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방민호의 현대문학 명장면 20](3)‘원산 철수’로 고향 떠난 아픔…남녘 문학의 새 씨앗 되다
방민호 |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ㆍ월남문학의 시발점에 대하여 - 최인훈과 이호철
때아니게 6·25, 한국전쟁 이야기부터 하자.
최인훈과 이호철, 이 두 분에게는 마치 운명이라고나 해야 할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둘 다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 원산에 살았고 1·4후퇴를 앞두고 같은 미군 함정을 ‘함께’ 타고 원산을 떠나 부산에 닿아 남쪽 생활을 시작했다. 이 ‘역사적인’ 날을 역사는 ‘원산 철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흥남 철수는 알아도 원산 철수는 모르곤 한다. 2014년 화제작인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에 나오는 스펙터클한 장면, 그것이 바로 흥남 철수다. 원산 철수는 문학이나 영화의 화제로 오른 적이 별로 없다.
원산 철수와 흥남 철수, 사연인즉슨 이렇다. 서울을 인민군에 빼앗긴 지 3개월이 되었다. 그러다 9월15일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대반격의 계기를 마련해 북으로 밀고 올라가던 연합군, 국군은 때아닌 ‘중공군’의 개입을 맞게 된다. 10월26일경 국군 제6사단이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았다 하지만 곧 황망하게 후퇴해야 할 정도로 전세는 급격히 불리해졌다. 이 역전의 속도로 말미암아 동부전선의 미군, 국군들은 함흥, 원산 일대에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육로로 퇴각하는 것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자 결국 함정을 통한 철수가 결정된다. 흥남 철수는 1950년 12월12일부터 15일까지의 일, 그 서막에 해당하는 원산 철수는 자료에 따르면 12월7일과 12월9일에 있었다.
■소년들, 1·4후퇴 앞두고 미 군함에 오르다
최인훈과 이호철, 그때 이 두 작가는 모두 10대의 연소한 나이로 원산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이었다. 먼저, 최인훈. 그는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이고 해방이 되면서 부친이 자산계급으로 분류되면서 원산으로 떠나오게 된다. 그러나 원산에서도 출신 계급의 꼬리표는 소년을 괴롭혔다. 그의 1994년 대작 <화두>는 이 소년의 외로웠던 나날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작은 글짓기 내용이 빌미가 되어 소년은 소년단 지도원 선생의 자기비판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소년의 ‘왜곡된’ 시선에서 계급적 원인을 끝내 찾아내고자 했던 지도원 선생은 소년을 버려지다시피 한 도서관으로 향하게 했고 거기서 소년은 문학에의 동경을 스스로 익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소년은 지도원 선생의 무서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소년은 국어 시간에 조명희 소설 <낙동강>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사랑과 혁명을 감동적으로 배웠다. 그러나 소년의 부친은 여전히 적대 계급의 일원으로 취급되었고 이때 전쟁이 발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군이 원산을 점령하자 그의 부친은 국군 쪽에 협력하는 직책을 맡았다. 다시 전세가 역전되고 하루바삐 원산을 내주어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저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부역자 가족인 소년의 가족은 원산 철수가 시작되자 일차적으로 부산행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호철. 그는 원래부터의 원산 사람,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부심 섞어 말하는 덕원 사람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이미 고등학교 3학년, 한 달만 있으면 7월, 당시 학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인데 전쟁이 터져버린 것이다. 학도병으로 전선에 투입된 그는 부대를 따라 진격, 울진 근처에까지 내려오지만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한다. 인천상륙작전은 그의 부대를 오합지졸처럼 흩어버리고 대오를 잃어버린 그는 혈혈단신 북상하다 국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전쟁터에서는 살고 죽음이 하늘에 맡겨진 것이던가. 포로가 된 그를 마침 청년단 부단장이 되어 있던 자형이 발견한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얇은 선의 이쪽에 속하게 된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원산 바닥에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원산에 미국이 원자폭탄을 터뜨린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돈다. 살려면 원산을 떠나야 한다. 부친과 함께 집을 떠난 그였건만 부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혼자였다.
이로써 이호철은 혈혈단신, 최인훈 소년이 탄 그 배를 함께 타고 부산으로 온다. 물론 배 안에서도 부산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이 각자의 길을 걸어 한국문학에 큰 궤적을 남길 작가가 되리라는 것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들이 문학사에 그 존재를 뚜렷하게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전반기. 이때 최인훈은 문제작 <광장>(정향사, 1961)을 펴내며 일약 전후문학의 기린아로 떠올랐고, 이호철도 같은 무렵인 1961년의 <판문점>을 거쳐 1964년 ‘세대’에 장편 <소시민>을 연재하면서 문제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은밀히 드러낸 남과 북의 이질적 감정
이 두 사람의 문학을 오늘날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문제를 놓고 우리는 지금까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에 주의를 돌리게 된다. 그것은 이른바 ‘월남문학’이라는 것이다.
월남문학이라고 하면 요즘 학생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용어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베트남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또한 예를 들어 장용학 같은 작가가 월남작가였다는 말은 하지만 ‘월남작가’를 하나의 전체로, 집합적으로 다루어 이해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들다. 월남문학, 월남작가라는 범주를 해방 이후 한국문학의 중요한 설명 범주로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 것이 오늘 논의의 요점이다.
어찌하여 월북과 다른 월남이 있었던가를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물론 북한에서의 독재적 사회주의 체제 수립과 그에 따른 부자유와 억압을 지적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문학인들이 이데올로기의 억압을 피해 남으로 내려왔음에도 이 남쪽에서의 적응과정 역시 녹록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로서 새로운 세계 질서에 직면해야 했다. 그들은 남쪽에 고향을 가진 작가와 시인들, 그러니까 김동리나 서정주, 박목월, 조지훈 같은 사람들과는 다른 문학을 해야 했고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그들은 고향에서 핍박받아 떠날 수밖에 없었으되 남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도 깊은 위화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이질적인 감정을 감추면서도 은밀히 드러내는 위태로운 삶과 문학을 영위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최인훈과 이호철의 문학이 설명된다. 먼저 최인훈의 경우,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부정부패와 친일파가 득세하고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핍박받는 남쪽 세상을 떠나 북으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본 것은 허울 좋은 이상과 동떨어진 부자유뿐이다. 결국 한국전쟁 와중에 포로가 된 그는 남도, 북도 아닌 제3국 인도를 택하며 그곳으로 향하는 바다 위에서 삶을 버리고 만다.
다음은 이호철의 <소시민>의 경우. 여기서는 아비 어미도 없이 홀로 낯선 남쪽 땅 끝에 발을 디뎌야 했던 스무 살 청년의 성장기가 펼쳐진다. 이름하여 임시수도 부산. 전쟁으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르면서 작가 이호철은 이 전쟁 중의 부산을 한국 자본주의가 새롭게 잉태된 인큐베이터와 같다고 생각했다. 신분 상승의 욕망과 협잡과 부조리와 은밀한 거래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풍차를 돌리고 있었다. 이때 이호철 자신은 다시 한번 나온 징집영장을 피해 도피를 택했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 작가 자신의 분신을 향해 이호철은 징집영장을 받아들여 훈련소로 향하도록 한다.
최인훈의 또 다른 문제작 <회색인>에는 ‘데가주망’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월남한 주인공 독고준은 경주가 고향인 김학과 달리 다가오는 혁명, 곧 4·19에의 ‘데가주망’을 선언한다. 앙가주망, 곧 참여와 대립적인 의미를 갖는 데가주망, 곧 이탈. 독고준은 대신에 ‘사랑과 시간’을 들인 새로운 유토피아의 설계를 꿈꾼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까지 치른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반독재 정치혁명이 아닌, 그 혁명이 아이러니하게 북한 체제 쪽으로 경사되지 않고 새로운 사랑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황순원·장용학·박완서도 월남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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