.

적분은 잘게 쪼개어 더하는 거다. 독일에 가면 ‘크뇌델’이라는 음식이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감자를 으깨어 다시 감자 모양으로 만든다. 적분이 이것과 비슷하다. 다만 여기서는 감자가 아니라 시간을 나누어 더한다. 얼마나 잘게 나눌까? 무한히 작지만 0은 아닌 크기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를 생각했다면 그걸 반으로 나누면 된다. 그리고 다시 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멘붕을 일으킨다. ‘극한’이라 부르는 수학적 과정이다. 수학자들이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데 200년이 걸린다.

F=ma가 기술하는 운동의 실체는 이렇다. 물체가 어느 순간 어떤 위치에 있다고 하자. 앞서 말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위치가 변할 수 있는데, 그 변화가 얼마나 될지를 F=ma가 알려준다. 이런 작은 변화를 모두 모아 더하면 (즉, 적분하면) 미래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날마다 받는 이자를 다 구해서 원금에 더하면 예금 총액을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처음 위치가 원금, 변화가 이자다. 결국 F=ma는 일종의 이자율 공식인 거다. 원금, 이율을 알면 1년 뒤 예금액이 결정된다. 이런 식으로 F=ma를 통해 미래의 모든 위치가 결정된다. 세상이 운동이라면 세상의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유명한 ‘과학적 결정론’이다. 이로부터 ‘자유의지’가 존재하느냐는 심오한 질문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거나 비행기가 항법장치에도 적분이 필요하다. 여기서 적분을 하는 것은 컴퓨터라는 기계다. 컴퓨터는 (유한하지만) 충분히 작은 크기로 시간을 나누어 더한다. 수치적분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주어진 구간을 백만 개로 나누어 더하는 식이다. 인간이라면 1초에 한 번 더하기를 하더라도 꼬박 열흘 이상 걸릴 거다. 하지만, 컴퓨터는 백만 번 더하는데 1초도 안 걸린다. 이처럼 컴퓨터의 힘은 단지(?) 속도에서 온다. 기계라도 적분을 할 수 있다면 운동법칙에 따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수학은 자연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기술한다. 수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물리법칙이 된 예는 없다. 물리학자는 외계인을 만나더라도 수학으로 소통이 가능할 거라 믿는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업적도 위상수학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물질의 기이한 성질을 설명하는 데 쓰인 예다. 우주가 정말 수학으로 쓰인 것인지 우리가 수학의 틀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학이 없다면 물리도 없다.

■운동법칙의 눈으로 세상 보기

자, 이제 법칙을 음미했으니 실제 상황에 적용해보자. 사과를 공중에서 놓으면 떨어진다. 왜냐하면 사과와 지구 사이에 중력이라는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F=ma에 따라 사과는 지구방향으로 가속해야 한다.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달과 지구도 서로 중력이라는 힘으로 당긴다. 달도 지구방향으로 가속해야 한다. 하지만 달은 지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달은 초기에 지구표면과 수평한 방향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구공을 던진 거랑 비슷하다. 야구공은 날아가다가 결국 땅에 떨어지지만 달은 안 떨어진다. 초기 속도가 아주 컸기 때문이다. 야구공도 어마어마한 속도로 던질 수만 있다면 달처럼 계속 지구 주위를 돌 수 있다. 낙하하지만 땅에 닿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인공위성이 바로 그런 상태에 있다.

눈앞에 있는 펜을 손으로 밀면 펜이 움직인다. 손으로 민다는 것은 힘을 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지했던 펜의 속도가 바뀌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힘은 어디서 왔을까? 물론 중력은 아니다. 다른 힘이 필요하다. 내 손과 볼펜 사이에 작용한 힘은 전자기력이다. 220볼트의 그 전기? 맞다. 바로 그것과 같은 종류의 힘이다. 전자기력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내 손은 왜 움직였을까? 이것도 전자기력이다. 밥을 먹었으니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거다. 이것도 전자기력이다. 우리 주위에서 속도가 변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전자기력 때문에 일어난다. 물리학과에서 전자기학을 1년 동안 배우는 이유다.

물리는 세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이제 운동법칙을 알았으니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일까?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대번에 알 것이다. 아직 알아야 할 법칙들이 더 있다. 더구나 법칙을 아는 것과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같은지 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하지만, 우주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 김상욱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2) 모든 것은 ‘운동’하고, 모든 운동은 ‘수학’으로 풀이된다
고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1, 2>(공저), <과학하고 앉아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610100&artid=201610142106005#csidx5152e61cebe22889fa8ea045ca3306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