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세계(3)]파라오의 콩...지구와 인류를 구할까
카이로 | 글·사진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평일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 주변은 한산했다. 맥도널드와 작은 식료품 가게 하나만 빼고는 아직 은행과, 여행사, 패스트푸드점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곳곳에 서 있는 경찰 외엔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맥도널드 뒤편 시샤(물담배) 카페와 푸드트럭이 자리잡은 허름한 골목은 제법 활기를 띠었다. 푸드트럭 주변에 모여선 남자들 열댓명이 희끄무레한 빵을 찢어 무언가에 찍어 먹고 있었다. 걸쭉한 된장같은 소스를 듬뿍 얹은 빵조각을 입안에 밀어넣던 낡은 작업복 차림의 남자는 “일주일에 두세번은 여기서 아침을 먹는다”고 말했다.
골목에서 멀지 않은 큰길 가의 작은 레스토랑 샵라위. 코란을 낭송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매장안에서 수트를 차려입은 남자 두 명이 서류뭉치를 앞에 놓고 뭔가 끄적이고 있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홍차를 마시는 30대 중반의 여성은 영어로 된 신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이들 앞에 놓인 것 역시 푸드트럭에서 본 것과 비슷한 소스와 빵, 절인 야채를 담은 접시다.
■독재자 무너뜨린 ‘코샤리 혁명’
풀 메다메스(ful medames).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이집트 사람들의 아침식사다. 넓적한 누에콩(fava bean·잠두)을 뭉근하게 끓여 죽이나 소스처럼 만든 것이다. 여기에 레몬즙, 오일, 고추소스, 소금, 커민 등으로 취향껏 양념을 한 뒤 둥글납작한 빵 에이쉬(aish)를 찍어 먹는다. 초절임한 야채나 삶은 달걀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시장이나 길거리 푸드트럭에선 한 접시에 3~5파운드, 우리 돈으로 400~600원 정도 주면 사 먹을 수 있다. 람세스 힐튼 같은 5성급 호텔의 200파운드(2만5400원) 짜리 조식 뷔페에도 풀 메다메스는 빠지지 않는다. 모양과 차림새는 달라도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낮 12시,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외국 공관들이 있는 나일강 서쪽의 도키(Dokki) 대로변에 자리잡은 체인 레스토랑 ‘엘타흐리르’. 깔끔한 인테리어로 눈길을 끄는 이곳은 이집트 사람들의 주식 격인 코샤리(koshary) 전문 식당이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과 히잡을 쓴 여성 등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코샤리는 병아리콩과 렌틸콩, 마카로니, 쌀 따위에 튀긴 양파와 토마토 소스 등을 올려 비벼먹는 이집트식 비빔밥이다. 값은 양에 따라 7~12파운드(900~1520원). 맥도널드나 KFC에서 판매하는 세트메뉴가 40파운드 안팎임을 감안한다면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메뉴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시민혁명이 이집트로 넘어오면서 수십년 독재정권이 무너졌을 때, 외신들은 그 사건을 ‘코샤리 혁명’이라고도 불렀다. 코샤리가 이 나라 사람들의 일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상징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갑부 만수르의 부인이 미용에 좋다고 먹는다는 병아리콩, 이효리의 다이어트 비법 렌틸콩, 아연과 섬유질이 풍부해 남성 건강에 효과가 뛰어나다는 누에콩. 콩 하면 대두나 강낭콩, 완두콩 정도를 떠올리던 우리 밥상에 최근 몇년새 낯선 이름의 콩들이 올라온다.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아서, 혹은 색다른 풍미와 멋을 즐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인기를 끄는 이 콩들은 지중해 연안이 고향이다.
최신 유행 외식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태원과 강남의 레스토랑에서 이 콩들은 ‘지중해풍 병아리콩 수프’, ‘렌틸콩 샐러드’ 같은 메뉴로 변신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고급 식재료로 취급받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채소특작부 김성진 차장은 “유명인들이 먹는다는 소식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웰빙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대표적인 품목”이라면서 “예전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다가 3~4년전부터 수입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몇년새 푸디(식도락가)들 사이에 각광받기 시작한 이 콩들은 이집트에서는 수천년간 서민들의 삶과 일상을 지탱해 온 소박한 에너지원이다.
■수천년 전 파라오도 먹던 콩
도키에 있는 농업박물관을 찾으면 유서깊은 콩의 역사와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남부 룩소르(Luxor)와 단다라(Dendera) 등의 고대 유적지에서 나온 병아리콩, 렌틸콩, 누에콩 따위가 전시돼 있다. 기원전 1400년 경 룩소르의 무덤에서 출토된 병아리콩은 이미 파라오 시대부터 콩이 식재료로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박물관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아스메 아들 사드(32)는 “고대의 왕과 귀족들에게도 사랑 받았던 먹거리가 콩”이라면서 “특히 병아리콩은 피부를 좋게 만들어준다고 해서 상류층이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고대 이집트에서 많이 생산했던 렌틸콩을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에 수출했다거나, 람세스 3세가 누에콩을 나일강의 신에게 바쳤다는 기록들도 있다”면서 “콩은 따로 손질할 필요 없이 삶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작물이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오랫동안 단백질 공급원이 돼 왔다”고 말했다.
카이로 중앙역이 있는 람세스 광장에선 쉴새 없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소리 사이로 코샤리나 팔라펠(falafel)을 외치는 노점상의 목소리가 들린다. 팔라펠은 누에콩을 갈아 튀겨낸 일종의 크로켓이다. 질감은 고기와 비슷하면서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좋아 이방인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카이로 시내나 시장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기도 하다. 300~400원만 주면 팔라펠 서너개를 빵에 끼워 넣고 소스를 얹은 샌드위치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다. 이집트의 맥도널드 매장에선 ‘맥팔라펠’도 판다.
후무스(hummus)와 렌틸 쇼르바(shorba)도 이집트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메뉴다. 후무스는 아랍어로 병아리콩을 말한다. 병아리콩을 삶은 뒤 갈아서 올리브유나 참깨소스, 레몬즙으로 양념해 페이스트로 만든 요리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쇼르바는 아랍식 수프나 죽을 의미한다.
카이로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인들에게 이집트 음식 요리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한국 음식을 가르치는 동영상 때문에 ‘가다 아줌마’로 알려진 가다 야신(42)은 “풀 메다메스는 한국으로 치면 쌀밥과 국, 후무스는 김치, 렌틸 쇼르바는 삼계탕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렌틸 쇼르바와 함께 겨울철에 보양 음료로 마시는 후무스 엘 샴(hummus el sham)은 병아리콩과 토마토 소스를 함께 끓여 매콤하게 양념한 것이다. 그는 또 “콩은 라마단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원”이라면서 “풀 메다메스는 해 뜨기 전에, 팔라펠은 해가 진 뒤에 주로 먹는다”고 덧붙였다.
오늘날의 시리아와 레바논, 터키에서 이라크 쪽으로 이어지는 중동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이라 불린다. 농경이 세계에서 최초로 시작된 문명의 요람이다. 문자와 바퀴와 점성술을 만들어낸 이 문명의 사람들은 콩을 키웠다. 이 지역에서 적어도 5000년 전부터 콩을 경작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은 달라도 콩으로 통한다
지중해 연안 중동 여러 나라들의 콩 요리법은 이집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콩을 워낙 많이 먹으며, 어딜 가나 비슷한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시리아나 요르단에서는 누에콩 대신 주로 병아리콩으로 팔라펠을 만든다. 튀니지에서는 누에콩이나 병아리콩으로 끓인 아침식사를 라블라비(lablabi)라 부르고 모로코에선 렌틸콩이나 병아리콩으로 만든 하리라(harira)라는 전통 수프를 즐긴다. 모로코나 레바논처럼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에선 콩 요리도 좀 더 화려하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도 모로코나 레바논 식당은 특별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기분을 낼 때 찾는 고급 식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리아 식당은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구운 소고기나 닭고기와 야채, 소스를 전병에 말아 먹는 ‘샤웨르마’(shawarma)는 시리아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가다 아줌마’를 따라 카이로에서 가장 큰 아타바(Ataba) 시장으로 향했다. 아타바 전철역에서 시작되는 이 시장은 곡물이나 향신료 같은 식품부터 수도꼭지까지 온갖 물품을 다 파는 곳이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칸엘칼릴리(khan el khalili) 시장과도 연결돼 있다. 곡물 가게에 들어간 그는 두 종류의 병아리콩을 비교하며 “알이 작은 것은 이집트산이고 좀 더 큰 것은 인도에서 수입된 것”이라며 “국산이 훨씬 맛있는데 요즘 시장에서 거의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점포마다 가장 많이 진열된 것은 누에콩이었다. 시장에 오기 전 들렀던 고급 주거지역 마아디(Maadi)의 대형마트 까르푸에도 반(半)조리 상태의 누에콩 통조림이 넓직한 매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온갖 소스와 향신료, 오일, 통조림, 밀가루 등 다른 식품과 비교해봐도 콩 제품의 종류나 브랜드가 더 많았다. 아무 양념을 하지 않은 플레인부터 야채오일 맛, 매운 고추를 가미한 것, 레바논 스타일로 양념한 것, 토마토 소스를 넣은 것, 레몬즙을 더한 것 등 맛도 다양한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점원 나다는 “집집마다 아침식사로 먹기 때문에 당연히 누에콩이 가장 많이 팔린다”면서 “손님들은 날콩보다는 아무래도 요리하기가 편한 통조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곳 사람들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콩은 올들어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범이 됐다. 값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누에콩의 가격은 1㎏에 12파운드(1500원)다. 불과 몇달 전만 해도 8파운드(1000원)였다. 아타바 시장에서 곡물가게를 운영하는 칼레드는 “예전에 밀을 비롯한 다른 곡물값이 오를 때도 누에콩은 크게 오르지 않았는데 올해는 계속 오르고 있다”고 했다. 콩뿐만이 아니다. 쇠고기도 몇달새 1㎏에 60파운드에서 80파운드로 뛰었다. 설탕, 밀가루, 쌀값도 올랐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보조금 삭감을 요구했다던데 그렇게 되면 물가는 더 올라가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시민혁명 뒤에 새 정부가 세워졌지만, 이슬람주의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그 정부는 1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2013년 7월 대규모 시위에 이어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군 장성 출신인 압델 파타 엘시시가 대통령이 됐다.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는 관광대국인 이집트의 위상을 무너뜨렸고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이제는 기자(Giza)의 피라미드 주변조차 썰렁하다. 45년간 피라미드 주변에서 마차를 몰았다는 압둘라(54)는 “예전엔 100달러(11만1500원)를 불러도 타겠다는 관광객이 줄을 섰는데 지금은 100파운드(1만2600원)에도 손님을 찾기 쉽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공식환율은 달러당 8.8파운드지만 암시장에서는 15파운드로까지 떨어졌다.
이집트는 9500만 인구의 30%가 농업에 종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4%를 농업이 차지할 정도로 주요 산업인데도 주식의 하나인 콩은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현지 상인들은 적게는 국내 소비량의 70%, 많게는 90%까지 콩을 수입한다고 말했다. 농업부 산하 농업연구소의 아말 마흐무드 연구원은 “가장 많이 먹는 누에콩은 연간 소비량 45만t중 62%를 수입한다”면서 “병아리콩이나 렌틸콩의 생산량도 많지 않다”고 답변했다.
■나일 델타에서 콩밭이 사라진다
주목할 만한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집트가 콩을 자급자족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생산량이 뚝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3시간 반 정도 가면 농업 중심지인 마할라쿠브라(El Mahalla El Kubra)가 있다. 자급률이 떨어진 이유에 대한 답을 그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수백여개의 농산물 수출입·가공회사가 있는 이곳에서 1999년부터 콩을 전문적으로 취급해 온 엘와디나일(El Wadi Nile)을 경영하는 무스타파 라드완 사장은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번째는 콩의 수익성이다. 밀은 1년에 두 차례 수확할 수 있으나 콩은 한번만 거둘 수 있다. 그는 “영세한 농민들로서는 콩 대신 쌀이나 옥수수, 밀처럼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작물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히 쌀 수출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쌀로 갈아타는 농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두번째는 값싼 외국 콩들이 밀려오면서 콩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그는 “캐나다와 호주, 인도 등지에서 콩을 대거 수입하다보니 국내산 콩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전통적인 생산대국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같은 동유럽 국가도 콩 수출을 늘리면서 이집트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고 했다. 수입량이 늘어나자 한동안 싼 값에 안정적으로 콩을 먹을 수 있었으나,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면서 늘어난 수입량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카이로에서 마할라쿠브라까지 이어지는 길은 고대 이집트 문명을 낳은 비옥한 곡창지대인 나일 델타(삼각주)를 관통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길을 지나는 동안 콩밭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길가에 늘어선 밭에 심어진 작물은 대부분 옥수수였다. 간간이 쌀과 밀, 포도도 보였다. 마할라쿠브라에서 남서쪽으로 30㎞ 가량 떨어진 도시 탄타(Tanta) 외곽에서 만난 농민들에게 “어디에 가면 콩밭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손을 내저으며 “여기서 콩밭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대개들 옥수수나 쌀 농사를 짓고 있다”면서 “남쪽에 있는 미니야(Minya)에서 콩 농사를 제법 짓고 있지만 보통은 11월에 심어 5월에 수확한다”고 귀띔해줬다.
정부도 콩 수급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농업부는 2030년까지 콩 경작지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자급률을 8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으나 농민이나 시민들 반응은 회의적이다. 마할라쿠브라에서 만난 어느 곡물 유통상은 “최근에는 중국이 누에콩 수입량을 엄청나게 늘리고 있다”면서 “자금력을 가진 중국이 세계의 자원을 빨아들이듯이 식량도 싹쓸이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마존 밀림을 먹어치우는 대두
세상에 콩이 모자란다면? 아마도 이집트 사람들은 코샤리와 팔라펠 가격이 올라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미 그런 일은 벌어졌다. 세계에 ‘바이오연료’ 열풍이 불었던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콩값이 올랐다. 덩달아 기름값도 뛰면서 국제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6년 전 튀니지에서 ‘자스민 혁명’을 촉발시킨, 그리고 이듬해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곡물값 상승이었다.
우리는 쌀밥에 얹은 콩, 된장과 간장의 원료가 되는 콩을 일상에서 주로 접하지만 글로벌 농업에서 콩의 의미는 잡곡 이상이다. 이집트인은 콩이라면 누에콩을 먼저 떠올리지만 한국인들에게 콩의 대명사는 대두(soy bean)다. 학계에서는 대두의 원산지를 한반도와 만주 지역으로 보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대두는 먹거리라기보다는 산업 자원의 개념에 더 가깝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2013년 통계를 보면 세계의 연간 대두 생산량은 2억7800만t(대두를 제외한 콩류 생산량은 7700만t)인데 그 중 70% 이상이 산업적으로 활용된다.
대두는 주로 가축용 사료로 쓰인다. 세계에서 육류 소비가 급증하면서 지난 50년간 대두 생산량은 2배 넘게 늘어났다. 소뿐 아니라 가금류 사료에 사용되는 원료도 콩(대두)이다. 옥수수나 밀도 동물용 사료로 많이 쓰이지만 단백질 공급원으로 콩을 대체할만한 작물은 없다. 국내에 연간 수입되는 콩 120만t 중에서도 100만t이 사료로 사용된다.
육식이 늘고 가축 사육량이 증가하면서 콩 경작지가 늘었다. 브라질의 아마존에서는 거기에 바이오연료 붐까지 일면서 콩이 밀림을 잡아먹는 형국이 됐다. ‘중국인들이 소고기를 많이 먹으면 아마존에 콩밭이 늘어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가축들이 뿜어내는 탄소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보다 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사막화로 경작지가 줄어들고, 곡물 수확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유엔 경제사회국(DESA)이 발표한 ‘2015 세계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73억명인 세계 인구는 2030년에 85억명, 2050년에 96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증가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이 지역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어떻게 먹여살리느냐는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 다시 콩을 들여다보는 학자들이 많다. 식물성 단백질을 개발해 미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콩이 지구와 인류를 살릴까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를 비롯해 트위터를 만든 에번 윌리엄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아시아 최고 재벌로 꼽히는 리자청,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출신의 비노드 코슬라 등은 잇따라 미래 식량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신생 기업들에 투자해 화제가 됐다. 비욘드미트, 임파서블푸즈, 햄턴크릭 등은 실리콘 밸리 거물들의 통찰력이 발굴해 낸 스타트업 기업들이다. 이 회사들은 거의 고기맛에 가까운 식물성 육류 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콩의 해’다. 식량자원으로서 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만일 콩에서 나오는 ‘가짜 고기’가 실제 고기를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콩은 지구의 환경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게 된다.
경작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재배 지역을 개발하려는 과학적 연구도 활발하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이철호 명예교수는 “생명과학 기술을 이용해 가뭄에 잘 견디거나 염분에 강한 종자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물이 부족한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생산성 높은 콩을 재배하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수면이 올라가 바닷물에 가라앉은 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이라는 화두는 여전히 첨예한 유전자 변형 작물(GMO) 논란과 맞닿아 있다. GMO는 작물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여 적은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수확을 올린다는 목적을 내세워 세계 시장에서 널리 퍼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품질이나 생산성보다는 거대 생명공학기업들이 내놓는 제초제, 살충제와 짝을 이룬 패키지 판매에 기대어 비중을 높여왔다. 환경단체나 보건단체들은 여전히 GMO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한다.
인류와 함께 해온 콩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산업자원으로서의 매력이 클수록 식량으로서의 지위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미국 노던켄터키대학 킴벌리 위어 교수는 저서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에서 “콩으로 만든 바이오디젤은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에탄올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줄일 뿐 아니라 에너지를 93%나 더 많이 생성한다”고 했다. 그것이 오히려 지구와 인간에게 독이 될 수 있다. 그는 “바이오에너지 같은 고수익 사업은 어김없이 곡물 공급이 부족해지게 만들며, 결국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 먹거리 값이 오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고대부터 인류의 남루한 육체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 온 콩은 이제 인류의 미래라는 책무도 떠맡아야 할 처지가 됐다.
■특별취재팀 : 구정은 박경은 이인숙 정환보 남지원 이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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