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양군이 추진하고 있는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조작된 내용과 중요자료의 누락사실이 확인돼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환경영향평가가 다시 실시되어야할 경우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높다.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과 설악산지키기국민행동은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와 환경부 국립생태원의 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환경영향평가서상의 자료 미비, 조작 의혹 내용 등이 환경영향평가 관련 법규상의 반려 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서 의원은 “현재 양양군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진행 중인 원주지방환경청은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해서 제출하도록 가닥을 잡고 있다”며 “관련법상 반려 요건에 해당되는 만큼 원주청이 평가서를 보완하도록 조치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서 의원과 환경단체들이 양양군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문제로 지적한 부분은 산양 등 멸종위기 동물과 어류, 양서·파충류, 조류 등의 조사에서 반드시 첨부되어야 하는 현지조사에 대한 증빙자료가 다수 누락되거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조사 기록이 존재하는 점이다. 양양군이 제출한 1~10차에 걸친 현지 조사 자료 중에는 1~4차, 10차의 경우 현지조사표가 누락돼 있다. 이는 국립생태원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 검토의견에서도 지적된 부분이다. 한 생태원 전문가는 “현지조사표와 같은 증빙자료가 없다는 것은 실험실에서 시료를 분석하는 실험을 해놓고 농도나 양 같은 기초 데이터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이 신뢰성을 잃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현지조사표를 정밀하게 확인한 결과에서는 조사자 한명이 인간의 신체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으로 다수의 조사를 실시한 내용도 확인됐다. 한 조사자가 동일한 시간에 포유류, 양서파충류, 어류를 현장 조사하고, 육상동물상의 조사까지 진행한 내용도 포함됐다. 슈퍼맨, 초능력자나 가능한 이 같은 조사내용은 설악산 현지조사 내용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곤충 전문가가 다른 동물의 조사까지 진행하는 등 비전문가가 조사를 실시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의원실과 환경단체가 관련법을 확인한 결과 이 같은 사례는‘환경영향평가서 등에 관한 협의업무 처리규정’상의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해야 하는 사유에 해당한다. 해당 규정에는 “현지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평가항목에 대하여 현지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실시한 것처럼 작성한 경우, 영향예측과정에서 조작되거나 문제가 큰 잘못된 기초자료를 적용하거나 잘못된 예측기법을 사용하여 그 영향을 축소한 경우”는 평가서의 반려 사유에 해당한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에 따르면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조사자로 등재된 전문가 중 한 명은 자신이 해당 조사에 참석한 바가 없다는 문서를 이 의원에게 제출한 바 있다. ‘유령 전문가’에 ‘슈퍼맨 전문가’까지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서가 완전히 신뢰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양양군은 또 자신들이 자체 실시한 산양 정밀조사 결과 가운데 산양을 포함해 멸종위기 동물 다수가 발견된 내용들은 환경영향평가서에 포함시키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케이블카 사업의 환경영향을 일부러 축소시키려 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해당 보고서에는 인간의 간섭이 많을수록 산양의 스트레스호르몬 수치가 증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지만 양양군은 이를 환경부에 전달한 문서에서는 누락시켰다. 케이블카 사업이 산양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자체 조사에서 확인되자 이를 은폐한 셈이다.
의원실과 환경단체들은 원주지방환경청의 조치를 지켜본 뒤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하지 않을 경우 고발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원주청은 10월 초 보완 의견을 보낼 계획이었다. 원주청이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할 경우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은 무산될 공산이 높다. 환경영향평가서 일부를 보완하는 것과 달리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 조치가 이뤄질 경우 처음부터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하며 여기에는 장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일단 박근혜 정부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마치는 것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각각 한 차례씩 불허했고,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완화 발언을 통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업이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 역시 케이블카사업의 백지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이 공개한 양양군 내부 문서들에 따르면 양양군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었다는 점을 뒤늦게 확인해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기존의 사전환경성검토 제도를 확대·개편한 것으로 환경영향평가가 개별 사업의 환경적 측면을 사전 검토하는 것이라면 전략환경영향평가는 보다 큰 틀의 국가정책 및 계획에 대한 환경성 평가를 주 내용으로 삼는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었다는 것은 현재 진행되는 원주지방환경청과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보다 한층 더 세밀하고, 엄격한 절차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환경부가 이 같은 점을 알고도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직무유기가 되며, 알지 못한 상태였다면 환경부의 환경행정 능력에서 커다란 구멍이 발견되는 셈이다.
양양군이 설악산 케이블카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여부를 검토한 이유는 케이블카 시설 중 하부의 정류장이 국립공원 지역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에 대한 허가를 내준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국립공원 내부에 있는 지역에 대해서만 권한을 갖고 있으며 공원 외부에 있는 지역은 국토계획법상의 도시·군관리계획 변경에 따른 허가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 경우 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에 따라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양양군은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하부정류장만 따로 떼어서 도시군관리계획 변경 허가를 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체 시설 중 하부정류장만 떼어서 허가를 받는 것은 지나친 특혜인 만큼 법률적으로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할 경우에도 이번 정권 내에서 절차를 마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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