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오디세이]위대한 과학 연구의 뿌리
이상욱 | 한양대 철학과 교수·과학철학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한국인 수상자는 올해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년 반복되던 언론과 정부의 요란한 ‘뒷북치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노벨상 발표 직후 언론은 ‘우리는 이래서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탄식을 쏟아내고 정부는 ‘이렇게 해서 곧 노벨상을 받겠다’는 기발한 전략을 제시하곤 했는데, 올해는 워낙 국가를 뒤흔든 대형 사건이 많아서인지 노벨상 정도는 호들갑 떨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사실 그래야 마땅하다. 노벨상은 해당 학문 분야에 지대한 기여를 한 학자에게 주는 것이지 그 학자의 ‘조국’에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노벨상 위원회는 국가별 노벨상 수상자 숫자를 따로 집계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노벨상이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 향상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도 아니다. 노벨상을 많이 받은 나라들이 대개 선진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20세기 이후 과학 연구에 탁월했던 나라들 대부분이 현재 잘사는 나라이기 때문이지 노벨상을 받으면 그 나라의 국민복지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 수상은 훌륭한 나라의 결과이지 원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마도 노벨상에 대한 집착은 노벨상을 국가 간 경쟁을 통해 ‘국위선양’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종합순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듣곤 한다. 우리나라는 태릉선수촌이나 체육인 연금제도 등의 획기적 제도를 통해 경제성장과 비례해서 꾸준히 올림픽 ‘종합순위’를 올려왔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국위선양을 한 경험이 있는 우리는 과학 분야에서도 조직적으로 연구비 증액이나 우수과학자 육성정책을 펴면 금메달처럼 노벨상도 정기적으로 산출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벨상은 무엇보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기리기 위해 수여되는 것이다. 풍부한 연구비와 과학영재 조기발굴 등이 위대한 과학적 성취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실질적으로 직접적 인과관계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사전에 따르면 ‘위대하다’는 ‘능력, 도량, 업적 따위가 뛰어나고 훌륭’함을 의미한다. 일단 우리의 관심은 과학적 성취의 탁월함이지 과학자의 인격적 탁월함이 아니므로 과학자의 ‘도량’은 논외로 하자.
그렇다면 남는 것은 능력과 업적인데 일반적 상식과 달리 과학자의 능력이 위대한 과학적 성취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흔히 위대한 과학연구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던 남다른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쉽게 판단하기 위해 노벨상 수상자 집단을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이룬 집단의 전형으로 생각하면, 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천재적 능력을 보여 주었던 사람도 있지만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도 평범했던 사람도 있다. 거꾸로 누구도 부인 못할 천재적 능력을 갖춘 과학자 중에서 과학사에 기록될 만한 독창적 연구를 못한 사람도 수두룩하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이룬 과학자 중에서 지적 능력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두 가지 상반된 전설, 즉 아인슈타인이 학교에 다닐 때 성적이 나빴다는 이야기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몇 사람에 불과할 정도로 그의 업적이 천재적이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능지수가 일정 수준(대략 120에서 130 사이)을 넘으면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일과 지능지수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라진다. 즉, 머리가 어느 정도 좋다면 위대한 과학적 성취는 과학자의 ‘똑똑함’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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