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대는 낭독이 전달의 주요 수단이 아닌가? 천국의 문을 두드려? 어디 있는데? / 경향신문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5. 13:07

[사설]‘노벨 문학상’ 밥 딜런이 들려준 노래와 시와 메시지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미국 가수 밥 딜런(75)을 선정한 것은 파격이다. 원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등 문학가가 아닌 수상자가 배출되기는 했지만 대중가수가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115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시·소설·희곡 등 전통적인 문학작품이 아닌 노랫말을 시로 평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때문에 뉴미디어에 밀려 글이 힘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순수문학의 마지막 보루인 노벨 문학상마저 대중성에 무릎을 꿇은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직도 엄청난 깊이의 내공을 쌓은 문학가가 즐비한데, 대중가요의 가사에 노벨 문학상을 빼앗겼다는 자괴감의 표현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와 사포도 공연을 위한 시를 썼다”면서 밥 딜런의 가사를 ‘귀를 위한 시’라 표현했다. 호메로스가 “가장 좋은 노래는 사람들의 귀에 새롭게 울리는 노래”라 하고, 플라톤이 대표적인 서정시인 사포를 ‘10번째 뮤즈(예술·문학의 여신)’로 꼽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밥 딜런의 가사는 한림원의 설명대로 “위대한 작품들의 샘플집과 같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노벨 문학상이 엄숙주의를 버리고 문학의 경계를 넓히는 시대변화의 신호탄으로도 읽힌다.

무엇보다 1960~1970년대에 내면이 형성된 이들에게 “밥 딜런의 가사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의식의 하나로 남아 있다”는 브라이언 랭 전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총장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밥 딜런은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과 베트남전쟁 등 혼란기에 빠진 미국 사회를 웅얼거리듯 읊조리는 창법으로 고발했다. 대표곡인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는 “…흰 비둘기가 모래밭에 잠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하나. 얼마나 더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영원히 쏠 수 없게 될 수 있을까”라며 전쟁 반대의 메시지를 서정시로 전한다. 이 같은 밥 딜런의 노랫말은 전 세계 반전 및 평화 운동에 기여했고, 한국의 학생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반전과 평화를 부르짖은 밥 딜런의 1960년대 외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이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전쟁과 테러로 반목하며 대치하고 있는 현상은 그의 노래와 시를 더욱 가슴에 새기게 한다. “계급장을 떼주세요. 엄마, 내 총들을 땅에 꽂아줘요. 길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내려오고 있어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밥 딜런의 1973년 발표작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는 지금도 전쟁 없는 천국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42048005&code=990101#csidx3eda076ed14e845b93602a1a8e8e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