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읽는 것이 힘…누구나 읽을 자유 누려야죠” /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CEO 그레그 뉴비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7. 22:59

그레그 뉴비 “읽는 것이 힘…누구나 읽을 자유 누려야죠”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입력 : 2016.10.16 20:49:02 수정 : 2016.10.16 20:51:28

ㆍ전자책 무료 배포하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무보수 CEO

세계 저작물들을 전자책으로 무료 배포하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최고경영자 그레그 뉴비가 지난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의미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세계 저작물들을 전자책으로 무료 배포하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최고경영자 그레그 뉴비가 지난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의미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읽음으로써 힘이 생깁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 이유이죠. 책 읽기는 즐거움이고, 모두가 그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인류의 지적정보를 전자책으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Gutenberg Project)의 최고경영자 그레그 뉴비(51)는 읽기의 중요성과 그 즐거움을 강조했다. 지난 13일 한국문학번역원 주최의 워크숍 ‘한국 고전문학의 가치와 공유’에 참가해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45년 역사를 강연한 그레그 뉴비를 만났다.

뉴비의 직함은 CEO지만, 보수는 없다. 직함 자체도 기부금을 받으려면 일종의 회사 체제가 필요해 만들었을 뿐이다. 뉴비는 몇 개 대학에서 교수로 일했고, 지금은 캐나다 컴퓨터업체에서 최고기술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그가 무보수로 CEO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는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움직인다. ‘디스트리뷰티드 프루프리더(Distributed Proofreaders)’ 웹사이트를 통해 저작권 청산과 교정, 검토, 최종 점검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1000여명과 희망하는 책을 자유로 스캐닝해 올리는 전 세계 2만5000여명이 자원봉사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마이클 하트의 영향이죠. 그는 히피 같은 기질이 있었습니다. 조직이나 제도를 싫어했어요. 돈벌이에도 관심이 없어서 ‘돈이 없으면 망할 일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1971년 7월4일 당시 일리노이대 학생이었던 마이클 하트가 미국 독립선언문을 전산화해 지인들에게 e메일로 배포하면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역사가 시작됐다. 국내에도 ‘전자책의 대부’로 알려진 그는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발전 외에 다른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오토바이 수리업으로 먹고살았고, 쉬는 날이면 한동네에 살았던 뉴비와 프리스비 원반을 던지며 놀았다. 1968년 무렵에는 베트남전 파병을 피해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들어와 트럭 운전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읽을 자유가 있다”고 강조한 그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독립선언문으로 시작해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100번째 전자책이 나오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이후 인터넷 기술의 발전, 저변 확대로 프로젝트의 컬렉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16년 현재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홈페이지(www.gutenberg.org)에서는 전자책 5만3000권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등 고전문학 하면 떠오르는 작품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국제적 전자책 표준이라 할 수 있는 EPUB와 아마존 킨들 단말기 이용자를 위한 MOBI, 웹브라우저에서 바로 읽을 수 있는 HTML, 이미지 없이 글자로만 채운 플레인텍스트 등 제공하는 파일 형태도 다양하다. 영어책이 절대다수이지만, 비영어권 책도 꾸준히 늘어 지금은 20%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어책은 ‘한-영 사전’ 하나가 등록돼 있다.

뉴비는 “45년을 버텨온 것이야말로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취”라고 말했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이후 유사한 성격의 경쟁자들이 적잖게 등장했지만, 대부분 인력과 자금 부족으로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그사이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는 파일 형태를 다양화하고, 교정 작업을 혁신하는 등 기술적 발전도 거뒀다.

1000만권 이상 도서를 보유하고 무료 검색 및 열람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북스가 위협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뉴비는 자신감을 보였다. “구글의 일과 우리 프로젝트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책사진’과 진짜 ‘전자책’의 차이라고 할까요.”

뉴비가 자신의 전자책 단말기를 꺼내 보이면서 설명했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의 전자책은 화면 크기를 키우거나 줄이면 글자 크기도 자동 조절된다. 독자가 가장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폰트를 바꾸거나 내용 일부를 복사해서 붙여넣는 것도 자유롭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는 자원봉사자들이 핵심이다. 명령 체계가 없고, 업무분담을 논의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핀란드의 한 청년은 핀란드 문학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다며 자국어 책을 스캔해 올린다. 미국 오리건주의 농부는 자신의 아몬드 농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해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담는다. 뉴비는 ‘한국의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사람을 모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뉴비는 구텐베르크의 활동으로 지배층의 전유물이던 지식과 정보가 대중으로 퍼진 것처럼 구텐베르크 프로젝트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권리장전, 독립선언문을 보세요. 역사의 혁명적인 사건들은 모두 문서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아랍의 봄’도 트위터로 시작됐죠. 읽는 사람들에게 힘이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610162049025#csidxa6a730429fc882e82432ff654693ad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